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네가 넣으면
“그 녀석, 괴물이에요.”
그 한 마디로 유건은 둠바를 표현했다.
제친 줄 알고 슈팅을 가져갔을 때, 준비하는 그 과정에서 다리를 뻗어서 커팅을 성공시키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볼을 다루는 기술 자체도 투박한 수비수들에 비해 수준이 높고 터치가 부드러웠다.
그라운드 위에 존재한다면 팀의 경기력을 한 단계 올릴 수 있게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그래도 살리바보다는 뚫기 쉬울걸요?”
하지만 그도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었다.
유건이 비교대상으로 둔 살리바는 아스날에서 뛸 때부터 미친 듯한 활약으로 둠바 이상의 평가를 받으며 괴물이라고 불려왔던 선수.
지금에 와서는 경험까지 더해졌기에 유건은 그보다 둠바가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다.
콜니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 세션을 진행하면서 살리바를 직접 뚫는 것을 성공한 게 손에 꼽는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많이 마주칠 쿠아바도 이미 경험이 있으니 됐고, 의식하지 말고 그저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둠바에 대한 유건의 평가가 끝난 이후로는 아르테타가 브리핑을 계속 진행하며 선수단과 말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그들은 한 경기 한 경기씩 확실하게 준비하며 다가오는 대회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떤 대회든지 아스날처럼 4강까지 올라간다면, 우승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심지어 리그에서는 1위를 달리고 있고, FA컵도 우승컵이 목전에 있는 결승전에 진출했으니까 말이다.
***
유로파리그 4강 1차전을 진행하기 전에 아스날은 휴식 없이 또 두 번의 리그 경기를 거쳤다.
물론 유럽 대항전과 FA컵 일정이 껴있지 않았기에 일주일에 한 번만 경기를 치르긴 했지만 말이다.
“저놈, 진짜 도움 35개 기록 세우는 거 아니야?”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에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에버튼을 상대했다.
뉴캐슬전에서 2어시스트를 기록한 유건은 단일 시즌 3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의 기록을 갱신 중이었다.
유건이 깨기 전의 기록이 20개의 도움을 기록한 옛날 프리미어리그의 왕이라고 불렸던 티에리 앙리의 기록.
32라운드에서는 오랜만에 캐시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하나의 도움을 더 올렸다.
“저 정도면 코너킥에서도 정확하게 찰 수 있는 거 아닐까, 저 녀석?”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는 울버햄튼 원정.
1:0의 상황에서 맹렬히 치고 들어오는 늑대 군단의 공격에 애를 먹던 아스날.
후반 24분에 나온 유건의 프리킥과 함께 추가골을 기록하며 그 시점 이후로 기세가 꺾여버린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덕분에 계속 전승을 하며 쫓아오는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에게 붙잡히지 않고 말이다.
“앞으로 2주 동안 유로파리그 4강전과 프리미어리그 35, 36라운드가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약팀을 만나게 되는 리그에서 교체를 하면서 다가오는 일정을 진행할 생각이다.”
울버햄튼전이 지나고는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피로를 풀기 위하여 이틀 동안 훈련은 짧게 하고, 전술 세션 및 회복 마사지의 시간을 늘렸다.
매주 진행되는 경기 일정 때문에 선수들의 근육은 한계에 도달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래서 아르테타는 또 한 번 쉴 틈 없이 달리기 전 이틀 정도를 마사지 시간을 늘려서 편성하며 선수들의 몸 상태를 집중적으로 살피기 위한 시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제수씨! 건이 어디가 그렇게 좋습니까? 예쁜 한국 여자분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십쇼!”
“헤헤, 찾아볼게요!
“미친놈아, 이 정도 장거리 연애가 쉬워 보이냐?”
덕분에 선수들 저마다 지인들과 약속을 잡거나, 오랜만에 파티를 할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유건과 쿠아바, 카마메니를 비롯한 스미스 등 어린 선수들은 한데 모여 식사를 했다.
각자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유건의 집에 모였는데, 쿠아바만 최근에 만나던 여자와 헤어져서 솔로였다.
그 상황이 짜증 나서일까 여름에게 한국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되지도 않는 부탁을 장난스레 해본다.
망설이지도 않고 리액션을 해주는 여름이 있었지만, 곧바로 되돌아오는 캐시의 비속어에 쿠아바는 눈을 부릅뜬다.
“미친놈? 이것아, 너는 소개부터 해주고 말하라고!”
“거울 보고 와봐. 그말 나한테 하는 거 미안하지 않냐?”
곧바로 받아치는 쿠아바의 대답은 은근슬쩍 소개를 바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캐시가 순순하게 속아 넘어갈 사람인가.
외모를 공격하며 여유롭게 맞받아치면서 대화 주제를 바꿔버린다.
“으하하, 솔로 천국이다! 커플은 다들 망해라!”
자신을 제외한 선수들이 모두 여자친구를 이 자리에 데리고 왔기에, 시간이 갈수록 혼자가 되는 타이밍이 많다고 꽤 있다고 느끼는 쿠아바.
결국 실성한 채 준비된 음식을 허겁지겁 입에 넣고 만족스런 미소를 짓더니 안타깝게 외친다.
너네도 다 헤어지라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물론, 그건 그의 희망 사항이었을 뿐이지만.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시즌 유로파리그는 생존한 팀들이 챔피언스리그만큼 쟁쟁하다고 알려져 있죠!”
“맞습니다! 지금 시작할 아스날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를 빼고도 반대편 시드에는 바르셀로나와 유벤투스가 있습니다!”
“오늘 1차전의 승자가 각각 어떤 팀이 될지도 궁금해지는데요?”
“하하, 제 마음 같아서는 유건 선수가 엄청난 활약으로 팀을 결승전으로 이끌면 좋겠는데요!”
안준성과 전지우가 중계를 맡은 이번 경기.
유로파리그 4강 1차전은 아스날 홈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먼저 진행되었다.
아르테타가 들고 나온 전술은 이번 시즌 가장 많이 사용했던 선발 라인업을 이용한 4-2-3-1의 투 볼란치 전술.
유건을 비롯한 공격 라인 트리오에게 득점을 맡기고, 미드필더 라인에서부터 단단하게 가져가며 점유율을 늘린다.
“준비해온 대로 잘 풀어가 보자!”
“1차전에서 최대한 많은 골을 넣고, 마드리드로 가자고!”
경기장에 나서는 아스날 선수들의 대화는 이제까지의 지난 경기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어떤 대회라고 의식해서 플레이하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한 경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상대팀에게 실점하지 않고, 우리는 득점을 올린다.
그게 아르테타가 경기 시작 전 선수단에게 브리핑한 오늘의 핵심 작전이었다.
물론 경기에서 사용할 세부 전술에 관해서는 경기를 준비하며 많은 얘기가 오고 갔긴 했지만.
- 축따형이랑 쿠아바가 둠바한테 당한게 있으니까 이번엔 반대로 갚아줬으면 좋겠다!
- 여기서 아스날이 이기고 아스날한테 감탄한 둠바가 이적해오면 둠바 살리바 조합! 챔스 우승 각 나온다
└ 이 형 말만 들어도 설레게 하네. 살리바 파트너 자리가 솔직히 말하면 마지막 퍼즐인 것 같긴 한데
- 리그랑 유로파 두개만 우승하면 FA컵 정도는 양보해준다 하더라도 기분 너무 좋을듯
└ 안돼! 축따형이 올라갔으니까 그냥 세 대회 다 우승해버리자!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경기를 보며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는 축따튜브.
유건의 개인 채널이었기에 대부분의 구독자들이 아스날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아르테타가 수비 라인 보강을 위해 선수들을 찾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했었기 때문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에이스, 둠바가 영입되는 것도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만약 그게 현실이 된다면 아스날로서는 다가오는 이적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을 끝낼 수 있을 상황임은 분명했다.
“카마, 파티노! 둘 중 한 명은 조금씩 전진하면서 플레이해줘!”
“캐시랑 러너는 넓게 벌려!”
“쿠아바는 움직여서 수비를 끌어주고!”
그런 팬들의 실시간 반응을 알 리 없는 경기장 안의 유건은 조금씩 선수들에게 위치를 조정해달라고 외친다.
이제는 아스날의 매 경기마다 핵심 선수로 꼽히는 유건이었기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미드필더들이 강한 압박을 가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 풀어나가기 위한 패스 루트를 만들기 위해서가 목적이었다.
비어있는 팀원이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공을 빼앗기지 않을 자신감은 충만한 상태였으니까.
“건, 맨온이야!”
“리턴 주고 다시 받아, 뒤에 붙었어!”
“사이드로 벌리자!”
그런 유건의 외침에 이어 다른 선수들도 저마다 원하는 바를 말하기 시작한다.
조금 더 편하게 패스를 주고받고, 팀원들에게 주변 선수들의 위치를 인지시킬 목적으로.
투욱-!
팀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외침들은 도움이 되었던 걸까.
전반전에서 가장 좋은 역습 찬스를 맞이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미드필더가 빠르게 올라오던 것을 커팅하는 데 성공하는 카마메니.
그의 발에 맞은 공은 튕겨서 옆쪽에 있던 파티노에게 전달된다.
“페레이라!”
그와 동시에 전진을 시작한 페레이라가 공을 건네받는다.
하지만 곧바로 압박이 들어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가 있었기에 바로 공을 보내지는 못한다.
“페레이라, 여기야!”
페레이라가 공을 잡은 순간부터 조금 내려와 있던 유건이 더 내려가서 그에게 패스 코스를 만들어준다.
지금 타이밍에 자신에게 패스를 넣어달라는 목적으로.
투욱-! 힐끗-!
‘⋯비었다!’
공이 굴러오는 것을 보자마자 미리 인지해뒀던 공간으로 고개를 슬쩍 돌린다.
바로 패스를 날려도 괜찮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찰나의 순간 다시 한번 재확인한 유건은 몸을 틀며 비어있는 오른쪽 날개인 캐시의 앞쪽으로 찔러준다.
역습을 위해 올라오던 상황이었으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포백 라인은 높게 형성된 상태.
투우욱-!
그 상황에서 패스가 건네지자마자 출발하는 캐시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유건이 인사이드를 이용해 패스를 보냈으니 공이 왼쪽으로 휘며 골대 쪽을 향하고 있는 상태.
재빠르게 달려가 앞쪽으로 길게 공을 보내며 치고 나가기 시작한다.
“쉽게 못 간다고!”
캐시의 옆에 서 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왼쪽 사이드백은 출발이 늦어 뒤처진 상태였지만, 한 명이 더 있었다.
중앙 지역으로 재빠르게 내려오며 캐시를 거의 따라잡을 듯한 속도로 복귀하는 둠바.
투우욱-!
“⋯바, 바로 찬다고? 키퍼!”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다.
주력이 장점은 아니었기에 이걸 골대까지 치고 달리기로만 가져갈 수 없겠다라고 생각한 캐시.
둠바가 자신의 슈팅 코스를 막기 전에 순간적인 터치로 각을 열고 반박자 빠르게 땅볼로 강하게 슈팅을 때린다.
중앙으로 복귀하면서 왼발인 캐시가 안쪽으로 파고드는 타이밍에 발을 내밀려고 마음먹은 둠바의 타이밍을 뺏은 것이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앞에 있는 골키퍼가 선방을 해주길 바랄 뿐.
‘⋯그렇지! 캐시, 제발!’
그리고 유건의 패스가 전달된 순간부터 두 손을 모으고 VIP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여름이었고 이제는 꽤나 친해진 쿠아바, 캐시, 카마메니 등의 선수들도 함께 응원한다.
볼을 몰고 가는 캐시를 보며 제발 골까지 연결시켜 달라는 외침을 마음속으로 해본다.
‘네가 넣으면 우리 오빠 어시스트⋯.’
팀의 득점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공격 포인트가 기록되는 것을 더 신경 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