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내 앞에서 멈춘다
‘⋯쉽지는 않네.’
시작된 유로파리그 2차전 경기는 둠바가 유건에게 경기 전 말했던 것이 허세가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1차전보다 훨씬 그들은 빡빡하게 수비적으로 플레이했으며, 주력이 빠른 공격수들을 배치해두고는 역습만을 노렸다.
홈에서 그런 자신감 없는 플레이는 나중에 팬들 사이에서 뒷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들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번 시즌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당신들이 응원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이런 저력이 있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아스날에게 역전승을 거두는 걸로 말이다.
“젠장, 또 막히네.”
“조금 더 빠르게 찔러줘봐, 건!”
“캐시도 타이밍 너무 끌지 말고, 러너도 앞으로 뛰지만 말고 사이드에서 벌려 있어줘!”
그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적인 진형은 아스날 선수들에게 성공적으로 효과를 발휘했다.
그들은 활동량에 기반한 미드필더들을 배치하면서 패스 플레이의 핵심인 아스날 미들 라인을 틀어막고 있었다.
수비 라인까지는 최대한 압박을 하지 않지만 미드필더에게 공이 들어오는 순간, 바로 두 명이 달라붙어 끈질긴 압박을 통해 다음 패스를 나가지 못하게 한다.
운이 좋게 파티노와 카마메니를 거쳐 유건에게까지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두 명은 기본이고 세 명까지 붙었다.
그 와중에도 반 박자 빠르게 패스할 때는 팀원들의 발밑에 정확하게 공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더불어 자신에게 들어오는 압박을 분산시키기 위해 주변에 있는 팀원들에게 넓게 서서 상대 수비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오늘은 완전히 가라앉아서 플레이하네요, 감독님.”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예상은 했지 않은가. 지금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 준비해온 전술 적용은 전반전 경기 양상을 보고 결정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전반 35분이 지나가는 시각, 아스날이 기록한 유효슈팅은 단 1회였다.
그것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아르테타에게 전술 변경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본다.
아르테타도 필요성을 느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아직 전반전이다 보니 너무 빠른 타이밍이었다.
이렇다 할 공격을 못 만들어내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할지라도 위기 상황을 맞이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역습을 성공적으로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전반전에 교체당하는 건 선수에게⋯.’
게다가 또 다른 문제도 남아있다.
세계적인 리그에서 사실 전반전에 선수를 교체하는 것은 흔치 않다.
그 사실이 감독 스스로 들고나온 전술이 실패했다고 인정해버리는 표시임을 둘째치고 선수의 자존심, 자신감과도 연계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경기를 뛴 지 30분 만에 교체로 불러들여진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자신이 부족해서 나왔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고, 이후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감독이 그런 것들을 모두 제치고서라도 승리를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
“마틴, 밖에서 경기를 지켜본 소감은 어땠지?”
“⋯사실 모든 부분에서 우리 팀의 플레이가 앞선다고 생각하는데, 압박을 벗어나는데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마무리를 못 했습니다.”
“카마는 경기를 뛰면서 어떤 걸 느꼈지?”
“내부에서도 답답함이 느껴지긴 했습니다. 공을 잡으면 상대 선수가 양쪽에서 달려드는 느낌을 받았달까요?”
“공격 라인도 마찬가지예요. 아틀레티코 선수들이 골대 앞에 너무 많아요.”
서로 위협적인 상황 없이 남은 전반전 시간도 지루하게 지나간 뒤, 하프 타임을 맞이한 아스날 라커룸에서는 열띤 토론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르테타가 선수들 개개인에게 돌아가면서 지금 각자 느끼는 경기 상황이 어떠한지에 대해 묻는다.
이 시간을 아스날 선수단 내에서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프로 축구 선수로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는 발전은 필요했는데 그 일부분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스스로 팀의 움직임, 개인의 움직임들을 생각하면서 전술적인 답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
“모두의 말이 맞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저 내 의견을 제안하는 것뿐이다.”
“상대 선수들이 동시에 압박하기 쉽지 않도록 경기장을 넓게 쓰고 지금보다 한 템포 빠르게⋯.”
아르테타가 선수단에게 제안하는 전술적 변화.
사실 그것을 제안하기에 앞서 항상 자신의 의견은 정답이 아니라고 말하는 아르테타였지만, 선수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항상 전술에 변경점을 가져간다면 무조건은 아니더라도 매우 높은 확률로 훨씬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으니까.
물론 그런 이전의 결과들이 있었기에 아무런 반박 없이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삐이익-!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아스날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카마메니를 대신해서 외데고르가 들어가면서 4-3-3 진형으로 변경한다.
투 볼란치에 비해 미드필더 라인을 넓게 구성하여 상대팀 선수들이 뛰어다녀야 할 범위 자체를 늘려버린다.
이제부터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 보다 더 많은 체력을 소진해야 했다.
“건, 마틴! 조금 더 넓게 가도 될 것 같아!”
“패스 조금만 빠르게 돌려보자!”
변경된 전술에 맞춰 아스날 선수들은 진형을 조금씩 수정하고 패스를 돌리면서 적응해나간다.
훈련 세션에서 수없이 그것들을 바꿔가면서 연습했기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저 약간의 적응 시간도 없이 바로 적용하는 게 쉽지 않았을 뿐.
“⋯허억, 허억!”
“⋯전반보다 왜 이렇게 따라가는 게 힘든 거야?”
그리고 아르테타가 적용한 그 변화는 후반 15분을 넘어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 교체를 한 명도 가져가지 않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기에, 하나둘씩 느끼고 있었다.
전반전에는 압박하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후반전에는 체력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
스으으-!
그러한 모습들이 쌓이기 시작하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빽빽하게 만들어 놓은 수비, 미드필더 라인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꽤나 벌려서 위치하고 있는 유건과 외데고르가 그런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격수들에게 패스를 전달한다.
덕분에 답답하게 유효슈팅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한 전반전에 비해 유효슈팅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는 아스날이었다.
그러나 사실 아직까지는 앞에 있는 모든 선수들을 다 뚫어내더라도 골키퍼 바로 앞의 둠바를 뚫어내지는 못했다.
“내 뒤로는 못 지나간다!”
“감히 어딜!”
“공은 내 앞에서 멈춘다고!”
막을 때마다 외치고 싶은 아무 말을 외치면서 아스날의 공격들을 모두 막아내는 둠바.
실제 대화를 듣는다면 그가 꽤나 허세가 있구나 정도로도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허세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오늘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아스날의 철벽 살리바의 전성기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 와, 진짜 둠바 개미쳤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렇게 미리 달려와서 차단하는 거임?
- 올림픽 PTSD 생길 것 같다. 그때도 저랬음! 들어갈 것 같은 것도 클리어링을 해버리는 모습!
- 그리고 아틀레티코의 수비도 오늘 미치긴 한 듯? 텐백 전술을 쓰는 팀 중에서도 저 정도면 경기력 충분히 상위권일 듯
└ 악착같이 수비하는 게 진짜 대단한 것 같음. 넘어져도 곧바로 일어나서 바로 달려감
- 중계로 지켜보는 우리가 그렇게 느낄 정도이면 아스날 선수들은 무서울 정도일 것 같은데
엄청난 활약상이었기에 축따튜브에서 오늘 대화의 주제가 되는 선수는 둠바였다.
유건에 대한 응원이 빠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언급이 많이 되고 있었다.
상대팀 팬들마저 이렇게 감탄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를 뚫어낸다면, 더 극적인 골로 느껴지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게 팀을 결승전으로 이끄는 결승골이라면 말이다.
“건, 앞으로 넣어줘!”
“여기 봐, 건!”
“마틴, 그대로 사이드까지 벌려봐!”
“사이로 찌른다!”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아스날의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은 서로를 끊임없이 부르며 기회를 창출하려 했다.
이번 시즌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냈던 것처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심장에 비수를 꽂을 득점을 하기 위해서.
그 중심에는 아스날의 패스 마스터 두명, 유건과 외데고르가 있었다.
주변에 있는 선수들이 둘의 이름을 부르며 패스를 주고받았으니까 말이다.
“⋯복귀해! 자리 잘 지키면서 내려와!”
하지만 후반 30분까지 해결책을 못 찾아냈던 아스날에게 오히려 위기가 찾아왔다.
오늘 날카롭지 못한 역습으로 아스날의 골문은커녕 수비 라인에게 막혔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공격.
후반 36분 아스날의 프리킥을 둠바가 걷어낸 뒤, 곧바로 역습으로 전환했다.
세트피스를 위해 올라왔던 살리바가 빠른 주력을 이용해서 복귀하며 뒤따라오던 선수들에게 조금 더 빠르게 내려오라고 촉구한다.
“우리가 빠르다! 다들 그대로 올라가!”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다고 생각해!”
그러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이 세트피스가 역습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고 더 빨리 스타트를 끊었다.
덕분에 아스날 골대로 먼저 가까워지고 있는 선수들도 그들이었다.
소우사와 페레이라가 세컨볼을 위해 후방에 위치하고 살리바가 내려오고 있었지만 숫자에서 모자랐다.
아무리 대인방어와 수비를 잘한다고 해도 수적 우위를 빼앗긴다면 간단한 패스만으로도 제쳐지기 쉬웠다.
두 명이서 한 명을 뚫어내는 건 보다 더 쉬운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투욱-! 투욱-!
“⋯젠장!”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소우사, 페레이라, 살리바로 이루어진 아스날 수비는 세 명.
직선적으로 달려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은 네 명.
아직 완벽하게 복귀를 하지 못한 살리바가 중간에서 차단을 위해 달려들어 보지만, 이대일 패스로 간단하게 제쳐낸다.
상대팀 선수들보다 먼저 도착할 자신이 없었기에 도박수를 던졌던 것.
“소우사, 자리 지키자!”
“오케이!”
힐슨의 주변에서 가장 후방에 남아있는 아스날의 양쪽 사이드백 소우사와 페레이라.
살리바가 제쳐지는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의견을 교환하고 이대일 패스를 하지 못하게 달려들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각자 한 명만을 응시하고 마크할 수 있었다.
남은 한 명에 대해서는 그저 곁눈질로 지켜볼 수만 있었다.
타닷-! 투둑-!
‘⋯크윽, 안 닿나?’
그 마지막 한 명이 둘의 사이 공간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페레이라의 앞에 있던 아틀레티코의 왼쪽 윙포워드가 반대쪽으로 팬텀 드리블을 가져간다.
앞서 시선을 빼앗긴 탓에 반응이 살짝 느렸고 종이 한 장 차이로 드리블치는 공에 발이 닿지 않았다.
남아있는 선수는 미끼였을 뿐이고 실상은 공을 소유하고 있던 윙포워드였던 것이다.
콰아앙-!
페레이라를 제쳐낸 윙포워드는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지체하지 않았다.
팬텀 드리블이 성공하자마자 바로 슈팅 움직임으로 가져가서 크게 발을 휘둘렀으니까.
그리고 쏘아지는 아주 강한 슈팅.
출렁-!
골대와 가까운 지역, 노마크 상황에서 클래스 있는 선수가 정확한 임팩트로 때린 슈팅.
세계의 어떤 골키퍼도 선방보다는 실점할 가능성이 더 많은 경우였다.
그 말은, 이번 상황에서 힐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
와아아아-!
“으아아!!”
지루하게 바라보던 홈팬들의 함성이 터지는 순간이었고, 득점을 한 선수는 아스날 골대에서 공을 빼내 소중히 품에 안고 킥오프 라인으로 달려간다.
남은 시간 최소 한 골을 더 넣어야 연장전으로 돌입하거나 승리를 거둘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