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공포심을 심어주고 와라
아스날이 13라운드 이후 리그 1위를 차지한 다음, 이어지는 경기는 새로운 대회였다.
카라바오 컵.
일명 리그컵이라고 불리는 대회이며 4부 리그 이내의 팀들끼리 우승컵을 놓고 다툰다.
그리고 1부리그에 있는 팀들은 대부분 유스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는 목적으로 출전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파티노에 비해서는 확실히 부족하긴 하네, 저 친구가.”
“좋게 봐주자고! 저 친구의 원래 포지션은 원 볼란치가 아니다 보니 이해해줘야 되는 부분도 있지.”
“쉬운 자리가 아니잖아? 아직 어리니까 저렇게 경험을 쌓고 나면 적응할 수도 있어.”
방금 첼시와의 경기를 시작하게 된 아스날도 마찬가지.
리그에서의 좋은 성적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오늘은 11명의 선수 중에서 기존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들은 없었다.
로테이션을 통해 체력을 보충하고 있는 선발 선수들은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4-3-3으로 출전한 팀의 포지션에서 중앙 미드필더를 맡고 있는 유스 선수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쉽지 않은 자리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잘하길 바라는 눈빛과 함께 응원을 한다.
“휴즈 저 친구, 생각보다 훨씬 주력이 빠르네.”
그러던 와중에 경기를 잘 끌고 나가던 아스날 로테이션 멤버들이 역습을 얻어맞았다.
사이드백에서 중앙 미드필더에게 연결되는 패스를, 첼시의 미드필더가 차단했다.
그와 동시에 왼쪽 사이드에서 스타트를 끊으려고 라인을 타는 게리 휴즈.
올림픽 당시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약간의 자만이 섞였던 페널티킥으로 실축을 하며 유건의 군면제를 도와준 선수.
하지만 그 이후로는 겸손한 자세로 계속해서 스스로를 다그치며 로테이션 멤버로서 자리를 굳혀나가고 있었다.
“⋯젠장, 진짜 너무 아깝다! 마세코가 막아내는 줄 알았네.”
그렇게 이번 시즌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휴즈는 오늘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공을 빼앗은 미드필더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측면 움직임으로 오프사이드 라인의 안쪽으로 들어오는 동작을 가져간다.
그리고는 그의 발에서 패스가 시작됨과 동시에 재빠르게 가속하여 전방을 향해 치고나간다.
이미 속도를 붙여서 드리블 치는 휴즈를 사이드백이 뒤늦게 쫓아가지만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너무 완벽한 일대일 상황이라 저 녀석이 각을 좁히기 힘들었을 거야.”
오른발을 이용해 먼 포스트로 감아서 쉽게 득점에 성공하는 휴즈였다.
스탠포드 브릿지에서 펼쳐지는 경기였기에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느낌이 또 달랐다.
게다가 무엇보다 첼시도 로테이션을 가동하고 있었기에 아르테타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말이다.
중요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경기를 승리하고 싶은 것이 감독의 마음이었으니까.
“떨어지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습니다, 감독님.”
그런 아르테타의 표정을 옆에서 살펴보고 있던 알버트 스투이벤버그.
그의 눈빛만 보더라도 지금 이 순간, 전술 변경을 원하고 있다고 파악이 가능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건넴으로써 의도를 전달한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도 충분히 좋은 선수들이잖아요.”
로테이션 멤버로 분류되었다 하더라도 아스날 소속으로 이번 시즌 노력하고 있는 선수들인 건 마찬가지.
그들에게도 스스로를 증명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 각성시켜야만 했다.
한 구단에서 보유할 수 있는 스쿼드의 숫자는 한정적이었기에 불필요한 선수는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 뛰고 있는 선수들을 끝까지 믿어보자며 아르테타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굳이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교체를 가져가지 말자고.
경기를 지더라도 교체하지 말고 선발로 출전한 선수들을 믿고 마지막까지 기대한다.
패배한다면 단지 그뿐이었고, 알버트의 말대로 오히려 빨리 탈락하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카라바오컵을 리그와 병행하기에는 유로파 리그보다 일정이 꽤나 가혹했으니까.
***
“오늘 패배는 여러분의 잘못보다는 중간에 전술을 잘못 변경한 내 실책이 크다.”
그래도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고 패배하는 것은 아르테타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후반전이 흐르던 중 부상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복귀한 클락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 볼란치로 변경.
그리고 체력이 많은 유스 선수들을 추가로 교체하면서 앞서나가는 듯했다.
후반 33분, 코너킥 상황에서 첼시 공격수의 헤딩이 순간적으로 굴절되어 골대의 빈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결국 패배하게 되었지만 아르테타는 선수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 경기 말고도 우리는 잠시 멈칫하게 될 다른 경기들이 많다.”
“내일이 되면 좋지 않은 기억을 털어버리고 다시 힘을 합쳐서 앞으로 나아가자!”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오히려 패배가 자신의 잘못이라며 선수들을 위로한다.
다시 자신도 노력할 테니 여러분도 빨리 패배의 슬픔을 잊어버리라고.
그래야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데 수월하다고 말하면서.
[카라바오컵 32강, 최고의 시즌을 이어나가고 있는 아스날을 무너트린 첼시]
[아스날이 출전한 4개의 대회 중 첫 번째 탈락은 바로 카라바오 컵]
수많은 기사들이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패배와 탈락이라는 단어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으나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만약 16강으로 진출했으면 유스 선수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미 결과는 벌어졌고, 남은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대항전 및 FA컵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스날의 미켈 아르테타, “유스 선수들에게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서였냐고? 아니다. 우리가 자신 있는 최고의 라인업으로 출전시킨 것이다”]
[율리안 클락, “복귀전에서 좋은 모습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더 발전해서 팀의 중요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에서도 아르테타는 선수들을 탓하지 않았다.
주전 선수들을 왜 쓰지 않았냐는 의도를 담은 기자의 질문에, 출전한 선수들이 기죽지 않도록 가용할 수 있는 최고의 스쿼드였다고 답한다.
감독으로서 칭찬받을 만한 인터뷰 스킬이었고 뒤이어 부상에서 복귀한 클락의 겸손한 인터뷰도 이어졌다.
복귀전이다 보니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긴 했지만 그는 유스 선수들과는 클래스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뉴캐슬전을 앞두고 로테이션을 돌린 것에 만족해야지. 유스 친구들 중 몇몇은 내년에는 더 잘하겠는데!
그래서일까, 패배한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팬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우선 로테이션을 가동한 타이밍이 매우 적절했다.
이번 주에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리그 경기의 상대가 뉴캐슬이었으니까.
당장 지난 경기 맨체스터 시티를 잡아낸 팀이었다.
- 너무 좋게만 보지 말고 경기력을 들여다보자. 솔직히 로테이션 멤버들을 다른 강팀이랑 비교하면 너무 부족하긴 해
- 그들은 몇 년 동안 보강했잖아. 이제 우리도 조금씩 더블 스쿼드를 향해 선수들을 영입하겠지
물론 그런 것을 떠나서 이번 경기에 출전한 로테이션, 유스 선수들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긴 했다.
아스날이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스쿼드 뎁스가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팬들의 비교 대상이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등의 최상위권 팀인데 비빌 수 있겠는가.
정상적인 스쿼드로 정비하고 아르테타가 리빌딩을 진행한 지 단 한 시즌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다.
- 건이나 클락 같은 선수를 다시 한번 사 오면 좋겠다. 겨울 이적시장 자금은 꽤 지원받는 것 같긴 하던데!
그럼에도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한두 명의 선수를 더 영입하는 것을 희망하는 팬들이었다.
비교 대상이 건이나 클락이라면 아마 어떤 선수가 오게 되더라도 만족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상대적으로 겨울에는 대부분의 팀들이 팀의 핵심 선수를 팔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에 매물 자체가 많이 없었다.
만약 한 선수를 두고 다른 팀과 경쟁이 붙는다면 금전적인 비드 싸움에 돌입하게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얼마나 매력적인 팀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
[아스날의 미켈 아르테타, “스쿼드의 균형을 위해 적절한 선수들을 영입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
카라바오 컵에서 패배한 이후 며칠 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팬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구너라고 불리는 아스날 팬들을 설레게 한 것은 어제 있었던 아르테타의 인터뷰.
아르센 벵거 시절부터 내려온 아스날 감독들 특유의 전통.
이적 관련 질문에 웃으면서 모른다고 대답할 경우에는, 어떤 선수에 대한 조건 합의를 끝내고 이적 과정을 처리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 과거를 알기에 팬들은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누가 오게 될지 추측하면서.
[아스날의 마틴 외데고르, “당장 앞으로 다가오는 경기들을 모두 결승전으로 생각할 예정입니다”]
선수단을 대표해서 자신들은 패배감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외데고르의 인터뷰도 있었다.
리그와 유럽 대항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방심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팬들에게 다짐한다.
“우습게 볼 팀이 아니다. 맨체스터 시티와 붙었을 때, 운이 따라주었다고 하지만 저들은 미드필더에서 밀리지 않았다.”
“에디 하우 감독이 돌아오게 되면서 아마 다음 시즌에는 더욱 강한 팀이 되겠지.”
“그 전에 우리 팀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고 와라. 여러분의 열정이 상대보다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경기를 준비하는 아스날의 라커룸.
언제나 그랬듯이 아르테타의 브리핑과 함께 경기장에 나가기 전 마음을 다잡는다.
그의 말대로 에디 하우가 부임하긴 했으나, 아직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다.
선수단은 그들보다 더 잘 훈련된 조직력으로 밀어붙여서 승리를 쟁취하길 바라고 있었다.
“윌록, 잘 지냈지? 시티는 잡아줘서 고맙다.”
“오랜만이야! 내가 사랑하는 아스날이지만, 오늘도 우리가 이긴다!”
경기장에 입장하기 전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선수들.
이적한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뉴캐슬의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조 윌록은 헤일 엔드 출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뛰었던 외데고르와 파티노가 그와 인사를 나눈다.
서로 자신이 속한 팀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삐이익-!
뉴캐슬의 선축으로 시작되는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청명하게 울려 퍼진다.
바로 이전 경기를 기준으로 리그 테이블의 1위로 올라간 아스날.
바로 이전 경기에 맨체스터 시티를 1위에서 끌어내린 뉴캐슬.
양팀의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팀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가 하던 대로 하면 이길 수 있다는 건 보스가 증명해주고 있다고!’
이제는 아르테타를 믿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도 수준이 된 유건.
그가 자신의 보스를 위해 좋은 활약을 할 준비를 마치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