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최고의 콤비지
“FA컵 5차전에서 빅매치가 성사되었죠! 바로 이곳,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아스날이 첼시를 상대하게 됩니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는 두 라운드 모두 무승부를 거두었던 양 팀입니다. 과연 오늘 누가 승자가 될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라인업을 살펴보면 누구 하나 FA컵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없어 보이죠? 아스날과 첼시 모두 가동할 수 있는 베스트 라인업으로 출전했습니다!”
브라이튼전을 승리하고도 다음 라운드를 위해 로테이션을 가동하지 못한 아스날.
그 이유는 바로 FA컵 5차전에서 맞붙는 상대가 이번 시즌 유일하게 2무를 기록한 첼시였기 때문이다.
양 팀 모두 버릴 수 없는 대회였기에 다음 리그 경기를 신경 쓰기보다는 베스트 라인업을 가동했다.
- 이번엔 꼭 이겨보자, 축따형!
- 진짜 다 이겼는데 첼시만 못 이겼네
- 가자 축따형! 아스날 카마메니까지 추가됐으니까 이길 수 있을 것 같음
그리고 축따튜브의 구독자들도 이번만큼은 첼시 상대로 승리를 꼭 가져올 거라는 기대감이 충만했다.
클락이 출전할 때도 좋은 경기력으로 첼시를 제외하고는 승리를 이어갔던 유건의 구단에 클락을 밀어내버린 초신성 카마메니가 나타났으니까.
서로 비슷한 스타일이라 함께 서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평가받던 파티노와 카마메니의 조합.
그러나 그들은 그런 팬들의 우려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좋은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토마스 에르난데스에게 개인 실력 면에서는 밀리고 몇 경기 뛰지 않았지만, 조합되었을 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볼란치 조합이라고 평가받기 시작할 정도로 말이다.
투욱-! 스윽-!
‘⋯나이스, 통했다!’
더불어 아스날은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 두 명이 압박을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첫 터치를 순간적인 방향 전환으로 가져가면서 한 명을 제치고, 나머지 선수의 가랑이로 공을 빼내면서 전진하는 유건을.
미친 활약을 이어 나갈수록 동기화율은 점진적으로 빠르게 올랐고, 그것을 통해 더욱 발전된 경기력을 보여준다.
첫 시즌부터 에이스로 자리 잡은 그는 오늘 경기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건, 앞쪽으로 뛰어!”
힐슨이 빌드업을 하지 않고 멀리 차는 골킥을 선택한 상황에서 아스날 선수단은 보통 중앙 지역으로 모이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진영에서 킥을 준비하는 힐슨을 보자마자 내려온 쿠아바.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뒤에서 쫓아오는 수비가 곁눈질로 보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밀집된 이곳에서 키핑하기보다는 바로 자신이 신뢰하는 유건에게 백헤딩으로 전달할 시간은 말이다.
투욱-!
“미안, 줄 곳이 없었어! 다시 템포 올려서 가보자!”
“쿠아바, 미안해!”
그러나 유건이 공을 받는 순간, 아스날 선수들이 아직 출발을 못 한 시점이다 보니 줄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순간적으로 템포를 죽이면서 백패스를 한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주력마저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피지컬이 밀리는 상황에서 계속된 키핑은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렇게 침착함을 유지하며 한 번 쉬면서 템포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좋은 상황을 만들어준 쿠아바에게는 더 좋게 연결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
“어떻게 그런 우연이! 정말 건과는 운명처럼 만났군요.”
“데스티니⋯, 아 운명! 예스, 예스!”
첼시와의 FA컵 5차전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덕분에, 여름은 유건에게 할당된 VIP 좌석에서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경기 전 건에게 소개받은 파티노와 마틴, 살리바의 부인들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문제가 조금 있었던 것이 여름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다는 점인데, 바디랭귀지를 이용해 최대한 대화를 이어 나간다.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휴대폰으로 번역기를 계속 돌리면서.
“어쩜,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더니 정말 당신도 사랑스럽군요!”
“맞아요! 마치 건을 처음 봤을 때처럼 천사 같은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빠른 그녀들의 대화를 모두 알아듣는 것은 아니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러블리, 엔젤이라는 단어를 듣고 이해한 척 웃음을 짓는 게 여름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편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조만간 예정된 파티에서 다시 한번 볼 사람들이었고 유건의 주변인 아닌가.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서 남자친구이자 연인으로서 유건에 대한 평가는 환상적이었다.
그래서 그녀도 그 이상으로 보답하고 싶었지만, 언어의 한계는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건, 건! 그대로 가!”
‘⋯오빠, 가보자!’
경기를 보는지 번역기를 보는지 헷갈릴 정도로 정신이 없어질 때쯤, 옆에서 유건을 부르는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귀로 들려오는 그 소리에 시선을 경기장으로 돌린 순간, 자신의 연인이 패스를 주고받으며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 그렇지! 캐시에게까지!”
“다시 건이다!”
처음 바라보았을 때가 카마의 패스를 다시 리턴으로 돌려주고, 돌아서면서 재차 들어오는 패스를 받으며 달려가는 장면.
그 뒤로 추가적인 압박을 피하기 위해 오른쪽 측면에 있던 캐시에게 전개하고 또 한 번의 리턴 패스를 받는다.
그것으로 또 한 번의 전진을 성공한다.
“쿠아바와 건이 만나면⋯”
“보통 골이 터지지!”
“으하, 으하!”
둘만의 전통춤을 추면서 특유의 이상한 기합 소리를 내던 유건과 쿠아바의 세레머니.
그 과정 중에 목소리가 카메라를 통해 퍼져나갔고, 한 팬이 거기서 착안해 그들만을 위한 응원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름을 제외한 그녀들이 이 노래를 서로 주고받으며 부른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 골대 가까이 다가간 유건이 쿠아바와도 이대일 패스나, 팀플레이를 통한 마무리를 선택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잘생김이 없는 쿠아바, 머리가 없는 건!”
“그들은 최고의 콤비지!”
“으하, 으하!”
참지 못하고 달려 나오는 중앙 수비수를 앞에 둔 유건이 쿠아바에게 패스를 건네주는 그 순간, 그녀들은 응원가의 끝부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유건은 공을 주자마자 수비의 측면으로 돌아 또다시 전진하고 있었고.
그런 환상적인 파트너에게 살짝 공을 내주는 쿠아바였다.
자신이 직접 마무리를 짓기에는 뒤에서 몸을 부딪쳐오는 공격수가 골대와 자신의 사이에 장애물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아, 못 봤다! 걸릴 것 같은데, 젠장! 우선은⋯’
콰앙-!
그러나 그다음 과정에서, 모든 압박을 따돌렸다고 생각했던 유건은 슈팅을 가져가기 직전에 측면에서 잔디를 가르고 있는 첼시의 사이드백이 보였다.
너무 확실한 상황이라고 생각했기에 캐시를 버리고 자신을 마크하기 위해 들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강한 슈팅을 꽂아 넣기 위해 휘둘러지던 자신의 발에 급격히 힘을 빼보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태클을 피하려다 아예 슈팅을 못 하게 될까 봐 급격하게 공의 밑부분을 차면서 공중으로 퍼올린다.
남은 디딤발이 태클에 쓸려가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몸도 살짝 띄웠고 말이다.
삐익-!
“저 미친놈이! 심판, 레드카드 아니냐고!”
“오 제발 안돼, 건이 다치면 안 돼!”
‘⋯⋯오빠!!’
하지만 잔디를 쓸면서 들어온 그 태클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다행인 것은 상대 선수가 다리를 높게 들지 않았기에 공중에 떠 있던 유건은 낙하하는 와중에도 착지자세를 잡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있는 VIP석의 모든 사람들은 일어나서 심판에게 외친다.
어차피 외부로 말소리가 전달되지 않게 차단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 레드카드를 꺼내라고 외치면서.
페널티킥은 당연한 상황이었고 말이다.
***
“이 미친 태클은 레드카드 줘도 되는 거 아닙니까?”
“상대를 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봤습니다. 페널티킥에 옐로카드로 충분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태클이 없었다면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이지 않습니까!”
“옆에 다른 수비수가 있었고, 골대를 골키퍼가 지키고는 있었습니다.”
‘⋯쩝, 아쉽네.’
유건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착지하며 발목을 부여잡으며 잔디에서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고 있는 경기장, 파티노는 빠르게 달려와서 심판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이런 태클은 레드카드가 주어져야 정당한 판정 아니냐고.
하지만 이번에는 쿠아바를 마크하던 중앙 수비수가 이미 유건 쪽으로 발자국을 뗀 상황이었고, 골키퍼도 앞으로 조금씩 나오고 있었으니까 심판의 판정이 정당했다.
그런 부분이 없었다면 레드카드가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말이다.
그 모든 것을 듣던 유건은 마지막까지 단호한 심판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괜찮냐? 뛸 수 있겠어?”
“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쿠아바를 비롯한 캐시 등 여러 팀원들이 달려와 몸 상태를 물어본다.
주변에서 듣기에도 부딪히는 순간 큰 소리가 울려 퍼졌으니까.
“물론, 운이 좋았어.”
그러나 이번에는 유건의 운이 좋았다.
땅에 지지하던 디딤발이 태클에 쓸려가면서 발목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도 몸을 공중으로 미리 띄웠다.
덕분에 심각한 부상을 피했고 곧 찾아올 하프타임 때 두면 괜찮아질 정도의 단순한 타박상에 불과했다.
‘⋯개새끼들, 태클을 그렇게 깊게 넣는단 말이지?’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꽂아 넣어주마!’
하지만 페널티킥을 곧바로 찰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약간 움찔거리는 통증은 정확한 킥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트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 유건을 대신해서 킥을 준비하는 것은 바로 쿠아바.
자신의 이마와 맞대고 있던 공을 잔디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마음속으로 골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고 있던 것과는 상반될 정도로 조심스럽게 말이다.
콰아앙-!
한 발 두 발 내딛던 쿠아바의 세 번째 동작에서 왼발이 뒤쪽에서부터 크게 휘둘러진다.
보기만 해도 공을 터트릴 것만 같은 거대한 체구의 다리가.
그리고, 공에 닿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골대의 오른쪽 방향으로 그물을 찢을 듯이 쏘아져 나간다.
출렁-!
첼시의 주전 골키퍼답게 성공적으로 방향을 예측했다.
점프하는 타이밍도 충분히 좋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쿠아바의 슈팅 속도가 빨랐을 뿐이다.
빈 골대에 강하게 때려 넣는다는 생각으로 가장 자신 있는 코스로 때려버렸으니까.
“으하하, 이놈아! 확실하게 마무리해줄 거라고 예상했다니까!”
“통증 있으면 무리하지 마라. 네 생각보다 우리 팀에 네놈 존재는 크니까.”
“알, 알았다고!”
포효를 내지르며 코너 플랫으로 달려가는 쿠아바의 등 뒤로 안기며 칭찬하는 유건.
하지만 돌아오는 답에 어색함을 느꼈다.
평소 장난기가 가득하고 멍청한 매력이 있었던 쿠아바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진지하게 얘기를 꺼내고 있었으니까.
순간 당황해서 그저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던 유건이었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