183화 지켜라, 무슨 일이 있어도
타다닷-!
주변에 동료가 없는 오른쪽 사이드 지역에서 공을 받은 러너는 혼자 드리블 돌파를 하기보다는 공을 끌면서 팀원들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이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 팀은 아니었기에 바로 수비가 압박을 들어오는 상황.
일 초가 일 분같이 느껴지는 그 순간, 라인을 타고 지금 달려오는 한 명을 제치더라도 뒤쪽의 수비수를 뚫지 못하면 갇힐 것을 예상한다.
투욱-!
‘⋯아쉽지만.’
결국 선택하는 것은 백패스.
마음속으로 내뱉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공을 안 뺏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앞이 막혀있는 지금 시야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뒤쪽에서 달려오는 스미스.
꽤나 빠르게 올라왔다고 생각했지만 수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다 보니 아직 골대까지는 거리가 남아있었다.
투우욱-!
“어딜 갈려고, 애송이!”
“주력은 내가 빠르다고, 늙은이!”
하지만 뮌헨의 베테랑 미드필더가 나이가 있음에도 수비 지역에서 빠르게 올라온 스미스를 마킹하면서 도발하고 있었다.
자신을 제치고 네가 어떻게 공을 잡겠냐는 의미로 말이다.
그러나 유스 출신으로 빠르게 1군에 데뷔하고 1.5군으로 자리 잡은 스미스의 자신감은 이미 충만한 상태.
그런 도발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상대팀 선수보다 더 빠르게 치고 나가며 공을 길게 친다.
뒤에서 따라오는 늙은이가 발도 가져다 대지 못하도록.
투욱-!
그런 스미스가 골대와 조금 가까워져 가는 상황에서 남아있던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이 이제 앞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공을 어디로 줄지는 생각을 해놓았다.
측면에서 자신에게 패스를 주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러너로 가는 패스루트는 사라진 상태에서 줄 곳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바로 동일선상에서 계속해서 전진하며 기다리고 있는 유건에게.
스윽-! 투욱-!
‘⋯지금!’
물론 그에게도 이미 패스가 갈 것을 의식해서 한 명의 미드필더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유건은 그 상황에서 반대쪽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바로 잡기보다는 등을 돌려 터치하고 왼발로 사이드 쪽으로 벌려주려는 자세를 취한다.
이미 그쪽으로는 소우사가 오버래핑을 나가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수비하는 상대팀 선수는 그 몸동작을 보았기에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른쪽 사이드에서 빠져나오며 중앙으로 전달되는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비어있는 반대쪽 공간으로 전환하는 게 정상.
쭈욱-!
“⋯크윽, 이 자식이!”
하지만 그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얘기하듯이 유건은 순간적으로 몸을 돌린 상태에서 오른발로 잡고 왼발로 치지 않고, 첫 터치를 안쪽으로 가져간다.
몸을 돌려 사이드를 의식하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의 미드필더를 제치고 나가기 위해서.
그런 유건의 유니폼을 잡아보려 했지만 몸이 반대쪽으로 치우친 상황이었기에 확실하게 잡아놓지 못했다.
손으로 그것을 떨쳐내고 앞쪽으로 나가버렸으니까.
콰아앙-!
그리고는 고민하지도 않았다.
중앙 수비만이 남아있는 골대 앞까지 가기보다는 라인 밖에서 그들이 뛰쳐나오기 전에 곧바로 슈팅으로 연결하는 것을 선택했다.
강하게 휘두른 유건의 발이 공을 때리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골대를 향해 강하게 빨려들어 가기 시작한다.
다른 선수들의 복부 높이 정도로 중앙 수비수의 측면 쪽으로 슈팅이 날아간다.
출렁-!
행운도 따랐다.
뮌헨의 수문장이 슈팅을 따라서 몸을 날렸으나 앞에 있는 수비수 측면으로 날아오다 보니 순간적으로 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찰나의 시간 동안 벌어졌던 그 사라짐은 골대 끝까지 날렸어야 하는 몸을 망설이게 했다.
그리고 유건의 슈팅은 약간 벌어진 그 틈으로, 골키퍼의 장갑과 골대 사이에 딱 축구공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뚫고 들어간다.
“으아아아! 이게 나라고, 이 자식들아!”
골대가 출렁거리는 것이 시야에서 보이자, 유건은 달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포효한다.
사실 오늘 경기가 좋은 양상으로 흘러갔던 건 아니다 보니 내심 완장을 차고 있는 주장으로서 무언가 해내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으니까.
그것에서 해방되는 순간 평소와 같이 코너 플랫으로 달려갈 수 없을 정도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팀원들에게 화이팅 있게 소리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고.
- 미친 거 아니냐고! 페인팅도 지렸고 골은 진짜 개지렸다. 넣을 수 있는 코스가 딱 하나밖에 없었는데 거기로 꽂아넣네
- 오랜만에 외쳐봅니다. 축따형! 축따형! 축따형!
- 뮌헨 다운!! 맨체스터 시티 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와! 레알 마드리드 나와!
└ 그 시티랑 마드리드 형들은 들어가 있어 줄래? 맨유 형들도 안나와도 돼
뮌헨 골키퍼만 알 수 있었던 행운이 담겨있는 유건의 골은 중계방송으로는 그저 득점이 가능한 코스로 골을 뽑아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슬로우 모션을 세세하게 들여다 보면 골키퍼의 시야가 보이는 골대 후방 카메라에는 슈팅이 순간 가려지는 게 잡히겠지만, 그것은 지금 국내 팬들에게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스날 선수들이 포효하면서 달려가서 안고 있는 캡틴 완장의 주인, 유건을 찬양하느라 바빴으니까.
후반 32분, 유건이 행운의 골을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단 두 개의 유효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는 순간이기도 했고.
***
삐익-!
“아니, 아니에요! 불가피한 상황이잖아요!”
하지만 그 운은 신도 예상 못했던 건지, 결과를 뒤바꿀 수도 있는 기회를 뮌헨에게 만들어주었다.
중앙에 밀집된 아스날 미드필더 라인과 수비가 답답했던 건지 막무가내식으로 멀리서 중거리 슈팅을 날리는 뮌헨의 미드필더.
그러나 그 공은 둠바의 왼쪽에 위치한 아스날의 중앙 수비수가 벌리고 있던 팔에 맞고 굴절된다.
너무 빠른 슈팅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주심은 단호하게 휘슬을 불고 페널티킥을 선언한다.
곧바로 달려가서 어필해보는 수비수였고 유건도 바로 달려간다.
“VAR 확인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구요!”
표정의 변화 없이 허공을 응시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레프리를 향해 판정에 대한 불만이 아닌 VAR 확인을 요구한다.
슬로우 모션으로 한 번 더 확인하면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깨닫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무슨 VAR이에요! 확실하게 손에 맞았다구요!”
“팔을 저렇게 벌리고 있는 건 자연스럽지가 않죠! 고의성이 있다구요!”
당연히 뮌헨의 선수들은 그 요청을 무시해달라며 호소한다.
페널티킥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통 뒷짐을 지고 수비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외치면서.
그것과는 달리 중거리 슈팅이 갑자기 날아오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들에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판정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동점골의 가능성이 생기니까 말이다.
삐익-! 스으으으-!
“젠장!”
“그렇지!!”
결과는 휘슬을 불고 네모난 사각형을 손으로 그리는 주심의 동작에서 알 수 있었다.
애꿎은 잔디를 걷어차며 비속어를 내뱉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하는 아스날 선수들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었고.
VAR을 확인한다는 제스처였다.
“아! 주심이 VAR을 확인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확실히 너무 가까웠던 감이 있다는 것을 느낀 걸까요?”
“사실 불안하긴 합니다. 팔을 일반적인 경우보다 많이 벌린 상태였기에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과연 판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페널티킥이 선언되면 바이에른 뮌헨에게는 좋은 기회거든요!”
“후반전 44분이 지나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동점골을 성공시킨다면 추가골을 위한 시간도 있다고 볼 수 있죠!”
헤드셋으로 VAR실의 의견을 전달받으며 화면을 두 번, 세번 돌려보는 경기장 위의 주심.
그것을 보며 안준성과 전지우는 판정을 예상해보며 이어지는 경기 상황을 그려보며 중계를 이어간다.
만약 페널티킥이 선언돼서 골을 넣는다면 남은 추가시간 동안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한 혈투가 벌어질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아스날이 철통같이 걸어 잠그는 장면이 그려졌으니까.
삐익-! 스윽-!
아스날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골을 먼저 넣은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신이 그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판정을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심은 휘슬을 불고 아스날의 골대를 향해 손을 든다.
유건의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대로 바이에른 뮌헨의 페널티킥이 선언되는 순간이었다.
“마세코, 화이팅!!”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항의를 하는 것은 카드를 주고 싶으면 지금 달라고 어필하는 격.
그런 상황으로 이어졌기에 아스날 선수들은 골대 라인 바로 밖에서 마세코의 선방을 믿고 클리어링을 위해 달려갈 준비를 한다.
반면 바이에른 뮌헨의 페널티킥 키커, 왼쪽 윙포워드 선수는 침착하게 숨을 가다듬고 있었고.
투욱-!
‘미친놈이⋯’
멀리 떨어지지 않고 두 발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도움닫기를 통해 공에 발을 가져다 대는 뮌헨 선수.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파넨카 킥이었다.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그렇게 공을 처리하는 그를 보며 강심장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유건.
자신은 머릿속의 메세지가 시켰을 때만 파넨카 킥을 시도했었기에 놀라움은 배가 되었다.
와아아아-!
“아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알버트, 바로 교체 가져가자고!”
“네, 감독님!!”
그리고 그 상황에서 마세코는 이미 몸을 한쪽 방향을 정해 날리고 있었고, 덕분에 뮌헨 선수의 페널티킥은 그대로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 간다.
몸이 바닥에 넘어진 상황에서 곧바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재차 날리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맞춰서 울려 퍼지는 알리안츠 아레나에 방문한 홈팬들의 함성.
마치 선제골을 터트리기라도 한 듯한 엄청난 함성을 들으며 좌절하는 아스날 선수들 뒤로 벤치에서는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골문을 걸어 잠그기 위해서.
삐익-!
한 골을 더 넣겠다는 바이에른 뮌헨의 의지는 곧바로 킥오프를 유도했고, 아스날 선수들의 패스 플레이를 커팅에 성공한다.
물론 그 덕분에 아르테타가 준비한 교체 카드가 사용될 타이밍이 찾아오긴 했지만.
“⋯지켜라, 무슨 일이 있어도”
파티노와 유건을 빼고 체력이 쌩생한 로테이션 선수들을 투입하는 아르테타.
모두 공격보다는 수비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선수들이었고 아스날로서는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가동하는 것이었다.
러너까지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로 내려오며 경기장에 있는 모든 팀원이 수비에만 치중하는 포지션.
텐백이라는 전술을.
‘5분만⋯!’
경기장을 나오며 벤치에 앉지도 못하고 시선을 그곳에서 떼지 못하는 교체 선수들.
유건은 마음속으로 팀원들에게 5분만 버텨달라고 바라면서 경기를 지켜본다.
남은 시간 동안만 지켜낸다면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