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지금 많이 봐라
“자신 있게 해봐!”
그런 아스날의 좋은 분위기는 결국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후반 28분, 유건의 공을 건네받은 쿠아바가 둠바를 앞에 두고 바디 페인팅과 함께 제치기를 시도한다.
오늘 시도했던 모든 슈팅들이 둠바에게 블로킹 당하거나 그의 발을 피하기 위해 원하는 방향에서 각도를 조금 틀어버렸더니 골대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시 한번 마주친 상황을 보며 쿠아바의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공을 건네준 유건은 뒤에서 크게 외친다.
스윽-! 휘릭-! 스윽-!
엄청난 피지컬의 두 선수가 작은 축구공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꽤나 둔하게 움직일 거라고 예상하기 쉬웠다.
하지만 쿠아바는 민첩하게 바디페인팅을 섞어가면서 발바닥으로 공을 드리블하고 있었고, 둠바는 잔발로 스텝을 밟으면서 페인팅에 속지 않고 발도 뻗어 내지 않는다.
‘⋯끝까지 안 속네, 이 개자식.’
움찔하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둠바를 보며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쿠아바.
드리블이 통하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도 슈팅이라는 방법이 있다.
스트라이커로서 상대방이 블로킹을 위해 다리를 뻗어 낼 때, 그 사이로 벌어지는 공간을 슈팅을 노리는 것은 충분히 연습해왔다.
성공만 한다면, 골키퍼의 시야를 가려서 보다 들어갈 확률이 높은 방법.
콰아앙-!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잔디에 닿을 듯한 낮은 높이로 날아가는 땅볼 슈팅을 강하게 날린다.
그것을 막거나 클리어를 하기 위해 둠바는 발을 뻗고, 공의 방향은 뒤바뀐다.
그의 다리 사이로 공이 완전하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디딤발의 측면을 맞추면서 튕겼으니까.
“⋯아씨, 이게 말이 돼?”
하지만 허탈한 목소리로 지금 이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는 내는 사람의 정체는 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문장.
쿠아바의 발동작을 보고 가능한 코스로 미리 조금씩 움직이며 슈팅이 나오는 즉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디딤발을 맞고 굴절되는 공이 그 방향과는 완전 반대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미 날리던 몸이었기에 공중에서 중심을 잡아낼 수는 없었고, 역동작에 걸려 빠른 반응조차 불가했다.
그랬기에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런 목소리를 내뱉으며 골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게 다였다.
출렁-!
후반 29분, 쿠아바의 슈팅이 둠바의 발에 맞고 굴절되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골대 라인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아스날이 두 골 차이로 앞서나가는 순간이기도 했고 홈팬들에게 기분 좋은 경기의 결과를 예고해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와아아아-!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그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지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아스날 팬들이 내뱉는 응원가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알렉스 둠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있던 홈팬들의 열정은 미친 수준이었다”]
[유로파리그 4강 1차전 MOM의 주인공은 아스날의 유건, “원정에서도 마찬가지인 건 맞지만 특히 홈 구장에서는 더더욱 패배하고 싶지 않다. 우리 팬들을 더욱 기쁘게 해주고 싶다”]
[이번 달 EPL 감독상을 수상한 미켈 아르테타, “우리 선수들과 팬분들 덕분에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아스날을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고 싶다”]
1차전이 아스날의 승리로 끝나고 둠바, 유건, 아르테타의 인터뷰가 순차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며 팬들은 최근 며칠 동안 환호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원정을 온 상대팀 선수마저 홈 구장의 열기에 반했고 팀의 에이스는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을 기쁘게 만들어 주고 싶어 한다.
심지어 응원하는 구단을 이끄는 감독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수상한 것을, 자신들 덕분에 받았다고 말하고 구단의 미래를 궁금하게 만들어 준다.
정말 강한 팀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게 아스날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은 행복을 안겨다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정말 이 녀석 보스한테 인터뷰도 배우고 있는 거 아니야?”
“최근에 일대일로 대화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더니, 그런 거였냐?”
그런 유건이 최근에 한 인터뷰를 곱씹으며 얘기를 나누는 팀원들.
에버튼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찾아온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가 곧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주중에 유로파리그에서 풀타임을 뛰었던 주전 선수들은 벤치에서 스타트했는데, 유건도 거기에 속해 있었다.
“이것들아, 다 들린다고! 보스가 그런 거 가르쳐주겠냐?”
그리고 팀원들의 얘기는 뒤에서 속닥속닥거리는 게 아니라 앉아있는 유건이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장난을 친 것.
짓궂게 말하지만 다들 유건을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 그가 팀에게 벌어다 준 승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그나저나 이제부터 일정이 나쁘지 않은데, 정말 계속해서 이렇게 최상의 성적만 거둔다면! 흐흐흐!”
유건과 마찬가지로 콜이 대신 출전하면서 벤치에 앉아있는 쿠아바.
거구의 몸을 작은 벤치 하나가 힘겹게 버티고 있는 듯한 자세로 팔짱을 끼고 앞으로 시즌 남은 일정에 대해서 생각하며 행복회로를 돌린다.
아직 2차전이 남긴 했지만 유로파리그도 결승전 진출에 유리한 상태고, FA컵은 이미 결승전 진출.
로테이션이 필요했던 오늘 경기에서 강등권을 들락날락거리며 예전의 좋은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에버튼을 만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계속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혹시 뇌까지 단단해졌냐, 멍청아? 아직 많은 경기 남았다고! 벌써 마음 놓지 마.”
하지만 쿠아바가 하고 있던 생각은 아직 시기상조인 것은 분명했기에 유건은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해준다.
리그도 한 경기만 비기거나 패배한다면 순위가 떨어질 확률이 있었고 유로파리그도 마찬가지.
심지어 FA컵은 결승에 갔지만 단판이었기에 어떤 이변이 생길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단판 승부에서는 리그 하위권의 팀이 리그 상위권의 팀을 잡아내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니까 말이다.
“알고 있다구, 이 멍청아! 장난친 건데 눈치가 없어 가지고, 여자친구한테 눈치 없다는 소리 많이 안 듣냐?”
“여자친구도 없는 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다.”
그저 행복한 상상으로 내뱉은 말에 되돌아오는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유건의 말을 들으며 쿠아바는 툴툴거린다.
왜 자신의 장난을 못 알아주냐는 의미에서.
그러나 마지막에 내뱉은 말은 본전도 뽑지 못했다.
현재 아스날 선수단 내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지 않은 건 쿠아바가 유일했으니까 말이다.
“이제 슬슬 시작한다, 집중하자고.”
그렇게 투닥거리는 유건과 쿠아바를 불러서 선수들이 준비를 마치고 경기를 준비하는 그라운드 위로 시선을 돌리라고 말하는 파티노.
자신과 카마메니를 대신해서 4-3-3에서 원볼란치로 출전할 클락의 발전을 보기 위해 시선을 집중한다.
몇 개월 동안 그는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했고 최근 출전할 때마다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따로 내색은 하지 않는 스타일의 클락이었기에 분함과 힘듦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지켜보는 아스날 선수단은 모두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6개월 뒤에 영입된 어린 선수에게 주전이 밀린 것에 대한 분함과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죽을 듯이 노력해야 하는 힘듦은 모든 프로 선수가 경험하는 일 중 하나였으니
‘⋯힘내라 클락, 그 시절을 견뎌내고 많은 발전을 해나간다면 밝은 미래가 찾아올 거다.’
그런 그에게 파티노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르테타의 1세대 시절, 아스날에서 대체 불가능한 선수 한 명을 말한다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꼽았던 선수.
그리고 블랙풀에서 성공적인 임대를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주전 자리를 당장 밀어낼 수 없었던 선수.
토마스 파티가 은퇴하고 나서야 그의 자리를 온전히 물려받은 경험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삐이익-!
파티노가 막간을 이용한 추억에 빠진 사이,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아스날의 시즌이 종료되기까지 남은 열한 경기 중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시비타스 메트로폴리타노에 방문한 아스날과 이곳의 주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로파리그 4강 2차전이 펼쳐지려 하고 있습니다!”
“터널에서 입장을 준비하는 선수들이 보이는데요! 아, 우리 유건 선수 아주 표정이 밝아 보입니다! 1차전에서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활약이 대단했거든요?”
“맞습니다! 이제는 정말 활약을 안 하는 경기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매 경기 아스날의 에이스 자리를 맡고 있는 게 허언이 아닌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건 선수는 아직 부상 이력이 한 번도 없는 강철 바디의 소유자죠! 그저 아스날 에이스로 급부상된 것밖에 없습니다!”
“준우씨 또 재밌는 댓글 하나를 보고 오셔서 써먹으시네요? 요즘 아주 맛들이신 것 같습니다.”
“아하하, 참신하지 않습니까? 저는 팬분들의 창의성을 볼 때마다 매번 감탄을 금치 못한다니까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구장을 방문한 아스날.
유로파리그 4강 2차전이 열리는 날이었고, 중계방송에서는 둠바와 유건이 경기장에 입장 전 터널에서 입을 가리고 얘기를 나누는 게 잡히고 있었다.
곧 시작될 경기에 대해 안준성과 전지우는 시청자들의 흥을 돋우기 시작했고, 그 와중 한 팬의 드립을 기억해뒀다가 따라해 보는 전지우.
해외축구 팬들의 창의성은 항상 재밌고 참신한 드립들을 많이 창조해냈는데 오늘 언급한 것은 그중의 하나였다.
“이봐, 빡빡이! 지금까지 일승일패니까 오늘은 승부를 가리자고.”
“희망 가지지 마라, 덩치! 우리가 또 한 번 이길 테니까.”
“이번엔 저번처럼 손쉽게 이기지 못할 거다. 리그까지 로테이션 돌려가면서 준비했으니까.”
“우리는 로테이션 안 돌렸냐? 나도 푹 쉬고 왔어 인마. 그리고 우리는 라인업 많이 바뀌었는데도 이겼는데, 너넨 졌었지?”
“⋯이 빡빡이 자식이!”
그리고 그 시각, 중계화면 속에는 입을 막고 있어서 표정으로만 보이는 게 엄청 심각하게 싸우는 듯 보이는 유건과 둠바.
하지만 그 대화의 실상은 꽤나 유치했다.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월드 클래스 프로 축구 선수들이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나이가 어리다는 게 티가 났다.
서로 자신의 팀이 이길 거라며 으르렁거리더니 지난 경기의 라인업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물론 로테이션을 가동하고 각각 승리와 패배를 거두었기에 아스날 소속인 유건이 이긴 말싸움이었지만 말이다.
“젠장, 경기장에서 두고 보자고!”
“왜 두고 보냐? 지금 많이 봐라, 덩치야!”
터널을 입장하는 와중에도 둘의 말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팬들이 너무 서로 흥분한 것 아닌가 걱정을 슬슬 하던 찰나, 유건은 빠르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돌려 도발한다.
두고 보지 말고 지금 당장 쳐다봐도 된다는 간단한 말장난을 하면서.
유로파리그 4강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아스날의 경기.
시비타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펼쳐지는 빅경기.
킥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