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자신이 없는 날인데
“압, 압도적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 아스날은 정말 경이로운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초반에 대진운이 좋다고 기사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쳤습니다 그냥!”
“맞습니다! 지금 기세로만 봤을 때는 지난 시즌의 결과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 같은데요!”
“만약 다음 경기에도 이렇게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는 정말 재밌어질 것 같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개막과 동시에, 아스날은 말 그대로 리그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하위권 팀들과의 매치가 연이어 잡혀 있어 손쉽게 경기를 이기고 있다는 비평가들의 말이 있었지만 어차피 그건 증명될 문제였다.
강팀들이랑 맞붙게 되는 대전은 어차피 진행되는 것이고 만약 일정상으로 안 좋은 시기에 그런 대전이 겹치면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일 수도 있었으니까.
사실 아스날의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쉽게 이길 수 있는 경기들은 모두 승리를 챙기는 것이 좋았다.
물론 승격팀과 지난 시즌 강등권 팀들이랑 맞붙었던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의 경기는 클린 시트와 함께 2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그래서 지금 4라운드 후반전이 진행되고 있는 시각에 중계를 하고 있는 안준성과 전지우 캐스터가 경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한 박자 빠르게 보내면⋯’
그리고 아스날의 그런 환상적인 경기력 중심에는 물론 유건이 있었다.
1라운드에서 1골 1어시스트.
2라운드에서 0골 1어시스트.
3라운드에서 0골 2어시스트.
4라운드 현재, 후반전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미 전반에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후반 35분이 지나는 시각 다시 한번 보이는 빈 공간으로 패스를 한 박자 빠르게 찔러넣는다.
스으으-!
전체적으로 피지컬 위주의 선수들이 구성하는 에버튼의 수비라인 사이를 가로지르는 유건의 패스.
자신의 미약한 움직임을 인지하고 파고들거나 물러나는 방향으로 항상 넣어주는 그 패스를 따라가며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은 바로 쿠아바.
순간적으로 슈팅 각도를 열기 위해 몸을 열면서 다리를 크게 휘두른다.
콰아앙-!
쿠아바의 슈팅은 공을 터트릴 것만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며 날아간다.
골대까지 멀지 않기는커녕 바로 코앞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위치.
그곳에서 꽂아 넣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강하게 때리는 슈팅은 어떤 골키퍼라도 막기 힘들었다.
악착같이 몸을 날려 보지만 손을 스치지도 못하는 지금 이 순간 에버튼의 수문장도 마찬가지였다.
출렁-!
“으하, 으하!!”
유건과 쿠아바가 만들어낸 댄스 세레머니.
이제는 대부분의 선수가 함께 참여하는 그 장면만 보더라도 현재 아스날의 분위기가 어떤지 추측이 가능할 정도였다.
영입된 지 반년도 안된 둠바가 멀리서 달려와서 같이하는 게 중계방송에 나왔으니까 말이다.
- 크크, 쿠아바랑 둠바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도 축따형 댄스 존재감은 여전하네!
└ 아무렴! 용인 FC 라커룸 시절에 비하면 저기는 그냥 축따형 개인 무도회장에 불과하제
- 십년 이상 아스날 팬질 하면서 지난 시즌 이후로 이제 당당히 말하고 다닙니다. 우리 이제 ‘강팀’이라고!
└ 지나가는 타팀 팬으로서 그저 부럽습니다. 테타형이랑 축따형 존재가 진짜 큰듯요
- 축따형 이 페이스 유지하면 지난 시즌 어시기록 또 경신해버리는거 아닐까? 미쳤는데 진짜
그리고 이쯤 되자 축따튜브의 채팅창에서는 최근 아스날의 경기력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만큼 아스날이 충격적인 경기력을 매 경기 보여주면서 상대팀을 무참히 파괴시켰으니까.
4라운드 연속 클린시트라는 기록을 세우고 계속 승리를 이어 나가는 그들을 보며 그저 환호하는 구독자들만이 가득했다.
물론 축따튜브답게 지금 장면에서는 그중에서도 춤을 추는 유건을 꼽으며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이번 시즌 그가 보여줄 기록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지난 시즌 스스로가 경신해놓은 기록을 깰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해보면서 말이다.
***
“여러분이 좋은 경기력으로 현재 리그를 지배하고 있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경기 일정이 빠듯해지는 시점이 머지않았다.”
“훈련 세션에서 발전하고 있는 여러 선수들도 충분히 선발 라인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당장에 경기를 뛰고 있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더 나은 모습을 나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에버튼전이 끝난 이후 회복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르테타는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프리미어리그라는 곳은 방심을 한 채로 경기에 임하면 승리를 따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는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도 시작될 예정.
따라서 로테이션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이 찾아올 텐데 그때를 대비해서 최근 몇 경기 동안 선발로 나서지 못한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으라는 의미로 말이다.
“나이스 선방이야, 마세코!”
그리고 이미 그렇게 좋은 발전을 통해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있었다.
기존 골키퍼인 힐슨보다 빌드업이 뛰어났지만 선방 능력이 떨어져 벤치에 앉아 지난 시즌 유로파, FA컵을 위주로 출전했지만 그는 결국 꾸준한 훈련을 통해 쟁취해내고 있었다.
리그 4라운드가 진행되는 동안 2번을 출전하면서 경쟁했고 오히려 힐슨보다 나은 빌드업으로 수비가 강화된 아스날에서 장점이 최근 많이 부각되고 있었다.
“힐슨, 마세코한테 본때를 보여주자고!”
회복훈련이 끝난 뒤 오늘은 새로운 영입생들을 환영하는 샴페인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다.
챔피언스리그가 시작하기 전에 화합을 위해서 오늘 일정으로 잡아놓은 그 파티에 돈을 낼 사람들을 내기로 정하는 것은 언젠가부터 생긴 전통.
쿠아바의 첫 번째 슈팅을 막아낸 마세코를 보며 힐슨 팀에 소속된 선수들이 응원을 펼친다.
하지만 처음 키커로 나선 이는 현재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유건이었다.
‘⋯이번에 넣어야 되는데, 이거!’
최근 페널티킥 내기에서 파넨카킥을 시도하다가 막힌 경험이 있는 유건은 리그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답지 않게 긴장하고 있었다.
평소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 다르게 꽤나 움츠러든 그의 어깨는 그런 긴장 상태를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는 듯했다.
물론 그게 차기도 전에 골을 넣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니었지만 그럴 확률은 높아 보였다.
콰아앙-!
일반적이었다면 공에 강한 힘을 실어 때리기보다는 정확도에 치중한 슈팅을 날렸을 유건.
그러나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강하게 왼쪽 구석을 향해 때린다.
코스가 읽히더라도 몸을 날리는 힐슨의 손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티잉-!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평소보다 공에 넣는 발이 깊었던 걸 몰랐는데 그 때문에 공의 회전이 의도와는 조금 달라진 것이다.
생각보다 더 바깥쪽으로 꺾이면서 골대를 맞히고 나간다.
그것을 확인한 유건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잔디에 털썩 주저앉는다.
“으아아, 이 미친놈아!”
“어쩐지 걷는 폼부터 불안하더라니!”
“지면 샴페인값 네가 내라!”
그리고 같은 팀에 배정된 내기 팀원들은 그런 유건을 놀리는 데 혈안이라도 된 듯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마음으로 놀린다.
사실 선수들의 연봉으로 파티에서 간단히 먹을 샴페인을 사는 것은 그렇게 무리한 것이 아니었으니 돈보다는 사실 재미에 치중한 내기였다.
그랬기에 가장 먼저 팀에서 실축한 유건에게 장난 섞인 비난이 쇄도하는 것은 당연했다.
“으하하, 고맙다 건! 네가 날 살렸구나!”
“꺼져, 이 자식아!”
물론 상대팀에서도 놀리는 건 마찬가지.
바로 앞의 기회에서 실축하고 팀에서 모든 선수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쿠아바가 유건의 몸을 일으키며 등을 두드린다.
뿌리치는 척하면서 쿠아바의 목에 헤드락을 걸고 장난을 치는 유건.
놀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들의 기분 자체는 좋아 보였다.
선수단 내 분위기를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세코, 미안한데 하나만 더 막아줘야겠다!”
실망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고, 바로 멘탈을 되찾은 유건은 당당하게 마세코에게 요구한다.
우리가 이기려면 네가 하나를 더 선방해야겠다고.
내가 미안한 건 미안한 건데 일단 이겨달라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짜식이 웃으면서 당당하게 말하니까 뭔가 이상한 느낌인데?’
싫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말을 아주 당당하게 말하는 유건의 표정을 보며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마세코.
유건의 실수를 자신이 커버쳐주고 싶은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
지금 상황이 어떻고 이전 상황이 어떻든 그저 자신이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남은 네 명의 키커를 상대하면서 하나쯤은 더 선방해낼 자신이.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아스날과 첼시의 경기가 지금 시작합니다!”
“아스날의 라인업에서 흥미로운 점은 오늘도 마세코가 선발로 출전한다는 점인데요? 지금 힐슨 선수와 매경기 번갈아 가면서 나오고 있습니다!”
“아르테타 감독이 둘을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선발 라인업 변경이긴 하죠! 우열을 쉽게 가릴 수 있는 선수들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사실 지금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무실점 기록은 이 선수들의 역할이 너무나도 큽니다. 둠바와 살리바가 센터백을 구성합니다!”
“철벽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살리바가 사실 맞지 않는 최종 스위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둠바가 그 자리로 가면서 살리바는 대인 마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둠바와 마세코의 가세, 그리고 파티노의 존재로 오늘도 수비 라인에서부터 풀어 나오는 빌드업을 바탕으로 공격 전개가 예상됩니다. 지금부터 지켜보시죠!”
첫 번째로 마주치는 강팀.
지난 시즌 5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역사가 있고 전통이 있는 강팀이었다.
한때는 엄청난 자금력을 자랑하는 구단주의 지원에 힘입어 이적 시장의 시세 자체를 올려버렸다는 비난도 받지만, 그것도 능력이었다.
구단 간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최종 사인을 얻어내는 것 자체가 말이다.
그만큼 탄탄한 선수진을 구성하고 있는 그들과는 지난 시즌 1승 2무를 기록했고 이번 시즌은 처음 마주친 것이다.
와아아아-!
‘자신이 없는 날인데⋯’
심판이 킥오프 휘슬을 불려는 시늉만 했는데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 폭발이라도 난 것처럼 소리치며 응원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건은 잠깐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곧바로 경기에 집중한다.
팬들의 함성 소리는 귀로도 잘 들려왔고, 덕분에 유건은 자신이 없었다.
경기에서 질 자신이.
우리의 집인 이곳에서 상대팀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