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실핏줄 다 터졌다고요
“준철!”
“지민!”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에서 2골 1어시를 기록하며 A매치 전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유건.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가장 빠른 귀국행 비행기를 탔고 한국에 도착했었다.
내년에 있을 월드컵을 위해 이제는 김진용 감독도 모든 해외파를 소집해 평가전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체력을 위해 세 경기 중 한 경기를 휴식한 유건은 남은 두 경기에 출전해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평가전이니만큼 수많은 팬들이 찾아왔는데 박준철에게 어시스트하고 손지민과 패스를 주고받는 유건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명실상부 지금 한국 스포츠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으니까.
“국내에서 하면 팀 동료분들은 못 오시는 거 아니에요? 다 해외에 계실 텐데.”
“구단분들과 직원들은 전용기로 올 거야. 지원해주기로 하셨거든! 파티 자체는 돌아가서 성대하게 런던에서 진행하기로 해서 괜찮아.”
“지연이도 파티 오고 싶으면 런던 놀러오구.”
“전, 전용기? 그렇게까지 안 해도 충분한데⋯.”
“에이, 그래도 남편 될 사람 동료인데 들어오는 게 맞지! 흐흐, 오빠 아직 결혼 안 한 멋진 선수 있으면 미리 얘기좀 해줘요.”
평가전을 모두 마치고 다시 시즌을 진행하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유건은 여름과 함께 강혜리와 김지연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여름이 가장 가깝게 지내는 그녀들인 만큼 결혼을 진행하고 식장 예약까지는 끝난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
그중 김지연은 내심 런던에서 하는 결혼식에 참석을 하고 싶었던 건지, 질문을 던졌고 간단하게 답변하는 유건이었다.
아르테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시즌이 끝나고 진행될 유건의 행사에 대해 이미 전용기 지원까지는 얘기가 완료된 상황이었기에.
지금 관련된 얘기를 처음 듣는 여름이 놀라긴 했지만 그녀를 보고 빨리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된 지연은 그저 설렐 뿐이었다.
미래의 신랑감이 자신보다 훨씬 유명한 세계에서 유명한 스포츠 스타라면 멋져 보일 테니까.
“⋯크흠, 쿠아바는 어떠냐?”
“그분은 솔직히 좀 무서워서⋯.”
그런 그녀를 보고 유건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한 사람.
아스날에 소속된 선수들 중에서 가장 자신과 붙어 다녔던 기간이 길었던 쿠아바였다.
마침 그도 교제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상태였으니 이어지면 괜찮을 거라고 예상해서 제안해보았다.
물론 10초의 시간도 고민하지 않고 거절당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거기 잘생긴 사람 한 명 있던데⋯, 쿠아바는 빼고!’
이미 점찍어놓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지금은 김지연, 그녀만 아는 비밀이었다.
연결되더라도 유건과 여름처럼 특이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 한국과 런던의 장거리 연애는 불가하겠지만.
***
[다시 시작될 프리미어리그의 선두 아스날, 토트넘 - 바이에른 뮌헨 - 맨체스터 시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어지는 4연전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 것인가?]
[과연 아스날을 상대로 첫 골과 첫 승리를 가져올 주인공은 리그의 어떤 팀이 될 것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플레이메이커 유건을 뒷받침하는 파티노, 카마메니의 조합에 대해서 파헤져보자]
유건을 필두로 국가를 대표하는 A매치를 위해 평가전을 진행하고 온 아스날 선수들은 하나둘씩 런던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약 2주간의 휴식 기간에 돌입한 프리미어리그의 다음 라운드 결과들을 예상하고 선두인 아스날을 분석하는 칼럼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이제까지는 대진이 좋아서 좋은 모습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게 가능했다는 의견도 사실 많았었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6연전에서 또다시 평가받을 예정이었다.
가장 처음에 맞붙을 토트넘과 맨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 전후로 치러질 챔피언스리그까지 포함하면 총 6경기.
바쁜 일정 중 세계 최고 수준의 팀이 세 팀이나 포진되어 있었고 그곳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연스레 증명될 것이다.
강팀과 맞붙어보기 전까지 그들은 고평가는커녕 저평가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A매치 기간 이후 첫 경기 상대팀이 토트넘이라 다행이다. 연이어 이어지는 힘든 경기 전에 승리에 대한 욕구를 끌어올리자고.”
“경기를 뛰지 않고 휴식을 취했던 선수들 위주로 출전할 예정이니 모두 준비해라.”
“패배는 생각하지 말고 그저 북런던이 어떤 색인지 알려주고 와라.”
모든 선수가 복귀한 뒤 앞으로의 경기를 준비하는 첫 번째 시간을 이용해 아르테타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를 위한 방법을 찾던 중 가장 효과적일 거라고 예상했던 게 바로 이것.
항상 비교당하는 토트넘을 이용하여 승부욕을 끌어올려 놓고 이어지는 경기들까지 그 열정을 이어가게 만든다.
물론 이번 시즌만큼은 그들이 강등권 근처의 순위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아스날에게 실례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있는 동안은 토트넘이 우리를 넘볼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어주마.’
하지만 그런 그들을 유건은 더 절망 속으로 몰아넣고 싶었다.
아직은 언제까지 아스날 소속으로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모르지만, 그 기간만큼은 비교가 무의미하도록 압도적인 차이를 만들어놓고 싶었다.
구단의 오랜 팬들처럼 지역감정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나 아스날에서 경기를 뛰기 시작한 이후 그냥 싫어졌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특별하게 이유가 없더라도 좋다는 감정보다 싫다는 감정이 훨씬 많이 느껴지는 어떤 것이.
“사인 좀 해주세요, 건!”
“사진 찍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원하시는 만큼요!”
그렇게 유건이 극도로 싫어하는 토트넘과의 홈 경기 이틀 전, 콜니 트레이닝 센터로 많은 팬들이 찾아왔다.
평소보다 빨리 도착했던 그였기에 오늘은 출근길에 차를 세우고 팬들과 얘기를 나누며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준다.
매일 반복되는 그 시간에는 특히 현지 팬들 중에서도 어린 여자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그만큼 런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중 한 명이었고, 파파라치 사진에 여름과 함께 있는 장면이 찍혔음에도 프리미어리그에서 결혼하고 싶은 축구스타 1위로 뽑혔다.
골키퍼가 있다고 해서 골을 못 넣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있더라도 결혼을 하는 건 혹시 자신일 수도 있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으니까.
“축따형! 저 한국에서 왔습니다!”
“저도 사인 좀⋯.”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그중에서는 여행을 온 다른 나라의 아스날 팬들도 많이 보였다.
한국인들이야 축따튜브를 하다 보니 다들 친밀하게 축따형이라고 호칭하며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쭈뼛쭈뼛 부탁하는 게 어찌 보면 일반적이었다.
사인이나 사진을 찍어주는 건 선수의 자유인 만큼 유건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지금 이 순간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었기에.
부아앙-!
“건, 건! 토트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사인을 다 끝내고 이제는 다시 차에 탑승해서 콜니 트레이닝 센터로 들어갈 차례.
강한 배기음과 함께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던 찰나, 당돌한 어린 남자 꼬마 아이의 질문이 유건의 귀로 들려온다.
토트넘에 대해서 혹시 어떻게 생각하냐고.
“⋯Shit.”
잠깐 생각하던 유건의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오고 씨익 미소를 짓더니 창문을 올리면서 출발한다.
평소에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이유인지 그저 그 단어가 떠올랐을 뿐이다
“으하하, SHIT!!”
“건, 건!”
마지막으로 들어간 유건이 남긴 한 마디는 오늘 콜니 앞에 도착한 팬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단 한 단어였지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그저 토트넘을 안 좋게 말하는 어떤 것이든 만족했을 테지만 말이다.
***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1골 2어시를 기록하며 MOM에 선정된 아스날의 주장 유건, “훈련 세션을 진행하면서부터 감독님은 말씀하셨다. 경기가 중간중간 안 풀릴 때는 있겠지만 승리는 우리 것이라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아스날 VS 토트넘.
경기가 시작한 이후 첫 번째로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내자마자 정확히 구석으로 꽂아 넣으며 첫 득점에 성공한 유건.
쿠아바와 캐시의 골도 어시스트하면서 경기를 지배했다고 봐도 될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토트넘전을 합산한 유건의 공격 포인트 기록은 리그 10경기 6골 14어시스트, 시즌을 통틀어 본다면 13경기 7골 19어시스트였다.
오랜 옛날 역대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와 그와 비교되던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경쟁했던 시절 그들이 기록했던 평균 1 이상의 공격 포인트.
그것을 재현하고 있는 유건은 이제 명실상부 월드 클래스 수준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후보 1순위 유건, “토트넘을 우승이나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한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에게는 북런던의 색상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벌써부터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우수 선수로 거론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평소의 겸손한 인터뷰와는 꽤나 상반된 이번 인터뷰도 약간 주목을 받았다.
상대팀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 논란이 크게 있지는 않았다.
양팀의 라이벌 관계는 예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오히려 자신감 있는 인터뷰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실제 경기에서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이번 경기를 잡는다면 우리는 이변이 발생되지 않는 한 조에서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다.”
“그 단계에서부터는 어쩌면 프리미어리그보다 힘든 경기가 일정 주기로 잡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좋은 모습과 인터뷰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아스날 선수단과 감독, 코치진들이 위치한 곳은 바로 독일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4라운드인 바이에른 뮌헨 원정을 위해서 하루 전에 도착한 것이고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분데스리가의 우승컵이 가장 많이 들어 올려진 그 경기장에서, 조의 1위를 가리는 경기가 말이다.
16강부터 진행되는 토너먼트는 각 조의 1, 2위가 진출하기에 다른 조의 선두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번 경기에서 이겨야만 했다.
“올림피아코스나 디나모 자그레브에게도 패배하면 안 되겠지만, 내일이 가장 중요하니 모두 오늘은 컨디션 유지에 집중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숙박이 예정된 장소에서 모든 브리핑을 마치고 해산을 외치는 아르테타.
그에 대답하는 선수들과 코치진의 목소리가 이제까지 중에 가장 좋아 보였던 것은 착각이리라.
아르테타의 열정을 피곤하게 느꼈다기보다는 비행 이후에 곧바로 진행된 경기 브리핑이었기에 잠깐 피곤했을 뿐이다.
‘⋯보스, 눈에 실핏줄 다 터졌다고요.’
사실 가장 피곤한 상태였던 것은 바로 아르테타.
출발 직전까지 뮌헨을 이기기 위해서 분석을 하고 비행기에서도 별다른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그의 충혈된 눈을 보면서 내일 경기의 승리를 한 번 더 바라는 유건이었다.
아르테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