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미친 팬들 좀 보라니까요
“…저, 저놈 저거!”
유건의 패스에 아스날 벤치를 박차고 일어나는 한 사람.
바로 마틴 외데고르였다.
지금 그가 보여주는 패스는,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이 가르쳐주었던 방법이었으니까.
‘마틴한테 저런 패스를 배웠던 건가?’
그리고 그런 길을 자주 보여주었던 외데고르를 슬쩍 돌아보던 아르테타는 흐뭇한 생각을 한다.
꽤 적절한 리빌딩의 타이밍이자 세대교체의 순간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 이게 왜…?”
아스날의 벤치에서 유건의 패스에 감탄하고 있는 그 시각, 직접 눈앞에서 겪게 된 리버풀의 선수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좁은 지역에서 작지 않은 자신의 키를 넘기는 로빙 패스를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로서는 달려 나가는 몸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유건의 패스를 그저 당황하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투욱-!
‘…흐흐, 이렇게 주면 넣을 수밖에 없잖아!’
꽤 큰 덩치를 가진 리버풀 선수의 머리 위로 넘어오는 유건의 패스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것은 캐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수비수가 사라져 있는 상황에서 공을 전달받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골키퍼가 나오는 것을 바라보지만, 눈에 보이는 많은 빈 공간 중 하나로 공을 살짝 밀어 넣는다.
굳이 강한 슈팅을 찰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와아아아-!
“건!!”
“캐시, 이 자식아!!”
흔들리는 리버풀 팀의 골대.
또 한 번 아스날이 득점에 성공하자, 에미레이츠에 폭발음이 또다시 울려 퍼진다.
팬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서로를 부르고 어깨동무를 하는 유건과 캐시.
함께 주먹을 쥐며 환호성을 질러주는 팬들 앞으로 달려가 기쁨을 표현한다.
“…크윽!”
“덩치 생각하라고, 이 덩치야!”
그러던 중 자신들을 껴안는 거대한 체구의 덩치가 느껴지는 순간, 신음을 내뱉는 유건.
상대적으로 캐시보다 키가 컸던 그가 충격을 더 많이 받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 원인을 제공한 쿠아바의 머리를 두드리며 덩치를 생각하라고 놀리는 캐시.
“잘했다, 이것들아!!”
마지막으로 달려오는 어린 선수들의 좋은 호흡으로 만들어낸 골을 축하하는 베테랑 선수들.
후반전 32분, 추가 골을 넣는 데 성공한 아스날이었다.
바로 직전까지 연달아 유효슈팅을 만들어냈던 리버풀의 의욕을 일시적으로 꺾어버린 골이었다.
유건의 시즌 7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골이었기도 하고.
***
“고생했다, 건!”
추가골을 만들어낸 뒤 후반 35분이 되었을 때, 아르테타는 유건을 불러들였다.
대신 중앙 수비수 한 명을 투입하면서 쓰리백 전술로 변경했다.
실점 이후 멈칫했던 리버풀의 공격이 재차 날카로워지는 것을 보고 수비를 강화했던 것이다.
“파티노, 니가 수비 라인 보호하고 나머지가 미들 새롭게 구성한다!”
그와 엇비슷한 시간에 투입된 외데고르와 다른 중앙 미드필더.
파티노에게서 주장 완장을 건네받으며 이제부터 새롭게 적용될 전술을 공유한다.
캐시와 왼쪽 사이드백인 소우사를 빼면서 3-1-3-2의 구성으로 전술 변경.
수비 및 미드필더의 숫자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쿠아바를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나 러너를 이용한 역습을 노리는 전술이었다.
“안되면 클리어해도 돼!”
“우리 숫자 많아, 수비 확실히 하자!”
그렇게 후반전 막바지까지 아스날은 성공적으로 버텨냈다.
수비적인 전술로 변경하면서 점유율은 다소 빼앗기게 되었지만, 리버풀의 입장에서는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
골대로 가는 길 중간중간 보였던 빈 공간이 말이다.
“아스날이 승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1분입니다!”
“아르테타 감독, 정말 대단합니다. 단 한 시즌만에 아스날을 이렇게 변화시킨 게 보고도 아직 믿기지 않습니다!”
“새롭게 나타난 캐시나 유건 선수의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 페레이라와 클락의 영입이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더하고 있죠!”
“놀랍습니다. 클락 선수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에는 반발이 더 많았던 영입이었는데요!”
중계를 하는 안준성과 전지우도 이쯤 되니 아스날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고정적으로 최상위권을 유지하던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의 경쟁 구도에 새롭게 한 팀이 추가된 상황은 흥미진진했으니까.
그리고, 그 팀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 중인 유건이 한국 선수였기도 하고 말이다.
삑-! 삑-! 삐이익-!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울려 퍼지는 청명한 휘슬.
치열하고 힘들었던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가 끝났음을 알리는 호각 소리였다.
경기 결과는 아스날 2 : 0 리버풀.
도박사들의 배당만 놓고 보더라도 오늘의 결과는 이변에 속했다.
“나이스!!”
“홈에서는 이겨야지!!”
심지어 시즌 전체로 놓고 보더라도 아스날은 거대한 이변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중이었다.
지난 시즌 3, 4위를 기록했던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아닌 새로운 팀이 리그 테이블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 이쯤 되니까 아스날이 이번 시즌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싶다
- 나 이쯤 되면 아스날 좋아하네 진짜. 선수들 웃는 거 보면 기분 좋아진다
처음에는 변화된 아스날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던 해외축구 팬들도, 시선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들이 무너트린 리버풀이라는 팀은 이미 그 정도로 강팀 대접을 받아왔던 팀이었으니까.
저조했던 성적에 힘겹게 팬질을 해왔던 구너들은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 솔직히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시티가 너무 오래 해먹긴 했음
- 새로운 강팀의 탄생이 축따형이 있는 아스날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고
다른 팀 팬들마저도 이왕 우승할 거면 아스날이 차지하기를 원하는 반응이 많았다.
매년 반복되는 팀 이름이 아닌 새로운 우승팀을 보고 싶었으니까.
더불어 축따튜브의 팬들로서는 그게 유건이 소속되어 있는 아스날이기에 가슴이 웅장해질 수밖에 없었다.
***
[아스날의 미켈 아르테타, “리버풀은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다. 운이 우리에게 따라주었지만, 선수단은 그 행운의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르테타가 팀을 변화시켜놓는 방식은 놀랍다. 이번에 그는 겨우 한 시즌 걸렸을 뿐이다”]
[MOM을 수상한 아스날의 유건, “선수단 분위기는 환상적이다. 우리는 매 경기 승리를 위해서 뛰고 있다”]
7라운드의 가장 빅매치답게 많은 기사들이 경기 결과를 재조명해주고, 클롭과의 경쟁심을 자극시키면서 아스날을 치켜세워주었다.
그러나 정작 아르테타는 클롭에게 존경을 표하며 기자들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았다.
사실 그런 함정 질문은 신경 쓸 새도 없었다.
힘든 경기에서 승리를 이뤄낸 선수단에게 칭찬을 끊임없이 하기에도 모자랐으니까.
“저기 저 미친 팬들 좀 보라니까요!”
유건은 인터뷰를 하던 도중, 그때까지도 응원가를 불러주는 팬들 덕분에 흥분한 채 욕설까지 사용했다.
곧바로 인터뷰를 해주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나 그 장면은 SNS와 별튜브에 퍼져나갔다.
아스날 팬들은 그저 따뜻하게 자신들을 생각해준다며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경솔한 단어 사용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에미레이츠를 가득 채운 팬들이 한 사람만을 위해 불러주는 응원가를 눈앞에서 받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행히도 이번 주는 한 번 더 홈에서 경기를 하게 된다.”
“물론 예선 이후에 리그 경기는 원정을 가야 하지만, 체력적으로 그나마 보존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아스날 선수단과 감독, 코치진으로서는 승리에 대한 기쁨을 오래 간직할 수가 없었다.
당장 몇일 뒤에 있는 유로파리그 조별 예선을 또 준비해야 했으니까.
그 경기를 치르고 나면 또 이틀 뒤에 펼쳐지는 프리미어리그 경기까지.
가히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연습한다고 생각하자고! 내년에 챔피언스리그 진출한다면,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다.”
“시즌 전체 일정만 놓고 따지자면 유로파리그 일정이 더 가혹하니까 좋은 연습 과정이다!”
이렇게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는 팀들은 휴식이 거의 없게 시즌을 보낸다.
거기에 A매치 평가전에도 차출되면 시차 적응도 하지 못한 채로 축구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입장은 똑같았지만 아스날 선수단을 독려하는 아르테타와 외데고르의 존재가 차이점이었다.
결코 지금의 위치에서 만족하지 않는 아르테타와 오히려 좋다면서 힘을 북돋아 주는 외데고르.
“주장, 이쪽으로 줘도 돼!”
“나이스 패스야, 클락!”
“소우사, 나이스 오버래핑!”
그런 감독과 주장의 리더십 아래 아스날 선수단은 힘들지만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 스스로도 승리하는 팀의 일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실전처럼 훈련에 임하면서 스쿼드 전체 구성원을 비슷한 에너지 레벨로 끌어올린다.
누가 경기에 출전하든지 통일된 전술 움직임 아래 승리를 추구한다.
“파티노, 거기에서는 사이드로 빼주는 게 낫지 않았겠어?”
“캐시! 너무 망설이지 마. 페레이라에게 패스를 주든지 니가 치든지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고 선택해.”
“더 빠르게 패스해야 돼, 클락! 한 박자만 빠르게 해보자고!”
그러한 과정에서 선수들의 세부적인 움직임을 수정해주는 것은 아르테타와 코치진의 역할이었다.
크게 변화시키기보다는 상황마다 선수들끼리 바라보는 길이 똑같아지길 바랐다.
정말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바를 알아채는 그런 팀을 그려보면서 말이다.
- 나이스 로테이션! 우리 테타형 요즘 로테이션 너무 잘 돌린다니까!
- 챔스가 아니라 유로파라서 오히려 다행인 듯!
- 올해는 챔스 진출하고 겨울이랑 내년에 스쿼드 보강하면 진짜 더욱 기대된다
그렇게 훈련에 매진한 지도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또 어느새 경기 날이 밝았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초대하는 오늘의 상대는 FK 보되/그림트.
노르웨이 축구 리그에서 유로파리그에 진출한 그들이 조별 예선 2차전 상대팀이었다.
축따튜브의 팬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아르테타는 1차전과 같이 오늘도 풀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우리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더 일관적인 수준이 필요해.”
“예를 들어서 방심하면서 오늘의 경기를 지기라도 한다면 그 평가는 완전하게 뒤바뀔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오늘도 우리는, 승리하고 돌아온다.”
경기 시작 전, 라커룸에서 로테이션 멤버들을 자극시키는 외데고르의 연설.
좋은 경기력 수준을 유지하면서 매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나아가자고.
우리는 그럴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화이팅하자고!!”
“이놈들아, 크게 소리 질러!!”
벤치에서 시작하지만, 화이팅을 이끄는 살리바와 파티노.
완장을 차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확실히 선수단 내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부주장다운 모습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경기장으로 나가는 출전 선수들.
‘…귀엽다니까. 아무튼 오늘은 못 뛸 확률이 크니까, 다행이다!’
그들의 뒤를 곧바로 뒤따르지 않고 휴대폰에 도착한 마지막 메세지를 확인하는 유건이 있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애매한 시간에 펼쳐지는 유로파리그.
그것을 기다리다가 한계에 부딪혀 잠을 자겠다는 나여름이 귀여우면서도 간단히 답변해준다.
오늘은 출전 못 할 것 같으니 마음 놓고 자라고 말하면서.
“멍청이, 빨리 오라고!”
그 이후 급하게 자신의 자리에 휴대폰을 정리해두고 자신을 부르는 쿠아바의 목소리를 들으며 경기장으로 뛰쳐나가는 유건이었다.
그렇게 아스날의 시즌은 조금씩 더 바빠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