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이게 주기가 좀
‘…나이스다!’
러너의 선택은 패스였다.
멀리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왼쪽 사이드의 파트너, 리노 소우사에게.
그를 이용해서 바깥쪽으로 공을 터치하며 직접 크로스를 올리거나 슈팅을 가져갈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패스를 선택했다.
정확하게 자신의 발걸음에 맞춰 들어오는 공을 보며 만족하는 소우사.
“들어오는 선수들 잘 마크해!”
오버래핑을 의식하고 있던 리버풀의 오른쪽 사이드백이 늦게나마 커버를 위해 몸을 움직인다.
그와 동시에 중앙 수비수들은 골대 근처로 움직이는 아스날 선수들을 놓치지 말라며 크게 외친다.
팀원이 수비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게 보였으나, 오버래핑이 성공적으로 된 이상 높은 확률로 크로스까지 연결될 거라고 예상하면서.
지금 아스날이 만들어내는 이 장면은 자신들이 자랑하는 사이드 지역의 공격 전술이었으니까.
뻐엉-!
양팀 선수들의 예상대로 중앙 지역으로 올리는 소우사의 크로스였다.
컷백을 위한 위치에 유건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리버풀에서는 엘리엇이 커버를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소우사가 선택한 방향은 중앙.
퍼억-! 퍼억-!
크로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골대 앞에서는 치열한 몸싸움이 일어난다.
굳건하게 중앙 지역을 버티고 서있는 쿠아바.
세컨볼 혹은 피지컬을 이용한 헤딩 슈팅을 지원하기 위해 올라온 클락.
반대 사이드에서 길게 흐르는 크로스나 세컨볼을 처리하기 위해 대기하는 캐시.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아스날 선수들과, 그들을 막기 위한 리버풀 선수들 사이에서.
‘…크윽, 이 정도면 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몸싸움이 가장 치열한 리그이자, 카드에 관대한 심판이 많아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거친 리그.
그런 프리미어리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올라오는 크로스에 점프조차 하지 못한 쿠아바는 주심을 애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 명의 중앙 수비수가 자신의 유니폼을 잡다가 놓아버리고, 무게 중심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다른 한 명의 중앙 수비수가 몸을 부딪치고는 반동을 이용해 점프를 했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의 몸싸움은 허용하겠다는 암묵적인 의도를 전달하는 건지 휘슬은 불리지 않았다.
“뒤에 마크…”
그러나, 너무 쿠아바에게만 의식한 것이 리버풀의 실수였다.
이번 시즌 아스날의 크로스는 대부분 괴물 같은 피지컬로 스트라이커 지역에서 버텨주는 쿠아바에게 향했으니까.
장신인 두 명의 중앙 수비수가 한 명을 마크했기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했다.
“크윽, 같이 떠줘!”
아스날은 미드필더 라인에도 거대한 피지컬을 보유한 율리안 클락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무서운 기세로 전진하면서 날아오는 공에 맞춰 점프하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클락의 움직임을 의식하면서 같이 점프했음에도 머리 하나는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것을 보고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콰앙-!
공에 머리를 정확하게 가져다 댄 클락이 강하게 헤딩 슈팅을 했으니까.
땅으로 내려찍으려는 의도와는 다르게 직선적으로 뻗어나갔지만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꿔서 날아오는 헤딩은 월드 클래스 수문장으로 손꼽히는 리버풀의 골키퍼로서도 역부족이었다.
출렁-! 와아아아-!
“으하하,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클락의 헤딩이 예상하던 방향과는 다르게 꺾여버린 이상, 자신이 지키는 골대로 들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엄청난 함성 소리에 뒤덮인다.
골을 넣은 기쁨에 팬들이 내지르는 소리에 포효를 내지르며 환호하는 클락.
그런 그의 첫 골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여드는 아스날 선수들.
“잘했다, 이놈아!!”
“나이스 헤딩이었다, 클락!”
살리바가 예전부터 유행했었다며 선수단에 전파한 축하 문화.
경기에서 첫 골을 터트리는 선수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린다.
덕분에 클락은 행복함을 느껴야 하는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속으로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아으! 니네 아무리 그래도 진심을 담아서 때리면 안 되는 거 아니….’
물론 팀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으니, 입 밖으로 그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그저 첫 골을 넣고도 이 문화를 체험하지 못한 한 명의 선수를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쳐다본다.
그것은 바로 유건.
다음에 다가올 미래를 모르고 클락의 머리를 계속해서 두드리는 그의 표정은 그저 해맑아 보였다.
전광판이 전반 30분을 가리키는 시점, 아스날의 선제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팀들에게도 선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올해 자신들은 크게 달라졌다고.
만나게 되면 지난 경기들처럼 쉽지는 않을 거라고.
***
“나는 전반전에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에디슨이 발명했던 전구처럼 우리 팀이 하나로 뭉쳐서 빛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에 상대 팀은 실점 이후 크게 당황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끝까지 몰아붙여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어떤 팀이 방문하든지,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자고!”
팽팽한 경기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선제골 이후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아스날이 앞서나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선수단에게 하프타임을 이용해서 자신감을 심어주는 아르테타였다.
상대팀은 당황하고 있고, 우리가 훨씬 더 잘하고 있다고.
팬들이 함께하는 지금 이 장소를 오늘 경기를 기점으로 두려움의 공간으로 만들어보자고.
삐이익-!
“아스날은 교체 없이 선발 라인업 그대로 후반전을 진행합니다!”
“리버풀도 변경사항은 없는데, 아마 먼저 용병술을 가동하는 건 클롭 감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양팀 모두 하프타임 때 후반전을 잘 준비했겠지만 실제적으로 전반전 덕분에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 아스날이라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거든요!”
후반전 휘슬이 울려 퍼지고 재차 중계를 시작하는 안준성과 전지우도 생소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시즌을 시작하기 전, 아스날이 이 정도로 좋은 경기력과 순위를 유지할 거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들은 챔피언스리그에 복귀만 하더라도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 경기 이전에도 공동 1위를 유지하더니 이대로 끝난다면 한 팀을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다.
“내가 쟤네랑 몇 년 동안 경기를 해봤는데, 지금 우리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파티노 말이 맞아! 이제는 할 만한 걸 넘어서 우리가 이길 때가 됐지.”
그리고 그런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것은 선수단도 마찬가지.
특히 힘든 몇 년간의 시간을 이겨내고 올해 성적의 행복함을 느끼는 선수들이 더욱 원하고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위한 순위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아스날은 한계가 있다라는 전문가들의 평가.
현재의 경기력을 잘 유지한다면 이번 시즌 막바지에 그 예상을 모두 뒤엎을 수 있었다.
- 홈구장인 거 감안하면 리버풀이 져도 나중을 기약하면 되는데, 예상은 못 했을 것 같음
└ 진짜 이게 맞음. 몇 년 동안 만나기만 하면 이겼던 아스날인데, 클롭도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을듯
- 형들, 그만큼 아르테타가 알짜들만 영입하면서 스쿼드를 잘 구축한 거지!
- 솔직히 페레이라는 환영이었지만 클락은 헛돈 쓰는 줄 알았던 저를 반성합니다
└ 축따형만큼 믿어야 되는 게 테타형이지! 반성하자 형
후반전 3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각까지, 리드하고 있는 것은 아스날.
그런 그들의 엄청난 경기력을 보면서 축따튜브에서는 하나둘씩 반성을 하고 있었다.
아스날이 언젠가 좋은 모습으로 복귀할 줄은 알았지만 바로 이번 시즌인 줄은 몰랐다면서.
율리안 클락을 영입할 때 자신도 비판의 의견을 냈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하면서.
구너로서 무한한 신뢰를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말이다.
- 오, 축따형 패스 개쩔었다! 캐시가 제일 좋아하는 상황 만들어졌음
빌드업을 하던 커티스 존스의 공을 빼앗아낸 클락.
소유권을 유지하기 위해 뒤에 있는 파티노에게 곧바로 패스를 한다.
그 상황에서 이미 빈 공간으로 빠져들어 가며 다이렉트 패스를 받는 움직임을 가져가는 유건.
그것을 발견해낸 파티노에게서 받은 공을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 사이드 쪽으로 길게 차낸다.
“나이스 패스다, 건!”
왼쪽 지역에서 볼을 전개하던 리버풀이었기에, 전체적으로 그쪽에 선수가 몰려있었다.
빈 공간을 찾아주려는 의도와 아스날의 새로운 스타 중 한 명인 제이든 캐시가 좋아하는 상황에서 볼을 받게 해주려는 의도.
고립된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단 한명 의 수비만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유건의 패스.
‘…뒤에는 페레이라, 앞쪽에는 건, 중앙에는 쿠아바.’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연쇄적으로 이동하는 아스날 선수단.
캐시를 수비하는 선수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 오버래핑해서 올라온 페레이라.
이대일 패스를 받아주기 위해 롱패스를 건네자마자 곧바로 달려오고 있는 유건.
중앙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받기 위해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는 쿠아바.
캐시는 그 세 개의 선택지 중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휘익-! 스윽-!
그 전에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한 드리블이 시작된다.
치고 나가려는 발동작과 함께 바디 페인팅을 시전하는 캐시.
“아직 멀었다고, 캐시!”
그와 함께 수비에 복귀하면서 발을 넣는 것은 리버풀의 미드필더.
조금 전에 챔피언스리그 예선까지 쉬지 않고 뛰었던 엘리엇의 교체 아웃과 동시에 새롭게 들어온 그들의 핵심 유망주.
그리고 캐시와는 연령대 대표팀에서부터 함께 올라온 친구이자 동료였다.
그 말이 나타내주는 의미는, 아직 어리다는 것.
지고 있는 상황에서 겁 없이 밀어 넣는 태클은 상대하기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투욱-!
“고맙다, 멍청아!”
자신의 뒤로 달려 들어가는 페레이라에게 줄까 생각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는 리버풀의 왼쪽 사이드백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던 캐시.
그러나 조금은 멍청하게 달려드는 리버풀의 친구 덕분에 명확하게 방향을 생각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왼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대각선으로 꺾으며 바깥쪽으로 쳐놓는다.
투욱-!
“건!!”
그리고는 곧바로 중앙 지역으로 들어와서 패스를 기다리던 유건에게.
그렇게 공을 따라 리버풀 선수들의 시선을 유건에게 집중시키는 와중에, 몰래 돌아 들어가는 움직임을 가져가는 캐시.
자신에게 리턴 패스를 달라는 의미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캐시야, 내가 알고는 있는데 말이다! 이게 주기가 좀….’
그러나, 들어오는 공을 캐시에게 그대로 돌려주기에는 달려 나오는 리버풀의 수비수가 있었다.
아예 코스가 막혀있는 상황.
그 순간 유건이 생각할 수 있는 코스는 모두 막혀있었으나, 단 한 곳이 있었다.
얼마 전에 지도받았던 패스 루트였다.
투욱-!
지금 상황에서 패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유건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