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벵거 볼
- 다음 경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겨야 돼. 스퍼스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라고!
- 솔직히 이번 시즌에는 더비라고 하기도 민망할 텐데! 쟤네는 12위고, 우리는 1위잖아
- 우승컵이 하나도 없는 토트넘 따위 건이랑 쿠아바가 박살 내버릴 게 분명해
- 캐시와 러너를 막을 수나 있을지 궁금할 정도라니까? 몇 골이나 넣을지에 대해서 추측해보자구
취리히 전이 끝난 이후 예정되어 있는 것은 바로 북런던 더비, 토트넘과의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경기였다.
챔피언스 리그를 두고 다투는 4위 이내 상위권 팀들과의 경기 이상으로 아스날 선수단과 팬들에게는 중요한 경기.
그들에게는 토트넘이라는 구단의 모든 것이 싫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경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해외 팬들의 댓글도 살벌하고 무조건적인 승리를 바랐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더비의 패배를 덮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북런던 더비에서 뛴다는 걸 표현해보라고? 미친 전쟁이지.”
“거기서 패배하면 너 그날 집에 못 돌아간다, 이놈아.”
“토트넘한테 지면 넌 죽을 줄 알아라, 건.”
실제로 뛰어본 적이 없는 유건이 페레이라와 클락을 양쪽 어깨에 끼고 베테랑 선수들에게 질문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하더니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외데고르.
장난스레 놀리지만 북런던 더비를 생각하는 순간 눈에 힘이 들어가는 살리바.
그 옆에서 괜한 소리와 함께 유건의 등을 치는 파티노도 있었다.
“그 경기만큼은 무조건 이긴다.”
다음으로 내뱉는 세 선수의 말은 모처럼 입이 맞았었다.
모두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이번 시즌 선수단에 합류한 어린 친구들에게 알려주었었다.
토트넘과의 대결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을 말이다.
“맨체스터 시티를 이기기에 앞서, 우리는 오늘 경기에서 승리를 통해 기세를 올릴 예정이다.”
“에미레이츠에서 여러분의 열정을 팬들 앞에 보여주어라.”
“기회가 나면 때리고, 다리가 풀려 쓰러질 때까지 뛰어라.”
내일 펼쳐지는 북런던 더비를 위한 아르테타의 연설.
평소에는 창의력 있는 예시들과 함께 선수들에게 참신함을 보여주었다면 오늘은 브리핑 시간을 그저 확고한 말로 가득 채웠다.
팬들에게 보답해야 하는 프로 선수의 자세를 설명하면서 말이다.
‘…나도 얼마 전에 약속을 많이 했다고!’
풀럼전 이후 방문했던 팬들의 집.
열 번의 방문 중에서 반 이상의 팬들이 토트넘전 승리를 꼭 부탁한다고 말했고, 유건도 약속했다.
북런던 더비만큼은 자신이 골이든 어시스트든 기록해서 꼭 팀에 기여하겠다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선수단도 질 생각이 없다고 덧붙이면서.
***
“예전 토트넘의 순위를 생각한다면 팬들은 그때가 그리울 것 같은데요?”
“당시 해리 케인과 파트너를 이뤘던 우리나라의 레전드 손흥인 선수가 있었고, 손케 듀오가 인기를 되게 많이 끌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둘 모두 레전드적인 활약을 하고 은퇴를 했거든요! 물론 그 뒤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토트넘이긴 하죠?”
“아무래도 두 명의 월드 클래스가 한 번에 나갔으니까요. 아무튼 오늘 북런던 더비에서 과연 어느 팀이 이길지, 지금부터 지켜보시죠!”
캐스터들의 해설과 함께 중계 방송이 시작되었다.
아르테타가 심장병이 재발하기 전까지 토트넘도 강팀에 속했었다.
손케 듀오라는 월드 클래스 공격수들이 있고, 그들이 거의 매 경기 멱살을 잡고 승리를 끌어올리듯이 이겨왔었다.
덕분에 그들이 나가고 난 이후 내리막도 빨랐다.
그라니트 쟈카와 토마스 파티가 은퇴한 이후 오랫동안 상위권을 유지했던 아스날과는 대비되게 말이다.
“…크윽! 주심, 이거 반칙 아닙니까?”
“계속 플레이!”
토트넘의 선축으로 시작되는 경기는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양 팀은 초반부터 몸을 사리거나 대충할 생각이 없었다.
적과 크게 부딪혀서 부상을 입더라도 승리하고 싶어 하는 욕망들이 경기장에는 득실거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확실한 반칙이 아닌 이상 오늘 휘슬을 아끼는 주심이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갈수록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촤아악-! 퍼억-!
“크아악!”
그리고 그 불안감은,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아스날에게 가져다 주었다.
유건과 파티노가 각자 마음껏 공격 작업과 빌드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이유이자 존재.
바로 율리안 클락이 볼 경합 상황에서 상대 선수의 깊은 태클에 발목이 돌아간 것.
퍼억-!
“개자식아! 일부러 했지, 이 새끼야!”
“증거 있어?”
자신이 보기에는 확실하게 발목을 노리고 덮쳐드는 태클이라고 생각해, 그 선수의 몸을 밀치며 화를 내는 파티노였다.
주심에게만 구두로 어필만 했다면 좋았겠지만 흥분한 상황이었기에 참을 수 없었다.
팀원이 그라운드에 누워 발목을 잡고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결과 태클한 선수와 똑같이 옐로 카드 한 장을 받고 나서야 흥분을 가라앉힌다.
클락이 빠질 이 상황에서 자신마저 나간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경기였기에.
삐익-!
“클락, 거기서 지켜봐라. 오늘은 너를 위해 이긴다.”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클락에게 각오와 함께 말을 거는 것은 외데고르였다.
너를 부상시킨 저놈들을 압도적으로 이겨 버리겠다는 눈빛을 전달하면서.
“건, 마음껏 전진해라! 뒤는 파티노와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파티노에게 잠깐 말을 하더니, 유건을 불러 큰소리로 외친다.
오늘만큼은 내려올 생각하지 말고 상대 골대에 공을 때려 박을 생각만 하라고.
그 외침에 대한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잘 전달되었다.
‘…개새끼들, 더럽게 축구 하네.’
충분히 상대 선수가 부상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깊숙하게 태클을 넣는 악의적인 행동.
그 상황이 이미 유건의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했으니까 말이다.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더럽게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잘못된 것 아니겠냐고.
직접 그들에게 패배를 안겨주면서 말이다.
***
“건, 왼쪽 사이드 빈다!”
“안쪽으로 찔러줘!”
“이대일 쳐봐!”
그런 마음으로 경기를 뛰는 유건의 발끝에서 나가는 패스는 경기장 전체를 지배했다.
순간적으로 러너가 빈 공간으로 파고들면서 달려가는 왼쪽으로 전환하거나.
넓게 벌려서 서 있던 캐시가 유건 쪽으로 오며 겹치는 듯하다가 그들의 발밑에 있는 공을 들고 반대편으로 달려가거나.
손짓하며 리턴 패스를 내줄 쿠아바를 이용해서 한 번 더 전진하거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모두 적절한 결정과 함께 반복적으로 유효슈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자식을 막아!”
“건이 핵심이다!”
아스날을 상대하는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토트넘도 유건에게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위협적인 패스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 아르테타가 원하는 세부적인 전술 변경이 이루어진다.
이미 외데고르를 통해 팀원들에게 전달해두었기에 그가 움직이는 타이밍을 보고 다들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파티노,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면 되는 거지?”
“딱 좋아! 소우사, 페레이라랑 동일선상까지는 올려줘!”
중앙 수비수들만을 내버려 두고 다들 조금씩 진형을 올린다.
포지션 자체로만 놓고 봤을 때는 두 명의 수비만을 다섯 명의 미드필더와 세 명의 공격수가 위치한다.
상대적으로 사이드 지역보다는 볼 점유에 중점을 두고 오버래핑은 번갈아서 나가는 소우사와 페레이라의 위치였다.
뒤로 빠지는 공만 차단해주거나 커버해준다면 앞에서는 공격력을 최고조로 올리는 아스날의 진형이 있었으니까.
유건과 외데고르라는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러너, 쿠아바, 캐시와 함께 공격을 책임진다.
“이번에는 오른, 아니 왼쪽으로 전환가자!”
“더 움직여! 마틴, 조금만 돌리자!”
“급할 필요 없으니까 천천히 해! 기회 나면 때려도 돼!”
그리고 그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신기한 점은 서로가 원하는 게 거의 엇비슷했다는 점이다.
패스의 공격 방향을 설정하는 선수들끼리 각자 노리는 공격 방향이 동일하다는 것.
전술을 생각한 아르테타로서도 상상만 했지, 정확하게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말은 눈빛만 보더라도 유건과 외데고르의 호흡이 맞아들어간다는 이야기였기에.
투욱-!
“쿠아바! D로 간다!”
‘…마틴, 알고 있지?’
캐시가 슬쩍 바디페인팅을 주고 외데고르에게 패스.
그리고 그걸 다이렉트로 건네받은 유건은 자신의 앞에 있는 쿠아바에게 공을 건네고, 미드필더를 돌아 뛰며 전진한다.
자신이 바라는 움직임을 캡틴이 가져가 주길 바라면서.
투욱-!
헤타페 CF 시절, 세 가지 간단한 약속으로 좋은 조합을 보여주었던 유건과 쿠아바.
아스날에 와서 몇 가지가 추가되었는데 그건 다른 선수들과 함께하는 플레이였다.
D라는 신호의 의미는 바로 삼각 패스.
평소처럼 유건에게 리턴 패스를 주는 게 아니라 뛰어들어 오는 선수에게 주는 작전이었다.
“좋은 패스!”
‘…그렇지!’
패스를 주자마자 오른쪽으로 뛰어가는 유건.
당연히 그의 슈팅을 의식해서 수비가 달려 나왔고, 외데고르는 교차해서 왼쪽으로 전진한다.
토트넘이 비디오에서 보았던 것은 이런 상황에서 항상 유건이 공을 잡는 영상.
일차적으로는 그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 기회에는 만족스럽게 외치는 외데고르가 공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스으으-!
“마무리해줘!”
사실 이 삼각패스의 마무리는 공을 받은 선수가 곧바로 슈팅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데고르의 창조성은 다른 길을 발견했다.
상대 선수를 끌어내기 위해 오른쪽으로 달려간 유건.
그가 중앙 수비와 라인을 맞추며 심호흡을 내뱉는 걸 보았기에.
강하게 슈팅을 차려는 척 다리를 크게 뒤로 들었다가 공에 닿기 직전 방향을 꺾어 패스를 선택한다.
투욱-!
그 패스를 외데고르가 건네고, 유건이 받는 순간 둘은 같은 미래를 그렸다.
공을 주자마자 재차 골대 앞으로 전진하는 외데고르와 슈팅을 차지 않고 다시 한번 패스를 선택하는 유건.
최종적으로 공을 건네받은 유건의 슈팅을 의식한 중앙 수비수가 그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리를 뗀다.
그 순간, 그의 다리 사이로 굴러가는 공.
스으으-!
외데고르의 슈팅을 위해 보내는 유건의 파이널 패스였다.
서로 꽤 좋은 기회에서 골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더 확실한 찬스로 골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같은 그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
마지막 슈팅조차 그저 골대 안으로 향하는 패스 같았다.
외데고르는 강하게 때리지 않고 골키퍼가 닿지 않는 빈 공간으로 살짝 굴릴 뿐이었으니까.
그와 함께 에미레이츠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울리는 함성.
리버풀 전에서 골을 넣었던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큰 소리로 팬들은 화답하고 있었다.
“벵거 볼!!”
아름다운 패스플레이를 하는 아스날을 만들었던 아르센 벵거.
“경기가 지더라도 단 5분간의 아름다운 순간을 보고 싶다”라는 낭만적인 말과 함께 그런 플레이를 만들어낸 아스날의 감독.
그의 유산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플레이를 하는 지금의 선수단을 보며 한 팬이 외친다.
나는 지금 그때의 그 낭만을 보았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