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닿을 수 있다
유건의 선제골 이후,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양 팀 간의 경기는 팽팽하게 유지되었다.
서로 유효슈팅을 한 번씩 추가했을 뿐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점유율은 62:38로 아스날이 우세했지만 뉴캐슬도 날카로운 역습으로 전반전에 좋은 찬스들을 만들었다.
- 크, 전반전 쾌감 있었다. 축따형 프리킥 진짜 리플레이로 봐도 개지리네
- 아니 인사이드로 감아찼는데 마지막에 갑자기 떨어지네. 짧게 끊어 차면 원래 저렇게 되나?
└ 공 윗부분 강하게 때리면서 차서 무회전 아닌데도 가다가 가라앉은듯
- 진짜 페이스가 미쳤다! 평균 공격포인트가 1을 계속 넘고 있는 게 미친 것 같음
하프타임을 맞이한 양팀이 라커룸에서 후반전을 위한 세부 전술을 수정하고 있을 때, 축따튜브에서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 곱씹어보면서 리플레이를 보더라도 유건의 프리킥은 환상적이었으니까.
더군다나 프로 생활에서 첫 번째 직접 프리킥 득점이다 보니 팬들은 또 한 번 유건에게 놀라고 있었다.
활약이 주춤하기는커녕 새로운 무기를 보여주면서 대체 언제 연습했을까 의문을 떠올리게 하면서 말이다.
삐이익-!
“전반전에 양 팀에서 어떤 얘기들을 나눴을지 궁금하네요. 아스날로서도 사실 위협적인 장면이 많긴 했거든요?”
“맞습니다! 유건 선수가 멋진 프리킥으로 한 골 넣긴 했지만, 스코어 자체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를 잡아낸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에디 하우 감독이 팀을 바로 잡았어요!”
시작되는 후반전에서 아르테타는 아직 교체 카드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들이 나오긴 했지만, 점유율은 유지를 하고 있었고 공격도 더 많이 했던 전반전이었기에.
물론 세부적으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통해 역습을 막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전달했고 말이다.
“마틴, 내가 커버할게!”
그 지시 중 하나가 투 볼란치 형태를 많이 벗어나지 말라는 것.
수비형 미드필더를 한 명 쓰든 두 명 쓰든 파티노가 수비적으로 하는 것은 동일했지만, 사실 아르테타의 4-2-3-1은 조금 달랐다.
파트너로 외데고르나 유건이 나올 때는 많이 올라와서 어떻게 보면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두는 형태.
그런 선수들의 진형에서 상황을 보고 한 명은 수비형 미드필더 지역에 지원을 가주라는 아르테타의 지시였다.
그에 따라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는 외데고르가 들을 수 있도록 외치고 후방으로 내려가 커버를 해주는 유건이었다.
“아으, 이게 왜!”
좋은 드리블에 이어 환상적인 패스까지 연결됐으면 좋았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촘촘하게 서 있던 뉴캐슬의 미드필더들이 압박을 통해 공을 빼앗아 갔으니까.
마틴의 턴오버가 나온 상황.
“전반전처럼 쉽게 가진 못할 거야!”
하지만 공격 지역에 머무르던 공격형 미드필더인 유건이 이미 커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바로 역습을 나가는 걸 저지하면서 상대를 도발한다.
골을 노리는 과정에 있어서는 불편해진 부분이 있었지만 수비를 해야 하는 경우 아르테타가 가져간 세부 전술이 먹혀들었다.
‘역시 역습 상황에서 밸런스가 전반보다 낫다. 공격은⋯’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벤치의 아르테타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위협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역습을 일차적으로 저지하려는 의도가 먹혔으니까.
해결해야 하는 남은 부분은 이제 숫자가 부족해진 공격 지역이었다.
“건, 그대로 올라가!”
물론 그곳에서는 특별한 전술이 따로 없었다.
그저 공격형 미드필더의 숫자가 줄어들었더라도, 그 자리에 번갈아 가면서 위치하는 선수가 유건 혹은 외데고르였으니까.
그들에 대한 신뢰감을 수치로 따진다면 100점 이상의 점수를 매겨야 할 정도로 높았다.
이번 시즌 그들의 창의성으로 만들어낸 패스들로 따온 승점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기에.
“감독님, 우려했던 부분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아직 괜찮아 보이는데요?”
“당연하지! 우린 우리 선수들을 믿고 있잖은가.”
자신이 원하는 전술의 변경점을 그대로 믿고 수행해주는 아스날 선수들.
심지어 경기 중 그게 효과가 없을 때라도 우선은 정답인 것처럼 따라주고, 신뢰해준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없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줄 수 있는 것은 신뢰밖에 없었다.
경기에 뛰고 있거나 뛰지 않고 기회를 기다려주는 선수들 모두 믿고 있는 아르테타와 코치진이었다.
그렇게 어느새 정신적, 육체적으로 멋진 한 팀이 되어가고 있는 아스날이었다.
***
‘⋯이건 닿을 수 있다!’
이어지는 후반전에서 뉴캐슬이 성공적으로 공격 과정을 몇 번 만들긴 했지만 철벽같은 살리바의 수비와 힐슨의 선방을 뚫어내지는 못했다.
물론 그것은 공격 작업을 위해 한 명이 덜 투입되는 아스날 선수단도 마찬가지.
그러한 상황에서 뉴캐슬의 왼쪽 사이드백이 공을 잡아놓고 패스길이 막히자 당황하는 타이밍을 노려 빠르게 다가가 다리를 뻗는 유건이었다.
그동안 꾸준하게 연습해온 수비 과정에서 이번 커팅은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투욱-!
“크윽, 이 자식이!”
이번에는 외데고르 대신 유건이 공격형 미드필더 지역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고, 운 좋게 오른쪽 사이드 위치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인 압박에 당황하면서도 등을 지기 위해 사이드백이 몸을 돌려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그의 몸 오른쪽으로 커팅을 위한 유건의 다리가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결국 발로 공을 앞쪽으로 건들면서 살짝 쳐두는 데 성공한다.
퍼억-! 투욱-!
하지만 아직 소유권을 완벽하게 얻어내지는 못한 상황이었기에, 발이 닿는 순간 수비의 몸 측면으로 돌아가 어깨를 집어넣는 유건.
그 과정에서 서로의 몸이 강하게 부딪히면서 신음을 흘리게 하지만 무게중심을 잡아내고 발바닥으로 공을 살짝 앞으로 밀면서 따내는 데 성공한다.
힐끗-!
‘⋯저기로 보내면!’
사이드백을 떨쳐내고 전진하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골문 앞의 상황을 확인한다.
쿠아바가 두 명의 수비보다 뒤쪽에서 공을 기다리고 있는게 보였지만, 유건은 그의 순간 판단력을 믿었다.
중앙 수비수들의 중간으로 크로스를 올릴 자신이 없기도 했기에 골키퍼와 수비 사이의 공간을 노려본다.
쉬이익-!
“쿠아바!”
발에 맞은 공이 원하는 얼리 크로스의 궤적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거리가 있어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팀원의 이름을 외친다.
그러나 텔레파시라도 통한 걸까, 공이 앞쪽으로 날아오며 휘어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앞쪽으로 치고 나가는 쿠아바였다.
‘⋯크윽, 저리 비키라고!’
콰아앙-!
중앙 수비수들 사이의 공간으로 팔을 집어넣고 들어가고 있었기에 무게중심 자체는 잃고 몸은 땅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에디 은케티아가 은퇴하기 직전까지 주문처럼 각인시킨 공격수의 자세를 잃지는 않았기에 시선만은 공을 끝까지 보고 있었다.
덕분에 몸을 앞쪽으로 오히려 던지면서 날아오는 공을 머리로 강하게 내려찍는 쿠아바.
와아아아-!
그와 함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울려 퍼지는 팬들의 우렁찬 함성소리.
거구의 쿠아바가 몸을 던지면서 헤딩했기에 발로 강하게 때리는 것처럼 큰 소리가 났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그 공이 뉴캐슬의 골대를 한 번 더 성공적으로 흔들어낸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 미친!! 방금 크로스 개미쳤다고 축따형!
- 와, 솔직히 이건 쿠아바 오프더볼이 지리긴 했다
- 축따형 압박해서 공 따내자마자 힐끗 보더니 크로스 바로 올려버리네
- 으아아아아! 아스날 계속 1위 가보자고!!
축따튜브의 대화도 함성 소리로 친다면 절대 지지 않았다.
골이 터진 그 순간, 쿠아바와 유건을 외치는 채팅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올라갔으니까.
게다가 소문이라도 난 것인지 한국에 있는 아스날 팬들까지 어느새 다 몰려와서 어시스트를 또 한 번 기록한 에이스에게 환호한다.
‘⋯하반기에 진짜 원정 경기들만 잘 다녀오면, 우승하는 거 아니야?’
‘건은 미쳤어! 내년에 외데고르를 대체하는 것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줄 거야.’
‘보강만 이루어지면 진짜 경쟁할 만하다!’
해외 아스날 팬들의 마음속에서도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사실 우승까지 바란 팬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 팀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고,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목표를 넘어서 생각하고 있었다.
듣기만 해도 기쁜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라는 것을.
‘이제 누구도 반박하지 못해! 우리의 에이스는 건이야!’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팀의 에이스는 유건이라는 생각이었다.
후반전 34분, 뉴캐슬을 상대로 쿠아바의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또 하나의 공격포인트를 추가했다.
이걸로 이번 시즌 기록한 공격포인트는 7골 17어시스트.
리그에서만 6골 16어시스트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른 팀들의 팬들도 이제 유건을 아스날의 에이스라고 의식할 수밖에 없는 기록이었다.
“와, 저 미친놈 날아다니네?”
“이거 다음에 만날 때 막내 사인이라도 받아둬야 하는 거 아니냐?”
“크크, 저게 다 내가 발굴한 거다 이놈들아!”
그렇게 유건이 에이스로 확실히 자리 잡는 그 순간,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지만 올해 좋은 성적으로 리그를 마무리한 용인 FC 구단 사람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한데 모여 아스날과 뉴캐슬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헛웃음을 지으며 벙찐 표정으로 감탄하는 강바람과 TV에 비치는 유건이 자랑스럽다는 듯 주변 사람들에게 사인이라도 받아놓자는 박범호.
마지막으로 허세 섞인 표정과 함께 유건을 자신이 발굴했다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이상찬 감독도 있었다.
“감독님, 오늘 감독님이 쏘는 겁니다! 제가 그때 건이 영입하자고 내기까지 꺼내 들면서 말했던 거 기억하시죠?”
“잘 안되면 저보고 회식 쏘라고 하고 핀잔주면서도 들었잖아요! 잘되면 감독님이 회식 쏘기로 한 거!”
그러나 잘못 걸렸다.
공개 테스트 당시 이상찬 감독에게 유건 영입에 대해 절실하게 어필한 것은 바로 박 팀장.
스카우트 팀 팀장으로서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망하면 송년회 때 돈을 다 내겠다고 홧김에 내질렀던 내기.
그로서도 깜빡하고 있다가 순간 이상찬 감독의 말과 함께 떠올랐던 것이다.
“그, 그건! 그래 내가 쏜다 이 자식들아!”
“대신 내년에는 K리그 1에서도 우리 우승하는 거다, 알겠냐?”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당황하던 이상찬 감독이었으나, 이내 기분을 내기 위해 쏜다고 외친다.
그로서도 승격 첫 시즌에 강등은 고사하고 리그 2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한 건 팀으로서 엄청난 발전이었으니까.
이적시장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는 요즘 상황을 고려해서 이왕 우승에 도전하자고 한 마디 덧붙인다.
“감독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물론 곧바로 박범호의 장난스런 답변이 돌아오긴 했지만.
하지만 그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아쉽게 우승을 놓친 이번 시즌보다 다음 시즌에는 한 단계 더 올라가겠다는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