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그놈들 압박은 장난이 아니야
유로파 리그의 첫 번째 상대는 FC 취리히였다.
7라운드 리버풀전을 앞두고 그래도 조별 예선 상대 중 가장 강팀인 PSV와의 경기는 피하게 된 아스날.
심지어 원정길을 떠나는 거리마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오늘은 우리에게 있어 좋은 기회다. 라인업에 변화가 있지만 나는 여러분의 열정을 믿는다.”
“우리가 기세를 올리고 있는 반면, 상대 팀의 기세는 현재로서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당장 지난 시즌에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주며 스위스 리그의 우승을 차지한 FC 취리히.
하지만 그것을 이끌었던 감독이 다른 팀으로 떠나며 시작된 이번 시즌.
덕분에 챔피언스 준플레이오프에서도 탈락했지만 유로파 리그 본선에는 겨우 진출.
그 뒤에도 연패를 기록하고 있는 그들과 조별 예선 1차전을 치르는 것은 아스날에게는 꽤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 이전의 기록들을 고려해 아르테타가 오늘 경기에서는 모든 선수를 로테이션했을 정도로 말이다.
“마틴이 전체적으로 팀을 이끌면서 소통한다. 첫 출전을 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자신감을 가져라.”
“여러분은 아스날에 소속된 선수들이다.”
콜업된 유스들, 베스트 라인업에서 밀린 선수들이 주로 포함되었지만 아르테타는 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
아스날이라는 이름 아래 소속된 선수들인 만큼 자신감을 잊지 말라고.
왼쪽 가슴의 엠블렘은 그런 의미라는 것을 전해주면서 말이다.
삐이익-!
그렇게 시작된 경기.
콜업된 유스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리그 로테이션 멤버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외데고르를 포함한 세 명의 선수는 스타팅 라인업 선수들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 말은 충분히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은 취리히를 상대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동일했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구성이 바뀌었음에도 아스날의 에너지 레벨은 그대로인데요!”
“아르테타 감독의 주도하에 점점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아스날입니다.”
“베스트 멤버도 아닌데 이렇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건 지난 시즌에는 팬들조차 상상하지 못한 모습일 텐데요!”
흥분해서 중계하는 캐스터들.
빌드업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로 한 개의 실점을 내주며 파티노의 공백을 체감하는 듯했지만, 곧 두 번의 득점포를 쏘아 올리며 앞서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후반 60분이 흘러나가는 이 시점까지도 점유율은 거의 70%를 넘어가고 있을 정도.
특히 클락과 캐시, 페레이라에게 밀린 외데고르를 비롯한 오른쪽 라인의 선수들이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마치 아르테타에게 이래도 내가 주전으로 뛰지 못하냐고 외치는 것처럼.
“훈련 중에 보여주던 선수들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예상보다 더 좋은 경기력입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파티노와 건, 쿠아바를 제외하고는 교체하더라도 크게 무너지는 모습은 안 보여줄 것 같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는 코치들.
그들이 선발 선수 라인업에서 대체 불가 선수로 정해둔 것은 파티노, 건, 쿠아바.
나머지 포지션은 백업 선수들이 출전하더라도 전술의 틀은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만한 오늘의 경기력이었다.
‘⋯나쁘지 않지만, 아직 초반일 뿐이야.’
그 말에 일부 동감하면서도 아르테타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챔피언스리그도 아닌 유로파 리그의 조별 예선이었기에 모든 선수를 로테이션해도 밀어붙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유로파 리그라 하더라도 이후 토너먼트 단계가 찾아온다면 어느 하나 쉽게 볼 팀이 없었다.
리그 경기 중간중간 진행해야 하는 지옥 같은 일정은 동일한데 말이다.
그런 시기가 찾아오기 전에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했다.
“클락과 러너, 페레이라를 준비시켜주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진행되고 있는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끝까지 교체 선수를 고민하고 세부 전술을 수정한다.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가장 뿌듯한 일이었으니까.
***
“에미레이츠에서는 무조건 그들을 이겨야만 한다.”
“추후 원정을 떠나게 될 안필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승리를 따내기 가장 어려운 경기장 중 하나이니까.”
당장 이틀 뒤에 아스날이 7라운드에서 맞붙게 되는 팀은 바로 리버풀.
위르겐 클롭이 추구하는 게겐 프레싱을 주요 전술로 사용하는 세계 최상위권의 팀.
그들이 자랑하는 끊임없는 압박과 엄청난 활동량을 기반으로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나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을 수없이 격파했다.
심지어 점차 발전시켜 이제는 상황에 따라서 유기적으로 압박의 강도를 조절했기에 아스날처럼 패스 플레이를 위주로 하는 팀에게는 어려운 상대였다.
“일정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우리 팀이 점차 그들과 비슷한 수준에 도전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고, 뛰어넘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홈 경기라는 이점이 있긴 했지만,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고 있었기에 아스날보다 하루 일찍 경기를 마쳤다.
그런 일정상의 불리함이 존재했으나 주전 선수들이 대부분 휴식을 취했기에 어떻게 보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삐익-!
아르테타의 브리핑이 끝나고 시작되는 오늘의 훈련 세션.
선수단의 컨디션 조절과 피로를 누적시키지 않기 위해서 짧은 패스 위주의 훈련만 진행되었다.
세 개의 조로 나뉘어 각 팀을 구성하는 것은 네 명의 선수.
코치진과 감독으로 이뤄진 외곽의 조커들은 공의 소유권을 가진 팀의 멤버가 되어 패스 루트를 늘려주었다.
‘⋯크윽!’
“건, 밀려나면 안 돼! 그놈들 압박은 진짜 장난 아니야.”
순간적으로 빠르게 다가온 살리바에게 몸싸움에서 밀리며 공의 소유권을 빼앗기는 유건을 지도하는 것은 외데고르.
그는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리버풀이라는 팀이 가하는 전방 압박의 세기는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직접 겪어 보았으니까.
투욱-! 투욱-!
각 조마다 두 팀으로 나뉘어 패스를 건네는 소리가 가득한 트레이닝 센터.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은 선수들의 목소리였다.
“여기!”
“거기 막힌다, 다시 돌려!”
“맨온!”
좁은 지역에서 패스 플레이를 통해 들어오는 압박을 벗어나는 패스 위주의 훈련.
매번 세션이 바뀌긴 했지만 이렇게 하나의 훈련을 반복적으로 한 적은 없었던 아르테타였다.
그러나 오늘만은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특별했다.
엄청난 활동량을 기반으로 뛰는 팀이라면 리즈 유나이티드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리버풀은 그들보다 수준이 높다고 보는 게 정확했다.
거센 압박을 가하는 활동량을 기초로 하면서도, 패스 플레이를 곧잘 하는 팀이었으니까.
“건, 패스 게임이라도 실전이라고 생각해! 지금 그렇게 터치를 가져간다면 경기에서는 빼앗긴다!”
“클락! 그렇게 성의 없이 패스할 거면 차라리 팔을 넓게 펴고 등을 져라!”
“살리바, 너의 위치에서 그런 실수를 한다면 바로 골이라는 걸 알지 않나?”
돌아다니면서 조별로 진행되는 패스 훈련을 지켜보며 쉴새 없이 소리치는 아르테타였다.
그는 어차피 이기고 싶은 상대를 그저 빨리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전혀 패배라는 두 글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승리를 위한 이런 특별 훈련 세션을 준비한 것이다.
거센 압박을 이겨내는 탈압박과 혼잡한 공간에서 볼을 소유하는 연습.
소유권이 없는 팀에게는 패스 플레이를 돌리는 상대팀에게 압박을 가하는 연습.
단순하게 보이는 패스게임이었지만, 그런 두 개의 기대효과를 예상하면서.
삐익-!
결국 오늘 훈련에서 설정된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룬 팀은 나오지 않았다.
공을 빼앗기지 않고 패스 50회.
좁디좁은 공간이었기에 그 회수만큼 볼을 돌리기도 전에 보통 소유권이 넘어갔으니까.
마침내 울려 퍼지는 훈련 종료 휘슬.
“⋯흐아아아!”
“헥헥, 진짜 너무 힘들다.”
그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자리에 주저앉는 아스날 선수단.
돌아다녀야 하는 공간은 적었지만, 쉬지 않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체력적으로 많은 소모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다들 컨디션 조절 잘하고, 내일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마지막으로 오늘 일정의 종료를 알리는 아르테타의 끝맺음.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더 간단하게 훈련하고, 전술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간이 주를 이룰 것이다.
당장 다음날 있을 경기를 앞두고 치열하게 골대를 두고 미니 게임을 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안 되니까 말이다.
***
“⋯이 얘기는 정말 들을 때마다 꿈꾸는 것 같다니까.”
7라운드 경기를 앞둔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 통화를 하는 대상은 최창훈.
약 한 달 전 전달받았던 꿈만 같던 소식.
스포츠 브랜드 중 가장 유명하고 사용하고 있는 축구화 브랜드에서 홍보모델 제의가 들어온 것.
소식을 듣자마자 유건이 망설임 없이 승낙한 이후 계약조건에 대해 최창훈이 협의를 진행해왔고 최근에 체결하면서 마무리가 된 것.
“그럼 다음 A매치 일정에 찍기로 했다는 거지?”
“그래, 준비하고 있을게! 우선 내일 경기부터 이기고!”
그에 따라 촬영해야 할 첫 번째 화보가 정해졌는데, 센스있는 최창훈은 리그나 유럽대항전이 없는 기간에 일정을 잡았다.
보통 A매치 평가전이 진행되는 시기는 쉴새 없이 돌아가는 시즌에서 휴식을 꽤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
물론 두 경기 이상을 출전하게 된다면 시차 적응이나 체력 문제로 휴식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형수님이랑 같이 경기 직관이나 오라니까! 조카 태어나면 분명히 오기로 했던 거 잊으면 안 된다.”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 말한 뒤에는 시시콜콜한 잡담이 이어졌다.
가까이 살면서도 아직 태어나지 않고 박하린의 배 속에 있는 2세를 신경 쓰느라 경기장에 오지 못한 최창훈.
자녀가 무사히 세상에 나온다면 꼭 직관 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 이제 형도 들어가고! 여름이랑 전화할 시간이라 끊는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기가 해야 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여름과 통화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까.
“내일 이기면 이제 진짜 4위 안으로 시즌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
“리버풀은 정말 그 정도의 팀이거든.”
당장 내일 진행될 경기에 대한 얘기와 상대 팀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 등을 알려주는 축구 얘기가 첫 번째 대화 주제.
“그러면 이제 방송 일정은 잡힌 건가?”
다시 데뷔한 이후 두 번째로 촬영하고 있는 작품이 방영되는 날짜에 관련된 두 번째 대화 주제.
“⋯보고 싶다.”
“나두, 진짜.”
마지막은 언제나와 같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담긴 말들이었다.
몸이 떨어져 있더라도 같은 곳을 한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들이었으니까.
‘내가 패스만 그런 상황에서 잘해낸다면⋯.’
모든 전화를 끊으며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한 유건.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내일 펼쳐질 경기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자신이 해결해내야 하는 상황에 대해 고민해보면서.
그 끝없는 고민은 결국 해결책을 내리지 못한 채 스스로도 인지 못 하는 사이 단잠에 들게 했다.
‘골이나 어시스트⋯.’
공격포인트를 꿈속에서는 기록한 것인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