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지난 시즌에 비해
‘…조금 느린데? 이건 압박해야지!’
경기가 시작하고는 아스날의 홈팬들이 예전 아르테타 감독 시절 불렀던 응원가를 불렀다.
그때부터 남아있는 외데고르나 살리바, 소우사의 응원가들을 번갈아 가면서 말이다.
에미레이츠의 모든 팬들이 즐겁게 살리바의 응원가를 외치고 있을 때쯤 기회가 찾아왔다.
빌드업을 하던 중 사이드백에게서 골키퍼에게로 가는 패스가 조금 느린 것을 확인한 아스날의 오른쪽 날개 캐시.
천천히 패스 루트만을 막아서던 움직임에 급격하게 가속을 붙여 압박을 가한다.
뻐엉-!
물론 골키퍼가 훨씬 공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빼앗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방 능력은 탁월하지만 발기술이 좋지 않다고 평가받고 있는 맨유의 골키퍼가 부정확하게 킥을 처리하는 것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급하게 처리한 그 공은 중앙선을 넘어서 등을 지고 있는 스트라이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짧게 떨어지는 공에 뛰쳐나와서 점프하며 가슴으로 공을 받아내는 선수가 있었으니까.
“나이스 키핑!”
“침착하게 해봐, 고개 들어도 돼!”
그의 정체는 바로 아스날의 영입생 율리안 클락.
클락이 평소보다 높은 위치에서 커팅을 성공한 것은 오늘 아스날의 라인 자체가 높게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사령탑 토마스 에르난데스가 부상 때문에 오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니까.
성공적으로 공을 따낸 그에게 주변 상황을 알려주는 아스날 팀원들이었다.
고개를 들어서 앞을 바라봐도 된다고.
투욱-!
“건!”
그리고 클락의 선택이 내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아래쪽에서 천천히 빌드업하는 상황이 아니라 다급하게 클리어하는 볼을 차단해냈다.
여기서 공을 전달해줄 선수는 한 명밖에 없었다.
외데고르나 유건이 뛰는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뛰고 있는 사람에게.
오늘 경기는 선발로 뛰고 있었기에 패스를 건네받는 유건이었다.
“뒤에 없으니까 돌아도 돼!”
등 뒤로 들려오는 팀원들의 말과 함께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면서 공을 잡아둔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공격을 위해 전진하기 위해서.
“건!”
“여기로 넣어줘!”
“사이드 벌려!”
이미 편하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대를 응시하며 돌아선 유건에게, 패스 선택지는 너무나도 많았다.
양쪽 윙어와 쿠아바는 이미 유건이 패스를 넣어 주리라 믿고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크게 외친다.
그는 훈련 중에도 항상 정확하게 공을 보내주는 선수이자 팀원이었으니까.
‘…다들 좋은 움직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여기가 좋아.’
그러나 세 명 중에 유건이 공을 보내줄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이었다.
공을 받아서 몸을 돌아서는 순간, 이미 정해두었다.
안쪽으로 파고들며 오른발로 감아서 때리는 슛이 일품인 아스날의 왼쪽 날개 카일 러너.
오프사이드 라인에 걸쳐 전진하지 않고 중앙으로 조금씩 들어오고 있던 그에게로 말이다.
스으으-!
러너를 마크하고 있던 오른쪽 사이드백과 중앙 수비수 사이 공간으로 찌르는 패스.
유건의 발이 공에 닿는 순간, 출발을 시작한 러너였다.
그 말은 패스를 보고서 수비가 발을 뻗는다면 이미 늦었다는 말이었다.
투우욱-!
물론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트리고 일대일의 상황을 만든 선수를 향해 골키퍼가 뛰쳐나오긴 했다.
그러나 카일 러너는 지난 시즌 은퇴를 앞둔 은케티아 대신 아스날의 공격을 도맡아 했던 선수였다.
그런 핵심선수였던 덕분에 지금 이 상황에서 골대를 흔드는 마무리를 짓는 능력은 충분했다.
물론 이번 시즌에는 쿠아바와 아이솔레이션 위주의 드리블 공격을 하는 캐시가 공격진으로 편성되면서 이전보다 비중이 줄긴 하겠지만 말이다.
몸을 날리는 골키퍼를 살짝 넘는 칩슛.
와아아아아-!!
“러너!!”
“으하하, 나이스!!”
환상적인 마무리에 에미레이츠가 들썩인다.
골대가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팬들의 함성은 또 한 번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그 기분 좋은 느낌을 받으며 유건은 어시스트를 기록하게 해준 러너의 등 뒤로 점프한다.
이번 시즌에 터진 팀의 첫 골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서.
그들의 뒤로 덮이는 다른 팀원들까지.
“러너 선수의 환상적인 마무리였습니다! 침착하게 칩슛으로 마무리하네요.”
“물론 슛이나 유건 선수의 패스도 좋았습니다만, 저는 이번 장면에서는 클락 선수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압박을 성공시킨 캐시 선수도 위협적이었지만 클리어링 하는 공을 차단해낸 클락 선수가 시작점이었죠!
안준성과 전지우는 골 장면을 슬로우로 보면서, 클락의 패스 차단이 중요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에 대한 아스날 팬들의 반응이 반반으로 나뉘긴 했지만 이번에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 클락이 오늘 같은 모습만 보여주면 진짜 아스날 미드필더 조합 개좋아 보이는데?
- 아니 진짜 클락 그냥 풀어두니까 공 다 빼앗아오는 것 같은데!
- 마인츠 감독 울고 있는 거 아님? 프리시즌부터 옆에 패스 전담해주는 파티노, 외데고르 있으면 클락은 날아다니는 중임
3선 미드필더 조합 자체에 대한 칭찬도 많았다.
수비가 장점은 아니지만 패스를 전담하는 빌드업 위주의 미드필더.
패스가 부족하지만 수비를 도맡아서 전담하는 역할 위주의 미드필더.
오늘 출전한 파티노와 클락의 조합은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조합으로 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자,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하던대로 경기 끝날 때까지 밀어붙여!”
세레머니가 끝난 아스날 선수들의 중앙에서 소리치는 것은 바로 캡틴 외데고르.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재차 집중력을 요구한다.
첫 번째 경기에서 지난 시즌 3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잡아낸다면 기세를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누구를 만나도 이길 수 있다는 그런 마음가짐과 함께 말이다.
‘…한 골 더 넣으러 가야지!’
그 상황에서 유건은, 당연히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외데고르의 말을 듣고 현재 시간을 확인한 그는 추가골을 넣어야겠다는 목표를 잡는다.
아직 정규 시간이 64분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아스날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전반전 26분 선제골.
득점, 카일 러너.
도움, 유건.
***
“…젠장! 토마스가 없으니까 아스날한테도 밀린다니!”
“지난 시즌에 비해 경기력이 너무 좋아졌는데?”
최근 몇 년간 상대하던 아스날만 기억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오늘 보여주는 그들의 경기력은 약이라도 복용한 듯이 완전 달라져 있었으니까.
아무리 토마스 에르난데스가 부상으로 빠져있다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전반전이 끝난 지금, 경기가 진행되는 양상은 그렇지 않았다.
“토마스 문제가 아니야, 지금 전체적으로 아스날이 더 잘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돼.”
“쟤네 오늘 미드필더 라인을 압박해도 여유롭게 풀어 나온다고!”
그러나 손을 놓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몇 분 뒤, 후반전이 펼쳐지기 전이었으니까.
양손을 아래쪽으로 내리면서 맨유 선수단을 진정시키는 그들의 캡틴.
중간중간 오늘 팀의 경기력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주장의 말을 듣고는 침착함을 찾는다.
“전반전을 우리가 못했다기보다는 상대 팀이 너무 잘했다.”
“전체적으로 진형을 내리고, 역습을 노린다.”
마침내 최종적으로 전술에 대해 수정하는 에릭 텐 하흐.
그가 맨유 감독으로서 아스날을 인정하고, 전체적인 라인업을 아래쪽으로 끌어내린다.
깊숙한 수비 지역으로 상대 팀을 빨아들여 순간적인 역습 전환으로 골을 얻어내기 위해서.
“비수를 꽂으러 가자, 우린 한 방을 노린다.”
그렇게 하프타임을 끝낸 그들이 다시 한번 그라운드에 쳐들어온다.
에미레이츠라는 적진에서 자신들의 깃발을 성공적으로 꽂아 넣기 위해서.
치명적인 역습을 이용해서 말이다.
‘아무리 아르테타라지만 벌써 이렇게 변화시키다니….’
그라운드로 나가는 선수들의 등 뒤로 손을 턱에 대고 고민에 빠진 텐 하흐.
그는 아스날 선수단에게 부린 아르테타의 마법이 무엇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당장 작년에 맞붙었을 때 살리바, 외데고르, 은케티아 등 이름 값에 비해 너무 엉망이 된 그들의 모습이 기억났으니까.
***
콰아앙-!
“나이스 슛이야, 쿠아바!”
맨유 선수단이 엉덩이를 내리고 플레이하는 탓에, 후반전에도 아스날의 점유시간이 길었다.
대놓고 한두 명의 공격수를 제외하고 모두 수비를 하며 전술을 드러냈다.
수비 진형에 많은 숫자의 선수를 두면서 단단한 라인을 만드는 듯했으나, 일시적이었다.
토마스 에르난데스가 있었다면 세밀하게 라인을 조절해 주었겠지만 그가 없었다.
덕분에 애매해진 수비 사이의 공간으로 아스날 선수들은 마음 놓고 침투하고 있었다.
공간이 열리지 않을 때는 지금 보여주는 쿠아바의 강한 중거리 슈팅 같은 걸로 점차 균열을 내고 있었다.
“역습 조심하면서! 마무리 확실하게 짓고 내려오자!”
역습을 노리면서 롱패스의 상황이 오면 달려가는 선수를 겨냥하는 맨유의 전술.
역습을 조심하면서 짧게 짧게 만들어가거나 급작스런 슈팅으로 골문을 열어젖히려는 아스날의 전술.
수비를 하는 맨유 선수들도, 공격을 하는 아스날 선수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상반되는 전술과 진형이었지만 서로 실수가 나오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반복적인 움직임은 오히려 막기 쉽겠지.’
이런 상황에서 해결사는 누구이겠는가.
진가의 보도 킬러 패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순간을 창조하는 아스날의 공격형 미드필더, 유건이 나서야 할 시간이었다.
상대 선수들을 끌어들여 벌어지고 있는 수비 라인의 공간을 뚫어버리기 위해서.
“건, 굳이 니가 상황을 다 만들어놓고 주려고 하지 마.”
“그 타이밍에 넣었어야 캐시나 러너가 드리블 치기가 더 쉬울걸? 팀원을 믿어야 해.”
“예측하기 쉽다는 게 이런 거겠지. 패스를 줄 거라고 이미 머릿속에 생각을 하고 있던 거 아니야?”
“왼쪽, 오른쪽, 중앙 모두 가로막혀있으면 고민하지 마. 슈팅을 날리라니까!”
유건의 머릿속에 스쳐 가는 기억.
아스날의 레전드이자,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팀의 캡틴.
마틴 외데고르에게서 배우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움직임과 조언들이었다.
훈련이나 프리시즌 동안 그를 따라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던 유건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몇 년 동안 리그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한 경험이 있는 외데고르였으니까.
“살리바! 라인 한 칸 더 올려도 돼?”
“지금 라인으로 무실점으로 끝내는 게 더 좋은데, 한 골 더 넣을 방법이라도 있는 거냐?”
“좋은 생각이 나긴 했는데 그게….”
“의견을 한 번 물어볼게.”
그 기억을 떠올리고는 공이 코너킥으로 진행되려 하자마자 헤딩을 위해 올라오는 살리바를 불러서 의도를 전달한다.
역습을 의식해서 어느 정도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는 라인을 끝까지 올리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거부하는 살리바였다.
일부러 역습 기회를 주고,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미리 자리를 잡아놓자니.
그게 뚫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만약 유럽 대항전이나, 타이틀이 걸린 매치였다면 좋은 작전이었을지도.’
도박이 섞인 수였지만 생각해보니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골을 무조건 넣어야만 다음 라운드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대회였다면, 동의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미 득점을 했기에 승리를 위한 클린 시트가 더 중요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