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언터처블
“…크윽, 너무 쉽게 올라오잖아! 다들 사이드에서 압박 확실히 해줘!”
이제는 꽤나 당연해진 아스날의 선제골.
최상위팀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먼저 득점을 성공시키는 팀은 없었다.
더군다나 리그 경기 결과가 보여주듯 승리를 가져가는 팀은 단 한팀도 없었고.
오늘도 첫 골을 넣은 것은 아스날이었지만, 살리바가 당황하는 신음을 내뱉는 것처럼 실점 이후 몰아붙이는 브라이튼은 매서웠다.
“좀 더 넓게 플레이하자!”
살리바를 중심으로 하는 수비 라인을 파티노와 카마메니 두명의 볼란치가 보호하는 전술.
한 명의 볼란치를 뒤에 두고 중앙 지역에 미친 활동량의 클락을 풀어놓는 것보다는 더 수비적이고 안정감을 추구하는 전술이었다.
어떻게 보면 유건이 만들어낸 공격력에 득점을 기대하는 전술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중앙으로 오늘 한 번도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던 아스날.
그런 그들을 상대하는 브라이튼의 감독도 최근 연승을 이끈 지도자답게 똑똑하게 대처했다.
한 골을 실점하는 동안 중앙으로 돌파를 한 번도 하지 못해서 전술을 바꿨던 것이다.
“중앙으로 붙여!”
“공격진 머리를 노려라!”
“살리바만 피해서 올려!”
브라이튼이 가져간 전술의 변화는 바로 사이드 플레이.
뚫기 힘든 중앙 지역으로 쳐들어가는 직선적인 움직임을 포기하고 측면 위주로 플레이한다.
공격의 마지막 작업이 훤히 보이는 중앙 지역으로 올리는 크로스였지만, 살리바가 신음을 내뱉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4-3-3에서 4-4-2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장신의 공격수들이 투톱 자리에서 골대를 향해 헤딩을 내려찍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니까.
퍼엉-!
“…바로 클리어해! 다들 집중하라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살리바의 파트너 쪽에서 미스가 나왔다.
라인업 중에서 그나마 약점으로 꼽히는 포지션.
헤딩을 위한 자리 경합 상황에서 공격수에게 밀려 점프를 하지 못했기에 이번 크로스를 마무리 짓는 것은 브라이튼의 공격수.
다행히 골대와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었어서 힐슨이 펀칭으로 쳐내기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안전한 캐칭으로 가져가기에는 또 쉽지 않아서 주변의 팀원들에게 클리어를 요청하면서 말이다.
‘한 골 더 넣고 마무리하면 최상인데…’
그 공은 페레이라가 카마메니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하면서 아스날이 계속해서 소유했고, 또 한 번 공격 과정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파티노 혼자서 해내던 후방 빌드업은 카마메니의 합류로 더 경기장을 넓게 쓰면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결국 공격을 위한 시작점은 동일했다.
심지어 측면 쪽으로 벌려서 아스날의 공격 과정이 시작될 때도 중앙에 있는 유건을 거쳐서 다음 과정으로 연결된다.
이번에도 역시 공을 전달받은 유건은 방금 바라보았던 전광판에 적혀있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휘익-! 투욱-!
“러너!”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실현시키기 위해 패스를 왼쪽 날개인 러너에게 전달한다.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왼쪽 사이드백인 소우사에게는 손짓으로 오버래핑을 시작하라고 외치면서.
타다닷-!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은 유건의 지휘에 따라 팀원들은 훈련 세션을 진행하며 맞추었던 조직적인 움직임을 가져간다.
공격하는 방향이 왼쪽이었으니 전체적인 진형이 옮겨간다.
중앙 지역에 있는 선수들은 조금 더 붙어주며 패스 공간을 창출해주고, 오른쪽 라인 선수들은 중앙 지역으로 들어와 준다.
언제라도 한 번에 반대쪽으로 벌려주는 전환 패스에 맞춰 빠르게 대응해서 따라갈 수 있게 무게 중심을 낮춘 채로 말이다.
투욱-!
‘건에게 바로 주기보다는…’
그렇게 아스날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공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러너의 선택은 건이 아니었다.
이미 그에게서 공을 건네받은 상황이었기에 다시 밀집된 중앙 지역으로 보내기보다는 사이드를 타고 그대로 앞쪽으로 찔러준다.
방금 자신과 왼쪽 라인을 담당하는 소우사가 스쳐 지나가며 오버래핑을 나왔으니까.
투욱-! 투욱-!
‘더 달라붙으라고!’
아스날의 볼 점유가 계속되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브라이튼의 선수들은 수비 지역에 많이 머물고 있었다.
그 말은 쿠아바의 헤딩을 방해할 중앙 수비뿐만 아니라 컷백 패스를 받기 위해 들어오는 미드필더에게도 수비가 붙어있었다는 것.
하지만 소우사는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팀원들에게로 가는 길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했다.
크로스를 바로 올리지 않고 계속해서 골대에 가까워지는 자신에게 수비들이 달려드는 그 타이밍에 생기는 길을.
스으으-!
직접 슈팅까지 가져갈 수 있는 위치까지 파고들자, 자리만 잡고 크로스를 대비하던 브라이튼 선수들의 움직임이 꼬이기 시작했다.
골대 앞에 있는 다른 선수들은 모두 막고 있었으나 소우사를 막을 선수가 한 명은 필요했으니까.
결국 러너를 막고 있던 사이드백의 위치를 중앙 수비수가 커버하고 미드필더 한 명이 그 자리로 커버를 내려온다.
그리고 소우사가 노린 것은 바로 그런 장면이다.
맞춰서 빈 공간으로 움직이고 있는 유건에게 패스를 줄 수 있는 타이밍이었으니 말이다.
티익-!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
그리고 소우사가 건네주는 패스를 기다리고 있으면서 유건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미리 인지해둔 주변 상황에서 어떤 선수에게 마무리를 맡길지 말이다.
자신이 마무리를 하기에는 지금 압박을 측면에서 들어오고 있는 미드필더를 포함하면 3~4명의 선수들이 주변에 있었기에 쉽지 않았다.
오른발을 뒤쪽에서 크게 젖혀 들어오면서 슈팅하는 척 발동작을 가져가다가, 디디고 있던 발을 살짝 공중으로 띄우며 순간적으로 백숏을 사용하며 뒷발로 패스한다.
휘이익-!
유건이 마무리를 할 수 있게 선택권을 넘겨준 사람은 바로 파티노였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왼쪽에 있었기에 백숏으로 공을 내주기도 쉬웠고, 그의 오른발이라면 충분히 골을 넣어줄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파티노 정도라면 자신의 패스가 넘어가는 사이 주변에 둘러싸고 있는 수비수들이 닿지 않는 코스로 감아 찰 수 있었으니까.
“완, 완벽한 과정의 골입니다! 저는 소우사가 패스할 때만 해도 사실 유건 선수가 마무리하는 줄 알았는데요!”
“저기서 한 번 더 내주는 우리 유건 선수가 대단한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뿐만 아니라 팬 여러분들을 오늘 밤도 신나게 해주네요!”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쐐기골을 터트리는 아스날입니다! 하프타임 때 라커룸의 분위기가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까지 승리를 가져가면 프리미어리그 전반기에 무패를 달성하게 되거든요! 인빈서블이 다시 한번 재현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파티노가 엠블럼을 두드리며 원정팬들을 향해 달려가는 사이, 캐스터들은 아스날의 경기력을 한 번 더 칭찬한다.
유건의 공격 포인트도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면서 성적에 대한 칭찬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언급한다.
아직 많은 경기가 남았기에 시기상조라고 볼 수 있겠지만,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에 도전할 수 있지 않겠냐고.
“솔직히 운이었지, 파티노?”
“나가는 줄 알고 쫄았잖아!”
같이 세레머니를 끝내는 과정에서 막바지에 쿠아바는 파티노에게 장난을 건다.
옆에서 슈팅의 코스에 노골이 되는 줄 알았다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함께 참여하는 유건.
그러자 그들보다 먼저 킥오프를 위해 아스날 골대를 향해 복귀하고 있던 파티노는 한심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본다.
“…멍청이들아, 운이겠냐?
어울리지 않는 허세를 잠깐 보여주더니 이내 다시 경기에 집중하는 모범생 모드로 돌아온 파티노였다.
유건, 쿠아바, 캐시 등의 어린 멍청이들에게 물들었다고 볼 수 있는 그의 변화에 주변 팀원들마저 돌아볼 정도.
직접 그 말을 들은 당사자들인 유건과 쿠아바는 벙찐 표정으로 서로 쳐다본다.
‘우리가 혹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냐’라는 눈빛과 함께.
***
“클락, 날뛰어보라고!”
“스미스, 남은 시간 잘 부탁해.”
하프타임 직후에는 크게 변화를 가져가지 않았던 아스날이지만 예정되어 있던 소소한 변화는 있었다.
후반 10분을 기점으로 미드필더 라인에서 변화를 가져가는 아르테타.
원 볼란치 자리에 카마메니를 테스트하는 것과 동시에, 4-3-3의 중앙 지역 양쪽 메짤라 자리에 체력이 넘치는 클락과 스미스를 투입한다.
스미스도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험을 쌓아야 1.5군 정도로 활약이 가능했다.
혹은 파티노까지 은퇴를 한다면 클락과 주전 경쟁을 하게 될 테고 말이다.
“마틴, 가기 전에 스미스 좀 많이 발전시켜주고 가.”
“간다니? 라이센스 따고 나 여기 있을 거야, 이놈아.”
장난식으로 스미스의 실력을 끌어올려달라고 외데고르에게 요청하는 유건.
그러나 반문하는 외데고르의 말처럼 유건이 잘못 말한 게 맞았다.
어디 가지 않고 아스날에서 코치 일을 배우며 유스 선수들을 지도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자코, 자신감 가지고 해!”
“늙은 티 내지 말고 열심히 해, 자코!”
그 와중 이번에는 왼쪽 날개 지역에서 뛰는 자코의 경기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아르테타가 러너 대신 투입시킨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교체를 위해 사이드 라인으로 걸어가는 자코에게 벤치에 앉아서 외치는 선수들.
주장답게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하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외데고르.
그러나 그 뒤에 들려오는 유건의 외침은 응원인지 놀림인지 헷갈리는 말이었다.
‘…나이만 어린 멍청이 놈!’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함께 지내면서 그게 유건의 친밀감 표현인 걸 알았기에 기분이 나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이로 계속 공격하니까 그럴 때마다 지기 싫어 자신도 멍청이라고 돌려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속으로 그 말을 되돌려주면서 경기장으로 나가는 자코였다.
- 진짜 아르테타 용병술이 개쩌는 것 같음. 솔직히 선수단이 더블 스쿼드급은 아닌데, 로테이션 항상 잘 돌려주네
└ 아무래도 팀 경기력이 받쳐주니까 그게 가능한듯. 승리 필요한데 골 안 터지고 있으면 로테 못 돌리지
- 이제 미드필더는 누가 나와도 불안하지는 않은듯? 카마메니가 들어와서 스미스나 클락이 원볼란치 다시 서는 경우가 없을 것 같음
- 이번 시즌 초반만 해도 클락 너무 열심히 뛰어서 좋아했는데, 오늘 카마메니랑 파티노 조합 보니까 안정감 쩔어서 테타형도 이제 고민될듯?
그런 아르테타의 교체 타이밍과 선수들을 보면서 축따튜브는 환호하고 있었다.
물론 유건이 빠르게 교체아웃 될 때는 잠깐 시끄러워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고 빠졌기에 조금은 덜했다.
이어지는 대화 내용은 아스날의 베스트 미드필더 조합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얘기.
4-2-3-1이나 4-3-3을 주로 사용하는 조합에서 사실 두 명은 고정이었다.
유건과 파티노는 선수단에서 언터처블인 존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