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나는 바보입니다
“몇몇 선수가 지쳐가는 모습이 보이네요.”
“후반전에 리드를 하고 있다면, 오늘 건과 파티노는 빼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는 시즌 막바지까지 바쁜 일정이 계속될 예정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승점이 단 1점 차이로 따라오고 있는 리버풀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경기를 승리해야만 했던 아스날.
더불어 최근에 붙었던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FA컵 경기, 오늘 세비야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여 뛰고 있는 유로파리그 경기.
그 대회들 모두가 중요했기에 계속해서 베스트 라인업으로 선발 출전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이길 확률이 생기면 아르테타가 번갈아 가며 선수들을 교체해가면서 체력을 보존해줬지만 쉽지는 않았다.
경기를 지켜보며 코치진들이 오늘 교체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는 선수들은 건과 파티노였다.
“북런던 더비를 위해서도 빼는 게 맞지.”
“마틴과 클락에게 준비하라고 전해주게.”
최근에 한 번 로테이션 기회를 받긴 했으나 지속적으로 피로는 누적된 상태였다.
그것을 언급하는 코치진에게 자신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임을 간단한 답변과 함께 알린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그게 가능할 것 같았으니까.
“자신감 가지고 해도 될 것 같아!”
“우리가 미드필더 더 장악 잘하고 있으니까 부담 덜어내고 해!”
“원정 경기를 대비해서 넣을 수 있는 만큼 넣자!”
유로파리그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세비야 FC를 상대로 하고 있는 8강 1차전.
이제 막 시작하는 후반전인데도 불구하고 아스날은 이미 세 골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유건과 파티노가 주고받으며 외치는 말처럼 오늘 경기에서는 미드필더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우세를 점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러너, 쿠아바, 캐시로 이루어진 공격 트리오가 각자 한 골씩 넣으며 3:0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물론 2차전이 남아있었기에 거기서 득점을 멈출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 세비야는 그냥 상대가 안 되는 것 같은데? 리그 경기보다 훨씬 쉽게 득점하네!
- 챔스에서는 떨어졌어도 유로파의 제왕 자리는 유지할 줄 알았는데, 상대가 지금 챔피언스리그 진출팀들 씹어먹고 있는 아스날이라니!
- 오늘은 로테이션 한 번 가동해도 될 것 같긴 한데, 바로 다음 경기 북런던 더비니까!
└ 이거 동의. 솔직히 체력 괜찮은 상태인 베스트 라인업 나오면 이제 어떤 팀이 오더라도 질 것 같다는 느낌보다 이기거나 해볼 만하다는 느낌이 많음
└ 물론 토트넘은 로테이션 가동해도 상대가 안 된다는 전제도 있음
그런 아스날의 경기력을 칭찬하면서 축따튜브에서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탈락 이후 유로파리그 토너먼트 플레이오프를 통해 진출권을 획득한 세비야.
매년 반복해오고 있는 그런 절차를 거쳐 유로파에서 항상 우승 후보로 꼽혔던 그들.
하지만 2차전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결승전이 아닌 오늘 8강 1차전에서 아스날에게 무너지는 모습은 꽤나 생소한 장면이었다.
어쩌면 아스날은 이미 챔피언스리그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었을까.
경기력 면에서는 그곳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말이다.
***
“다음 경기에서는, 무슨 일이 있거나 생기더라도 일단 승리를 위해서 죽어라 뛰자고.”
“아 다음이 토트넘이었구나? 런던 팀에게는 절대 질 수 없지!”
유로파리그 8강 1차전에서 아스날이 기록한 스코어는 4:0.
종료 직전 클락이 한 골을 기록하면서, 2차전에서 5점 이상을 실점하지만 않으면 4강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 회복훈련에서는 곧바로 이어지는 경기인 토트넘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선수단이었다.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기에 북런던 더비에서는 무조건 승리가 필요하니, 이번에도 절대 지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이번 시즌 초에 붙었을 때는 건이 미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할 수 있었는데, 한 번 더 그렇게 돼 볼 생각은 없냐?”
“마음만으로는 이미 토트넘 골대에 세 골 넣었다고, 이것들아!”
이번 시즌 리그 12라운드에서 맞붙었던 토트넘.
유건이 1골 2어시스트로 경기를 지배하면서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었다.
그때와 같은 활약을 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는 팀원들이 있었지만, 유건 본인이라고 해서 알 리가 있겠는가.
다음 경기에서 얼마나 활약할지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저 그만큼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만을 체감하고 있었다.
좋은 활약을 위한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은 이제 충분했으니까.
“누가 됐든, 우리가 이기고 올라갈 뿐이야.”
나름대로 승리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선수단 개개인들을 바라보며, 전체적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바로 캡틴 외데고르였다.
지금처럼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 너무 의식하지 말라는 베테랑의 경험이 담긴 깊은 말을 팀원들에게 전한다.
앞을 가로막는 게 누가 됐든 그저 이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된다고.
‘⋯저런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마틴을 닮는 게.’
최근 유건에게 있었던 변화는 외데고르, 파티노, 살리바와 함께 주장단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들보다 후순위로 주장 완장을 달게 되겠지만 어떻게 보면 나이가 어린 선수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주장단에 속해서 언젠가부터는 완장을 달게 될 캡틴이 될 재목이라는 것을.
그 이후부터 유건은 주장으로서의 발언이나 행동 등에 대해서 같은 팀원들을 참고삼아 배워가고 있었다.
“다들 멈추지 마!”
“이게 오늘 마지막 세션이다!”
어제 바로 경기가 있었기에 오늘은 간단하게 콜니 트레이닝 센터에서 회복훈련이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호흡을 터트리고 난 뒤에 스트레칭하고 마무리되는 세션 일정.
코치진의 휘슬 소리와 함께 아스날 선수단은 각자 정해진 마지막 운동을 하며 피로가 쌓인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다시 시작되는 일정을 버티게 해달라는 마음을 먹으면서 말이다.
삐이익-!
“허억, 허억⋯!”
오늘 훈련의 종료를 알리는 수석 코치 알버트의 휘슬 소리.
그와 함께 잔디에 드러누우면서 거친 호흡을 내뱉는 아스날 선수단.
회복훈련은 보통 간단한 세션과 함께 몸을 풀어주는 게 주목적이긴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북런던 더비, 유로파리그 2차전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기에 순간적인 체력 증진을 위해 몸을 몰아붙인다.
체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가혹하게 한 번 더 괴롭히면서 한계를 늘린다.
“쿠아바, 캐시 가자!”
“흐흐, 오늘이 그날인가!”
잔디에 누워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유건은 오늘 쿠아바, 캐시와 함께 퇴근을 준비한다.
그들의 대화나 모습을 본다면 서로 어떤 것이 약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건의 차량에 탑승해서 함께 집을 향해 출발했으니까.
“저는 건의 팀메이트 쿠아바라고 합니다. 여기 옆에 있는 이 멍청한 친구는 캐시입니다!”
“나는 바보입니다! 헷, 정말 쉽구만!”
그런 만남의 이유는 유건의 축따튜브 촬영이었다.
간만에 올라가는 영상을 위해 쿠아바, 캐시가 흥미가 생겨 함께 촬영해주기로 한 것.
특별한 주제는 없었고 그저 미리 공지하고 구독자들이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을 준비해놓았다.
그리고 팬 여러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국어로 “나는 바보입니다”라고 알려준 유건.
의심없이 연습하면서 따라하기 쉽다는 말을 내뱉는 쿠아바를 축따튜브의 팬들은 귀엽게 바라본다.
- 쿠아바 성격 되게 유쾌하네. 외모만 봤을 때는 좀 사납게 생겼는데!
- 경기장에서 호흡이 잘 맞더니 얘기 나눌 때도 티키타카 잘 되는 느낌이다!
- 쿠아바! 쿠아바! 쿠아바!
- 캐시! 캐시! 캐시!
더불어 채팅창에 그들에 대한 응원을 표현하기 위해 구독자들은 채팅을 빠르게 올리면서 볼 수 없는 대화의 화력을 만든다.
유건때문에 응원을 시작하게 된 아스날의 슈퍼스타들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둘이었으니까.
그들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할 시간이 흔하겠는가.
“유건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미친놈.”
“나대는 놈.”
“⋯⋯⋯.”
가볍게 첫 번째로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긴 해서 이런 질문을 뽑아보았다.
근데 몰랐다.
정말로 단순하게 평소에 자신에게 말하던 것과 똑같이 별튜브 방송에서도 말할 줄은.
그리고 진짜 몰랐다.
쿠아바와 캐시의 솔직한 답변이 이어질수록 그들을 응원하는 한국 개인 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크크, 그때는 진짜 미친놈이었다니까!”
“너도 정상은 아니긴 해, 쿠아바.”
“커피 한 잔 먹으면서 해요.”
한창 유건이 준비한 대로 웃고 떠들던 쿠아바와 캐시.
방송을 잠깐 멈추는 것은 그들 셋 중 한 명이 아니라, 커피와 다과를 준비해 준 여름이었다.
꽤나 선수들, 그들의 가족들과도 친해진 여름은 이제는 그녀가 약속을 제안할 정도였다.
그랬던 덕분에 너무 자연스럽게 준비해줬을 뿐인데 방송이라는 걸 깜빡했다.
- 형수님 축따형 집에 머무르고 계시네?
└ 꽤 오래됐어, 형. 에미레이츠에 매번 오셔서 카메라도 잡아줌
- 언제 봐도 진짜 여신이시네
축따튜브에 그 장면이 나온 이후 여름이 런던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구독자들마저 알게 되었다.
유건과 여름이 현재 같은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물론 알아도 별로 달라질 건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을 뒤로 하고 쿠아바, 캐시와의 별튜브 합동 방송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마치 다가오는 토트넘 경기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갈 것이라 암시하는 것처럼.
***
“오늘 경기에 대해서 내가 따로 할 말은 한 가지밖에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런던은 빨간색이고 여러분을 응원해주러 온 팬들을 위해서라도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서 이겨야 하는 경기가 바로 오늘이다.”
“토트넘과의 경기는 패배의 이유가 용납되지 않는 유일한 더비이니까.”
경기가 치러지는 장소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 아닌 핫스퍼 스타디움.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를 위해 도착한 아스날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아르테타의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크게 세부적인 전술을 얘기하기보다 오늘은 그저 팬들을 위해 승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감독.
이번 경기의 중요성을 선수단은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들으며 저마다 눈에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담기 시작한다.
“개 같은 구너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는 거야?”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는 사이, 구장에 입장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토트넘 홈팬들은 아스날 팬들을 마주치기라도 싫다는 듯이 욕설을 하며 꺼지라고 외친다.
마치 보기 끔찍한 것을 보았다는 표정과 함께.
“쓰읍, 리그 15위 팀의 경기장은 냄새도 불쾌하네.”
반면에 아스날 원정팬들은 여유로웠다.
그저 코에다 손을 가져다 대면서 냄새가 난다는 시늉을 할 뿐이다.
리그 1위의 높고 맑은 공기만 마시다가 하위권의 냄새를 맡으니 불쾌하다고.
그런 손동작과 함께 눈빛을 보낸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확신의 눈빛을.
너희는 항상 우리보다 순위가 낮을 거라는 부분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