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지금이라고 넣겠냐?
출렁-!
둠바의 발에 닿지 않았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을까, 캐시가 반 박자 빠르게 가져간 감아 차는 슈팅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골대를 흔든다.
쉽지 않은 코스였지만 왼발로 먼쪽 포스트를 향해 빠르게 감아 차는 슈팅은 캐시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몸을 옮겨놓았던 골키퍼의 손에 스치지도 않았다.
유건의 엄청난 패스가 선행되긴 했지만 이번 골은 사실 마지막 마무리가 70%를 만든 골이었다.
와아아아-! 촤아아-!
“으아아아!!”
골을 넣자마자 울려 퍼지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홈팬들의 함성.
그것을 들으며 코너 플랫으로 달려간 캐시는 무릎으로 잔디를 쓸면서 멋있게 세레머니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일어나서 포효하며 양손을 허리춤에서 하늘로 반복해서 들어 올리며 함성을 유도한다.
예전 유건이 무릎으로 슬라이딩을 하던 엉망진창 세레머니와는, 조금 많이 달랐다.
“나이스 마무리다, 캐시!!”
“미안한데 솔직히 둠바가 빠르게 쫓아가는 거 보고 못 넣을 줄 알았다, 이 자식아!”
“그게 너와 나의 경기를 보는 수준 차이를 말해주는 거라고, 으하하!”
패스를 보냈던 유건은 또 한 번 어시스트를 기록했구나라고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골을 넣은 캐시의 등에 안겨 머리를 두드린다.
그리고 그런 둘을 덮치며 행운의 골이라며 장난을 치는 쿠아바.
물론, 되돌아오는 장난 섞인 대답에 본전도 못 찾긴 했지만 말이다.
- 캐시 마무리 개미쳤다 진짜! 저기서 슈팅 빠르게 가져갔는데 저렇게 코스 정확하게 들어간다고?
└ 솔직히 쿠아바만큼이나 아스날의 보물이라고 생각함. 요즘 수비 한 명 붙으면 무조건 뚫어버림!
- 그 전에 축따형 패스도 관심 가져줘라 형들. 슬쩍 보고 바로 앞쪽으로 찔러주는 거 보고 지금 팬티 갈아입고 왔다
└ 너도? 야 나두!
- 지금 좋다! 홈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원정 가서도 마음이 편안할듯
└ 인정. 원정 생각하면 실점은 안 했으면 좋겠다 진짜
세레머니를 마친 아스날 선수들이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오고 경기가 재개될 준비를 하는 사이, 축따튜브에서는 슬로우 장면을 보면서 채팅이 오간다.
패스도 미쳤다는 구독자들의 반응이 없진 않았지만 이번엔 솔직히 마무리가 너무 대단했기에 캐시에 대한 칭찬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예전에 원정 다득점이 사라졌긴 하지만 홈구장에서 골을 넣는 부분에서나 실점을 막는 부분에서나 더 쉬웠다.
그런 부분을 고려해 이번 경기에서 꼭 승리하길 바라는 채팅들도 간간이 보였다.
삐이익-!
전반 32분, 유건에게 어시스트를 선물한 캐시의 멋진 골로 아스날이 한 점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재차 시작되는 휘슬과 함께 다시 한번 경기는 치열한 열기 속으로 들어간다.
***
뻐어엉-!
‘⋯젠장, 또야?’
아스날에게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 것은 전반전이 끝나기 전이었다.
짧게 들어오는 킥을 강하게 클리어하려던 유건은 생각보다 빠르게 공이 와서 임팩트를 정확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뒤쪽으로 날아가 라인을 넘어갔다.
또 한 번, 코너킥이 주어지는 상황이었고 속으로 아쉬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다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연속으로 세 번 코너킥을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이거 막으면 전반전 끝난다! 다들 끝까지 집중해!”
“위치 제대로 잡고, 자기가 맡은 선수 놓치지 마!”
첫 번째 코너킥이 경합 중에 흐르면서 슈팅으로 연결되었고 힐슨의 선방이 아니었으면 골이 될 뻔했기에, 아스날 선수들은 실점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골대 앞에 모인 선수단의 멘탈을 잡아주려는 목적으로 크게 외치는 살리바의 외침 덕분에 마지막까지 집중한다.
이번 한 번만 막아내면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하프타임이 주어질 시간이었으니까.
휘이익-!
강하게 휘어져 들어오는 세 번째 코너킥.
골대 앞에 뭉쳐있는 약 10명이 넘는 선수들은 모두 공에 머리를 맞추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점프를 한다.
힐슨은 펀칭으로 쳐내기에는 살짝 뒤쪽으로 빠지는 공에 골대를 지키고 서 있었다.
“클리어!”
“수비!!”
“내리꽂아!”
“머리에 맞혀!!”
예상보다 킥이 길었기에 가장 중앙의 키가 큰 선수들을 모두 통과해버렸는데, 자신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공을 보며 저마다의 외침을 전한다.
아스날 선수들은 뒤쪽에서 아무나 클리어를 하거나 수비에 성공해달라는 목적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은 골대를 향해 헤딩하라는 목적으로 말이다.
콰앙-!
그러나 머리에 공을 맞힌 사람은 바로 아스날 선수, 파티노였다.
나쁘지 않은 피지컬로 세트피스 상황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로 꼽히는 파티노가 뒤쪽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마침 그쪽까지 공이 흘러온 것이었다.
공에 실려있던 힘 자체가 강했기에 걷어내는 헤딩이었음에도 큰 소리를 내면서 튕겨 나온다.
“집중력 잃지 마, 다들!”
“마무리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끝난 상황은 아니었다.
흘러나오는 세컨볼을 향해 가장 가까이 있는 양팀 선수들이 달려가고 있었기에.
그런 팀원을 보며 또 한 번 외치는 주변의 선수들.
뻐어엉-!
첫 번째 코너킥 상황에서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아스날 선수인 러너의 발이 먼저 공에 닿았다.
강하게 멀리 클리어하는 공은 중앙선을 넘어서 날아갔고 경기가 끝나는 휘슬이 울리지 않았으니 아스날 선수들은 재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다시 위협적인 공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삐이익-!
‘⋯후우, 다행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울리는 심판의 휘슬.
그 소리가 귀로 들려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숨을 몰아쉬는 유건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한 점 차이로 이기고 있을 때가 쫓기는 기분이 들어 가장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하지만, 그건 한정적인 경우에만 해당되는 잘못된 말이다.
이기고 있는데 왜 그런 느낌을 받는단 말인가.
동점이거나 밀리고 있을 때 가장 쫄리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더 세밀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전반 마지막에 세트피스 상황만 보더라도, 우리에게는 추가골이 필요하다!”
“쿠아바! 둠바한테 언제까지 막혀있을거야?”
“러너와 캐시는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건은 중거리 슈팅을 아끼지 마라!”
하프타임 직전 꽤나 위험한 상황이 연달아 나왔기 때문에 아르테타의 첫 마디는 호통으로 부족한 부분을 집어주면서 시작했다.
아스날이 계속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아르테타의 존재.
연승 기록에는 관계없이 그날의 경기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생하면 바로 개선을 위해 여러 방법을 택한다.
그는 정말 매 경기 승리하는 팀을 만들기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캐시의 골 이후로 다들 반 박자씩 부족해!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서로의 박자가 맞아야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거다!”
“파티노와 카마를 동시에 투입하는 게 우리가 수비적으로 나간다는 뜻은 아니다. 건과 동일선상을 이루는 위치까지는 올라가야지!”
“이런 세부적인 부분들을 뺀다면 여러분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 홈으로 찾아와주신 팬분들을 위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승리를 가져가자!”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아스날 선수들이 아르테타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보내는 이유는 항상 이기고자 하는 방향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상대팀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수비가 지켜낼 확신이 있기에 수비적인 전술을 쓰고, 공격을 마무리 짓는 상황이 많이 나올 것 같다면 공격적인 전술을 쓴다.
카멜레온같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가끔 전술이 변경되긴 하지만 훈련 세션에서 충분히 연습하는 부분이었으니 선수단이 순간적으로 적응하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더불어 말을 끝내기 전 마지막에는 선수단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원들을 설득시키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그였기에, 모두들 그의 지시에 의심 없이 따르는 것이었다.
***
“후반전에 들어와서 아스날이 본래의 모습을 찾은 것 같은데요? 사실 전반전에 세트피스 상황을 연속적으로 겪을 때는 당황스러워하는 게 보였었거든요!”
“하프타임 때 아르테타 감독이 어떤 변화를 준 걸까요? 선수진 자체에는 교체가 없는데 말이죠.”
“전반전보다 아스날스러운 플레이가 훨씬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 바뀌었는지 정확하게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아주 미약한 부분인 것 같긴 합니다! 카마메니 선수가 평소보다 조금 더 높게 위치하고 쿠아바 선수가 더 아래쪽까지 내려오긴 하는데요!”
후반전이 시작한 이후, 아스날은 다시 전반 초반 때의 분위기를 찾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경기를 조금씩 지배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미드필더 라인이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투박했던 덕분에 아스날이 미드필더에서부터 점유를 늘려갔다.
사실 그러한 이유 덕분에 이번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몰락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는데,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변화를 해내지 못했다.
지난 시즌 우승을 이끌었던 에이스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가 빠지면서 전문가들에게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시작한 시즌이긴 했지만 말이다.
[리버풀의 레전드 제이미 캐러거, “아스날의 경기를 보는 것은 재미있다. 확실하게 나에게는 이번 시즌 리버풀의 경기보다 아스날의 경기가 재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리오 퍼디난드, “훌륭한 팀의 예시를 보려면 아스날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정해둔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약속된 움직임이 숨겨져 있다”]
[지난 시즌 대비 아르테타가 완전히 뒤바꿔놓은 아스날의 전술 변경점을 파헤쳐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많은데 그것은 어떤 것들일까?]
반면에 최근 전문가들, 레전드 축구 선수들이 평가하는 아스날, 칼럼의 대상이 되는 아스날은 그들이 평가받는 것과 크게 달랐다.
약점이라고 지목되었던 부분들을 개선하고 오히려 기존에 있던 강점들을 업그레이드시키기까지.
더불어 시즌을 겪을수록 드러나는 부족한 점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매 경기마다 보여주었다.
지난 시즌 초반 강등 위기라고도 평가되던 것을 지금 이 순간, 명백한 우승 후보라고 불리는 게 바로 그 증명인 것처럼.
“나이스 마무리였어, 쿠아바!”
“미안하다, 넣었어야 되는데.”
“이놈아, 훈련에서도 이럴 때 못 넣었는데 지금이라고 넣겠냐?”
“⋯이 자식아!”
그런 아스날의 선수단은 분위기 자체도 활기차고 골을 넣지 못했음에도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바탕에 경기를 리드하고 있는 경기 상황이 깔려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들이 뿜어내는 열정은 보기 좋아 보였다.
득점을 하지 못한 팀의 스트라이커에게 나이스 마무리였다고 칭찬을 하고, 미안하다는 답변으로 팀원의 배려에 감사함을 표한다.
물론 주변에서 장난을 치는 팀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마치, 앞으로 펼쳐질 아스날의 밝은 미래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