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남아있었네?
“카마, 좀 웃으라니까!”
“그래, 이놈아! 인상 그렇게 찌푸리고 있으면 쿠아바만큼 무섭다니까?”
“…크흠, 내가 무섭게 생겼냐?”
“다정하게 생기진 않았지! 그렇지 캐시?”
“다정은 개뿔!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얼굴이라구.”
브라이튼을 상대하기 위한 훈련 세션을 진행하고 있는 콜니 트레이닝 센터.
오전 일정이 끝나고는 모여서 보통 함께 피지컬 트레이너가 개인별로 정해준 식단을 받아 점심을 먹는다.
아직 적응이 완벽하지 않은 카마메니는 동갑내기 친구들인 유건, 쿠아바, 캐시가 앉은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었다.
배정된 식단이 맛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점심시간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데, 매일같이 바로 옆에서 히히덕거리면서 핀잔을 주는 건 유건과 캐시.
친해지기 위한 그들 나름의 노력이었고 가만히 웃으면서 듣고 있던 쿠아바가 갑자기 외모로 공격을 당했을 뿐이다.
“아스날은 항상 식사 시간에 이렇게 분위기가 시끌벅적한 편이야?”
“보스가 오고 나서 좀 바뀐 것도 있고, 요즘에는 더 그런 편이지! 팀 성적이 받쳐주고 경기장에 나가봐서 알겠지만 팬들의 응원이 미쳤잖아.”
“큭큭, 저기 테이블에 있는 저 친구들이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지.”
“…아, 그렇지! 저 친구들은 환영식 때부터 인상 깊었어.”
또 다른 영입생인 자코는 나이가 엇비슷한 베테랑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밝고 활기찬 선수가 많지 않았던 라이프치히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식사 시간 분위기에 물어보았고, 마틴이 정석적인 대답을 돌려준다.
어느 한 곳을 응시하며 웃음을 끊이지 않는 살리바와 파티노가 자코에게 말해준다.
바로 그들의 정체는 훈련 중에는 가장 집중하는 편에 속하는 유건 일행이었다.
“자, 다들 오후에 예정되어 있는 일정들은 다 봤지? 우선 전술 세션을 위해 식사가 끝나면 이동해라.”
“이후에는 오늘 체력 위주로 진행될 테니 보스에게 질문을 많이 하면서 소화시킬 수 있도록!”
식사가 끝나고는 아르테타가 주도하는 브라이튼전 대비 전술에 대해 선수단과 감독, 코치진들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에 틀린 말은 없었다.
그저 서로 다른 각자의 주장을 얘기하고 더 좋은 방향을 찾아가는 시간이었기에, 선수단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으악! 오늘 세션 체력이었어? 나 세트피스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 시간에 대한 생각보다 체력 세션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정체는 바로 쿠아바.
오늘 트레이너가 정해준 식단은 단백질 위주의 고기였는데, 맛있어서 꽤 급하게 먹었었다.
아직 소화가 되지 않은 그의 위장은 아마 체력을 위한 훈련을 진행할 때 고통을 호소하지 않을까.
아르테타가 온 이후로 가장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세션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큭큭, 멍청이! 오늘 보스한테는 네가 다 질문해라!”
“어떻게 된 게 똑똑한 적이 없냐?”
“살리바보다 멍청한 놈…”
그런 쿠아바의 외침을 들으며 선수들은 지나쳐가며 한 마디씩 놀려준다.
뒤통수를 살짝 때리며 전술 세션에서 많은 말을 하라고 응원해주는 외데고르.
혀를 쯧쯧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앞으로 먼저 가버리는 유건, 캐시, 카마메니.
마지막으로는 베테랑 선수들 사이에서 멍청이라고 불리는 살리바보다 항상 멍청한 행동을 하는 쿠아바를 놀리는 파티노까지.
‘오늘은 수비 움직임 위주로 다룬다는데 어떤 걸 질문해야…’
그러나 쿠아바의 귀에는 그런 말들이 크게 들려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소화를 시킬 시간을 벌기 위한 질문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해내야만 했다.
체력 세션이 끝나고 화장실로 곧바로 뛰어가서 토하는 오늘의 선수가 되기 싫었으니까 말이다.
***
“쿠아바, 끝까지 뛰어야지! 발 멈추지 마.”
“건, 발 안 움직여? 니가 제일 많이 뛰어다녀야 하는 포지션이잖아!”
“카마, 자코! 네놈들도 이번에 영입되었다는 사실이 안 뛰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야.”
아스날 구단 사이에서 악명 높은 아르테타의 훈련 세션.
유명해진 끔찍한 훈련 강도는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나이가 창창한 젊은 선수들, 베테랑 선수들, 심지어 이번에 영입된 새로운 선수들.
어느 누구 하나 차이 없이 공평하게 그들을 굴리는 아르테타가 휘슬을 끊임없이 불고 있었으니까.
삐익-! 다다다-!
“…으헉, 보스 제발 그만!”
“으아, 아직 끝날 때 멀었나?”
두 개의 라인을 정해두고 휘슬이 울릴 때마다 반대쪽으로 적절한 속도로 뛰어간다.
스무 번이 다가올 때쯤 유스 선수들의 숨은 가빠져 오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횟수가 쌓여갈수록 1군 선수단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한 번의 휘슬마다 저마다의 곡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삐익-! 다다다-!
“나는 이제 못해, 나를 죽여.”
“점심 먹은 거 다 올라올 것 같아….”
서른 번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한 번의 휘슬마다 한 선수씩은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베스트 라인업으로 꼽히는 선수들마저 말이다.
전술 세션에서 입을 침묵하면서 조용히 하고 있던 쿠아바가 소화되지 않은 속의 불편함을 토로하며 포기를 선언한다.
그 뒤를 이어서 마틴과 페레이라 등 하나둘씩 이어서 나간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은 유건, 파티노, 카마메니, 스미스.
“그만 좀 하라고, 이것들아!”
“나이 생각해 파티노, 그만 나가라니까?”
“미친 스미스야! 눈치 챙기고 빨리 좀 나가!”
휘슬에 맞춰 그들의 다리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옆에 있는 동료가 먼저 아웃되기만을 바랄 뿐.
그들의 공통점은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하는 포지션에 있는 미드필더.
어떻게 보면 이런 활동량을 가진 미드필더가 기반이 되는 팀이었으니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라인업의 포지션 중에서 팀의 경기력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들이라고 볼 수 있었으니까.
삐익-!
“…헉헉, 이 독한 놈들!”
네 명 중에 가장 먼저 포기를 선언하는 것은 파티노.
아무래도 나이가 그중에 제일 많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들려오는 이번 차례의 휘슬에 결국 몸을 뒤로 던지며 잔디에 쓰러진다.
“나는 이번에도 건에게 건다.”
“스미스를 한 번 믿어볼게!”
“스미스는 저번에 건한테 나가떨어졌다니까, 카마로 간다!”
“…네놈들이 건을 훈련에서 막아봐야 정신 차리지, 무조건 건이 이겨!”
항상 마지막 언저리까지 남아있는 유건.
새롭게 영입되었지만 체력이 자신있다고 말했던 만큼 생존해있는 카마메니.
다리가 후들거리는 와중에도 막내의 패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는 스미스.
밖에 먼저 나가떨어진 아스날 선수들은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 간단한 내기를 시작한다.
유건과의 전적에서 패배한 스미스에게는 한두 명만 투표했고, 새로운 뉴페이스인 카마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삐익-!
“이 미친 괴물들아….”
아르테타가 서른아홉 번째로 부는 휘슬.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부여잡고 발을 내딛으려 해보지만 마치 커다란 바위를 잡고 있는 느낌.
스미스가 건과 카마를 향해 괴물들이라고 외치며 나가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건! 건!”
“카마! 카마!”
“이놈들아, 서른다섯 번 못 채운 놈들은 매일 체력훈련 포함될 줄 알아라.”
살아남은 둘에게 투표하고 응원하는 아스날 선수단.
휘슬을 부는 아르테타를 대신해서 수석 코치인 알버트가 그들에게 웃지만 말고 체력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서른다섯 번도 못 한 놈들은 가능할 때까지 세션을 졸업하지 못할 거라고.
삐익-!
‘…이 개자식!’
“어어? 카마 남아있었네? 오십 번까지만 같이 해볼까!”
마흔두 번째 휘슬.
거기까지 도달하자 결국 나가떨어지는 한 사람.
아스날에서 체력 부문의 괴물을 담당하고 있는 유건에게 도전한, 뉴페이스 카마였다.
잔디에 쓰러진 카마메니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땀을 간단하게 닦으며 편안한 표정으로 조금 더 하자는 유건의 얼굴이 괴물 같아 보였기에.
지금 상황에서도 아직 몇 번은 더 반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가 사람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
“프리미어리그가 어느새 반이나 진행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네요! 이번 시즌은 어째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엄청난 활약을 매주 이어나가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박준철 선수보다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유건 선수와 김수영 선수까지!”
“강병훈 선수도 소속팀에서 나올 때마다 나름 잘해주고 있죠! 선수분들이 활약을 해주시다 보니 팬 여러분들께서도 경기를 보는 게 더욱 재밌으실 텐데요.”
“오늘은 다시 한번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아스날의 경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브라이튼이 아스날을 상대로도 연승행진을 이어갈지 궁금해지는 경기죠.”
브라이튼의 홈구장인 아멕스 스타디움.
그곳에 상대 팀의 연승행진을 끊어버리고 리그 테이블의 선두를 지키기 위한 아스날 선수단이 도착했다.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는 한국 방송 채널에서는 캐스터들이 시작 전 흥을 돋우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강팀 간의 또 다른 매치업이 있어 관심이 덜하긴 하겠지만 최고의 시청률을 끌어내는 유건의 경기였다.
더군다나 계속해서 이변을 보여주고 있는 브라이튼과의 매치업이었다.
- 와, 카마메니 오자마자 클락 밀어낸 건가?
- 더 안정적으로 소유하려고 출전시킨 것 같은데, 개싸움 필요할 때는 카마메니랑 클락 조합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축따형을 받쳐주는 선수들이 진짜 너무 든든하다! 공격진도 나쁘지 않고, 유로파 우승 가즈아!
└ 형, 축따형이 눈을 너무 높여놔서 리그 우승 정도까지는 바라자. 몇 년 동안 우리 구너들의 고통을 끝낼 때가 됐어
축따튜브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건 평소가 똑같았는데 주제는 조금 색달랐다.
오늘 스타팅 라인업에는 기존에 파티노와 호흡을 맞춰서 출전하던 클락 대신 지난 경기를 소화한 카마메니의 이름이 적혀있었으니까.
그런 팀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유를 추측해보기도 하며 응원한다.
역시 경기 시작 휘슬이 불리기 직전에는 유건을 응원하는 글로 채팅창이 도배되긴 하지만, 축따튜브는 점점 더 커져 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약간 아스날 경기가 있을 때마다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하나의 팬사이트 형태가 된 것처럼.
“건, 이쪽으로 벌려줘!”
“건, 맨온이야!”
“건, 뒤로 내주고 가!”
그런 변화와 성장이 가능하게 만든 기본적인 전제 조건은 유건의 활약이었다.
경기당 공격포인트 1을 넘게 기록하면서 현재 공격포인트 생산 부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리그를 포함해서 말이다.
만약 유건이 이번 시즌 종료 시점까지 이 정도의 모습을 유지한다면, 합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월드클래스’라 불리는 선수들의 대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