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122화 (122/208)

122화. 더 많은 시간

- 축따형! 재계약 기념으로 오늘도 이겨버리자!

- 근데 인터뷰 스킬 진짜 미쳤음. 내가 만약 구너였으면 좋아서 기절할 정도였을 것 같음

└ 구너입니다. 어제 나온 기사 보고 입고 있던 팬티 바로 갈아입었습니다

- 축따형 진짜 낭만도 있네. 아니 근데, 솔직히 지금 아스날 성적만 놓고 보면 다른 곳 갈 필요가 있나 싶음

- 만약 아스날이 갑자기 하락세 와서 챔피언스 리그 진출 못 해도 축따형 마음고생 안 하면 좋겠네

└ 타팀 팬이지만 지금 아스날 미친 것 같습니다. 리버풀 이긴 것처럼 맨시티나 레알이랑 붙어도 막상막하일듯?

다음날,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인터뷰가 나온 이후 축따튜브의 채팅창에는 마치 경기를 하고 있을 때와 같이 활발해졌다.

그만큼 유건의 인터뷰는 좋은 의미로 대단했으니까.

구단에 대한 애정과 앞으로의 포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기에.

[이상찬 감독님 : 인마, 용인 FC에서 평생 있는다는 얘기는 안 하더니!]

[박 팀장님 : 감독님, 메세지로 하면 그거 진짜 타박하는 걸로 들리는데요?]

[박범호 선배 : 막내 이놈! 이번에 좀 멋있는데? 리그 우승까지 열심히 해라]

지인들에게서 오는 연락이 끊임없이 쏟아져서 휴대폰에는 불이 날 정도였다.

용인 FC에서 이적을 했어도 아직 단체 메세지방은 대화를 하다가 잠시 멈춰졌었는데, 인터뷰를 계기로 다시 한번 활발해졌다.

그리운 이름들이 보내는 메세지는 유건이 잠든 사이에 수없이 쌓이고 있었다.

[강혜리 할머님 : 건아, 보기 좋구나. 내가 요즘 주변인들한테 너 유니폼좀 받아달라고 얼마나 부탁받고 있는지 알고는 있냐?]

여름과 아직까지 할머니와 손녀처럼 지내는 강혜리도 꾸준하게 유건과도 연락을 하고 있었다.

유건과 여름 모두 사정은 달랐지만 부모님이 없는 상황.

그랬기에 강혜리는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었다.

혹시 모르지만 차후 둘이 결혼을 한다면 주례를 맡을 사람은 아마 그녀가 되지 않을까.

[여름이 : 오빠, 미친 거 아니야? 인터뷰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여름이 : 지금 내 주변에 난리 났다고!]

[여름이 : 이러면 더 보고 싶잖아! 잘 자구 일어나서 연락해, 사랑해 오빠]

마지막은 유건의 휴대폰에서 유일하게 이름으로만 저장되어 있지 않은 나여름이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연락에 남자친구가 자랑스러운 마음에 급하게 메세지를 보냈던 그녀.

이내 유건이 자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메세지를 남겨놓는다.

서로 자주 하는 말은 아니지만, 가끔 하는 애정 표현과 함께 말이다.

***

“오늘 새벽부터 유건 선수가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했던 인터뷰가 화제가 됐는데요!”

“아르테타 감독으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엄청난 애정을 보여주면서 바로 사인했으니까요!”

“정말 저희 대한민국의 선수지만 멋이 있고 낭만이 있는 선수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안준성 캐스터 아직 축따튜브 구독도 안 하셨습니까? 실망입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시작되는 유로파 조별리그 5차전을 위해 중계를 맡은 안준성과 전지우.

그들도 이미 화제가 되고 있는 유건의 인터뷰를 보고 감탄했다.

어린 나이의 선수가 이렇게 구단과 팬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터뷰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사실 이미 축따튜브를 구독하며 유건을 응원하고 있었던 전지우가 안준성을 채찍질할 정도였다.

축구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면 구독해야 된다면서 말이다.

삐이익-!

경기 일정이 빠듯했지만, 이번에도 베스트 라인업을 가동하는 아스날이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세 경기를 선발로 출전하는 선수들.

체력적으로 힘이 들 수밖에 없는 일정인 건 당연했지만, 선택을 내리는 아르테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다음 리그 경기가 하위권과의 경기였기에 로테이션을 가동하는 게 최선.

그리고 이번에 이겨야만 마지막 조별 예선 경기에서 풀 로테이션을 가동해도 1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모두 집중해!”

“패스 확실하게 하라고!”

이번 시즌 맞붙었던 팀들 중 두 팀 정도를 빼면 사실 모두 아스날이 점유율을 리드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또다시 리드당하는 상황에 놓였다.

연속 세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의 몸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중앙에서 유건과 파티노가 팀원들에게 외치며 집중을 요구한다.

“건, 사이드 위주로 플레이해라! 오늘 중앙에서 소유권 유지를 못 하고 있다.”

반대편에서 스로인 상황이 주어지자마자, 유건을 호출하며 전술 지시를 하는 것은 아르테타.

중앙에 많은 미드필더 숫자를 둔 PSV에게 계속 그 지역에서 공을 빼앗기고 있었으니까.

컨디션이 좋았다면 유건이나 파티노가 그 압박을 개인기나 패스를 통해 빠져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체력이 방전된 것인지 강한 집중마크에 고전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왼쪽, 오른쪽 측면으로 공을 전개시키라며 대책을 제시해준다.

“파티노, 사이드 위주로 가자!”

전반 30분 동안 6:4로 점유가 밀렸던 아스날.

아르테타의 세부적인 전술 변경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체력이 방전된 유건과 파티노였다.

직접 공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평소보다 빠른 패스를 통해 사이드로 벌렸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태클도 평소보다 더 많이 당했지만 말이다.

“캐시!!”

“미안, 조금 길었다 소우사!”

그리고 그 이후, 다시 아스날이 자랑하는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중앙이 아닌 사이드 지역까지 두 명, 세명이 한 사람을 마크하는 건 PSV로도 리스크가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아스날의 사이드 지역에 있는 선수들은 한 명의 압박쯤은 뚫지는 못하더라도 빼앗기지 않을 실력이 충분히 되는 선수들이었다.

쉬이익-!

콰아앙-!

심지어 연속적으로 유효슈팅을 기록하기도 했다.

유건이 내준 공을 파티노가 바로 왼쪽으로 길게 벌린 공을 러너가 잡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감아 차는 슈팅을.

골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고 달리는 쿠아바에게 찌르는 유건의 패스.

그것을 바로 강한 슈팅으로 연결하는 찬스를 연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아스날이었다.

“나는 우리가 후반전에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건을 대신해서 마틴이 들어갈 예정이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어느새 끝난 전반전 이후 하프타임에서 아르테타는 유건을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밝힌다.

지난 경기까지 보여주었던 미친 모습들이 오늘은 반도 못 나오고 있었으니까.

‘⋯데이터 동기화율이 깎이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유건도 알고 있었다.

활발하게 공간을 찾아 움직이면서 패스를 받은 뒤, 재빠르게 해결하거나 다른 공간으로 돌려주는 자신의 플레이.

그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오늘이었으니까.

머릿속의 메세지가 정해주는 하루의 숙제를 끝마치지 못해서 데이터 동기화율이 내려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팀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72.31%]

[마르세유 턴으로 상대의 압박을 벗어나세요 (2/3)]

[토마스 로시츠키의 데이터 동기화율 76.34%]

[반 박자 빠른 슈팅으로 상대팀 골키퍼를 뚫어내세요 (0/1)]

[메수트 외질의 데이터 동기화율 59.11%]

[팀원이 다이렉트 슈팅을 가져갈 수 있는 패스를 보내세요 (1/3)]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반대로 동기화율이 떨어지는 것.

우연한 계기로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경험해보지 못해 막연하게 두려움만 가지고 필사적으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할 때보다는 말이다.

“좀 쉴 때 됐다, 이놈아! 항상 잘하면 그건 로봇 아니겠냐?”

“부탁해 마틴, 이기면 내가 뽀뽀해준다!”

경기력에 대해 위로해주는 캡틴 외데고르.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에 괜한 장난으로 속마음을 숨겨보는 유건.

그렇게 유건은, 캡틴이 하는 모든 말들에 대해 경험하고 있었다.

이미 경기장 안에서는 외데고르보다 외침이 많은 경우도 빈번했고 말이다.

외데고르가 은퇴하는 다음 시즌에 아스날은 새롭게 선출해야 한다.

선수단을 대표하고 이끌어가는 주장 완장을 착용할 캡틴을.

현재 부주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살리바, 파티노가 유력한 후보이겠지만, 다른 선수들은 모두 속으로 한 명씩 더 생각할 것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썩 나쁘지 않은 리더십을 보여주는 유건에 대해서.

***

“아쉽지만 1위를 확정지은 것에 만족하자고!”

유로파 리그 조별 예선 5차전, 무승부.

유건이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외데고르와 교체된 이후 그의 활약으로 아스날은 기세를 올렸다.

덕분에 홈구장에서 선제골을 넣는 데 성공했으나 마지막 코너킥에서 실점을 허용하면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어떻게 된 놈이 슬럼프도 없이 체력만 회복되면 날아다니는 거냐?”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노팅엄 포레스트, 승리.

바로 이전 경기에서 풀타임이 아니라 45분만 뛰었던 유건은 이틀 뒤 리그 경기에서 또다시 날아다녔다.

소우사가 빼주는 컷백으로 한 골을 넣고, 쿠아바에게 하나의 어시스트를 기록.

시즌 기록으로 따진다면 16경기 5골 13어시스트였다.

팀원들이 궁금해할 정도로 미친 활약을 이어나간다.

“저 친구는 실전에서 강한 타입인가? 훈련장에서보다 더 잘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오늘, 취리히를 상대로 하는 유로파리그 조별 예선 6차전.

16강에 진출하는 것을 확정지었던 아스날은 모든 선수를 로테이션 했다.

순위에 관계 없는 경기이다보니 유스 선수들이나 감각 유지가 필요한 선수들을 뛰게 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이틀 뒤에는 북런던 더비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런 관계로 오늘은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선발 라인업 선수들이었다.

“마틴은 충분히 현역으로 더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은퇴하려는 거야?”

“얼굴을 봐, 개늙었잖아.”

외데고르가 조금 더 주장으로 활동하길 바라는 파티노의 아쉬움이 담긴 혼잣말.

그러나 그것을 들은 살리바는 괜한 트집으로 핑계를 대며 캡틴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다.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가는 누군가의 앞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마세코의 발밑은 진짜 되게 좋네. 감독님이 눈여겨 보실 만해.”

“너도 많이 발전했다니까! 자신감을 가져, 힐슨.”

주전 골키퍼인 딘 힐슨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샘 마세코의 경기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아직 그보다 뛰어난 선방 능력을 가져 선발로 기용되고 있었지만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후방에서 확실하게 빌드업을 시작하기를 원하는 아르테타가 자신보다 마세코를 출전시킬 가능성 말이다.

주변에서 자신감을 키워주는 말들이 들려오지만 힐슨은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더 많은 시간을 분배해야겠어.’

만약 선발 라인업에서 밀려난다면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고 빼앗긴다면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이다.

그렇게 힐슨은 발밑 훈련에 대한 시간을 대폭 늘려버린다.

이런 경쟁심은 팀 분위기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중요했다.

자연스럽게 더욱 발전해나가는 강한 스쿼드가 형성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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