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괴물이구만
투욱-! 투욱-! 투우욱-!
“⋯이, 이런 개자식이!”
골대와의 거리가 조금 있는 상황이었지만, 러너는 자신 있었다.
커버를 위해 뛰쳐나오는 중앙 수비수를 제치고 슈팅까지 가져갈 자신이 말이다.
이미 속도를 붙인 상황.
짧게 두어번 치면서 안쪽으로 치고 가려는 바디페인팅과 함께 공을 바깥쪽으로 조금 길게 치며 급작스럽게 방향을 전환하는 러너.
‘⋯느려.’
너무나도 자신 있는 코스였다.
안쪽으로 파고들며 공을 인사이드로 맞추면서 이 위치에서 골을 기록하는 것은.
그만큼 슈팅을 날리면서도 러너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번에 날린 게 골대 안으로 확실하게 꽂힐 것을.
쉬이익-!
슈팅을 날린 즉시에는 먼 포스트 측면방향 라인 밖으로 나가는 듯했으나, 곧바로 휘어지기 시작한다.
골대의 안쪽이자 먼 포스트의 하단 방향으로.
출렁-!
긴 팔의 소유자인 PSV의 골키퍼가 몸을 날리며 팔을 뻗어보지만 닿지 못했다.
한 끗 차이로 그물을 흔들어내는 러너의 슈팅이었다.
그의 확신답게 오차 없이 골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으하하하, 가자고!!”
“나이스 마무리, 러너!”
“이 미친놈아, 어떻게 된 거야? 지금 패스 도대체 뭐냐고!”
가슴팍에 있는 아스날의 엠블럼을 두드리며 원정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포효하는 러너.
그의 등 뒤로 달려와 점프하면서 덮쳐드는 쿠아바.
그리고 그들에게 뛰어가고 있는 유건의 목을 뒤에서 감는 것은 살리바와 파티노.
확실하게 마무리까지 연결해준 러너의 공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환상적인 패스였다.
“⋯알잖아? 이게 나라니까, 으하하!”
이제는 스스로도 자신감이 떨어질 곳 자체가 없는 구름 위에 있었던 유건.
팀원들에게 장난스레 허세를 부려보지만, 마음속에서는 그와 반대로 겸손을 잊지 않는다.
아직 목표로 하고 있는 많은 우승컵들이 있으니까.
그곳에 닿을 데까지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을 향해 전진할 뿐이었다.
유건, 유로파 리그 조별 예선 4차전 PSV 원정 경기 전반 7분.
유럽 대항전 첫 어시스트 기록.
***
“전반 초반에 집중했던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들에게 행운이 따랐지만, 우리가 굳이 불행에 끌려갈 필요는 없다!”
“살리바! 확실하게 수비진 의견을 하나로 통일해라.”
“네, 알겠습니다 보스!”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휘슬이 울리기 전에 다급하게 때린 PSV의 중거리 슈팅이 동점 골을 만들었다.
방향을 잡고 가다가 갑자기 살리바의 몸에 맞고 굴절된 공을 골키퍼가 막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행운이었지만, 골을 제외하고도 불안한 장면이 꽤 나왔기에 다시 한번 주의를 주는 아르테타였다.
운이 없었던 것을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던 살리바는 그 말에 크게 대답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자책하지 말고, 니 탓 아니잖아 살리바!”
“그래도 이놈아! 수비로서 그렇게 쉽게 생각할 건 아니야.”
후반전을 위해 나가는 길에 살리바의 등을 두드려주며 한 번 더 위로하는 유건.
멘탈적으로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리를 뻗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스러운 생각은 남아있었다.
골문을 지키는 것은 골키퍼뿐만 아니라 수비 라인 선수들도 모두 해당되는 말이었으니까.
“막바지에 골을 먹히긴 했지만, 오늘 아스날의 경기력 자체는 훨씬 좋았거든요!”
“한 골밖에 넣지 못했다는 것에는 좀 아쉬울 수 있겠습니다! 밀어붙였던 건 사실이니까요.”
“과연 A조에서는 어떤 팀이 1위로 올라갈지 궁금해지는 후반전입니다!”
후반전 휘슬과 함께 안준성과 전지우의 중계도 다시 시작되었다.
전광판에 비치는 스코어는 1:1.
경기 전체적으로는 아스날이 점유하던 전반전이었기에, 하프타임 때 교체는 없었다.
잘 풀어나가고 있는 경기에서 전술 변경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잦았으니까.
투욱-!
“쿠아바, B로 가자!”
헤타페 CF에서 만들었던 쿠아바와 유건의 콤비 플레이.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기회를 보고 이대일 패스를 위해 공을 건넨 뒤 외치는 유건.
오랜만에 듣는 플랜이었지만 순간적으로 공을 내주고 측면으로 이동하며 슈팅 각도를 열어놓는다.
자신에게 붙어 있는 중앙 수비수가 유건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콰아앙-!
하지만 이번 플랜에 마무리 짓는 선수는 바로 유건이었다.
뒤쪽으로 흘러나오는 공을 아주 강하게 슈팅으로 연결한다.
그 와중에도 방향을 꽤나 정확하게 정해서.
퍼엉-!
‘⋯아으, 아쉬워라!’
그러나 이번에는 완벽한 선방을 해내는 PSV의 골키퍼였다.
강력한 슈팅이었지만 긴 팔을 이용한 펀칭으로 튕겨내 버린다.
그것을 보고 아쉬워하는 유건이었지만 아직 골을 넣을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후반전이 이제 시작했을 뿐이니까 말이다.
“건!”
“뒤돌아서도 된다, 건!”
외데고르가 경기장에 없는 이상, 아스날 공격 과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유건이었다.
선수들의 데이터 동기화율이 올라갈수록 엄청난 패스와 플레이들을 보여주고 있는 이번 시즌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아스날 선수들이 패스하는 마지막 종착지는 대부분이었다.
그에게 공격 방향을 지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넘기기 위해서.
“건을 막아!”
“패스 쉽게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
덕분에 PSV의 미드필더, 수비수들은 시선을 유건에게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 그에게 가하는 압박도 강하게 들어가고 마크맨을 늘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유건이 모든 것들을 떨쳐내고 위협적인 공격을 계속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
손쉽게 마르세유 턴이나 팬텀 드리블을 이용해서 빠져나가거나 그게 아니라면 주변 선수들과의 패스를 통해서 말이다.
그 와중에 순간적인 가속과 함께 개선장군 같은 기세로 치고 나가는 전진에 마크하지 않는다면 수시로 넣는 킬패스까지.
“저 선수, 실제로 보니까 더 괴물이구만.”
“아스날을 상대로 하는 어떤 팀이든 고민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지금은 그게 우리라는 게 문제잖나? 60분이 되는 순간, 하프타임 때 얘기했던 교체를 진행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대팀의 감독, 코치진들조차 감탄할 정도.
그를 막기 위해 하프타임 때 계속 검토했지만 완벽하게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저 가져갈 전술의 변경이 조금 더 좋은 경기력에서 나아가 골을 넣을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오늘 유건은 그야말로 중앙선에서부터 PSV의 골대까지의 사이 공간에서 날뛰고 있었으니까.
“캐시!”
“러너, 쿠아바!”
“클락까지 올라오고, 소우사도 반대쪽에서 올려야지!”
팀의 공격상황을 이끌어가는 와중에도, 입조차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외치고 있었다.
더 확실한 공격 과정을 만들기 위해 팀원들에게 위치를 옮기라고 말하면서.
공격, 미드필더, 오버래핑을 위한 사이드백의 움직임들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다.
“건, 나도 올라간다!”
그리고 유건의 그런 노력은 후반전 31분이 되어서야 빛을 발했다.
PSV가 공격수 한 명을 빼면서까지 쓰리백으로 전환시킨 덕분에 공격이 다소 어려워졌었다.
하지만 유건이 두 명, 세 명의 압박을 성공적으로 적응해내면서 다시 아스날의 매서운 공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캐시에게 아이솔레이션 상황이 만들어지자 미드필더 지역에 머물던 페레이라가 사이드 라인 쪽으로 질주하면서 외친다.
자신이 오버래핑을 나갈 테니 의식하라고 말이다.
‘⋯나이스 타이밍이야, 페레이라.’
그 말은 상대 선수를 앞에 두고 다리를 휘저으며 드리블을 준비하던 캐시에게도 똑똑하게 들렸다.
시선을 분산시켜주는 팀원의 움직임에 감사함을 표하면서 결정을 내린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미 페레이라가 자신의 뒤쪽을 돌아가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옆으로 내주면 되었다.
상대 선수의 시선을 뺏기 위해 드리블을 가져갈 필요도 없이 말이다.
투욱-!
오버래핑하는 사이드백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
자신을 이용해서 다른 방향으로 공을 치고 나가는 것도 팀적인 움직임이기에 싫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크로스를 위해서 열심히 달려온 자신이 달려가는 방향으로 패스가 들어온다면 환상적일 것이다.
이곳까지 달려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니까.
투욱-!
“캐시, 나이스!”
그 깊은 감사함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공을 한 번 더 치면서 사이드 라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지역까지 전진한다.
바로 크로스를 올리기에는 골대 앞에 있는 선수들도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페레이라가 한 번 더 터치를 가져가며 전진하는 순간, 그 상황은 바뀐다.
캐시가 중앙 지역으로 들어오고 쿠아바가 빈 공간으로 움직이며 유건과 클락이 컷백 상황을 위해 침투한다.
스으으-!
이번에 페레이라가 선택한 크로스는 바로 정중앙의 쿠아바를 향해서였다.
중앙 수비수 앞쪽에서 등을 지며 손을 아래쪽으로 내리며 공을 원하는 그의 표정이 간절했으니까.
아니 사실, 그들과 골키퍼 사이로 공을 보낸다면 골키퍼가 선택을 내리기에 애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콰악-! 투욱-!
‘⋯감히 어딜!’
그 상황에서 잔디에 박힌 자신의 축구화를 느끼며 무게중심을 잡고 있던 쿠아바가 움직였다.
이미 양팔을 어깨 정도 높이로 벌려두었기에 올리면서 팔꿈치로 등 쪽에 있는 선수의 얼굴을 칠 걱정도 없다.
그저 뒤쪽에서 그가 뻗어내는 발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 뒤쪽으로 몸을 기대며 발을 가져다 댄다.
직선적인 땅볼 크로스를 골대 안으로 넣기 위해서 말이다.
몸을 기울인 상황이었기에 강한 슈팅은 할 수 없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살짝 공을 돌려놓을 수는 있었다.
출렁-!
자신이 뛰쳐나가기 애매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눈앞에서 공격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꺾이는 슈팅.
골키퍼에게 그것을 막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아마추어 공격수도 아니고, 프리미어리그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주전 스트라이커 쿠아바가 임팩트를 준 슈팅이니까.
아직 월드 클래스라고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동 나이대에서는 그 위치로 갈 수 있는 유망주라고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의 슈팅은 정확하게 PSV 골키퍼의 손끝에 닿지 않고 골대 안으로 들어간다.
와아아아-!
터져 나오는 원정 팬들의 함성.
이번 시즌에는 원정 경기에서도 아스날 팬들의 함성이 더 큰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말이다.
- 으아아, 쿠아바야 내가 믿고 있었다!
- 아스날 이대로 경기 승리로 마무리해보자!
- 페레이라가 처음엔 아스날에서 오버래핑하는 거 어색해했는데, 진짜 지금은 타이밍 완전 알아챈듯
└ 러너랑 소우사는 지난 시즌에도 호흡을 맞춰서 워낙 좋은데 오른쪽 라인도 이제 호흡 완벽한 것 같음
만약 거기다가 축따튜브의 채팅창을 환호성으로 따질 수 있다면 엄청날 것이다.
구독자들의 대화를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채팅창이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마치 유건의 데이터 동기화율이 미친 활약을 이어갈수록 빠르게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반전 31분, 아스날이 필립스 스타디움 원정에서 두 번째 골을 넣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