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리그에서 1위라고
‘젠장, 팀 자체의 실력 차이가⋯.’
그러나 강병훈의 그런 실력에 대한 자신감과 미친 활약으로 주목을 받겠다는 각오가 사라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축구는 열 한 명이 함께 하는 스포츠였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우스햄튼이 현재로서는 아스날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까.
구단에서 기대주로 떠오르며 주목받는 유망주라고 해도 그 차이를 메꿀만한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초반의 자신감이 좌절로 바뀌면서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건, 여기로!”
“뒤에 맨온이다, 건!”
“건, 컨트롤하고 천천히 해도 돼!”
가슴에 추가적으로 비수를 꽂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유건이 활약하는 장면.
머리로도 인정은 하고 있었다.
올림픽 시절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그가 자신보다 축구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또 비켜주네? 고맙다, 병훈아!”
‘⋯제발 닿아라!’
또 한 번 자신의 압박을 마르세유 턴으로 벗겨내면서 듣기 싫은 말과 함께 옆을 지나치는 유건.
유니폼이라도 잡아끌기 위해 손을 뻗으며 마 속으로 외쳐보지만, 닿지 않았다.
마치 엄청나게 벌어진 서로의 실력과 세계에서 인정받는 정도의 차이처럼.
콰아앙-!
망연자실하게 서있는 두 귀로 들려오는 강력한 슈팅 소리.
미리 몸을 열어놓고 유건의 패스를 다이렉트로 강하게 처리하는 쿠아바의 슈팅이었다.
소리만 들어도 골대 그물을 찢어버릴 듯했다.
와아아아-!
이어지는 팬들의 함성소리.
그러나 강병훈은 절망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홈구장에서 낯선 아스날의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코너 플랫 쪽으로 시선을 돌아보는 순간, 한데 뭉쳐 득점의 기쁨을 즐기고 있는 아스날 선수들이 보였다.
“으아아아!”
차라리 수비적인 위치에 서 있었어야 했다.
자신이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한 번에 공간을 내주게 된 셈이었기에, 애꿎은 잔디를 강하게 두드린다.
목에서 올라오는 비참한 감정과 함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상상했던 미래와는 많이 달라진 지금이었다.
삐이익-!
아스날의 두 번째 골이 터진 이후, 오래 지나지 않아 전반전을 끝내는 휘슬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프타임이 주어지고 선수들이 하나둘씩 들어가는데 강병훈은 멍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남아있었다.
‘대체 왜⋯.’
세계를 뒤흔들며 활약하는 유건과의 비교에서 오는 자괴감.
그렇게 강병훈은 조금씩 우울감을 느끼고, 깊은 절망의 늪으로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질투심과 자존심이라는 알량한 감정에서부터 비롯돼서 말이다.
***
“솔직한 감정을 말하자면 우리는 전반전에 세 골 이상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골대 앞에서 더욱 날카로운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노력해라.”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려면 그래야만 한다.”
두 골을 앞서나가는 아스날의 라커룸이었지만, 아르테타는 선수들에게 분발을 요구한다.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나 골까지 연결시키지 못한 게 사실이니까.
그런 말을 듣는 선수들은 이기고 있는 경기력을 칭찬받지 못해 실망하기보다는 다들 가라앉은 눈빛과 함께 생각에 빠져 있었다.
감독의 말대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최상위권을 두고 다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발전이 필요했다.
“마틴, 아까 패스 못 넣어서 미안해.”
“그럴 수도 있지, 이놈아! 당장 지난 시즌을 생각하면서 발전을 체감하자고.”
“자만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매 경기 결승전으로 생각해보자.”
감독이 골 결정력을 올려달라고 얘기해서일까, 후반전을 위해 경기장에 다시 입장하러 가는 길에서 외데고르에게 말을 걸어오는 캐시.
그러나 그 옆에서 먼저 말을 끊는 것은 유건이었다.
지난 시즌 우리는 이 팀의 주전도 아니었는데,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지 않냐는 말과 함께 위로를 하면서.
거기에 덧붙이는 외데고르의 말은 주변에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선수단에서 주장으로 인정받는 그가 그런 말을 하는데 어떤 어린 선수들이 자만하겠는가.
“자, 다시 가보자!”
“다들 마무리 한 번만 더 신경 쓰면서 해보자!”
“너무 재지는 말자고!”
그리고 후반전이 시작하자 감독의 말을 떠올리면서 서로 힘을 합쳐 지시를 따르기 위해 말을 해준다.
기회가 나면 마무리를 시도하는 것을 잊지 말되, 한 번만 더 정교하게 만들어보자고.
그런 와중에 너무 망설이지는 말자고 말이다.
그렇게 정신을 부여잡는 아스날 선수단들은 사우스햄튼 선수들에게 악마처럼 보였다.
“끊임없이 아스날이 몰아붙입니다! 이제 막 경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전방 압박을 쉬질 않아요.”
“공격 작업에서도 정말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건 선수와 외데고르 선수의 패스 줄기는 정말 예술이네요.”
“아스날 팬분들이 보고 계신다면 행복할 만한 경기력인데요? 정말 엄청납니다!”
사우스햄튼에서 두 명을 교체하며 전술의 변화를 가져갔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그들은 미드필더 지역에서 파티노, 건, 외데고르가 각 지역으로 뿌리는 패스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세 명을 동시에 다 막아야만 그게 가능할 텐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정말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라운드 중에서 양팀간의 경기력 차이가 이렇게 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캐스터들도 오늘 아스날의 환상적인 경기 수준에 대해서 칭찬한다.
- 맨시티 나와! 리버풀 나와! 맨유 나와! 첼시 나와! 누가 오든 축따형이 있다고!
└ 진짜 나와도 돼? 아스날 그렇게 자신 있어?
└ 내가 대신 사과할게, 형들! 제발 이번 시즌만 봐줘라
- 약팀 상대로는 클락보다 외데고르 나오는 게 좋은 것 같은데? 패스 도사 3인방 모이니까 상대팀 공을 못 만짐
└ 강팀 상대로도 나와도 될 듯! 전방 압박은 오히려 더 좋아 보임
축따튜브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한창 아스날 뽕에 취해 있는 구너들은 지난 시즌까지 더 잘했던 팀들을 모두 소환하기도 한다.
미드필더진 구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고 갔는데 나올 만한 얘기들이었다.
클락과 외데고르는 서로 수비와 공격에 강점을 보여주는 상반된 스타일이었으니까.
“이건 직접 마무리해봐!”
‘⋯오케이!’
물론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점유율을 유지하는 아스날 선수들조차 매 순간 패스를 어디로 할지 생각하느라 바빴으니까.
그러던 와중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방향에 있던 외데고르와 자리가 겹친 유건이었지만, 그가 피해주었다.
공을 잡고 반대로 치고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기에 유건을 따라오던 선수는 잠시 멈칫하게 되었다.
그 순간을 이용해, 같은 방향으로 짧게 한 번 더 나아가 다리를 뒤로 젖힌다.
쉬이익-!
공격수 한 명만을 빼고는 전부 수비 지역에서 머물고 있었던 사우스햄튼 선수들.
그래서 유건은 강하게 때리는 것보다 선택한 방향으로 정확하게 감겨 들어가는 슈팅을 날렸다.
그리고 그게, 골대의 오른쪽 하단으로 들어가면서 아스날의 세 번째 골이 터지게 되었다.
파앙-! 파앙-!
“으아아아!!”
언제나 그랬듯이 골을 넣는 것은 환상적인 기분.
원정팬들을 향해 달려가면서 아스날 엠블럼을 두드리고, 보여준다.
재계약을 하며 보여주었던 구단에 대한 애정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고 말하는 듯한 제스처.
코너 플랫에 도달해서는 등을 돌려 백넘버를 손으로 가리킨다.
“건! 건! 건!”
팬들이 연호하는 자신의 이름.
이 세레머니를 할 때마다 유건은 정말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현실이 아닌 꿈에서나 나올법한 환상적인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보통의 경우에 유건이 꿈처럼 생각하는 그 세레머니는, 항상 누군가 깨트린다.
퍼어억-!
“⋯크윽, 이 미친놈아! 내가 덩치 생각하고 뛰어들랬잖아!”
거대한 덩치로 덮쳐드는 쿠아바가 말이다.
매번 말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자신의 동료를 못 말리겠다는 듯이 보며 씨익 웃는 유건.
그리고 그들의 주변으로 다른 팀원들까지 달려온다.
후반전 65분, 사우스햄튼 0 : 3 아스날.
***
[프리미어리그의 이변, 지난 시즌 챔피언인 맨체스터 시티가 첫 패배를 기록하다]
[A매치 기간 중 감독 경질 이후 유벤투스 감독 에디 하우를 재선임한 뉴캐슬이 맨체스터 시티를 잡아내다]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가 끝나고 나서는 이변이 발생했다.
오일머니가 유입된 뉴캐슬 구단을 이끌고 챔피언스리그에 꾸준히 진출했던 에디 하우 감독.
새롭게 도전했던 유벤투스에서 큰 성공을 맛보지 못하고, 복귀했다.
그에게 최적화된 구단이라도 있는 건지 뉴캐슬에 복귀하자마자 강적 맨체스터 시티를 홈에서 2:1로 잡아내 버렸다.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A매치 기간 전과 완전하게 달라진 경기력으로 말이다.
[아스날의 미켈 아르테타, “당연히 기분 좋다. 우리 선수들은 쫓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굳건하게 버티기 위한 긴장감을 즐긴다”]
[아스날의 마틴 외데고르, “선수단 전부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아마 팀의 분위기로 성적을 받는다면 우승한다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덕분에 아스날은 예상치 못하게 프리미어리그에서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간대에 경기가 있었던 터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듣게 된 놀라운 소식이었지만 아르테타와 외데고르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 리그에서는 언제 패배해도 놀랍지는 않았기에 오히려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감독인 아르테타는 선수단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말을.
주장인 외데고르는 환상적인 팀의 분위기를 언급하며 팀원들을 드높인다.
“리, 리그에서 1위라고?”
“뭐야, 시티 졌는데?”
그리고 그들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라커룸으로 돌아온 유건과 다른 선수들은 휴대폰 삼매경.
당연하게 오늘 경기 결과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인 기사에 그게 걸려있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다들 잘못 보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한 명이 정신 차리면서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제서야 눈을 비비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선수들.
정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항상 챔피언스 리그 우승 후보로 꼽히는 맨체스터 시티가 패배했다는 것이.
와아아아-!
“으아아아!!”
“우리가 1위다, 이놈들아!”
그것을 라커룸의 모든 이가 깨닫는 순간, 자연스레 소리를 지르는 아스날 선수단.
대표해서 선수들을 불러모은 살리바가 어깨동무를 요구하며 제자리에서 점프하기 시작한다.
둥그런 원을 그리는 듯이 모여서 말이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으니.’
인터뷰가 끝나고 복귀한 아르테타는 조금 얼떨떨하기는 했다.
언제가 되었든 자신의 목표는 리그에서 선두를 유지하며, 다른 대회들까지 뛰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부터 바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자 이 와중에도 걱정스러운 생각을 빼놓지는 못했다.
아직 힘들고 승리를 따내기 힘든 쉽지 않은 원정 경기가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다들 준비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일 회복 훈련에서 보자고!”
그래서 가만히 앉아있을 여유는 없다.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들과 선수단이 화합되어 경기력을 계속 유지해야만 했다.
선두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