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건이가 메시냐?
“아스날! 아스날! 아스날!”
“크리스탈! 팰리스!!”
양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
하지만 오늘은 크리스탈 팰리스의 열광적인 응원에 조금은 밀리고 있었다.
그들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일하게 치어리더들과 함께 응원을 하는 팀이었으니까.
“마틴, 건!”
“파티노, 리턴!”
“사이드 더 벌려!”
하지만, 응원과는 별개로 경기는 아스날이 압도하고 있었다.
패트릭 비에이라가 오랜 기간 감독을 맡아오면서 크리스탈 팰리스는 미드필더 라인에 많은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그들의 약점으로 꼽히는 것은 세 명의 미드필더가 다들 비슷한 스타일에 속한다는 점.
개인적으로 피지컬과 육체의 탄력을 이용한 순간적인 돌파와 센스를 가지고 있지만, 엄청난 압박이나 빠른 패스 플레이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감독님의 선택이 옳았어.’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아르테타가 꺼내든 카드는 4-3-3.
거기에 유건과 외데고르를 평소보다 더 멀리 양쪽 메짤라에 위치시켜서 공간을 넓게 쓰는 전술이었다.
좁은 지역에서 순간적인 가속을 통한 기회 창출을 즐기는 크리스탈 팰리스 미드필더진의 허를 찌르는 전술이었기도 하고 말이다.
사이드 라인을 벗어나는 공을 보며 잠깐 동안 정확히 먹혀들어 가는 감독의 선택에 내심 감탄하는 유건이었다.
“건!”
그러기도 잠시, 페레이라의 빠른 스로인을 받은 외데고르가 돌아서며 건네주는 패스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고 바로 집중한다.
맨투맨 마크 형태로 진형을 짜고 있는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 중 한 명이 달려와 보지만 패스를 차단하지는 못했다.
미리 읽지 못한다면 잡을 수가 없었던 게 당연했다.
공은 발보다 항상 빠르니까 말이다.
투욱-!
유건은 공을 받으며 키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돌아들어 가는 외데고르의 움직임에 맞춰 바로 리턴 패스를 보내줄 뿐.
자신에게 이미 압박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기도 하고, 그가 패스를 통해 마크맨을 따돌리면서 자유롭게 전진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캐시, 페레이라 의식해!”
아스날의 주장이 선택하는 다음 루트는 사이드 지역.
드리블 부문에서 리그 최상위권 팀의 날개에 걸맞은 스텟과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캐시에게 공을 건넨다.
그의 뒤로 돌아 뛰어가고 있는 페레이라에 대한 정보를 인지시켜 주면서.
투욱-! 스윽-!
덕분에 펼쳐지는 다음 상황에서 타이밍이 완전히 들어맞았다.
가장 먼저, 캐시가 바깥쪽으로 공을 살짝 퍼 올리며 상대 수비가 뻗어내는 발을 피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돌아 뛰는 헤나투 페레이라.
동시에 다시 한번 바깥쪽을 통해 치고 가려는 듯한 동작에 수비가 재차 발을 뻗어내는 것을 보고 캐시는 순간적으로 발을 꺾어 안쪽으로 터치한다.
오버래핑하는 페레이라의 움직임에 맞춰 패스를 주기 위해서.
‘나이스!’
캐시가 수비를 속이고 좋게 패스를 준 것도 있지만, 오버래핑 움직임 자체가 너무 뛰어났다.
오프사이드 라인에 걸리지 않고 단독 크로스 찬스가 찾아온 상황에서 신나는 감정을 느낀다.
어시스트를 기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바로 올려줘!”
“컷백!”
자신을 부르는 팀원들의 목소리.
직선적인 크로스를 요구하는 쿠아바.
조금 길게 떨어트려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드는 왼쪽 날개 러너.
마지막으로는 외데고르에게 패스하자마자 뛰어 들어오기 시작했던 유건.
투욱-!
‘⋯미안한데, 너네한테 주기에는 코스가 막혔어!’
모두를 뚫어낸 단독 크로스 찬스였기에 평소보다 생각할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
그를 이용해 슈팅을 위해 달려오는 팀원들에게 보낼 수 있는 패스 루트를 확인한다.
하지만 두 명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너무 수비가 밀집되어 있었으니까.
결국 내리는 결정의 방향은 각도를 꺾어 뒤에서 달려들어 오는 유건.
쉬이익-!
슈팅을 막기 위해 크리스탈 팰리스의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이 몸을 날려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컷백이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다 해도 곧바로 반응하기에는 쉽지 않았으니까.
그랬기에 이미 속력을 붙인 유건이 공에 가장 먼저 닿는다.
밀집되어 있는 골대 주변을 의식해서 강한 슈팅보다는 인사이드를 이용해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슈팅을 날린다.
‘오, 코스 좋고!’
‘이거 들어간다!’
그 상황을 뒤쪽에서 바라보고 있는 아스날 척추라인 선수들.
멀리서 바라보는 살리바는 바깥쪽으로 가려다가 오른쪽 골대 상단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슈팅을 보며 순간적으로 코스는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보다 더 가까운 지역에서 바라보는 파티노는 들어갔다고 생각하며 두 팔을 벌리고 앞쪽으로 뛰어간다.
출렁-!
그대로 빨려들어 가는 유건의 슈팅이었다.
강하게 차지 않았지만, 반응하지 못한 골키퍼가 손을 뻗기에는 빠른 슈팅.
그렇게 된 이상 골대가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나이스 슛이다, 건!!”
“으하하, 내가 뒤에서 볼 때 코스부터가 좋았다니까!”
항상 패배의 쓴잔을 마셨던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
그곳에서 앞서나가는 선제골을 넣은 기쁨은 팬들을 기쁘게 했고, 울려 퍼지는 아스날 팬들의 함성은 거대했다.
마치 이곳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리플레이 장면을 보면⋯, 진짜 코스가 예술이었습니다!”
“정확하게 컷백을 내준 페레이라 선수의 패스도 좋았구요!”
“캐시 선수가 공을 잡으면 위협적인 찬스를 항상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김수영 선수가 소속된 크리스탈 팰리스로서는 홈구장인데도 불구하고 전반전을 힘겹게 마무리하네요!”
전반전이 끝나고 나오는 유건의 골 장면 리플레이.
바깥에서 휘어져서 오른쪽 구석으로 향하는 그 골은 뒤쪽 시야에서 바라보면 환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도 오버래핑 플레이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캐스터들은 그것을 언급한다.
그만큼 아스날의 패스 플레이가 계속해서 언급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
- 수영이형 그래도 공격진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는데, 안타깝다!
- 오늘 크팰 윙포워드들이 폼이 너무 안 좋네. 살리바 상대로 공 몇 번이나 지켜냈는데!
└ 진짜 저렇게 폼 좋은 수영이형이 살리바 한 번도 못 뚫는 거 보면 너무 괴물 같다
└ 아직 준철이형조차 이번 시즌에는 못 뚫었는데 그건 이해해줘야 된다고 본다
후반 85분여가 흘러가고 있는 시각, 축따튜브의 팬들은 이미 아스날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몇몇의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결과가 안 나왔으니까.
현재 시간 기준으로 전광판에 기록된 크리스탈 팰리스 0 : 3 아스날이라는 현황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젠장, 오늘은 내가 전술에서 완전 밀렸다.”
“사이드 쪽 선수들이 컨디션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감독님.”
전반전은 선발 라인업에 대한 패착이라고 인정하고, 후반전에 시작하자마자 전술 변경을 가져갔던 크리스탈 팰리스.
덕분에 약 15분 동안은 점유율을 45% 정도까지 끌어올리며 본래 보여주던 경기력을 뽐냈다.
그때 골을 넣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르테타의 용병술.
공격수를 투톱 체제로 바꾸고 러너 대신 클락의 투입.
4-3-3에서 4-4-2 혹은 4-1-3-2로의 변경.
유건과 외데고르가 사이드 지역까지 위치를 벌리면서, 경기장을 최대한 넓게 쓴다.
그 중앙에는 클락이 마치 투견처럼 경기장 위를 뛰어다니며 경합한다.
아래쪽에서는 파티노가 받쳐 주고 말이다.
“캐시 선수, 오늘 정말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에 쿠아바 선수가 헤딩으로 볼을 잘 전달했죠!”
“후반전에 반전을 노리던 크리스탈 팰리스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 이후, 재차 리드를 가져온 아스날이 후반 72분에 추가 골을 기록.
살리바가 한 번에 전방으로 전달시키는 패스를 쿠아바가 캐시의 발밑에 정확하게 전달했다.
사이드백이 아닌 중앙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일대일 드리블을 성공시키면서 반 박자 빠른 슛으로 마무리.
“건의 페이스가 정말 놀라운데요?”
“이대로 부상 없이 유지만 한다면, 정말 도움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마틴하고 붙어 다니더니, 저 녀석 패스를 더 잘하게 된 것 같은데?”
83분에 들어간 세 번째 골은 유건과 쿠아바의 합작이었다.
그 시간에도 높은 지역까지 압박을 들어가는 캐시, 클락.
살짝 돌아서며 터치하려던 오른쪽의 중앙 수비수가 순간적으로 길게 공을 쳤고, 파티노가 뺏는 것과 동시에 왼쪽 사이드의 유건에게 전환했다.
스으으-!
그 지역에서 한 번에 스루 패스를 넣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유건은, 아웃사이드를 이용해 잔디를 가르고 뻗어나가는 패스를 넣었다.
라인을 타면서 움찔거리던 쿠아바가 바로 보였었으니까.
삐익-!
이후 아르테타는 남은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했다.
로테이션 멤버 중에서 폼이 좋은 선수와 좋지 않은 선수들을 투입했던 것.
이유는 달랐지만 모두 목적은 경기력을 위해서였다.
폼이 좋은 선수는 경기력 유지를 위해, 좋지 않은 선수는 경기력 개선을 위해.
약 10분 내외의 시간 동안만 버티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긴장이 조금은 덜 되는 이번 경기에서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스쿼드 전체를 끌어올려야 돼.’
그게 쉽지 않으리란 것은 아르테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내야만 했다.
점점 가능성이 더 현실화돼가고 있는 챔피언스리그 경쟁과, 나아가서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을 만들고 싶었기에.
“참나, 저놈 저거 언제 저렇게 괴물이 돼버린 거냐?”
“진짜 작년까지 같이 뛰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네.”
“형들, 제가 대표팀에서 저 녀석 장난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요!”
“평가전은 그래도 컨디션 빨딱 섰나보다 했지, 저건 좀 심하잖아.”
그리고 그 시각, 아스날의 경기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몇몇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용인 FC의 박범호, 강바람, 김대건, 이윤성 등
모처럼의 주말 라운드를 마치고 한국 시간으로는 일요일 밤에 열린 경기를 보고 있었던 것.
공통적인 반응은 유건에 대한 감탄이었다.
“어시스트도 벌써 여덟 개야, 저 미친놈!”
현재까지 유건의 시즌 기록은 9경기 8선발 1교체.
그러나 공격포인트는 3골 8어시스트였다.
유로파 리그의 골을 빼면 리그 기록은 한 골이 줄겠지만, 강바람이 말하는 대로 그야말로 미친 활약이었다.
경기당 공격포인트 한 개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페이스였으니까.
“이왕 잘하는 거 저렇게 은퇴할 때까지 했으면 좋겠다.”
“야, 건이가 메시냐? 저 미친 경기력을 유지하게.”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저놈 일 년 만에 여기서 저기 간 놈이잖아요.”
감탄 이후에는 사랑하는 동생이자 후배, 그리고 전 팀메이트에 대한 응원이었다.
지금처럼 미친 활약을 꾸준하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에 있는 모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김대건이 우스갯소리로 꺼낸 그 말이 현실이 되는 그 상황을.
유건이, 축구의 신이라고 불렸던 리오넬 메시의 아성에 도전하는 그 상황을 말이다.
물론 도전뿐만 아니라 그를 넘어서게 되는 것은 장난으로도 생각하지 못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