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어떤 놈이야?
“젠장, 더 정확하게 패스해보자고!”
“홈에서 이게 무슨 꼴사나운 짓이야!”
“살리바랑 마주하지 말고 멀리서라도 슈팅까지 가져가 보자!”
추가골까지 실점한 이후, 뉴캐슬 선수들은 다급해진 마음을 플레이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훨씬 더 정교하게 과정을 만들기보다는 마무리하기에 급급해서 유효슈팅까지 연결하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세트피스로 이어져서 아스날의 두 번째 득점 장면처럼 골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지금 그들의 마음으로는 확률이 낮아 보였다.
물론 언제 어디에서 이변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축구라는 스포츠이긴 했지만 말이다.
퍼엉-!
그래서일까, 후반 36분 힐슨의 캐칭 실수로 뉴캐슬의 중거리 슈팅이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무작정 반복해서 때리는 그들의 슈팅을 잘 막아내다가 갑자기 바운드되는 공을 캐칭하지 못하고 펀칭으로 쳐낸 것이다.
이어지는 상황에 맞춰 피지컬이 좋은 뉴캐슬 선수들이 아스날 골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뻐어엉-!
아스날의 왼쪽 코너 플랫에서 키커가 손을 들고 들었다 내리고는 강하게 골대 중앙으로 감아서 올린다.
유건은 튕겨 나오는 세컨볼을 클리어하기 위해 약간 뒤쪽에 머물면서 대기하는 미드필더를 마크하고 있었다.
바로 앞의 선수가 안쪽으로 파고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잘하지 못하는 수비를 열심히 해보려고 두 눈을 부릅뜨면서.
콰앙-!
“공 끝까지 봐!”
“마무리하고 끝내!”
가장 먼저 공에 머리를 가져다 댄 것은 바로 아스날의 살리바였다.
강하게 골대 바깥쪽을 향해 클리어하며, 주변의 팀원들에게 공에서 시선을 떼지 말라고 외친다.
이마가 아닌 머리의 위쪽을 맞아 공중으로 높게 튀어 오르며 골대 앞 밀집된 지역에서 공이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반면 뉴캐슬 선수들은 떨어지는 공이 어떤 방향으로 튕겨나든 최대한 마무리를 짓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클리어⋯.’
행운인지 불행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한 번 더 중앙 지역에서 누군가의 머리에 맞은 공은 유건이 있던 방향으로 튕겨 나왔다.
뒤쪽의 미드필더가 압박을 해오고 있었기에 돌아서기보다는 등진 채로 공을 한 번 띄워서 오버헤드킥 형태로 클리어하는 방향을 생각한다.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공만 보고 있었기에 인식하지 못했다.
측면에 서 있던 다른 선수가 재빠르게 뛰어오고 있던 것을.
투욱-! 티익-!
유건의 발이 떨어지는 공에 닿기 일 초 전에 옆에서 뛰어온 뉴캐슬의 윙포워드가 공을 먼저 터치한다.
공중으로 한 번 띄우려던 유건의 발은 지나가는 그의 다리를 살짝 건들면서, 앞으로 넘어지게 만든다.
‘젠장, 이거는⋯.’
확실하게 감각이 느껴졌다.
당장 페널티킥이 주어지지 않고 상황이 유지되었지만, 알고 있었다.
발달된 기술로 심판이 눈앞에서 보지 못하더라도 VAR을 통해 전달받을 거라는 것을.
- 아이구, 이거 너무 확실하게 축따형 다리에 걸렸네. 피케이로 갈듯
- 끄으 너무 아쉽네. 오버헤드킥으로 클리어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옆에 못 본 것 같다
- 축따형 괜찮아! 오늘 활약상은 피케이 하나 줘도 충분하니까 멘탈에 타격 안 받았으면 좋겠네
- 축따형! 축따형! 축따형! 멘탈 그래도 약한 편 아니니까 괜찮을 거임!
슬로우 모션으로 나오는 중계 화면을 보고 있는 축따튜브의 구독자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곧 심판이 페널티킥을 선언할 상황이라는 것은.
그저 그들이 걱정하는 건 이기던 상황에서 이번 일로 유건의 멘탈이 나가거나 아스날이 패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
승리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삐이익-!
결국 이어폰을 통해 VAR 실의 상황을 전해듣던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하고, 뉴캐슬의 키커가 준비한다.
약 10분 남은 상황에서 추격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
물론 아스날의 골대를 지키는 수문장인 힐슨은 장갑을 낀 양손을 마주치며 막을 준비를 했고.
삐이익-!
심판의 추가적인 휘슬 소리와 함께 뉴캐슬의 키커가 도움닫기를 시작한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고 약 두 발자국을 걸어오며 정확한 방향으로 슈팅을 차려고 준비한다.
퍼엉-!
“으하하하, 기운 내라고 건!”
“힐슨!!”
이윽고 때리는 페널티킥의 결과는, 선방이었다.
방향은 원하는 의도와 동일했지만 생각보다 덜 꺾인 공은 몸을 날리는 힐슨의 손에 닿았다.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뉴캐슬 선수가 부정확한 슈팅으로 골대 밖으로 공을 버리자마자 유건은 힐슨에게 달려가서 안긴다.
자신의 실수를 커버해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그 보답으로 남은 시간 승리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말이다.
와아아아-!
홈팬들에 비해 적은 숫자였지만 원정석에 있는 아스날 팬들은 그 광경을 보고 세인트 제임스 파크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엄청난 선방이었던 것은 물론이고, 기세를 꺾일 수도 있는 순간에 팀의 수문장이 그것을 완벽하게 차단했으니까.
***
‘힐슨이 막아줬는데, 내가 여기서 멈추면 안 되지!’
‘⋯어디 화장실로 도망가 봐라, 거기까지 따라간다!’
남은 10분간, 유건은 마치 경기를 시작할 때로 돌아가 미친 듯이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4-3-3으로 넓게 퍼져 맨마킹 전술을 펼치고 있었기에 그가 마크해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뉴캐슬의 미드필더를 지옥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마음으로 공을 잡을 때마다 잠깐의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 달라붙는다.
그라운드 위에서 도망가서 다른 곳으로 숨더라도 거기까지 따라가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삐익-! 삐익-! 삐익-!
그리고 유건뿐만 아니라 다른 아스날 선수들의 승리를 향한 집념은 끊임없는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에 맞춰 아르테타는 체력이 빠져있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교체를 진행하면서 팀의 활동량을 올리고, 남은 경기 시간을 최대한 소비한다.
외데고르를 카마메니로 바꾸면서 투 볼란치 형태로 바꾸고 캐시는 클락으로 교체하면서 보다 앞선에서 쌩쌩한 체력으로 압박을 미친 듯이 하게 만든다.
더불어 러너까지 스미스로 대체하면서 미드필더에 총 5명을 포진시켜 4-5-1의 형태로 중앙 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아르테타 감독이 가져간 전술 변경이 에디 하우 감독의 용병술을 성공적으로 틀어막고 있습니다!”
“주력이 빠른 윙포워드를 투입하면서 치고 달리거나 역습을 이용해보려 했지만 지금 미드필더 지역에서 공을 소유할 수가 없어서, 아예 전달이 되지 않네요!”
“맞습니다! 아스날은 유건 선수가 페널티킥을 아까 헌납하긴 했지만 후반 40분이 넘어가는 이 순간 지치지 않고 압박하고 있어요!”
“아까 사실 유건 선수가 등을 돌려 공을 차는 것을 안 보고 있었거든요? 힐슨 선수가 막아준 덕분에 더 힘이 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아르테타의 전략을 안준성과 전지우가 정확하게 잡아내면서 해설했다.
실제로 아스날은 미드필더 지역을 지배하면서도 투 볼란치를 후방에 위치시키면서 뉴캐슬이 아예 역습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페널티킥 상황 때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유건의 좌절했던 장면도 다시 한번 언급하며 팬들이 듣는 해설을 실감나게 만든다.
중계 화면에 비치는 그라운드의 상황과 카메라 장면들을 눈으로 보고 있지만, 귀로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기에.
삐이익-!
“으아아아, 이겼다!!”
“힐슨, 네 덕분이다!!”
“너무 침울해하지 말라고, 이놈아!”
결국, 마지막까지 뉴캐슬의 공격을 틀어막은 아스날은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승리를 가져간다.
그와 동시에 잔디에 드러누워 환호성을 내지르는 유건.
나머지 선수단은 힐슨에게 달려가 머리를 두드려주며 승리의 일등 공신을 칭찬한다.
하지만 한 명, 가까이 있던 파티노는 누워있는 유건을 일으켜 어깨를 두드려주며 위로해준다.
이겼으니까 마음 쓰지 말라고.
‘파티노⋯.’
팀원의 상태를 파악하고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남들 모르게 위로해주는 것.
그것도 어쩌면 주장 완장을 찬 사람의 역할 아니겠는가.
상황별로, 사람마다 다르고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유건은 고마움을 느꼈다.
파티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으니까 말이다.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알렉스 둠바, “아스날의 건과 다시 한번 맞붙고 싶었는데, 재회가 성사되어서 기분이 좋다”]
[아스날의 아르테타, “뉴캐슬은 에디 하우 감독 체제하에서 내년에 더 발전될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승리는 힐슨의 엄청난 선방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MOM을 받은 아스날의 딘 힐슨, “항상 페널티킥 상황에서는 막아내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팀의 승리를 견인해오던 건과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작은 역할을 했습니다”]
뉴캐슬 전이 끝나고 나오는 기사에는 유건에게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우선 승리로 끝난 경기였지만 에디 하우에 대한 리스펙을 포함한 깔끔한 인터뷰를 진행한 아르테타와 팀 동료들을 치켜세우며 겸손을 표한 힐슨.
그와 동시에 유로파리그 4강전에서 맞붙게 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둠바가 건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두 번의 만남이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서로였기에, 유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모두 어제 힘든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오느라 고생 많았다. 건은 실수에 대해 너무 마음 쓰지 말고, 힐슨한테 밥이나 한번 사라고.”
“⋯네, 넵! 알겠습니다!”
원정에서 돌아온 다음 날 회복훈련을 진행하기에 앞서 유로파리그에 대비하는 아르테타의 브리핑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 전술을 준비할지와 중요하게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는 선수 등에 대해서 함께 얘기하는 자리.
하지만 오늘 아르테타의 첫 마디는 유건의 실수에 대해 한 번 언급하면서 뉴캐슬전의 실수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힐슨에게 좋은 술과 고기를 대접하라는 말과 함께.
“이번 시즌 공격이나 미드필더 라인에서 주춤하면서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이지만, 수비 라인만은 아직 견고하다.”
“대부분의 경기가 무승부 아니면 한 점 차이로 승리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골을 넣어야만 한다.”
“코치진과 내가 최근 분석해본 결과로 골을 넣기 위해서는 알렉스 둠바라는 친구를 뚫어야만 가능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경기를 본 아르테타와 코치진의 소감.
공통적으로 내뱉는 “괴물이네”라는 한 마디.
그건 모두 수비의 포지션에 있으면서 경기 전체적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한 선수 때문이었다.
빌드업, 피지컬, 대인마크, 패스 등 수많은 장점을 가진 월드 클래스 수비수, 알렉스 둠바 말이다.
심지어 오랜 기간 월드 클래스라고 불려왔던 살리바와 비교해도 일부분 부족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그가 더 뛰어난 면이 있을 정도였다.
“건, 네가 두 번 정도 붙어본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녀석 어떤 놈이야?”
“둠바 저 자식 생각보다⋯.”
브리핑을 진행하던 중 무언가가 떠오른 아르테타가 잠깐 멈칫하더니 유건에게 질문한다.
실제로 맞붙었을 때 둠바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었냐고.
그리고, 어떻게 뚫었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