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
“스미스, 더 넓게 벌려줘!”
“건, 조금 더 바깥쪽으로!”
실점 이후 아르테타가 가져간 전술의 변화는 중앙 지역의 선수 추가였다.
선제골을 만들어냈던 세트피스 상황까지 연결시킨 러너를 빼고 스미스를 투입해서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의 메짤라를 양쪽으로 포진시킨다.
윙포워드 위주로 공격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바이에른 뮌헨의 측면을 틀어막기 위해서.
그 포지션을 전체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중앙에 위치한 파티노.
경기를 풀어나가는 외침은 주장 완장을 찬 유건에게 일임했다면 세부적인 포지셔닝은 파티노가 맡아서 외치고 있었다.
투욱-! 투욱-!
세 명이 구성하던 중앙 지역에 스미스가 함께 들어오면서 패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추가되었고, 아스날의 미드필더들은 그것을 충분히 이용했다.
간단히 주고받는 리턴패스부터 압박을 피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며 공을 주고받는다.
안전하게 빌드업 과정을 도맡아주는 파티노와 카마메니가 있는 볼란치에서부터 보다 넓게 벌려있는 유건과 스미스에게까지.
쿠아바도 꽤 자주 내려와서 플레이해주며 수적 우위의 상황을 만들어준다.
뻐어엉-! 스으으-!
물론 많은 숫자가 그렇게 내려있기에 공격 지역에서는 보다 위협적으로 풀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스날에게는 해답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대일 드리블 상황에서 이번 시즌은 거의 백 프로 확률로 마주하고 있는 상대를 뚫어내는 오른쪽 날개 캐시가 있었으니까.
두 명의 공격수라 투톱의 형태로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측면으로 빠져 길게 오는 패스들을 받아 팀원들이 재차 올라올 때까지 공을 소유해주었다.
물론 그 상황에서 키핑을 실패하면서 다시 역습을 나오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실점 이후 집중력을 쏟아붓고 있는 소우사와 페레이라가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크로스를 허용하더라도 일대일 돌파를 당해서 더 위협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내고 있었다는 말이다.
투욱-!
“건, 공 봐! 맨온이야.”
그렇게 아스날이 점차 압박을 하며 라인을 올려 가던 중 쿠아바의 순간적인 전방 압박에 당황한 뮌헨의 골키퍼가 어설프게 클리어를 한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답게 빌드업, 선방 능력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방금 상황에서는 발기술을 자신하기보다는 클리어하는 게 맞다고 볼 정도로 어쩔수 없었다.
거대한 덩치의 쿠아바가 다리를 뻗는 상황에서 뒷발로 공을 빼내더라도 몸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보다 짧게 클리어되는 그 공의 낙하지점에는 마침 카마메니가 기다리고 있었고 정확하고 짧은 헤딩으로 유건에게 전달한다.
뒤를 인지하긴 했지만 더 확실하게 공을 소유하기 위해서 맨온이라 외치는 팀원의 말에 곧바로 리턴 패스를 내주는 유건.
투욱-!
‘내주고 측면으로⋯’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들어오는 선수의 위치를 흘깃 보고 순간적으로 방향을 꺾어 측면으로 향한다.
거기에 맞춰서 리턴받은 팀원이 패스를 넣어줄 거라고 의심하지 않고.
투욱-!
“건!!”
유건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패스를 받은 파티노는 측면으로 벌려 공간을 만들어낸 유건에게 곧바로 패스를 찔렀고, 공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 몸을 돌아서며 받는다.
바로 전진할 수 있게 말이다.
휘익-! 휘익-!
다른 한 명의 미드필더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지만 당황하지 않고 페인팅을 시도하는 유건.
오른발을 먼저 공 위로 흔들며 헛다리 드리블을 시도하고, 속지 않는 상대 선수를 앞에 두고 반대 발로 다시 한번 페인팅을 준다.
그가 치고 나가려는 방향은 오른쪽이었으니까.
“어딜!”
하지만 그마저도 속지 않고 오른발로 치고 가려는 타이밍에 발을 뻗으며 상대 선수가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찰나, 공을 건드리지 않고 몸만 움직인다.
타닥-!
‘⋯너야말로 어딜!’
곧바로 반대쪽으로 팬텀 드리블로 치고 나가기 위해서.
마음속으로 상대 선수가 내뱉은 말을 반박하면서 양발을 이용해서 반대쪽으로 치고 나간다.
그러나 그 방향에는 이미 이대일 패스를 통해 제쳐낸 미드필더가 있는 위치.
뚫는 게 목적이다 보니 마지막 터치가 살짝 길었던 유건의 팬텀 드리블을 뺏기 위해서 재차 다리를 뻗어온다.
스윽-! 휘릭-!
“이 자식이!”
충분히 겪어본 상황이었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가장 자신 있는 개인기 중 하나인 마르세유 턴을 이용해서 흐름을 그대로 살려 치고 나간다.
다리를 앞쪽에서 상대 선수가 뻗어오고 있었지만 자신이 조금 더 가까운 것을 인지하고 바로 시도한 것이다.
옅은 신음을 내뱉는 뮌헨 미드필더의 목소리를 들으며 전진한다.
“건!!”
“이쪽이야!”
그까지 올라온 순간 전방에 위치하던 쿠아바와 캐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자리에서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움직이며 유건을 부른다.
자신의 위치가 좋다면 그가 확실하게 패스를 넣어줄 거라고 믿으면서.
스으으-!
팀원들이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처럼 유건이 완벽하게 필요한 패스를 넣어주기 때문.
그리고 유건은 중앙 수비수들 사이로 움직인 쿠아바에게 넣어주고 곧바로 움직임을 가져간다.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그라면 똑같이 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기에.
투욱-!
‘⋯나이스다, 이자식아!’
유건이 쿠아바의 믿음에 보답한 것처럼 반대의 상황에서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두 명의 중앙 수비수 중간에 위치한 상황에서도 보다 더 앞쪽으로 전진하는 유건에게 정확히 발의 아웃사이드 쪽에 맞추면서 리턴을 내주었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 사이의 말하지 않아도 호흡이 맞는 플레이.
그런 작은 부분들이 하나씩 모여 이번 시즌 아스날의 분위기를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윽-! 투욱-!
조금 더 골대와 가까워진 유건의 다이렉트 슈팅을 의식한 뮌헨의 중앙 수비수는 당연히 막으러 달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면을 가로막고 있고 옆으로 돌아뛸 준비를 하고 있는 캐시 쪽으로 주기에는 상대 선수가 다리만 움직이면 막을 수 있는 코스였기에 섣불리 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유건은 그렇게 패스 길이 없는 지금 이 순간, 그만이 볼 수 있는 새로운 루트를 만들어낼 수준으로 충분히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휘두르던 다리가 공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슈팅이 아닌 발바닥으로 공을 한 번 끌어온다.
그 드리블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동작을 위해 발로 공을 한 번 더 툭 차 낸다.
콰아앙-!
“믿었다고, 건!!”
발바닥을 이용한 역방향 플립플랩.
보통 공을 발의 아랫부분을 이용해서 끌어간다면 한 바퀴 다 굴린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유건은 중간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공을 건들면서 마주한 상대 중앙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패스를 보낸다.
마침 그때 수비의 측면에서 스타트를 끊는 캐시에게.
그도 유건이 어떻게든 자신에게 패스를 보내줄 거라고 믿고 코스가 없음에도 미리 전진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골키퍼가 지키는 골문으로 슈팅을 가져가는 것을 방해하는 선수가 없어지는 것을 인지하고는 정해놓은 방향으로 낮고 강하게 때린다.
출렁-!
월드 클래스 골키퍼답게 중앙 수비의 다리 사이로 공이 빠지는 것을 보자마자 각을 좁히기 위해 뛰쳐나왔던 뮌헨의 수문장.
하지만 비어있는 먼 쪽 포스트로 낮고 빠르게 감아차는 캐시의 슈팅을 막기에는 너무 신경 써야 할 범위가 넓었다.
몸을 날려봤지만 손에 닿지도 않고 골대 그물을 찢어버릴 듯이 날아가 꽂혔으니까.
와아아아-!
“으하하, 더 환호해달라고!!”
“잘했다, 이 자식아!”
유건의 멋진 드리블 돌파부터 시작한 동갑내기 트리오의 합작 플레이.
과정 자체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골이 터지면 기뻐하는 게 홈팬들인데 경이로운 패스 플레이로 득점을 만들어낸 이 순간, 미친 듯이 환호를 내지르는 건 당연했다.
새하얀 치아를 자랑하며 두 팔을 벌리고 팬들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가가더니 팬들에게 안기는 열광적인 세레머니를 보여주고 있는 캐시.
그리고 그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간 유건과 쿠아바는 함께 팬들을 향해 몸을 던진다.
“건, 건! 미친 패스였어!”
“쿠아바, 계속 그렇게만 해줘!”
“우리 보물 캐시, 너무 잘했다!”
그들보다 골대에서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아스날 선수들이 그 장소로 도착하기 전까지 팬들과 미친 듯이 끌어안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포효를 내지른다.
유건, 쿠아바, 캐시의 두 귀로 들려오는 팬들의 엄청난 칭찬과 환호성.
중계방송으로도 느껴지는 그들의 열기는 잠깐 자리를 비우고 득점 장면을 보지 못한 시청자가 뒤늦게 보기 시작했더라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스날이 다시 앞서가는 골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저, 저기서 어떻게 또 패스를 선택하는 겁니까! 대체 유건 선수는 몇 수 앞을 내다보고 플레이하는 거죠?”
“저 엄청난 드리블 실력을 매 경기 보고 싶을 뿐입니다! 간단한 페인팅과 터치들만으로 미드필더를 벗겨내고 골대 앞으로 전진을 시작한 게 이번 골의 기점이었죠!”
“물론 그 부분도 놀랍지만 저는 세레머니가 끝나고 있는 지금 순간까지도 마지막 패스에 대해서 그저 감탄밖에 못 하겠네요! 대체 저기서 어떻게⋯”
“맞습니다! 플립 플랩이라고 불리는 개인기 자체가 되게 가끔 나오고 사실 사이드 지역에서 윙포워드와 사이드백이 대치할 때 대부분 선수들이 시도하거든요?”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군요! 중앙 지역에서 앞의 선수를 뚫기 위해서 플립 플랩을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드리블이 끝나기 전에 패스를 했다는 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이죠! 그것도 상대 선수의 다리 사이 공간을 이용해서요!”
중계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안준성과 전지우도 환호성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임에서도 나오면 말도 안 된다고 소리칠 장면이 현실에서, 그것도 대한민국 국적의 유건이 챔피언스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보여주었으니까.
캐시의 깔끔한 마무리도 칭찬받을 장면이었지만 앞서서 보여주었던 유건의 존재감이 너무 뛰어났기에 국내 방송사에서는 시청자들을 위해 당연히 그 부분을 강조해서 언급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깥쪽으로 치는 척 공을 굴렸다가 순간적으로 안쪽 방향으로 바꾸는 플립 플랩은 보통 윙포워드들이 많이 구사하는 스킬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지역에서 그와 반대 방향 순서로 연결되는 역 플립 플랩을 돌파가 아닌 처음부터 패스를 노리고 보여주었다는 건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장면이기도 했고 말이다.
‘36분이라⋯, 10분? 15분?’
후반전 36분, 아스날이 다시 한번 앞서나가는 골을 넣고 다시 킥오프가 시작된 시간.
전광판을 슬쩍 바라본 유건은 뮌헨의 선축을 기다리며 남은 시간을 계산해본다.
추가 시간까지 예상한다면 약 10분에서 15분 정도만이 남았다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경기에 집중한다.
축구 경기에서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이변이 발생될 수 있는 시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