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은퇴할 때가 되면
“대박! 그럼 여름씨가 어떻게 보면 먼저 유건 선수님께 다가간 거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그, 그게 그렇게 되나요? 헤헤.”
“에이,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지금 잘 만나고 계시면 되는 거죠!”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두 분은 방송으로 볼 때도 느꼈는데 정말 호흡이 너무 잘 맞는 것처럼 보이십니다.”
“그렇게 심한 말씀을⋯!”
프리 시즌 복귀를 일주일 남긴 시점, 유건은 여름과 함께 두 명의 쌍둥이 엠씨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퀴즈를 푼다는 의미에서 쌍퀴즈라는 프로그램명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고, 새로운 출발을 주제로 유건과 여름에게 섭외가 들어온 것이었다.
사실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라기보다 교제 사실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했다는 끼워맞춤식에 가까웠지만 저번 예능 이후로 함께 나간 방송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편안하게 진행을 해주는 엠씨들 덕분에 유건도 부담을 내려놓고 웃으면서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게 된 계기나 연애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들로 시작해서 이제 각자에게 중요한 질문이 올 차례였다.
“여름씨는 그럼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우선 다음 작품 촬영이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구요. 언젠가는 주연 역할도 한번 맡아보고 싶은 게 계획보다는 꿈이랄까요?”
“엄청난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계시니 또 나중에 좋은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저희 어머님께서 [재벌의 사생활]에서 여름씨가 연기하신 역할을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칭찬하시더라구요!”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네요! 저보다 연기력이 좋으신 배우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혹시 나타날 기회를 잡을 준비를 꾸준하게 해나가고 있는 상태랍니다!”
먼저 여름에 관한 질문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그녀에게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대한 질문을 하는 엠씨.
다행히도 이미 캐스팅되어 있는 다음 작품이 프로모션을 얼마 전부터 시작했기에 그 부분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여름.
이후에는 기대받는 작품의 여자 주인공 역할로 섭외가 들어오길 바란다며, 포부까지 밝혀본다.
‘⋯정말 숨 막히게 예쁘다니까!’
그런 그녀를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곁눈질로 살펴보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유건.
직접 말을 하지 않는 타이밍이었기에 다들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주 생생하게 잡혔다.
편집 과정을 거치긴 하겠지만 방송분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에 말이다.
“아휴, 유건씨! 여름씨 얼굴 닳겠어요 아주! 지금 제 시야에서 유건 선수의 눈빛이 너무나 잘 보이거든요?”
“보, 보고 계셨어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까지 할 일은 아니구, 장난 한번 친 거예요! 너무 예쁘게 교제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다 부러워서 시샘 좀 한 겁니다!”
“하하, 볼 때마다 너무 예뻐서 멈칫하게 되네요!”
그러나 바로 옆에서 앉아있는 진행자 시야에 안 보일 리가 있겠는가.
이미 결혼을 해서 슬하에 자식까지 있는 엠씨의 눈에 그런 행동을 하는 유건이 귀여워 장난을 건다.
변명하면서 의도적으로 노려서 말한 건지 여름의 미모를 한 번 더 자랑하면서 받아치는 유건.
꽤 기간이 흘렀음에도 그들의 연애는 아주 풋풋하고 보는 사람들마저 사랑스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저는 우선 당연히 프로 선수로써 목표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구요. 다음 시즌에는 이번 시즌보다 골을 많이 넣고 싶다는 소소한 희망이 있습니다!”
“어시스트는 제가 잘한 장면도 몇 개 있긴 하지만, 팀원들이 아예 강제로 어시스트를 만들어준 경우도 많아서요.”
“당연히 선수들끼리는 모두 잘 지냅니다. 라커룸 분위기 자체가 활기차고, 웃음이 끊이질 않아요.”
“K리그에서 응원하는 팀이요? 당연히 용인이죠.”
잠깐 얘기가 다른 곳으로 빠져 촬영이 길어질 수도 있었는데, 베테랑 진행자의 역량으로 곧바로 유건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다음 시즌에 대한 목표부터 시작해서 이번 시즌 기록한 엄청난 공격 포인트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매번 별튜브 채널에 올라가던 용인 FC 라커룸 영상을 언급하며 아스날 라커룸 영상은 왜 그렇게 안 올라오냐에 대한 질문까지.
마지막으로는 K리그에 대한 관심도와 응원하는 팀을 질문받았는데 유건에게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지금 뛰고 있는 아스날을 제외한다면 용인 FC에서의 추억이 너무 많고, 행복한 시절이었으니 자신은 그들에 관해서는 평생 팬으로서 있을 거라고.
‘⋯은퇴할 때가 되면.’
그리고 아직까지는 생각에 불과하지만 차후에는 정말로 가능할 수도 있었다.
아스날과 성공적으로 계약을 종료한 이후, K리그로 복귀해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리그 수준 차이라는 것은 존재했다.
국가대표에서도 항상 에이스 자리는 해외파 선수들이 가져가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
“여름아, 어떡하지? 벌써 보고 싶은데!”
“오빠, 오래 쉬었으니까 다음 시즌 준비해야지! 더 잘할 거라며!”
“그래도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걸? 아무튼 나는 창훈이형이 픽업 와줘서 집 잘 도착했구, 촬영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어색하겠네.”
“괜찮아, 다들 선배님들이니까 그냥 막내처럼 먼저 다가가 보면 되겠지!”
프리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 정말 유건과 여름은 마치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매일같이 붙어 다녔다.
어느 곳을 가든지 어떤 것을 먹든지 무언가를 볼 때도, 만질 때도 모두 함께였다.
보통 그런 행복한 시간은 빨리 간다는 옛말은 그들에게도 적용되었다.
다가온 아르테타의 프리 시즌 소집 일정에 맞춰 런던으로 복귀해야 하는 유건이었으니까.
공항에 내려 픽업을 통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건은 여름에게 소식을 알린다.
이번 휴가 기간을 통해 결혼식장, 스튜디오 및 드레스와 메이크업까지 식을 위한 준비까지 마쳤기 때문에 이제는 혹시라도 연락이 없다면 걱정할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휴가 기간에 제가 여름씨에게 집중하느라 오랜만에 방송을 켜네요.”
“저는 런던 잘 도착했구요! 며칠 뒤부터 진행될 프리시즌을 위해서 빠르게 복귀했습니다.”
짧은 전화 통화를 마친 뒤 시차 때문에 여름은 다른 할 일이 있었다.
그 시간을 이용해 간단히 짐 정리를 하고 바로 오랜만에 별튜브 방송을 켠 유건.
알림 설정을 해둔 구독자들이 많았는지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고 있는 숫자가 가파르게 올라간다.
곧바로 인사와 함께 최근에 방송을 켜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사과를 한다.
“다른 선수들도 단체 메신저방을 보니까 거의 다 들어온 것 같아요. 팀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하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감독님, 코치진뿐만 아니라 저를 포함한 선수들도 정말 열심히 준비하려고 해요.”
그리고는 들어오는 질문들에 대해 하나씩 차례대로 답변을 해준다.
오랜만에 켠 만큼 시간적인 여유를 이용해 많은 시간 방송을 할 거라 예상하고 준비한 유건이었다.
프리 시즌을 맞이해 복귀하는 선수들은 사정에 따라 시점이 다 다르긴 한데, 이번에 아스날 선수단은 일부 선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하게 맞췄다.
조금이라도 더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였고 빠르게 영입된 둠바도 포함되어 있었다.
“둠바 선수요? 만날 때마다 어떻게 뚫을지 걱정했었는데, 같은 팀이라니까 어색함이 느껴지긴 하는데 든든한 기분입니다.”
“전체적인 수비 라인에 도움이 되는 영입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호흡을 맞출 시간은 필요하겠지만요!”
유건과 붙을 때마다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가 궁금해서인지, 둠바에 대한 질문은 꽤나 많이 올라왔다.
하지만 사실 유건도 아직 상대팀으로 경기를 해본 것을 제외하고 사적으로 만나본 적은 없었다.
프리 시즌을 진행하면서 나이가 동갑인 만큼 빠르게 친해지겠지만 아직은 섣부른 얘기였던 건 사실이었다.
“저는 다음 시즌에도 이번 시즌의 활약을 이어갈 수 있게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면서 지내겠습니다!”
“지난번에 진행했던 사인 유니폼 이벤트는 다들 받으셨나 모르겠네요! 제가 휴가로 한국 들어가기 전에 보냈다고는 들었거든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약 두 시간 이상 구독자들과 얘기를 나누며 방송을 진행한 유건.
이제는 말재주도 좋아진 만큼 크게 비는 시간도 없이 질문과 답변이 깔끔하게 이어졌다.
별튜브 관리를 최창훈이 하게 되면서 꾸준히 이벤트도 진행했는데 최근에는 친필 사인 유니폼을 오십 명 뽑아서 전달하는 내용이었다.
팬들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던 그것을 한 번 더 언급하면서 오랜만에 켰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
“진행하지.”
“정, 정말로요? 이렇게 끝내실 예정이십니까?”
“만약 그 선수들이 다 영입된다면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진행하지.”
“그럼 다음 회의에서는 마틴의 대체자에 관해서만 준비해오겠습니다!”
“나도 그때까지 지금 확정된 선수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을 정리하고 오도록 하겠네.”
아스날 선수들이 런던으로 하나둘씩 휴가 복귀를 하고 프리 시즌 준비를 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아르테타는 늦은 밤까지 집에 가지 않았다.
코치진들과 이적 시장이 끝나기 전까지 필수적으로 영입을 완료해야 하는 리스트를 정리하고 추가적으로 물색해야 하는 포지션까지 확인한다.
둠바에 이어서 수비진을 개편하기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수비라인의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영입 계획을 세울 외데고르의 대체자.
스미스가 이번 시즌 발전하고 클락도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실 미드필더 라인은 그대로 가도 될 정도였으나, 부상을 대비한다면 한 명쯤 더 필요하긴 했다.
프리미어리그, FA컵, 카라바오컵, 챔피언스리그까지 네 개의 대회를 출전하니까 말이다.
‘⋯로테이션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시즌을 진행해야 한다.’
‘카라바오컵, FA컵의 일정 라운드까지는 풀 로테이션을 돌려도 이길 수 있는 플레이를 해야 돼.’
회의가 끝난 이후, 코치진들이 떠나간 사무실에 남아 생각을 정리하는 아르테타.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 시즌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그에 대비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몇 년 동안 고생하던 팀을 한 시즌만에 챔피언스리그 복귀뿐만 아니라 리그 우승을 시켜두었기에 휴가를 길게 즐겨도 모자랄 판국에 말이다.
그렇게 끊임없는 고민을 하는 것은 스쿼드에 대한 부분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대회가 많아지면서 선수들의 체력을 유지시켜 주고, 로테이션 멤버들에게 적절한 출전 시간을 보장하면서 유스 선수들까지 발전시켜야 한다.
‘⋯프리시즌을 보고 결정해보자고.’
결국 지금 이 순간 최종적인 스쿼드를 결정 내릴 수는 없었다.
사실 지난 시즌 베스트 라인업의 선수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둠바를 제외하고는 크게 변화 없겠지만, 아르테타는 기대하고 있었다.
기존 선수 혹은 영입생, 그것도 아니라면 헤일 엔드에서 콜업된 유스 중에서 엄청난 선수가 프리 시즌에 나타나는 확률을.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오른쪽 윙포워드 포지션 베스트에 뽑힌 혜성같이 나타난 신예 제이든 캐시처럼 말이다.
‘파티노와 살리바가 말한 부분은⋯’
정리하고 자리를 뜨는 아르테타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
어제 프리시즌 훈련을 진행한 뒤 두 사람이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와서 했던 말이 있었다.
공통적인 생각으로 얘기를 나눠본 두 선수가 입을 맞춰, 아르테타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어떤 한 선수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