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페레이라 대신
출렁-!
하지만 경기를 뛰고 있는 아스날 선수들과 팬들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월드 클래스로 가득 찬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 중 노마크 상황에서 굴러오는 공을 골대 구석으로 차넣지 못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오늘도 그런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땅으로 깔아서 힐슨의 손이 닿지 않는 코스로 정확하게 파고들었으니까.
와아아아-!
결승전이다 보니 양 팀 팬들은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웸블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첫 번째 골을 넣은 팀이 결정되자마자 구장에 있는 팬들의 희비가 극명히 엇갈린다.
득점한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하는 좌석에서는 터질듯한 함성과 함께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아직 비록 전반전이긴 했지만 우승컵에 가까이 다가간 팀은 확실히 자신들이기에.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반면 아스날 원정팬들 좌석은 일시적인 침묵이 있었지만, 이내 다시 응원하며 동점골과 역전골을 바란다.
지고 있긴 했더라도 아직 희망을 품을 수 있는 50여 분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들에게는 승리와 패배도 중요했지만 몰아치는 경기력도 보고 싶었기에 지금부터라도 선수단이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솔직히 결국 실점을 한 지금 상황이 오기까지 유효슈팅조차 날리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이제부터 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들의 응원은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경기장에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기죽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 플레이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힘들어도 발 뻗지 말고 끝까지 기다리면서 압박만 해보자!”
“패스를 차단한다는 생각보다는 확실하게 보면서 기다려!”
그런 팬들의 끝없는 응원 덕분에 아스날 선수들은 실점 이후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몇 년 만에 올라온 결승인데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질 수 없지 않겠는가.
다시 재개되는 경기를 기다리며 날카롭게 눈을 빛내는 선수단이었다.
***
“그렇지! 같이 붙어 주자고!”
“전반이 끝나기 전에 하나 만들어보자!”
이후 시작된 경기에서 아스날은 중앙에 있는 파티노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진형의 호흡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낮은 위치에서부터 촘촘하게 자리 잡은 아스날이었기에 맨체스터 시티가 중앙으로 파고들기가 애매했다.
사이드 위주로 풀어나가는 스타일은 동일했지만 공격 작업이 덜 효과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이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아스날이 동점골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삐이익-!
결국 울리는 심판의 휘슬.
실점 이후 유효 슈팅을 추가적으로 한 번 만들어냈던 아스날이었지만,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때린 파티노의 중거리 슈팅이었다 보니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그 이후 분위기와 기세를 조금씩 올려가고 있었는데 휘슬 소리와 함께 하프타임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전반전에 우리는 솔직히 말해서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못했다. 수비적으로 단단하게 가져갔지만 축구는 득점을 해야 승리하는 스포츠인 것은 모두가 알지 않나?”
“상대의 패스 플레이가 원활하게 돌아가다 보니 쉬운 경기는 아니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라커룸으로 들어와서 선수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각자의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아르테타의 브리핑은 시작되었다.
결승전이니만큼 호통을 치며 정신을 차리라는 말 대신, 그가 택한 방법은 차분하게 현재 밀리는 부분에서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선수들의 자신감을 깎아내리지 않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페레이라 대신, 마틴이 들어간다.”
“건과 마틴이 사이드로 벌리면서 3-4-3의 대형으로 진형을 변경하고, 소우사가 쓰리백 라인에 포진한다.”
이어지는 전술 변경에 대한 설명.
꽤나 파격적으로 수비를 빼고 미드필더의 숫자를 늘려 사이드에서 치고 오는 공격 작업을 막아내 보겠다는 의미였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소우사나 페레이라를 빼고 미리 훈련 세션에서 연습해본 포지션이었다는 점.
그랬기에 그걸 듣고 있는 선수단의 표정에 당황스러운 감정은 섞여 있지 않았다.
“우선 동점골부터 만들어보자고!”
“가자!!”
어느새 다시 후반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나서야 하는 시각.
출전 준비를 마친 외데고르는 선수들을 불러세우며 작은 원을 만들고, 그 중심에서 외친다.
결국은 승리가 목표이겠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한 점 차이부터 따라잡아 보자고.
그에 호응하는 선수단의 힘찬 함성은 우렁차다 못해 라커룸 밖까지 소리가 흘러나갈 정도였다.
삐이익-!
- 후반전에는 제발 아스날 역전 가자! 우승해보자고!
- 솔직히 전반에 이렇다 할 공격을 못 해서 걱정이 너무 큰데, 테타형이 전술 바꾼게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네
└ 좀 도박 전술 아님? 페레이라 빼고 외데고르라니⋯, 사이드백 한 명을 아예 빼버리네
└ 나도 도박이라고 보는데 테타형만 믿자. 우리 테타형이 생각이 다 있을 거야!
후반전 시작과 함께 하프타임을 맞아 잠깐 화력이 줄어들었던 축따튜브의 채팅창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스날이 동점골에 이어 역전골까지 터트렸으면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시작과 동시에 페레이라와 외데고르를 교체하면서 구독자들은 도박이 섞인 전술이라고 평가했으나,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이제까지 그래왔던 대로 믿어볼 뿐이었다.
투욱-! 투욱-! 와아아아-!
하지만 아르테타의 전술 변경은 꽤나 성공적인 출발을 보여주었다.
유건과 외데고르를 사이드까지 벌리면서 그쪽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에게 중앙 지역으로 패스를 강제했고, 이후에는 파티노와 카마메니가 압박하면서 공을 빼앗는다.
전반전에는 한 번 성공시키기도 어려웠던 커팅을 연이어 해내면서 홈팬들의 환호성은 거세지기 시작했다.
“더 빠르게 움직여!”
“마틴, 건! 막히면 바로 전환해!”
일차적으로 수비를 성공해서 볼을 뺏어낸다면, 그 이후 플레이는 양쪽에 퍼진 패스 마스터들에게 달렸다.
사이드에서 공을 받았기에 곧바로 공격진에게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땅볼 킬패스는 전달하기 힘들었지만, 공간을 만들고 패스받을 준비가 된 공격수들에게까지 공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패스를 보내는 선수들이 월드 클래스로 떠오르고 있는 아스날의 에이스 유건과 나이가 들면서 폼이 내려왔다고 평가받지만 패스만큼은 실력을 넘어서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는 외데고르였으니까.
스으으-! 뻐어엉-!
땅볼로 팀원들에게 짧게, 혹은 길게 보내는 패스.
자신의 앞이 가로막혀 있다면 비어있는 반대편에서 공격 작업을 하기 위해 보내는 전환 패스.
모두 정확하게 아스날 선수들의 위치 근처로 보내졌다.
“발밑에 주고 바로 움직여!”
“주고받을 수 있게!”
상대적으로 짧은 패스를 사용하는 비율이 많이 높은 맨체스터 시티의 티키타카와는 다르게, 보다 많은 롱패스를 이용하여 경기를 풀어나가는 아스날이었다.
물론 미드필더들은 끊임없이 공이 있는 쪽으로 움직여주며 원투 패스, 삼각 패스 등을 활용했고 말이다.
투욱-! 휘익-! 휘익-!
‘⋯나이스!’
그러던 중 아스날에게 찾아온 기회.
유건과 합작해서 순간적으로 압박을 가한 파티노가 볼을 키핑하는 맨체스터 시티 선수에게 커팅을 성공했다.
자신의 위치 앞쪽으로 튕기는 공을 보며 달려가서 잡아내고는 이쪽저쪽 고개를 돌리면서 드는 유건.
스윽-! 투둑-!
곧바로 상대 미드필더 한 명이 압박을 들어오는 상황이었던 것은 미리 주변을 둘러보았기에 인지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뒤쪽으로 물러서려는 페인팅과 함께, 멈춰 서있는 자신의 발로 태클이 들어오는 그 타이밍에 팬텀 드리블로 치고 나간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가 뻗어내는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지만 닿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러너!!”
그 한 번으로 충분했다.
미드필더 지역에서 몰고 나오는 것을 차단하고 다른 한 명의 미드필더를 제쳐냈으니 전방에서 기다리는 공격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전달하기에는 말이다.
사이드로 넓게 벌려 기다리던 왼쪽 날개 러너에게 주고 전진하는 유건.
원래 그의 자리로는 소우사가 올라오면서 커버해준다.
투욱-!
“건, 같이 올라가자!”
그리고 공을 받은 러너는 소중한 기회를 이어가기 위해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기보다는 다시 올라온 유건에게 공을 전달한다.
그와 동시에 안쪽으로 파고들려는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자신을 마크하는 사이드백을 유인한다.
그렇게 벌어지는 공간으로 한 번 더 공을 치며 올라가는 유건.
“내가 갈게!”
순간적으로 수비 진영의 공간이 열리자 쿠아바를 함께 마크하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이 뛰쳐나온다.
앞쪽에서는 수비수가, 뒤쪽에서는 미드필더가 복귀를 하며 압박을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유건은 쿠아바를 이용한다.
“A!!”
두 선수가 만들어낸 세부적인 움직임 몇 가지.
그 중 첫 번째를 오랜만에 선보이기로 마음먹은 유건은 쿠아바에게 공을 건네주고 리턴 패스를 받기 위해 빠르게 달려간다.
앞뒤로 압박을 들어오던 수비와 미드필더는 전진하다가 순간 타이밍을 뺏긴다.
멈추거나 전진할 거라고 생각했던 유건이 갑자기 측면으로 방향 전환을 했으니까.
투욱-!
‘⋯나이스, 그대로 때려라!’
사실 쿠아바와의 파트너 플레이는 첫 번째 순서가 유건에게 리턴 패스였다.
하지만 패스가 들어오는 순간 등 뒤에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수가 오히려 그것을 노리고 살짝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있는 걸 느꼈다.
그 생각과 함께 오히려 반대로 공을 터치하면서 앞쪽으로 잡아둔다.
패턴 플레이에서 한 번의 반전을 줌으로써 얻는 긍정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많았다.
콰아앙-!
첫 번째로 곧바로 자신이 마무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뒤쪽의 수비수가 멈칫하는 사이, 쿠아바는 몸을 돌리며 왼발로 강하게 골대를 향해 슈팅을 날린다.
두 번째 효과로 눈 앞에서 날아오는 강력한 슈팅에 맨체스터 시티의 수문장은 반응하지 못했다.
출렁-!
그 두 개 상황이 연결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맨체스터 시티의 골대가 흔들리면서 아스날이 득점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아스날이 동점골을 만들어냅니다! 유건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쿠아바 선수의 움직임과 마무리도 환상적이었죠! 정말 유건 선수와 쿠아바 선수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집니다!”
“서로의 인터뷰나 촬영한 것들만 봐도 사이가 매우 좋은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요! 동갑인 선수들끼리 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이걸로 펩 과르디올라 감독도 교체를 생각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후반전 초반 지금 실점을 하기까지 밀린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유건과 쿠아바가 특유의 댄스 세레머니를 펼치는 사이, 안준성과 전지우는 흥분한 채로 중계를 이어나간다.
멋진 골을 만들어낸 선수들에 대한 칭찬을 시작해서 과르디올라 감독의 대응에 대한 기대감으로 끝낸다.
두 명장 간의 싸움은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뿐이었고 아직 경기 종료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
쿠아바가 득점을 기록한 것은 후반 12분, 정규시간만 해도 약 33분이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