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쫓아오지 마
“여기로 줘!”
“잘했어, 어린 친구!”
“건, 리턴 내줘요!”
2라운드 경기 이후부터 아스날 1군 훈련에는 유망한 헤일 앤드 출신들이 여러 명 합류하기 시작했다.
아르테타가 직접 유스 경기까지 관람하면서 차출해낸 선수들을 콜업한 것이다.
약 한 달 뒤부터 아스날은 유로파리그를 병행하는 힘든 일정이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더불어 그뿐만 아니라 이후의 리그컵, FA컵 일정까지 생각한다면 로테이션 멤버까지 갖춰야 하는 것은 필수였다.
“긴장 풀어!”
자신이 용인 FC에서 프로 선수로서 새 출발을 하던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그들의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던 유건.
한 번이라도 더 말을 붙이면서 그들의 플레이까지 자연스레 이끌어나간다.
“건, 여기 비었어요!”
“크윽, 미안해요!”
1군 콜업은 유스 입장에서는 엄청난 기회였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 당연했다.
그래서일까 어느 정도 욕심을 부려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유스들이었다.
목표 중 하나로 간직하던 프로 무대 데뷔라는 순간이 어떻게 보면 가까워진 상황이기도 하니까.
베테랑 선수들의 주도와 유건의 친밀한 말 붙임으로 인해 경기 중에 자연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가진 장기를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
“으하, 으하!!”
어린 선수들의 혈기가 더해진 콜니 트레이닝 센터는 이전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
연습 경기에서마저 골을 만들어내면서 미친놈들처럼 세레머니하는 유건과 쿠아바를 필두로 말이다.
휘적-! 휘적-!
“적당히 세레머니 하라고, 이놈들아!”
조끼를 입고 있는 유건과 쿠아바, 캐시가 포함된 팀은 브라질에서 온 유스에게 배운 삼바 리듬으로 재차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외데고르가 만류해보지만 그런 그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사랑하는 아스날의 분위기가 좋아진 게 느껴졌으니까.
“이렇게 해야 된다니까, 캐시! 드리블은 잘하지만 춤은 젬병이구만?”
열정적으로 오전부터 훈련을 주도했던 아스날의 감독 미켈 아르테타.
그도 그 댄스 세레머니를 함께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연습경기를 마지막으로 오늘 정해진 일정이 종료되는 상황이기도 했고, 스스로도 어울리고 싶었다.
젊고 혈기 넘치는 운동장 안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
‘⋯크흠, 감독님.’
하지만 캐시의 춤을 지적하면서 삼바 리듬을 우스꽝스럽게 타는 아르테타의 몸짓은 박자가 틀렸다.
마치 용인 FC의 이상찬 감독이 박자를 무시하고 춤을 추던 것처럼.
그 장면을 보면서 유건은 속으로 생각했다.
‘몸치시구나.’
역시 신은 공평하다고.
신은 아르테타에게 카리스마 있는 외모와 천재적인 축구 전술 지식을 주었으나, 박자 감각은 주지 않았기에.
***
“여러분, 안녕하세요!”
“분위기요? 요즘 팀 전체적으로 단합되어 있어서 너무 좋아요.”
“딱히 어색한 선수는 없고, 잘 지내고 있어요!”
훈련 이후 집으로 돌아온 유건은 여름과의 전화 통화를 기다리며 별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처음 방송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전한 유건이었지만, 방송에서는 티 내지 않았다.
- 축따형! 다음 경기에도 공격 포인트 기록 가즈아
- 훈련 사진들로 이미 분위기 좋은 거 알고 있어요! 부상 조심하세요 축따형!
- 크, 일 년 전 이맘때쯤에 용인 구단 라커룸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 혹시 아스날 라커룸도 축따형이 보여주나?
“⋯크흠, 약간 감독님이 투머치 토커이시거든요? 그래서 타이밍이 좀 애매해요.”
“열심히 해서 우승컵 들고 난 뒤에는 제가 꼭 찍어서 올려볼게요.”
채팅 중에서 마지막 내용이 눈에 들어와서 그것에 답변해주는 유건.
댄스 파티를 펼치는 라커룸 현장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말하는 대로 정말 상황이 애매했다.
아르테타의 브리핑은 경기 이후에도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선수들을 칭찬하면서 꽤 긴 시간 이어졌으니까.
- 형, 정말 아스날 훈련장 가면 다 사인해주시는 거예요? 저 다음 달 영국 갑니다!
└ 흐흐, 저는 이미 받았죠! 축따형 아예 차에서 내려서 다 해주십니다
└ 콜니 가보면 현지에 계신 아스날 팬분들이 축따형 엄청 좋아하심
쉴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창이었기에 모든 내용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눈에 띄는 내용들은 답변해주고 있었다.
이번에 보인 것은 유건 스스로도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였다.
트레이닝 센터 앞에서 기다리면 사인을 받을 수 있냐는 구독자의 질문.
“어휴, 그럼요! 얼마든지 해드려야죠! 멀리서 저를 보기 위해 오시는데요.”
항상 매일같이 하고 있는 팬서비스였기에, 대답하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먼 곳까지 오는 그들에게 무엇을 더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오늘도 다들 방송 들어와 주셔서 감사하구요! 조만간 파티 한 번 하는데 그때 살짝 영상 올려볼게요!”
그 이후 몇 개의 질문에 더 대답해주고 나서 방송 종료를 알리는 유건이었다.
3라운드 경기 이후에 예정된 영입생 환영회 영상을 기회가 되면 올려보겠다는 말과 함께.
“여름아! 촬영은 잘 끝냈어?”
“그럼! 지난번보다 배역 비중도 더 늘어났다구!”
조금 더 하려고 예정했던 방송을 종료한 이후는, 여름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밤을 배경으로 촬영되는 씬이 있었기에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게서.
이전보다 더 주목받고 있는 작품에 캐스팅된 여름은 조연 역할이었지만, 훨씬 비중이 커진 배역을 맡게 되었다.
주연배우와 가장 많은 호흡을 맞추는 절친한 친구 역할을.
“그때 얘기했던 그 친구랑은 잘 지내고 있구?”
“응응, 얘기해볼수록 더 코드가 잘 맞는 것 같아서 이미 친해졌지! 오빠는 어때?”
몸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오직 여름을 향해 있는 유건이었다.
그녀의 생활에 대해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지난번에 얘기가 나왔던 주연 여배우에 대해서 물어본다.
이미 한국에서는 너무 유명한 여배우인 그녀의 나이대가 여름과 비슷했기에 이번 촬영을 계기로 친해졌던 것.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사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눌 정도로 말이다.
“너 못 보는 것만 빼면 나야 잘 지내지! 지난번에 봤던 선수들 다 괜찮아 보였잖아, 걱정 마!”
돌아오는 여름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애정을 빼놓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관계가 인정된 이후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이 더 깊어진 둘은 다시 만날 수 있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평생을 기약할 그 순간을 가끔 생각해보기도 했다.
“피곤할 텐데 얼른 씻고 나와!”
“싫어, 조금 더 통화할 거야!”
밤샘 촬영으로 피곤한 여름이 걱정돼서 그녀를 재우려는 유건.
통화한 지 40분이 된 시점이었지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이 순간은 피로하지 않았다.
“⋯헤헤, 이제 조금 졸리기 시작한다. 오빠 이번 경기는 시간이 좋아서 그 친구랑 같이 보기로 했으니까 잘하자!”
“무조건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할게! 얼른 정리하구 자고 일어나.”
“응응, 오빠도 이제 잘 자!”
오늘의 마지막 대화 내용은 여름의 귀여운 부탁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주연 여배우와 함께 집에 돌아와 경기를 시청하니까 멋진 활약을 보여달라고.
내가 이런 남자친구를 만난다고 장난 섞인 허세를 부려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여름의 그런 애교 섞인 부탁은 경기가 며칠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유건의 승부욕에 방아쇠를 당겼다.
‘늑대 군단!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조금 더 많은 활약을 해야겠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몸을 눕힌 뒤에도 경기에 대한 각오를 다질 정도로 말이다.
3라운드 매치업 상대는 울버햄튼 원더러스.
늑대 군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에미레이츠로 불러들이는 경기였다.
리그 도움 1위를 달리고 있는 유건에게 승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된 이 순간은, 그들에게는 불행이었다.
***
“힐슨, 부탁한다! 이번 파티에 저 팀에 있는 미친놈들이 샴페인 터트리자고 했다!”
“저 두 명의 멍청이들은 내가 꼭 막아낸다!”
다음날 아스날 훈련이 끝나고, 선수단 모두 집으로 바로 복귀하지 않았다.
바로 예정되어 있는 내기가 있었기 때문에.
3라운드 경기를 치르고 예약해놓은 호텔에서 진행될 아스날 소속 모든 직원들이 참가하는 영입생들 및 유스 환영회.
PK 내기에서 진 팀이 그날의 비용을 전부 지불하기로 했다.
“마세코! 니가 어제 내 머리 두드린 대가로 오늘 두 개만 막아라!”
“가자아! 저 팀에는 돈 많은 아저씨들 많잖아!”
주전 골키퍼 딘 힐슨을 포함한 베테랑 멤버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외데고르의 팀.
2옵션 골키퍼 샘 마세코를 수문장으로 둔 젊은 패기의 팀인 유건의 팀.
어제 장난을 기억하며 마세코에게 부담을 지워주는 캐시.
반대편 팀에는 나이대가 더 높았기에 돈이 자신들보다 많을 거라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하는 쿠아바.
삐이익-!
“마틴! 너희가 선축이다!”
그 내기 현장 주변에는 아르테타를 포함한 모든 코치진들도 함께였다.
직접 비용을 지불해준다는 선수들의 내기인데 환영이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들은 심판까지 봐주면서 적극 협조했다.
출렁-!
첫 번째 외데고르의 골은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마세코.
하지만 유건의 팀에서도 캐시가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티잉-!
“으하하, 두두두두두! 살리바!”
“이 개자식들아!”
두 번째 키커로 나온 살리바가 골대를 맞추는 순간 유건의 팀에서는 그의 응원가를 크게 부른다.
그 중간으로 난입하면서 젊은 선수들의 목을 감으며 장난치는 살리바의 표정은 실축했음에도 표정은 밝았다.
첫 번째나 마지막 키커로 나와서 실수한 게 아님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출렁-!
“아자자!! 가자고!!”
그러나 마찬가지로 두 번째로 나온 쿠아바가 골을 성공시키면서 앞서나가기 시작하는 유건의 팀.
출렁-! 출렁-! 출렁-! 퍼엉-!
“으아악! 힐슨 미친놈아!”
“나이스!! 이게 경험이다 이 어린놈들아!”
네 번째 키커로 나선 페레이라가 실축하면서 힐슨을 원망해보지만, 외데고르 팀의 환호성에 묻혔다.
이걸로 내기는 동점 상황.
마지막 키커로 나서는 러너와 유건의 발에 꽤 큰 금액이 오고 갈 예정이었다.
출렁-!
“아으, 닿았는데!”
강하게 찬 러너의 슈팅은 마세코가 방향을 잡았으나, 장갑에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키커 유건.
자신의 발에 주목하고 있는 팀원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전설적인 장면을 재현하세요]
[PK 상황에서 파넨카킥으로 골을 넣으세요 (0/1)]
운이 따라주지 않는 오늘 머릿속의 메세지는 파넨카킥을 요구하고 있었으니까.
이래서 사실 자신의 차례까지 오기 바라지 않았던 유건의 속마음은 비밀이었다.
요구하는 것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오히려 데이터 동기화율이 깎이는 것은 이미 확인한 사항.
투욱-!
그러나, 오늘은 또 한 번 그 메세지가 요구하는 대로 파넨카킥을 시도하는 유건.
힘찬 도움닫기로 페인트를 주면서 발이 공에 닿기 전 마지막 순간에 힘을 뺀다.
그리고 살짝 공의 아랫부분을 찍어 찬다.
뻐엉-!
“으하하, 이 어린놈아! 내가 예상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유건의 그런 도전적인 마음을 예상했던 딘 힐슨은 몸을 날리지 않고 서 있었다.
천천히 날아오는 공을 발로 높게 찬 뒤 허망한 표정을 짓는 유건의 앞에서 도발한다.
다다다-!
“으아아아아! 쫓아오지 마 이 자식들아!”
유건은 그 도발을 지켜볼 새가 없었다.
자신이 실축하자마자 뒤에서 무섭게 뛰어드는 팀원들이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의 주력으로 도망칠 뿐이었다.
‘⋯미안하다고!’
속으로 미안함을 표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