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망설이지도 않아?
휘이익-!
‘젠장⋯, 어라? 이게 무슨 행운이야!’
세트피스 상황에서 상대 미드필더가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점프를 방해하고 있었기에, 유건은 몸을 공중으로 띄우지 못하면서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했다.
바로 등 뒤의 맨유 선수가 건드릴 수 없는 유건의 눈앞으로 공이 날아오기 전까지.
공이 가까워지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중앙에 있던 키가 큰 선수들의 머리를 넘어서 빠르게 날아오는 공이 보인다.
뻐엉-!
헤딩골 경험 전무, 헤딩으로 어시스트 경험도 전무한 유건.
그러나 공중에 떠 있는 공을 경합하며 헤딩하는 것은 훈련 세션에서 수백, 아니 수천 번은 연습했다.
그런 그였기에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머리에 맞힐 수준까지는 올라와 있었다.
강하게 내려찍으려 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이마가 아니라 고개를 숙이며 뒤통수에 맞고 살짝 위쪽으로 튀어 오르며 날아가긴 했지만.
“⋯미친, 아씨 제발 닿아라!”
하지만 미숙했으나 포기하지 않은 유건의 헤딩은 행운을 불러왔다.
중앙쪽에 위치하고 있던 골키퍼가 흐르는 공 앞에 운좋게 위치하고 있는 유건을 보자마자 몸을 날렸으나 내려찍을 타이밍에 도약을 유지하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물론 유건의 이마가 아닌 뒤통수에 맞은 공이 공중으로 떠서 골대 안쪽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그런 어처구니없는 헤딩 슈팅을 응시하며 골키퍼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잔디에 쓰러진 상태에서 손을 뻗어보는 것.
퍼엉-!
“막았다, 라인 안 나갔다고!”
“레프리, 저거 라인 넘었어요!”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것 같은 위치에서 공중으로부터 떨어지는 뒤통수 헤딩 슈팅을 손으로 쳐낸다.
튕겨 나온 볼이 다른 선수의 발에 맞고 코너 라인으로 벗어나자, 양팀 선수들은 일제히 심판에게 달려간다.
아스날 선수들은 골대 안으로 이미 들어가서 득점으로 인정되는 게 맞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고.
맨유 선수들은 라인을 넘기 전에 자신들의 수문장이 막아냈다고 각자의 주장을 말하면서 말이다.
삐이익-!
“으아아아!”
심판의 귀로 전해지는 골라인 판독기의 결과.
종이 한 장 차이로 이미 골대 안으로 슈팅이 들어갔다는 말을 전달받는 것과 동시에 휘슬을 불더니, 골라인을 가리킨다.
그와 동시에 코너 플랫으로 달려가면서 포효하는 유건을 따라 뛰기 시작하는 아스날 선수들.
그렇게 올드 트래포드에서 선제골을 기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타악-! 타악-!
“으하하, 뒤통수가 오늘따라 예쁘다 이놈아!”
“어디 가서 헤딩으로 넣었다고 하지는 마라, 건!”
전반 7분, 행운이 섞인 유건의 커리어 사상 첫 헤딩골을 기록하게 되었다.
비록 정확하게 말하면 헤딩골이 아니라 뒤통수 골이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머리로 넣은 것 아니겠는가.
흔하게 볼 수 없는 광경에 아스날 팀원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전광판의 스코어를 0에서 1로 만든 유건의 뒤통수를 때린다.
모발이 없어서 타격감이 좋았던 것은 때리는 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비밀이었다.
***
“지금 너무 급해졌어, 다시 천천히 가보자!”
전반 25분경을 기점으로 잘 풀어나가던 아스날의 원정 경기 플레이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동점골을 뽑아내겠다는 일념으로 달려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재빠른 압박과 악착같은 수비에 흔들리면서, 패스 미스를 몇 번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섯 번 정도 미스가 나온 이후 유건이 다시 한번 공격상황에서 공을 잡는 순간, 다시 공을 길게 뒤로 돌린다.
급할 필요 없으니 천천히 다시 만들어가 보자고 외치면서.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81.13%]
[급해진 경기 상황에서 백패스를 통해 팀의 전체적인 템포를 늦추며 진형을 조율하세요 (1/2)]
머릿속에서 울리는 메세지가 시키는 행동이 아니어도 했다면 거짓말이 조금 섞였겠지만, 발전된 유건의 경기 읽는 눈에도 템포 조절이 필요한 분위기로 보였다.
더불어 2단계 동기화였던 토미스 로시츠키의 동기화율이 가장 높은 수치였던 건 분명하나 지네딘 지단, 메수트 외질의 동기화율도 둘 다 70% 이상 수준.
얼마 전 시작한 데이비드 베컴의 동기화율도 만약 그 정도에 도달한다면 아마 유건은 또 한 번 발전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단계 동기화까지 있는지 아직 그가 모르는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쉽게 쉽게 주면 돼!”
“앞으로 밀어놓지 말고 발밑에 주는 거부터 시작해보자!”
그리고 유건의 그 외침을 이어받아 팀원들에게 그의 의도를 전파하는 것은 바로 파티노.
헤일 엔드에서 나타난 역대급 천재, 월드클래스 원볼란치, 아스날의 핵심이라 불리는 베테랑 미드필더.
경기 상황을 간파하는 특유의 눈으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미드필더 지역을 지배하는 그 선수가 보기에도 지금 이 순간 템포를 늦추는 것이 적절해 보였으니까.
패스를 서로 주고받으며 전달되는 유건의 의도는 선수단에게 전체적으로 퍼져나간다.
공간을 향한 패스가 아니라 팀원들의 발밑으로 정확히 보내자는 말과 함께.
뻐어엉-!
“페레이라, 같이 올라가!”
물론 그게 모든 상황에서 그런 식의 플레이로만 고정시켜 놓자는 말은 아니었다.
템포를 죽이며 점유율을 천천히 늘려간 이후 반복적으로 정확한 패스를 구사하던 아스날에서 나온 롱패스.
수비라인, 미드필더 지역을 오가면서 빌드업 과정에 참여하던 파티노가 적절한 공간을 발견하고 멀리 패스를 보낸다.
오른쪽 날개 지역에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슬금슬금 타며 출발 준비를 하고 있던 캐시에게.
그와 동시에 킥을 차는 순간, 페레이라에게 오버래핑으로 지원해주라는 것을 요청한다.
타다닷-!
‘페레이라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왼쪽 사이드백과 동일선상에 있던 캐시는, 기다리고 있던 롱패스가 오려 하자 미리 준비함으로써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출발을 먼저 했던 덕분에 주력이 밀리는 매치업 상대를 떨쳐내고 달려가서 공을 잡을 수 있었다.
곧바로 빠르게 복귀한 사이드백 때문에 앞쪽으로 치고 가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잡아둘 수밖에 없었지만.
스윽-! 투욱-! 스으으-!
하지만 그건 캐시가 가장 좋아하고 이번 시즌 활약의 기반이 되는 아이솔레이션 상황.
앞에 수비수가 막고 있었지만 자신감 있게 바디페인팅을 시도하는 척하면서 눈 옆으로 힐끗 보이는 페레이라의 위치를 주시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져 등 뒤로 돌아가는 그 순간, 바깥쪽으로 공을 치며 크로스를 하는 척하며 앞쪽으로 찌른다.
이를 악물고 달려와 준 자신의 팀원에게 말이다.
“페레이라!!”
오버래핑하는 페레이라의 앞으로 뛰쳐나오는 것은 사이드백의 빈 공간을 커버하기 위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중앙 수비수.
그런 상황이 오기까지 열심히 달려온 건 유건도 마찬가지였다.
컷백을 받을 수 있는 위치로 달려가면서 자유롭게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의 페레이라를 부르며 양손을 아래쪽으로 뻗는다.
너의 시야에 내가 들어온다면 이쪽으로 공을 보내라는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토옥-!
하지만 페레이라의 선택은 바로 앞으로 다가오는 수비의 키를 넘겨 약간 길게 중앙 지역으로 올리는 크로스.
왼쪽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들어오고 있던 러너를 향한 패스였다.
콰앙-!
“세컨볼!”
그리고 그건 쿠아바와 경합하던 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중앙 수비수가 강한 헤딩으로 클리어한다.
힘을 실어서 크로스를 올린 게 아니다 보니 그의 키마저 넘어가지는 못했다.
클리어를 목적으로 한 강력한 헤딩을 하며 팀원들에게 세컨볼을 따내달라는 외침을 전한다.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 방향을 정확히 정해놓고 헤딩할 수는 없었으니까.
투욱-! 스으윽-!
“⋯크윽, 못 간다!”
그 공이 튕겨 나가는 곳에 있던 것은 명실상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이스 토마스 에르난데스.
수많은 어린 유망주 중에 후안 루이스와 함께 이미 월드 클래스 수준이라고 꼽히는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볼을 그라운드에 닿기 전 발등을 이용해 안쪽으로 터치하며 곧바로 뒤돌아선다.
유건의 뒤쪽에서 흘러나오는 공을 커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카마메니의 측면 압박을 한 번에 벗겨내면서.
등을 지며 키핑할 거라고 예상했던 카마메니는 공을 터치하는 동시에 등을 돌려 쫓아가는 토마스에게 속았고, 유니폼을 잡으며 반칙으로 끊어보려 했으나 그것마저 실패했다.
투욱-! 투욱-! 투욱-!
“달려들지 말고 라인 내려서 유지해!”
레지스타라 불리는 포지션에 위치했지만 보다 공격적으로 플레이하지 않는 것이 주력이나 드리블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탈압박과 숏패스, 롱패스를 가리지 않는 정확도가 훨씬 수준이 높아서 그 자리에 위치한 것일 뿐.
그런 그가 아스날 선수들의 전체 진형을 낮게 유지하며 수비 리딩을 시작하는 파티노를 향해 짧게 공을 치면서 드리블한다.
‘⋯미친놈, 망설이지도 않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미드필더들은 수비를 향해 내려가 있던 상황이었기에 당장 주변에 이대일 패스를 시도할 토마스의 팀원은 없었다.
그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무작정 드리블을 해올지 몰랐던 파티노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끝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다음 드리블이 시작되려 할 때 발을 내민다.
스윽-!
‘다리 사이라고⋯?’
보통 사이드 지역에서 탈압박을 하거나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가속을 붙이는 경우에 드리블러가 노리는 공간.
다리를 내미는 그 타이밍을 기다렸던 건지, 발끝으로 순간적인 터치를 반대쪽 대각선 방향으로 가져가며 파티노의 다리 사이로 공을 넣는다.
달려오는 가속력을 이용해 측면으로 치고 돌파하는 것을 예상했던 그는 속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 와 미친, 순간 스피드를 엄청 올리면서 달려가길래 당연히 치달할 줄 알았는데 저기서 알을 까버리네
- 그 누구도 아닌 파티노를 앞에 두고 진짜 토마스도 미치긴 미쳤다
- 오늘 토마스가 롱패스 뿌릴 때마다 위협적이긴 했음. 아니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클라스는 어디 안 가네
- 그래도 축따형이 더 잘한다! 미친 플레이는 축따형한테서도 많이 봤다!
그리고 그 상황이 중계화면으로 잡히자마자 축따튜브에서는 감탄이 쏟아졌다.
일반적으로 일대일 상황에서 가장 돌파하기 쉬운 방법이 속력을 올리며 치고 달리는 드리블이었으니까.
넓은 미드필더 지역에서 그런 일반적인 선택지가 아닌 다른 것을 택한 토마스의 창의성.
그것에 감탄하면서도 유건을 치켜세우는 것을 잊지 않는 건 축따튜브여서 그렇지 않겠는가.
“다들 움직여!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축따튜브의 채팅이 자신의 드리블로 인해 불타고 있는 그 순간, 파티노마저 뚫어내자마자 길게 앞으로 공을 치며 고개를 들고 움직임을 망설이는 공격수들에게 소리친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으면 어떻게 동점골을 넣겠냐는 의미를 담아서.
그래도 그 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들의 공격진이 각자 움직임을 가져가기 시작한다.
전반 34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이스 토마스 에르난데스가 기회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불태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