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순위표를 봐라
- 미쳤다, 축따형! 진짜 이번 거는 개미쳤다고!
- 구너 20년차로서 예전 벵거 감독 시절 향수를 잠깐 느꼈습니다.
- 외데고르가 패스 할 때만 해도 '저기서 슈팅 안 때린다고?' 의심하고 축따형이 슈팅 안 할 때 두 번 의심했던 저를 반성합니다.
└ 솔직히 방금은 다 그랬을 거야 형. 거기서 저 두 명 아니었으면 다 슈팅 때렸을 거임
전반 33분, 환상적인 패스플레이와 함께 터진 아스날의 골에 축따튜브는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유건의 팀이 앞서나가게 되는 골이었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어시스트까지 기록한 셈이니까.
리그에서만 그가 13번째 어시스트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지연아! 지금 봤지? 우리 오빠가 또 골을 넣었다니까!”
“…이년아 어휴, 이래서 내가 안 보러 온다고 했지! 선생님 얘좀 말려주세요.”
“잘 어울리는 한 쌍인데 그냥 그러려니 하렴. 여름아 그나저나 저 녀석 다음 주에 내가 말한 유니폼 좀 들고 오라고 전해주려무나.”
“할머니 걱정 마세요! 그거 이미 제가 다 챙겨뒀죠.”
그리고 여름의 집, 아니 사실은 유건 명의로 되어 있는 서울 집에서 그 골 장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
나여름을 비롯한 김지연과 강혜리였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강혜리를 대하는 김지연도 예전부터 이쁨을 받아왔던 후배였기에, 함께하는 자리가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더욱 친밀해지는 시간이 되고 있었으니 서로에게 긍정적인 시간 아니겠는가.
***
투욱-!
“…아, 미안!”
‘아냐, 난 고맙기만 한데!’
토트넘의 감독이 교체와 하프타임 때 전술을 변경하며 아스날에 대항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전방에서부터 활발하게 압박을 해주는 공격진과 유건, 외데고르.
시작부터 보여주었던 적극적인 노력이 이번에는 빛을 발했다.
미드필더에서 쿠아바를 마크하지 않는 쪽의 중앙 수비수로 전달되는 순간 달려든 유건이 그가 멈칫거리는 사이 공을 빼냈으니까.
투욱-!
‘런던은 빨간색이야, 이 자식들아!’
중앙 수비수에게서 공을 빼냈다면 위치가 어디이겠는가.
골대를 지키고 있는 수문장인 골키퍼, 바로 그 앞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일대일의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달려 나오긴 했지만 유건에게 보이는 빈 공간은 많았다.
그중 한 곳으로 패스하듯이 차넣는 유건의 슈팅.
지금의 찬스에서 노골이 될 것이라 예상하는 아스날 팀원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공간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로 잰 듯한 패스를 줄곧 보내주는 유건이었으니까 말이다.
와아아아-!
촤아아-!
들려오는 홈팬들의 환호성과 포효를 들으며 유건은 무릎으로 슬라이딩하며 주먹을 쥔 양팔을 벌린다.
매번 잔디에 걸려서 고꾸라졌었지만 이번에는 멋있게 세레머니를 마무리한다.
북런던 더비에서 보여주었던 전설적인 아스날 선수, 티에리 앙리의 세레머니.
지금 유건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게 근엄한 표정으로 보여주었던 이 세레머니는 지금에 와서도 멋진 세레머니 장면들을 꼽는다면 뽑힐 정도.
“건!! 이 미친 자식아!”
“으하하, 오늘 공격진에서 압박 열심히 할 때부터 알아봤다고!”
“런던은 의심 없이 빨간색이지!”
그런 유건을 뒤에서 달려와 껴안는 아스날 선수들.
살리바와 쿠아바는 그 공간에 있지 않고 팬들에게 달려가 혓바닥을 내밀며 거대한 덩치와 어울리는 괴물 같은 표정을 짓고 포효한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선수들이 모인 곳으로 거세게 덮쳐든다.
후반전 12분, 토트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유건이 오늘의 MOM을 받는 것을 거의 확정 짓는 순간이었기도 하고.
삐이익-!
다시 시작되는 경기의 휘슬.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아스날이 미친 듯이 몰아붙이고, 공을 빼앗긴다면 다시 재빠르게 전방 압박을 통해 다시 탈취해온다.
외데고르와 유건의 간단한 손동작 아래 한 몸으로 뭉쳐서 움직이는 아스날 선수들.
“이건 니가 뛰었어야지!”
“집중 안 할 거야? 아스날 놈들한테 질 거냐고!”
“닥쳐, 네가 잘했으면 한 골 안 먹혔을 거라고!”
그에 반해 토트넘은 내부적으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한 발씩 더 뛰자고 힘을 합쳐 외쳐도 두 골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를 탓한다.
만약 팬들이 이런 선수들의 다투는 모습을 본다면 아마 욕을 하지 않을까.
이기려고 죽도록 뛰기만 해도 모자란 상황인데 말이다.
“캐시!”
그리고 그런 토트넘 선수들의 어긋남은, 또 한 번 아스날에게 기회를 가져다준다.
사이드백 자리에 있는 소우사가 압박이 들어오는 선수를 간단한 동작으로 속이고 길게 드리블해서 한 번에 전진 패스를 넣어준다.
그걸 받은 유건은 미드필더 지역의 모든 선수들을 가로지르고 오른쪽 날개인 캐시에게 롱패스를 보낸다.
‘…후웁! 하앗!’
캐시, 그는 언제나 일대일의 상황에서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해왔듯이 숨을 참고 수비수에게 자신이 치고 나가려는 방향에 대한 혼란을 준다.
자신의 움직임에 수비가 조금이라도 움찔한다면 그 순간에 제쳐버리기 위해서.
항상 찾아오는 그 잠깐의 타이밍을 이용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해왔기에 확신도 있었다.
이번에도 사이드백과의 매치업에서 뚫어 버릴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할 준비가.
투욱-! 타악-!
드리블을 위해서는 보통 짧게 짧게 한 번의 터치를 가져가며 순간적으로 치고 나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디페인팅을 주기 위해 몸을 흔들더니 인사이드를 이용해 안쪽으로 파고드는 척 첫 번째 터치.
그리고는 곧바로 아웃사이드를 이용해서 바깥쪽으로 빠져나간다.
움직임에 속은 사이드백으로서는 안쪽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 캐시가 골대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역시 드리블은 네가 최고다!”
팀원의 드리블에 감탄하며 몸을 빈 공간으로 이동시키며 공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은 쿠아바.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그가 왼발잡이인데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로 슈팅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
캐시의 드리블과 쿠아바의 움직임으로 골대 앞은 급박한 상황.
그런 혼잡함이 있었지만 토트넘의 수비수 입장에서 쿠아바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약발로 슈팅을 때린다고 하더라도 그가 공을 잡는다면 바로 일대일 찬스였으니까.
투욱-!
‘…나이스 미끼다, 쿠아바!’
하지만 지금의 움직임은 약속된 사항이었다.
이렇게 움직이면서 딸려온 아스날 진영에서 바라보는 왼쪽의 중앙 수비수가 있던 곳을 비워주기 위해서.
한 명의 수비를 가속과 추가적인 드리블로 제쳐버리고 캐시가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세부적인 움직임.
남아있는 다른 중앙 수비수는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슈팅을 차는 척 가고 있던 방향으로 한 번 더 치고 간다.
수비와 뒤에 있는 골대의 수문장, 골키퍼마저 속이기 위해서 말이다.
쐐애액-!
그리고는 반 박자 빠르게 골키퍼의 반대 방향으로 슈팅을 날린다.
이미 타이밍이 뺏긴 중앙 수비수가 뻗어내는 발에 닿지 않고 빠르게 날아가는 슈팅.
골키퍼로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캐시가 먼 포스트 쪽으로 감아서 찰 줄 알고 그쪽으로 치우친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기에.
출렁-!
다시 한번 토트넘의 골대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단 한 명의 드리블과 쿠아바의 지원에 세 명, 골키퍼를 포함하면 네 명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유건에게 어시스트를 가져다 바치는 캐시의 미친 득점이었다.
“캐시 선수, 정말 멋진 드리블이었습니다! 저기서 한 번 더 치고 반 박자 빠르게 슈팅으로 가져간다니요.”
“이렇게 되면 또다시 유건 선수의 어시스트죠? 한 번에 전환하는 패스가 좋았습니다!”
“저 정도면 캐시의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지 않을까요? 그만큼 드리블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했습니다.”
사실 캐스터들의 말처럼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곳에서 치고 들어가서 혼자 마무리를 지을 거라는 예상을 못 했으니까.
파앙-! 파앙-!
그러나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환호하는 홈팬들 앞에서 가슴팍의 엠블럼을 두드리며 포효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헤일 엔드에서부터 토트넘을 적대적으로 생각하면서 자라왔던 캐시에게는.
북런던 더비에서 골을 넣는 것을 항상 꿈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캐시! 런던은 무슨 색이냐?”
“이 자식아! 오래전에도, 지금도 여전해.”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득점을 해준 캐시의 머리를 잡기 위해 멀리서부터 달려온 유건.
그의 목을 감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런던이 흰색, 파란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진짜로는 무슨 색이냐고.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유건의 가슴을 툭 치며 말하는 캐시.
“의심 없이 빨간색이지, 이 친구야.”
런던은 빨간색이라고 말이다.
***
[아스날의 유건, 1골 2어시스트로 최고의 활약을 하며 북런던 더비 MOM 선정!]
[미켈 아르테타, “우리 팀의 분위기는 지난 시즌과 완전히 다르다. 어떠한 팀이든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지막 캐시의 골을 어시스트한 것은 사실 반영이 안 됐겠지만, 그 전의 활약으로도 유건은 MOM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미친 패스 플레이로 하나, 활발한 전방 압박으로 하나.
그리고 경기 중에 보여주었던 플레이들은 감탄을 할 만한 장면들이 많았으니까.
아르테타의 인터뷰도 현재 선수단의 경기력에 대해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이번 시즌 우리의 승점이 역대 최고 성적이라고 코치가 말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그러나 순위표를 봐라. 아직 우리는 아스날과 리그 1위를 경쟁하고 있다”]
심지어 아르테타의 스승, 과르디올라도 예의를 표했다.
12라운드까지 11승 1무.
승점 34점으로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그들의 성적은 이미 현재 진행형으로 기록을 써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축구팬들은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A매치 기간 이후에 펼쳐질 경기.
점점 다가오는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날의 매치를 말이다.
“여름아!”
그러나 이번에 대표팀 경기에 차출이 안 됐기에 휴가를 받게 된 유건은 잠깐 그 경기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한국에서는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았으니까.
그 첫 번째로 준비한 것이 바로 이것.
여름의 촬영장에 선물을 사 들고 몰래 방문한 것이다.
다행히 촬영이 쉬는 타이밍이었는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녀를 멀리서 부른다.
“…어어, 오빠? 내일 들어온다고 그랬잖아!”
“보고 싶어서 빨리 왔지! 안녕하세요, 여름이 남자친구입니다! 추우실 텐데, 제가 핫팩이랑 따뜻한 커피를 좀 대량으로 사 왔는데 쉴 때 드시면서 하세요!”
당황하는 여름의 표정이 사랑스러웠는지 애정이 섞인 답변부터 하는 유건.
그러나 주변에 있는 수많은 스태프들을 보며 정신을 차리고 가져온 선물을 전해준다.
겨울철에 야외 촬영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핫팩과 커피, 그리고 목도리를 하나씩 사 왔다.
“으으, 오빠!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그럼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 촬영하구 와, 나 별튜브 방송하면서 잘 기다리고 있을게!”
스태프들이 감사를 표하며 유건의 선물을 하나씩 수령해 가는 사이, 조용한 목소리로 유건을 다그치는 여름.
공개적인 표현에 볼은 붉어져 있었지만 표정만은 행복했다.
쪼옥-!
그런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는, 경기에서 전방 압박을 나갈 때처럼 빠른 속도로 타고 왔던 자동차로 도망친다.
순간 부끄러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