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129화 (129/208)

129화. 키커 자리 뺏긴다

“⋯크윽, 이 자식들 왜 이렇게 잘해진 거야?”

전반전의 초반 분위기는 아스날이 압도했다.

익숙한 홈구장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패스 플레이는 흘러가는 물결처럼 부드러웠다.

더군다나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번 시즌의 아스날과 처음 맞붙어보는 뉴캐슬.

경기 영상만으로는 당장 지난 시즌 아르테타 부임 전, 손쉽게 이겼던 아스날이 달라졌다는 걸 체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의 경기력을 직접 겪어보면서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확실하게 우리 공은 지키고, 몸 안쪽으로 컨트롤해서 쉽게 뺏기지 말자!”

하지만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시 한번 집중시켜주는 것은 주장인 조 윌록이었다.

이제는 베테랑의 나이로서 뉴캐슬 선수단을 이끌어가고 있는 그가 팀의 멘탈을 케어해 준다.

사소한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그런 게 하나하나 모이면 경기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빠르게 전환하자!”

“무조건 마무리는 짓고 내려와야 돼!”

“뒤에 붙으면 바로 말해줘!”

아스날도 그런 부분은 마찬가지였다.

주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외데고르이긴 했으나 유건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도 적지 않게 외친다.

조금 더 경기를 좋게 풀어나가기 위해서.

“캐시!”

“러너!”

“쿠아바!”

4-2-3-1 포지션의 꼭짓점인 공격형 미드필더의 위치에 서서 공격수들에게 패스를 전달해주는 것은 유건.

미드필더 혹은 수비수들에게서 전달되는 공을 받아 적재적소에 뿌려준다.

콰아앙-!

“나이스 슈팅!”

그렇다고 해서 항상 패스만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마크하는 선수가 한 명도 없다면 망설이지 않고 슈팅을 날린다.

포지션 자체가 항상 상대팀의 골대와 가까이에 있는 위치이기도 했기에 거리상으로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 중거리 슈팅으로 이번 시즌 많은 골을 넣지는 못하고 있지만, 세트피스를 만들어내거나 세컨볼을 위한 기점이 되곤 했다.

퍼엉-!

“아, 아쉽습니다! 이번에도 슈팅이 뉴캐슬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습니다!”

“나쁘지 않은 찬스였거든요. 쿠아바가 완전히 자신에게 수비를 집중시켜놓고 내준 공이었으니까요!”

“유건 선수도 이번 슈팅은 아쉬움을 많이 느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히려 역습을 위한 기점이 되었다.

골키퍼의 펀칭에 멀리까지 튕겨 나온 공을 받아내는 것과 동시에 몸을 돌려 아스날의 골대를 바라보는 뉴캐슬의 미드필더.

그가 다음 동작으로 연결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미 에디 하우가 아스날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해온 세부 전술 중 하나였으니까.

스으으-!

사이드 지역의 윙포워드들을 이용한 역습.

전체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아스날의 사이드백들인 소우사와 페레이라의 위치가 다소 높았다.

그 상황에서 뻗는 다리를 스쳐 지나가는 미드필더의 패스는 빠르게 뻗어나간다.

조금 길어서 나가는 듯했으나, 결국 오른쪽 날개에 위치한 공격수가 끝까지 쫓아가서 잡아낸다.

“압박해! 중앙은 내가 지킨다!”

“소우사, 페레이라! 빨리 커버 들어와야지!”

그러나 아스날에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 수문장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딘 힐슨이 최후의 수호신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존재 윌리엄 살리바 덕분이었다.

사이드에서 파고드는 상대팀의 윙포워드와 가까운 자신의 파트너에게 압박을 요구하며 중앙 지역을 굳건하게 지킨다.

그와 동시에 사이드백 선수들에게 빠르게 복귀하라는 외침을 전달한다.

- 살리바 있을 때랑 없을 때 아스날 경기 비교해보면, 진짜 안정감이 다르다

- 역습 상황에서도 뒤에 살리바 있으면 그냥 막아낼 것 같음

- 축따형이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는게 아마 파티노랑 살리바 때문일 것 같음

그리고 중계방송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축따튜브의 팬들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뉴캐슬이 성공적인 롱패스를 통해 아스날의 위험 지역에 있는 윙포워드에게까지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유가 직전 상황이 세트피스가 아니었었기에 살리바가 수비 지역에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의 수비가 그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말하면 쉽게 믿지 못하겠지만,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번 시즌 유건의 경기를 시청하며 축따튜브의 구독자들은 매번 그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콰앙-!

“내가 지켜낸다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안쪽으로 파고들던 윙포워드가 달려오는 뉴캐슬의 스트라이커에게 패스를 건네주는 그 순간.

갑작스런 가속과 함께 뛰쳐나온 살리바가 어깨를 먼저 안쪽으로 집어넣고 강한 몸싸움에서 승리한다.

거구끼리의 경합이었기에 꽤 큰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서로 부정함 없이 정당하게 어깨를 밀어 넣은 것이다.

와아아아-!

“한 골부터 넣으러 가자!”

성공적으로 따낸 공을 앞선의 파티노에게 전달하는 것과 함께, 양손을 뒤쪽으로 보냈다가 앞으로 휘젓는다.

함께 집중했던 팀원들에게 다시 한번 올라가자는 의도를 담은 손동작과 외침.

멋진 수비를 보여준 그에게 환호하는 팬들의 응원을 들으면서, 아스날은 또 한 번 공격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겁 없이 찾아온 팀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

“건, 한번 직접 노려볼래?”

전반 38분에 찾아온 아스날의 프리킥.

왼발보다는 오른발로 감아 찰 수 있는 각도에서 직접 슈팅까지 가능한 거리였다.

직접 프리킥의 경우 마틴이 대부분을 처리했으나 이번에는 왼발 각도가 좋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가 유건에게 이번 기회에 요청한 것이다.

뉴캐슬로서는 전혀 예상 못 하는 키커가 차는 것이기에 정확하게만 찬다면 대응하지 못할 것이고.

“한 번 기회 주면 다음부터 키커 자리 뺏긴다, 캡틴?”

전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유건이었다.

최근 세트피스 훈련을 많이 하면서 데드볼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붙기도 했고, 평소에 자신 있어 하던 위치였다.

그랬기에 요청하는 외데고르가 민망하지 않게 허세까지 섞어가면서 대답한다.

한 번 차보겠다고.

‘벽을 넘기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이는데⋯.’

항상 발에 맞추는 공의 브랜드 부분이 잘 보이도록 잔디에 내려놓고 두 발자국을 물러나는 유건.

그의 옆에는 외데고르가 시선을 끌어주기 위해 킥을 차는 척 서 있었고, 그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찰지 생각한다.

벽을 넘기는 프리킥이 아닌 오른쪽으로 감겨 들어가는 킥을 하려고 결정짓는다.

뉴캐슬에서 벽을 만들기 위해 자리를 잡는 선수들의 피지컬이 너무 좋은 편이다 보니 애매했다.

“가보자, 준비됐어! 오른쪽으로 찰게.”

“오케이, 내가 먼저 간다?”

“주장! 빨리 가라고.”

그 선수들의 키를 넘기려다가 골대마저 넘겨버리는 홈런이 나올 것 같았기에, 킥의 방향을 다르게 설정한다.

그리고는 외데고르에게 시선을 끌어달라는 요청을 전달한다.

스윽-!

먼저 달려가는 그가 왼발로 감아서 올리는 척하다가 공을 슬쩍 지나간다.

벽을 만든 선수들, 슈팅을 막으려는 골키퍼 모두 외데고르가 키커인 줄 알고 대응했다.

그러나 그가 저렇게 차지 않고 넘어가면 대체 누가 키커란 말인가?

쉬이익-!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자연스레 생기려 할 때쯤, 뒤에서 짧은 도움닫기를 통해 곧바로 킥으로 연결하는 유건.

벽을 피한다는 생각에 정확도보다는 짧게 끊어 차면서 빠른 속도로 휘어지면서 떨어지는 슈팅.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골키퍼가 당황하면서도 원래 자신이 서 있던 위치와는 가까운 곳으로 오고 있었기에 몸을 날린다.

하지만 그 공이 다가올수록 갑자기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움직임을 보여줄지는 몰랐다.

‘이게 왜 갑자기 떨어지는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땅에 거의 닿을 것 같은 높이까지 떨어진 공은 골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투웅-!

바운드되는 지점이 바로 자신에게 닿기 전이라는 것을.

항상 수분을 머금고 있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잔디.

골키퍼의 눈앞에서 공이 바운드가 된다면, 순간적으로 가속력에 의해 속도가 빨라진다.

“골, 골입니다! 유, 유건 선수가 처음으로 프리킥에서 직접 골을 만들어냅니다!”

“뉴캐슬 골키퍼의 바로 앞에서 바운드가 되었기에 순간적으로 더 빠르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빠른 킥이었다 보니 반응이 조금 늦었던 것 같은데요? 중계화면으로 보고 있는 저희조차 속아 넘어갔으니까요!”

그 결과는, 골이었다.

바운드 이후 가속이 붙은 유건의 프리킥 슈팅이 몸을 날리는 골키퍼의 겨드랑이 사이를 지나갔으니까.

안준성과 전지우뿐만 아니라 중계로 보고 있을 팬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키커로 나선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런 기회에서도 항상 패스를 선택했기에.

와아아아-!

“으하하, 이 자식아! 아주 잘 찼다.”

“네놈이 조금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이제 프리킥까지 갖춘 거냐.”

득점의 기쁨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아스날 팬들에게 손을 들고 인사를 한다.

바로 옆에 있던 외데고르의 양팔에 목이 감긴 채로 말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다가온 쿠아바와 캐시도 특유의 장난을 더해 축하를 해준다.

바운드가 되면서 골 자체가 멋있게 들어간 건 사실이고 팀이 앞서나가는 선제 득점이었으니까 말이다.

전반 38분, 아스날의 유건이 선제골을 넣으면서 리드.

아스날 1 VS 0 뉴캐슬 유나이티드.

“오빠 또 골 넣었다고! 진짜 잘 차지 않았어?”

“⋯와, 여름아 좀 비켜봐! 대체 저런 식으로는 어떻게 차시는 거지?”

그리고 유건의 멋진 프리킥이 아스날의 홈구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 그 순간, 여름의 촬영장도 환호가 울려 퍼졌다.

한국 시간으로는 주말 황금 시간에 진행되고 있는 경기였기에 촬영을 잠깐 쉬면서 다 함께 보고 있었던 것.

유건이 한 번 다녀간 이후로 스태프들 대부분이 그의 팬이 되어 거부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여름과 다른 배우의 밴에 있던 휴대용 TV였기에 크기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고, 옹기종기 모여서 보았다.

물론 그 때문에 유건의 골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나여름이 TV를 대부분 가려서 핀잔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다음 월드컵은 진짜 일내는 거 아니야?”

“박준철, 손지민에 유건 선수라니! 거기다 김수영, 이호준 선수들도 있잖아!”

해외 축구를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도 시청하는 시기.

약 2년 뒤에 진행될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무대에 대해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건이라는 새로운 슈퍼스타의 탄생과 함께 공격진, 미드필더진은 진짜 강한 축에 속했으니까.

대한민국 역사상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진짜 이번에는 16강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유건 선수 되게 잘한다.”

“그렇지! 그대로 한 번 더⋯.”

“아스날 진짜 잘한다!”

그러나 월드컵 얘기는 잠시, 곧바로 재개되는 아스날과 뉴캐슬 경기에 다시 한번 집중한다.

약간 현장 자체에서는 편파적으로 유건이 있는 아스날을 응원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누가 그곳에 찾아가서 뭐라고 하기라도 하겠는가.

‘⋯헤헤, 오빠 멋져.’

그 와중 눈이 하트가 되어버린 여름은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중계화면에 잡힌 자신의 남자친구가 유니폼을 정돈하는 모습.

골을 넣음으로써 더 멋져 보이는 유건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더욱 깊어지는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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