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여기라면!
“오늘 또 한 번 유건 선수의 활약을 기대하면서 중계를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울버햄튼을 상대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프리미어리그 3라운드입니다.”
안준성과 전지우의 중계를 시작으로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2승을 거둔 1, 2 라운드와 동일하게 라인업을 가져간 아스날.
1승 1무, 꽤 좋은 모습으로 시즌을 시작하는 울버햄튼도 마찬가지로 같은 스타팅 라인업이었다.
사이드 지역을 주무기로 삼는 늑대 군단.
“다들 오늘 수비 커버 많이 내려오고, 선제골은 우리가 넣자고!”
외데고르를 대신해서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것은 파티노.
아스날 유스가 배출해낸 스타이자 베테랑이었다.
어린 선수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했고.
삐이익-!
휘슬이 울리고 울버햄튼의 선축으로 시작되는 경기.
오늘도 아스날의 패스 플레이는 안정적으로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날카롭게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을 상대하는 늑대 군단도 지난 경기 아스톤 빌라보다는 훨씬 좋은 모습이었다.
전반 5분 만에 첫 번째 유효슈팅을 만들어냈으니까.
콰앙-!
‘⋯공간이 나지 않는다면, 때린다!’
그러나 아스날이 전체적으로 점유율을 가져갔기에 울버햄튼으로서는 진형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패스 플레이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팀 상대로 라인을 올려서 맞불을 놓는 것은 위험했으니까.
촘촘하게 서 있는 그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스날은 중거리 슈팅을 망설이지 않았다.
비록 이번에 날린 유건의 슈팅과 몇 분 전에 날린 파티노의 강한 슈팅 모두 골대 밖으로 벗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건!”
전반 17분,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 지역에서 캐시가 건네는 공을 잡은 유건.
돌아서 들어가려는 헤나투 페레이라가 달려오고 있었기에 그에게 들어오는 압박이 조금은 약한 상황.
그 순간 고개를 들고 골대 근처를 바라본다.
손을 들고 뒤쪽으로 물러나는 거대하고 든든한 자신의 팀원, 쿠아바를.
퍼엉-!
어찌 보면 꽤 생소한 장면.
유건이 하프 스페이스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모습은 많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훈련을 진행하면서 아르테타가 추천해준 유건, 쿠아바 조합의 새로운 방향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전설을 유지하는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에서 보여주었던 홀란드와 케빈 데 브루이너의 영상.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거나 빈 공간을 이용해 득점하는 그들의 모습을 참조하는 것이었다.
‘⋯크윽, 최상위권 팀을 만나기 전에는 무조건 다 이길 테다!’
얼리 크로스의 코스를 따라 몸을 이동시키는 쿠아바.
옆에서 중앙 수비가 몸을 부딪쳐왔기에 자연스레 속으로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욕심을 불태우며 시선만은 공에 집중한 채였다.
U23에서 활약하면서 1군에 콜업되었을 때마다 에디 은케티아에게 받았던 지도.
“어떤 순간에도 슈팅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날아오는 공에서 시선을 떼지 마라.”
그 말은 헤타페 CF 임대 시절에도, 아스날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은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덕분에 굳건하게 팔을 뻗어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머리에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다.
콰앙-!
거대한 체구에서 내려찍는 헤딩.
순간적으로 상대 선수를 티 나지 않게 살짝 밀고 반동을 이용해서 먼저 점프한 쿠아바.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공에 머리를 댄다.
‘제발⋯.’
골키퍼가 눈앞에서 헤딩 슈팅을 가장 막기 어려운 코스가 바로 땅으로 내려찍는 헤딩이었다.
높은 슈팅을 의식해서 자세를 미리 낮추고 있기는 어렵기에 순간적으로 몸을 날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금 손을 뻗는 울버햄튼의 골키퍼는 속으로 제발이라는 단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출렁-!
하지만 그의 바람을 이번에는 신이 들어주지 않았다.
손이 닿지 않는 측면으로 들어가는 쿠아바의 헤딩 슈팅.
아스날의 선제골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촤아아-!
엄청난 환호성을 내지르는 팬들 앞으로 거대한 몸을 이끌고 괴물처럼 달려간 쿠아바의 무릎 슬라이딩.
잔디가 거세게 갈라지며 그의 세레머니를 축하해준다.
촤아아-! 터억-!
“이 자식아! 너무 멋있잖아!”
그를 뒤따르며 무릎 슬라이딩을 따라 하는 러너, 소우사.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에 집중하면서 세레머니를 따 라하는 유건.
하지만, 슬라이딩에 집중하지 못했던 탓일까 잔디에 걸려서 넘어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 크크, 축따형 넘어지는 거 개웃기네!
- 미친 어시스트 보여주고 인간적인 면모까지 보여줘 버리네
- 그나저나 쿠아바 헤딩 지렸다. 저 덩치로 내려찍으면 어떻게 막냐
- 축따형도 나름 멋지게 슬라이딩하는 거 생각했을 텐데 카메라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리네
아스날 선수들이 모두 모여있는 상황이었기에 유건의 모습이 그렇게 주목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 방송의 중계화면에 분명히 잡혔다.
그리고 그 모습에 관한 얘기는 축따튜브의 채팅창에서 활발하게 다뤄졌다.
세레머니를 비춰주던 카메라 화면에 달려오던 유건이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아씨, 이거 어렵네.’
“아무튼 한 골 넣었다! 으아아!!”
지난번에도 실패했던 슬라이딩을 또 한 번 성공시키지 못한 유건.
그러나 창피함보다는 선제골을 넣은 기쁨이 더 컸다.
일어나자마자 쿠아바의 등 뒤에 올라타면서 포효를 내지른다.
거대한 자신의 팀원 머리를 두드리면서.
유건, 프리미어리그 3라운드에서 5번째 어시스트 기록.
현재 도움 1위.
***
“천천히 가보⋯, 아!”
그러나 앞서나가던 아스날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천천히 아래쪽 지역에서 빌드업을 하던 중앙 수비 지역에서 실수가 나와버렸다.
살리바와 호흡을 맞추는 중앙 수비수가 백패스를 약간 짧게 주는 그 타이밍을 이용해 상대 공격수가 공을 잡은 것.
천천히 가자고 전체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파티노가 말을 하다가 급박하게 수비 지역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왼쪽? 오른쪽? 가랑이?’
하지만 지금 만들어진 일대일 상황을 뒤로 돌릴 수는 없었다.
심지어 실수를 인지하고 뒤늦게 따라온 살리바의 주력으로도 공격수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패스 미스를 보고 가속을 붙여서 치고 나간 공격수였기에.
그래도 선방을 하기 위해 뛰쳐나오는 딘 힐슨은 머릿속으로 슈팅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딘 힐슨.
아스날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맡고 있는 전성기 나이이며 선방 능력이 장점으로 꼽히는 선수였다.
아르테타가 추구하는 빌드업에 관해서는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말이다.
투욱-!
양팔을 벌리며 앞쪽으로 몸을 던지는 힐슨을 보며 늑대 군단의 공격수가 내린 판단은 클래스가 있었다.
자세를 낮추며 하단과 측면을 막기 위한 움직임을 피하기 위해 살짝 찍어 차는 칩슛을 날렸으니까.
티익-!
‘⋯제발!’
이미 방향을 놓친 이상 실점 당시 울버햄튼의 골키퍼가 느꼈던 감정과 동일한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는 힐슨이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공을 최대한 강하게 쳐내본다.
그러나 핑거팁 세이브를 성공시키기에는 공에 닿은 손의 면적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출렁-!
힐슨의 손가락을 맞고 오히려 골대를 향해 더 가속이 붙어버렸다.
결국 출렁이는 아스날의 골대.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치명적인 실수와 함께 점수를 헌납하게 되었다.
“다들 집중하고, 다시 천천히 가보자!”
실수를 하고 잔디에 주저앉은 자신의 파트너를 일으켜 세워주며 선수단을 독려하는 것은 살리바였다.
팀원의 실수를 함께 만회해주자는 의미를 담아서.
아르테타 감독 아래 예전부터 있었던 그는 그 정신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낼수록 팀의 분위기는 올라가는 법이니까.
***
“다들 새롭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정신 차려!”
하프타임 이후 아스날에서는 4-3-3으로의 포메이션 변경이 이루어졌다.
상대적으로 미드필더에서의 개싸움이 적은 오늘 경기였기에, 클락 대신 투입된 외데고르.
파티노에게서 건네받은 주장 완장을 팔에 찬 그가 선수들에게 박수를 치며 격려하는 것으로 후반전을 시작했다.
“준비한 거 있잖아, 호버 코치를 믿어보자.”
그리고 격려가 끝이 아니었다.
승리의 행진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위해서 아스날은 트레이닝 센터에서도 치열하게 준비해왔다.
아르테타가 프리미어리그는 어떤 팀이라도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는 리그라고 생각했으니까.
독보적인 세트피스 코치 니콜라스 호버와 함께 말이다.
“마틴!”
“건!”
포지션 변경이 이루어지면서 유건은 왼쪽 메짤라, 외데고르가 오른쪽 메짤라 형태로 퍼졌다.
그들보다 약간 아래쪽에서 볼배급을 전체적으로 담당하는 것은 파티노.
양쪽의 선수들을 호명하면서 패스를 돌리는 그는 아스날의 보물이었다.
투 볼란치, 원 볼란치를 가리지 않고 탈압박과 안정적인 빌드업을 도맡아 주었으니까.
‘⋯마틴이라면!.’
그리고, 내려앉은 울버햄튼의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서 유건보다는 외데고르가 앞쪽으로 더 올라간 형태였다.
외질의 데이터를 동기화하면서 킬패스 실력이 늘고 있지만, 그 능력에 관해서는 아직은 압도적으로 외데고르가 더 높았다.
이미 수차례 프리미어리그에서 도움왕을 기록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을 정도기에.
전진하는 외데고르를 커버하기 위해 자연스레 중앙으로 이동하며 위치하는 유건이었다.
뻐엉-!
물론 그렇다고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공격 상황에서는 공간을 찾아내지 못한 외데고르가 뒤로 보낸 패스를 곧바로 몸을 틀며 왼쪽 사이드로 전환해주었다.
오버래핑하고 있는 소우사가 공을 잡아내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그쪽으로 움직임을 가져간다.
“소우사, 다시 줘도 되겠다!”
“러너, 바로 움직여!”
사이드 지역에도 두 명씩 배치시켜 놓은 울버햄튼의 수비 전술.
러너와 이대일 패스를 통해 뚫어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난 뒤 숨을 고르는 소우사와 가까워진 유건이 외친다.
왼쪽 날개 러너에게 공간을 파고들 것을 요청하는 것과 동시에 말이다.
투욱-!
소우사로부터 유건에게 전달되는 땅볼 패스.
편안하게 패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대 미드필더의 압박이 가해지지만, 키핑할 생각이 없었다.
투욱-!
때마침 사이드백의 안쪽을 파고드는 러너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그런 그에게로 단 한 번의 터치를 이용해서 다이렉트 패스를 보낸다.
스으으-! 퍼억-!
“크윽!”
위협적인 러너의 돌파를 막기 위해 패스가 들어오는 곳을 향해 슬라이딩하며 태클을 하는 울버햄튼의 사이드백.
하지만 공에는 닿지 못하고, 러너의 다리를 걸어버린다.
꽤 큰 충격음과 함께.
삐익-!
휘슬과 함께 옐로 카드를 꺼내 드는 주심.
프리킥이 주어진 상황에서, 다행히도 일어난 러너의 모습은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골대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직접 슈팅을 노릴 수도 있는 상황.
“마틴, 파티노! 여기라면⋯.”
“나도 그거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프리킥을 차는 것은 외데고르나 파티노.
하지만 그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옆에 함께 서 있는 유건.
이 위치에서는 약속된 세트피스 전술이 있었으니까.
후반전 31분,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내는 아스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