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이번 시즌부터 선수단을
- 와, 진짜 벌써 다섯 번째 보는 건데도 아직까지 적응 안 되는 건 저뿐인가여? 축따형 팔에 차고 있는 저거⋯
└ 발표 나는 날 미리 알려줬다고 해도 놀랐을듯? 아니 잘하는 거야 지난 시즌 워낙 미친 폼을 보여줬으니까 기대했다고 해도 저건 얘기가 다르지
- 한국인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장 완장을 담당하게 된다니! 준철이형도 완장 차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솔직히 임시였었는데
- 테타형은 축따형한테 주장 역할을 주면서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외데고르를 떠올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아니 근데 파티노랑 살리바가 분명 주장단 순위에서 앞섰을 텐데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궁금하네
오늘도 축따튜브에서 시작부터 주목받는 것은 바로 유건의 왼쪽 팔 위에 채워진 아스날의 주장 완장.
이번 시즌과 함께 아스날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게시된 하나의 글은 유건이 주장단에서 1순위로 올라가면서 외데고르를 이어 주장 완장을 이어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축따튜브의 팬들로서는 한국인이 공식적으로 프리미어리그 팀의 완장을 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니 아직까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확하게 인터뷰 등에서는 그런 선발 과정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히스토리를 궁금해하는 팬들도 있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나?”
“여기 이 친구랑 얘기하고 내린 결정입니다. 예전에 그러셨던 것처럼, 리빌딩과 동시에 젊은 캡틴으로 가보자구요 보스.”
“그런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코치진들과 나는 자네들이 더 경험이 있다고 결정을 거의 내린 상황이다.”
“새 시대에는 새 얼굴이 필요한 법입니다. 지금 팀의 핵심이 될 선수들의 중심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건이 있습니다.”
“⋯한 번 얘기를 나눠보겠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른 것 같긴 하지만⋯.”
특별한 선발 과정이 있었다기보다는 주장단의 1순위와 2순위를 맡게될 파티노와 살리바가 아르테타의 사무실을 프리 시즌 기간 동안 꾸준히 방문했다.
자신들보다 유건이 주장의 적임자라며 계속해서 요청을 해왔던 것이다.
아르테타와 코치진은 거부 의견을 내면서 이르다라고 표현했지만 실제 경기 중에 선수단과 가장 소통을 많이 하는 사람을 파티노와 살리바는 이미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이 직접 유건을 구단의 캡틴으로 추대하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외데고르가 경기장 위에 없을 때 그의 빈 자리를 가장 많이 채워줬던 것이 바로 유건이었으니까.
“건이 이번 시즌부터 선수단을 이끌어갈 캡틴이다.”
“⋯알겠습니다!”
프리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비밀 면담은 계속되었고 결국 정규 시즌이 시작되기 전, 아르테타가 선수단 앞에서 공표했다.
이번 시즌 선수단을 대표해서 완장을 찰 사람은 유건이라고.
“건, 반대로 전환하자!”
“그대로 흐름 살려서 가!”
팬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었던 그런 짧은 히스토리가 있었고 시즌 전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번 시즌 주장을 맡게된 유건.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젊은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는 아스날이었기에 중심을 잡아줄 수 없을 거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첫 경기 이후로 바로 사라졌다.
그만큼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아스날의 핵심이 바로 유건이라는 것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으니까.
경기 중에 가장 많은 터치 수를 매 경기 기록하면서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오늘 첼시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이는 홈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선수단의 다른 선수들도 유건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중계방송으로 보고 있는 팬들의 눈에는 전반전 동안 그가 공을 잡은 횟수가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몇십 번이 되는 것 같아 보였기에.
***
“젠장, 또 저 녀석이야!”
“어떻게 좀 해보라니까!”
아스날 경기력의 기반이 되는 그런 유건의 엄청난 활약은 상대하는 첼시 선수들 입장에서는 악몽과 같았다.
압박을 간단한 드리블과 패스로 빠져나가면서 공을 소유했고, 그가 뿌리는 패스는 자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빈 공간으로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힘겹게 막아내는 첼시 수비 라인이 짜증난 언사를 내뱉으면서도 하프타임이 언제 찾아올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반코트 양상으로 점유율이 뺏기면서 아스날의 공격은 수비 진형을 재정비할 틈새도 주지 않고 계속되었으니까 말이다.
스으으-!
그렇게까지 몰아붙인 이유 중에는 유효 슈팅이 다섯 개가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선제골을 넣지 못했던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그 다섯 번의 기회 중에서 유건이 만들어냈던 기회 창출이 세 번.
이번에 첼시의 사이드백과 중앙 수비수 사이 공간으로 찌르는 패스를 포함하면 네 번을 상대 파이널 서드 지역으로 연결시키는 유건이었다.
‘접는 척하면서 마무리로⋯.’
그 공은 안쪽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가져갔던 아스날의 오른쪽 날개 캐시를 위한 패스였다.
앞서 한 번의 좋은 찬스를 맞이했지만 첼시의 수문장이 보여준 엄청난 선방에 득점을 하지 못했었던 캐시.
유건이 공을 잡는 순간 또 한 번의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하고 바로 움직였고, 자신의 믿음에 팀의 에이스는 배신을 하지 않았다.
사이드백을 제쳐내고 중앙으로 달려가는 그 보폭에 맞춰서 바로 슈팅으로 가져가든지 또 다른 방향으로의 드리블을 선택할 수 있는 패스를 넣어주었으니까.
그 상황에서 캐시는 이번에 다시 한번 직접 마무리를 짓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스윽-! 스윽-! 투욱-!
특유의 바디 페인팅과 함께 다리를 공의 주변으로 휘저으며 시동을 거는 캐시.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이번 시즌 가장 높은 드리블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중앙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자신감이 있었다.
콜니 트레이닝 센터에서 세션을 진행할 때 그가 뚫기 위해서 노력했던 선수들은 바로 둠바와 살리바이기에.
덕분에 그들을 상대로 하는 끊임없는 훈련은 이제 누구를 앞에 두고 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페인팅에 첼시의 중앙 수비수가 멈칫하는 타이밍을 이용해서 한 번 더 골대 가까이 치고 나가는 이번 드리블처럼 말이다.
콰앙-!
바깥쪽으로 드리블을 쳐놓고 슈팅으로 연결하기에는 나머지 중앙 수비수 한 명마저 제쳐내야 했다.
그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캐시는 오히려 골대 측면 라인 쪽으로 더 파고들었고, 방향을 바꾸자마자 오른발로 슈팅을 가져간다.
약발이었기에 정확한 각도를 노리기에 신경은 썼으나 강하게 때린다는 그 사실에 더 집중했다.
골키퍼가 몸을 이미 슈팅 방향으로 옮겨놓은 상황이었기에 빠른 슈팅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서.
퍼엉-! 출렁-!
그리고 그렇게 방향을 잡아놓은 골키퍼를 앞에 두고 주변의 팀원에게 패스를 하는 등의 선택지를 제외한 채 그저 정면으로 도전하는 캐시의 도전은 행운을 불러왔다.
정확성이 보다 떨어지는 오른발로 찬 슈팅이었기에 날아가는 방향 자체가 골키퍼의 정면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첼시의 수문장은 정확하게 캐치해내지는 못했다.
끌어안기 위해 뻗었던 장갑을 지나치며 순간적으로 가슴팍에 맞고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더불어 아직 죽지 않은 회전이 공을 계속 돌게 하면서 골대 라인 안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중계 화면상으로는 당연히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겠지만 막상 그 공을 캐칭하는 데 실패한 첼시의 수문장은 눈을 순간적으로 감았다가 다시 뜨고 있었다.
자신의 시야 내에서 엄청난 속도로 지나가는 공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니까.
“들, 들어갔습니다! 첼시의 골문에서 실책이 발생하면서 아스날의 캐시 선수가 선제골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전에 명불허전이죠? 역시 안쪽으로 파고드는 캐시 선수에게 또 한 번 파이널 패스를 전달한 것은 바로 유건 선수입니다!”
“정말 유건 선수의 패스 실력은 놀랍습니다! 사실 첼시가 전체적으로 진형 자체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공간 자체가 많지 않았거든요?”
“저는 이제 의심을 버렸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건 선수는 패스 길을 창조해낸다고 믿기로 했습니다!”
“이쯤 되면 지우씨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보여주고 있는 패스들은 미쳤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거든요!”
전반 41분에 터진 캐시의 선제골을 보며 안준성과 전지우는 중계를 이어나간다.
각도가 없어보였던 상황에서도 달려드는 선수를 오른쪽으로 치는 팬텀 드리블로 제쳐내는 것과 동시에 패스를 보낸 유건의 기술에 감탄하면서.
찰나의 순간, 그가 보여준 것이 슬로우 장면으로 나오자 다시 한번 감탄을 하며 유건을 찬양한다.
그런 패스를 이번 시즌 매 경기 보여주고 있는 그의 활약을 캐스터로서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것이 기뻤으니까 말이다.
와아아아-!
“슈팅에는 캐시! 패스에는 건!”
“프리미어리그의 주인은 바로 우리!”
“아스날이 나가신다!”
캐스터들이 한국 팬들이 가장 많이 보고 있는 방송사에서 중계를 하는 사이, 아스날 선수들은 홈팬들 앞에 단체로 달려가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골과 어시스트를 만들어낸 선수들을 바꿔가면서 부르는 누군가 새롭게 만들어낸 응원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기념으로 만든 그 챈트는 매 경기 한 번 이상씩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 골을 터트리는 순간 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으니까.
투욱-! 타닥-! 짜악-!
세레머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유건과 캐시의 핸드 사인.
손을 마주 잡고 흔들더니 마지막에는 손뼉을 마주치는 것으로 끝낸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선수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는 현재 아스날의 분위기를 넘어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한치의 울적함도 없이 그들의 미소는 밝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여름씨, 유건 선수 또 활약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요? 소식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선배님, 남은 촬영 잘하시구요!”
그리고 그 시각, 세 번째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여름의 촬영장.
공식적으로 유건과 교제를 이어가고 있는 그녀였기에 전혀 연관이 없어 얘기를 나눠보지 못한 선배들과 대화 주제를 하나 들고 있는 셈이었다.
특히 비슷한 또래거나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남자 배우들은 유건의 팬이 많았기에 여름은 이번 촬영에서도 쉽게 선배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전반전이 끝난 그 순간 마침 할당된 촬영을 끝마친 그녀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다른 배우들.
듣자마자 아름다운 얼굴에 더 아름다운 미소를 띠며 짧게 대답한 뒤 곧바로 매니저가 주차해둔 차량을 향해 달려갔다.
‘⋯헤헤, 오빠 후반전에도 공격 포인트 하나 기록해줘!’
후반전에 활약할 유건을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소속사에서도 자연스럽게 마케팅이 되는 유건과의 교제였기에, 경기 시간만큼은 스케줄에서 빼주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생각보다 정해진 분량의 촬영이 애드리브가 오고 가며 더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 길어졌지만 말이다.
그것이 끝난 지금 차에 도착한 여름은 이제 잠시 자유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세계 무대에서 뛰고 있는 연인의 활약상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