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우리는 바이에른 뮌헨이다
휘익-!
‘⋯닿는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공의 낙하지점을 가장 잘 읽어냈던 것은 바로 쿠아바였다.
두 명의 중앙 수비수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빈 공간을 노렸던 그였기에 이번에는 가장 먼저 그곳에 도달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엄청난 피지컬의 선수가 팔을 벌리고만 있어도 등 뒤에서 수비수가 그것을 돌아서 자리 잡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에.
콰앙-! 티잉-! 출렁-!
“우! 우! 우!”
미리 자리를 차지한 덕분에 쿠아바가 코너킥보다 훨씬 천천히 날아오는 공에 머리를 맞추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아주 강하게 내려찍는 그의 헤딩은 세계 최고라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의 골키퍼라 할지라도 막아내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눈앞에서 순식간에 다가오는 헤딩 슈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응했다는 점.
강하게 내려찍었던 덕분에 장갑을 튕겨내고 그대로 골대로 들어갔지만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말도 안 되는 선방을 보여줄 수 있었던 뮌헨의 수문장이었다.
하지만 그건 가정일 뿐이었고 이번에는 쿠아바가 득점을 확실하게 뽑아냈다.
훈련 세션에서부터 팀원들에게 새로운 세레머니라면서 보여주었던 이상한 춤 하나를 추면서 홈 팬들의 환호성을 요구한다.
“우! 우! 우!”
두 손을 앞으로 뻗고 한 박자에 한 번씩 두 다리를 점프하는 춤.
마치 옛날 독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토고가 선제골을 넣고 보여주었던 세레머니와 얼추 비슷한 춤.
어디서 무엇을 보고 온 건지 모르겠지만 꽤나 우스꽝스러운 쿠아바의 세레머니를 아스날 선수들이 따라 하면서 팬들과 가장 가까운 코너 플랫으로 다가간다.
- 크크, 쿠아바 새로운 세레머니 하나 기깔나게 만들었네!
- 단체로 세레머니하는 거 진짜 너무 웃기네! 선수단 화합 잘되고 좋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면이기도 한듯
- 세트피스 움직임 진짜 멋있었다. 페레이라만 빠져들어가고 나머지 선수들은 한 번에 다 중앙으로 붙어주네
- 바로 이전 상황에서 역습 나올 때 솔직히 가슴 철렁거렸는데 다행히 선제골 뽑았다! 아스날 그대로 리드 가즈아!
마지막으로 홈팬들에게 안기며 선제골의 기쁨을 즐기고 있는 아스날 선수단.
그것을 보며 축따튜브에서도 재차 슬로우 모션으로 나오는 중계 화면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환호한다.
누군가는 단체 세레머니에 대한 느낌을 채팅창에 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세트피스 움직임을 칭찬한다.
그렇게 유건에게 매료돼서 구독을 하고 응원을 해온 사람들이 점차 아스날이란 팀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미 지난 시즌 많은 사람들이 구너가 되었지만 이번 시즌은 기하급수적으로 팬이 늘어나고 있었다.
[리버풀의 레전드 제이미 캐러거,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시즌 우승 후보는 아스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리오 퍼디난드, “이번 시즌 가장 매력 있어 보이는 팀은 아스날이다. 그들의 축구는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인빈서블 시절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했던 킹 티에리 앙리, “이제까지 본 아스날 중 가장 에너지 레벨이 높고 강하다. 완벽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세계 최상위권 팀들의 레전드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 아스날에 매력을 느꼈다.
아르테타 3년 차에 처음 리그 우승을 만들어냈을 당시 맨체스터 시티의 느린 축구와 리버풀의 빠른 축구가 조합되었다고 평가받았던 스쿼드가 엇비슷하게 재현되고 있었으니까.
그때도 칭찬을 멈추지 않았던 캐러거와 퍼디난드는 다시 한번 최근 주춤하고 있는 자신의 전 소속팀을 제외하고는 아스날을 최고로 평가했다.
아스날에 소속되어 역사를 써 내려갔던 프리미어리그의 킹, 티에리 앙리를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삐이익-!
하지만 그것이 이번 경기에서 아스날이 이변 없이 승리를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은 시간이었고 상대팀은 얼마든지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바이에른 뮌헨이었으니까.
재차 울리는 휘슬 소리와 함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열기는 다시 솟구치기 시작한다.
***
“정말 수준이 높은 경기입니다! 양팀은 서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점을 한 이후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정신을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죠? 아까처럼 유건 선수의 패스가 원활하게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아스날의 수비 라인이 흔들리는 것을 이번시즌 들어 처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이 자랑하는 양쪽 윙포워드는 정말 명불허전입니다!”
“지난 시즌부터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는 소우사와 페레이라였지만 오늘은 번갈아 가면서 고통받고 있죠!”
“과연 아스날이 이번 시즌 첫 실점을 하게 될 것인지 기대되는 후반전입니다! 이대로 전반전이 종료되는군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역시 챔피언스리그답게 초반부터 엄청난 경기들이 연이어 나오네요!”
그대로 재개된 경기는 안준성과 전지우가 중계하는 대로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팽팽하게 엄청난 수준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윙포워드 위주의 측면 공격을 기계처럼 반복하는 바이에른 뮌헨이었지만 꽤나 성공적으로 아스날의 사이드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명실상부 월드 클래스 날개들이 위치하고 있는 뮌헨의 포지션이었으니까.
그 부분을 언급하면서도 아직 실점하지 않은 아스날의 기록을 떠올리며 안준성과 전지우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켜낸다면 그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었기에.
삐이익-!
“허억, 허억! 다들 후반전에도 집중해서 잘해보자고!”
그런 시간을 버텨낸 이후 잠시 쉬면서 재정비를 할 수 있는 하프타임이 찾아왔다.
가쁜 숨을 내뱉으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유건의 목소리에서도 전반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분명한 건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스물두 명의 인원들 중에 편안하게 숨을 고를 수 있을 정도로 경기를 치른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가장 뒤쪽에서 골대를 지켰던 양팀의 수문장들조차도 가쁘게 호흡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파티노, 카마! 저기서 계속 윙포워드 쪽으로 너무 쉽게 공격을 나오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거지? 더 빠르게 커버 가고, 패스길을 막아야지!”
“건은 위치가 지금 너무 높았다. 바로 밑에 볼란치와 거리가 벌어지면 상대팀은 그 공간을 충분히 파고들 수 있는 수준인 걸 인지해라!”
“다들 후반전에도 방심하지 말고 집중해라! 이들을 이기기 위해 준비했던 세션에서 예상한 부분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각자 한 발자국씩 더 뛴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하프타임을 맞이한 아스날의 라커룸에서는 아르테타가 열정적으로 브리핑을 이어갔다.
전술의 큰 틀은 유지한 채로 뛰고 있던 선수들의 포지셔닝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집어주고 수정을 요구한다.
위협적인 상황이 몇 번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실점을 하지는 않았기에 전술 자체를 수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차피 우리 목표는 모든 경기를 승리하는 거야! 상대 팀이 누구든 간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할 거 해보자!”
“가자고오!!”
그에 이어 후반전을 나가는 선수들을 한 번 더 독려하는 유건.
왼팔에 채워진 주장 완장에서 빛이 났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그의 뒷모습은 광이 나고 있었다.
물론 그라운드에 내리쬐는 햇빛이 머리에 반사돼서 빛이 나는 것도 일부분 포함되어 있었고.
***
“크로스 줘도 되니까 뚫리지만 말자!”
“소우사, 다리 뻗지 말고 끝까지 공을 지켜봐!”
그러나 후반전을 맞이한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은 생각보다 날카롭게 아스날의 골문을 두드렸다.
올라오는 크로스는 둠바와 살리바가 함께 지키고 있는 아스날의 골대 앞으로 도달하기 전에 차단되었다.
하지만 소우사와 페레이라가 발을 넣는 순간 한 번 더 치고 나가는 윙포워드들의 움직임에 공격 루트가 많아지는 순간 철벽같던 수비 라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컷백, 크로스, 혹은 한 번 더 치고 들어오는 그 움직임을 심리 전문가가 아닌 이상 완벽하게 예상할 수 없었으니까.
투욱-!
“⋯크윽, 미안!”
초반에 돌파를 허용한 이후로 꽤나 성공적으로 수비를 성공적으로 해냈던 아스날의 왼쪽 사이드백 리노 소우사.
후반전 13분, 그가 바이에른 뮌헨의 오른쪽 날개가 보여주는 수준 높은 헛다리 드리블에 속아 넘어가서 한 번 더 뚫리게 되었다.
그 말은 윙포워드가 사이드 라인으로 전진하면서 선택지의 폭을 넓혔다는 것.
스으으-!
곧바로 그가 선택하는 다음 그림은 드리블이 아닌 패스였다.
둠바와 살리바가 일렬로 서있는 철통같은 골문 앞이 아니라 45도 정도 꺾은 컷백 형태의 패스.
하프 스페이스로 침투했던 바이에른의 메짤라에게 향하는 그 공을 막기 위해 파티노가 뒤에서 빠르게 달려간다.
먼 쪽에서는 카마메니와 페레이라까지 중앙으로 들어오며 이어지는 패스를 막기 위해 포지션을 잡는다.
‘⋯제발, 제발 더 빠르게!’
하지만 파티노의 출발 자체가 이미 늦었다고 볼 수 있었다.
약속된 컷백 진형을 갖추기 위해 먼저 출발한 뮌헨의 메짤라가 공에 먼저 다리를 가져다 댔으니까.
속으로 애원하며 경기를 시작할 때보다 무거워진 다리를 굴려 슈팅을 막아보려던 파티노였지만, 불가능이었다.
뒤쪽에서 도달하기 전에 패스를 선택지에 두지 않은 상대팀 선수는 슈팅으로 연결하려 하고 있었기에.
콰아앙-!
컷백 형태로 꺾으면서 프로 선수들 수준에서 보기에는 천천히 흘러나오는 공.
세계 최고 수준의 팀에 속한 선수에게는 정확한 임팩트로 강한 슈팅을 가져가기에는 충분했다.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게 운이 아니라는 듯이 오른발을 강하게 휘두르며 차는 슈팅은 정확하게 공의 중앙에 맞았다.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쏘아지는 공은 회전도 거의 없는 채로 아스날의 골문을 향한다.
스윽-!
“마세⋯!”
손으로 막을 수 없는 둠바와 살리바 사이로 빠져나가는 강력한 슈팅.
자신의 다리가 닿지 않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등 뒤의 골키퍼 이름을 불러보려는 둠바.
하지만 마세코의 이름을 다 외치기도 전에 공은 자신의 뒤로 쏘아진다.
그리고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마세코의 눈에 보이는 무회전 슈팅은 그들을 통과하며 급격히 떨리며 휘어지기 시작한다.
출렁-!
파도처럼 출렁이는 공에 몸을 날리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아스날의 수문장 마세코.
그런 상황이었기에 급격하게 한쪽으로 쏠리는 빠른 슈팅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바로 반응한다 해도 손을 스치기에도 무리였던 상황이니까.
“으아아아!! 우리는 바이에른 뮌헨이다!!”
사실 골키퍼의 입장에서는 막을 수 없는 슈팅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급격하게 떨리다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무회전 슈팅은 멀리서 찬다 해도 막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저 마세코가 할 수 있는 것은 엠블럼을 두드리며 원정팬들 앞으로 달려가며 양팔을 하늘 위로 반복해서 올리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의 등번호를 바라보는 수밖에.
자신들이 괜히 세계 최고의 명문팀 소속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 엄청난 포효를 내지르며 환호한다.
후반전 14분, 이번 시즌 아스날의 첫 실점.
챔피언스리그 3라운드 아스날 1 VS 1 바이에른 뮌헨.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