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덩치도 크면서 쫄기는
헤타페 CF로 복귀한 유건의 하루하루는 바쁘게 지나갔다.
남아있는 리그 경기는 단 4경기.
그것들을 잘 치러내기 위해 모두 실전 같은 훈련을 하고 있었으니까.
“건, 내 스페인어 이제 봐줄 만하지?”
“근데 어쩌냐? 우리 이제 곧 돌아가는데….”
약 4개월의 시간 동안 이루어진 그들의 언어 교환은 꽤 효과가 있었다.
유건은 영어로, 쿠아바는 스페인어를 이용해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가 되었으니까.
집에 돌아가기 전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려는 쿠아바.
그런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일깨워준다.
“알고 있다고, 이 자식아! 우린 돌아가야지.”
다음 시즌에는 아스날로 복귀해야 하는 둘이었으니까.
서서히 마음을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헤어짐의 시간을 대비하는 시간.
이미 많은 정이 들었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탕탕-!
“그렇지, 드디어!”
유건과 쿠아바가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자각하는 그 시각.
기다리던 메일을 건네받은 아르테타가 책상을 치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올해부터 걸쳐 진행되고 있는 리빌딩의 핵심이라고 점찍어둔 선수.
유건에 관한 메일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워크 퍼밋 추천서 : 본인은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에서 많은 우승을 거머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바로, 임대 전에 약속했던 워크 퍼밋 추천서.
이게 있다면 다음 시즌 유건을 아스날 소속으로 경기를 뛰게 할 수 있었다.
최근 프리메라리그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의 활약에 구단의 이사진들과 팬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던 상태.
지금 상황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소식이었다.
“…알버트, 건의 워크 퍼밋에 대해 심사받아놓자고.”
“그리고 그때 얘기한 미드필더의 영입을 부탁한다고 전달해주게.”
“사이드백의 경우는….”
곧바로 연락하여 그에 관한 절차를 처리하려고 하는 아르테타였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이미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검토하고 있는 사항들이 많았으니까.
***
“나이스으!!”
“오늘도 승리다!”
다음날부터, 유건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마지막 라운드에 맞붙게 될 마드리드와의 경기 전까지.
프리메라리가 35라운드 경기에서 1골을 기여하며 2:1의 승리를 이끌었던 유건이었다.
코너킥에서 튕겨 나온 세컨볼을 재차 올리는 크로스를 통해 가르시아의 골을 어시스트했던 것.
“유건 선수가 오늘도 결국 어시스트를 만들어냅니다!”
“저 시야가 보였던 걸까요? 마르티노에게 보냈던 패스는 정말 엄청납니다!”
“정말 매 경기를 치르면서 계속해서 포텐이 터지고 있는 유건 선수입니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어시스트를 하는 데 성공했다.
반대쪽에서 순간적으로 돌아 들어가는 마르티노의 움직임을 발견해내고, 패스를 건네는 데 성공했으니까.
출전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쌓고 있는 유건은 캐스터들이 언급하는 말 그대로, 잠재되어 있는 포텐이 터지고 있었다.
실제 경기에 기여하는 비율을 따진다면 세계 최고 유망주들 중에서도 상위권이었다.
“이제 건의 존재가 경기력 전체를 좌우하는군.”
그런 유건이었기에 헤타페 CF 라인업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 상당했다.
팬들에게 마지막 라운드에 멋진 경기를 선사하고, 선발 선수들의 체력을 관리하기 위해 가동한 로테이션.
그 결과 어제 펼쳐진 프리메라리가 37라운드에서 패배를 하게 되는 헤타페였다.
리그 막바지라 순위에는 영향이 없었지만, 어느 누가 승리보다 패배를 원하겠는가.
이니에스타에게 말을 걸어왔던 코치의 말처럼 유건이란 선수의 존재는 그들에게 숙제를 가져다주었다.
“그때 말씀하신 선수들과는 접촉을 긍정적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건뿐만이 아니었다.
긴급하게 임대를 통해 구멍을 메웠던 스트라이커 자리였지만, 쿠아바의 활약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심지어 엠마누엘 에제보다 뛰어난 경기력은 헤타페 CF의 질주를 지원할 수 있었던 것.
그 두 선수를 대체할 선수들은 훨씬 전부터 찾고 있었던 이니에스타와 코치진.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에 오래 걸렸지만, 팀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들을 찾아내서 접촉하고 있었다.
‘또 한 번 임대로 데려올 수 있을 만한 선수가….’
최근 경기가 끝나는 날도 빠르게 퇴근하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오늘 펼쳐진 홈경기장에서 패배를 경험한 뒤에도, 남아서 적절한 선수에게 영입 제의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으니까.
유건과 쿠아바만 한 선수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금액도 금액이었지만 나이도 중요했다.
헤타페 CF의 전술에는 많은 활동량이 기본적으로 요구되기에.
결국, 다른 팀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도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 두 번째 선수, 다음 장의 세 번째….”
그렇게 그들의 고민도 밤이 늦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강등을 피하면서 영입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강등의 경우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부유한 팀은 아니었다.
원하는 선수와의 합의가 되더라도 소속팀이 요구하는 금액을 맞춰주지 못하면 영입이 불가할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여러 선수를 검토하기 위해 잠을 줄여야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한 각자 팀들의 사정이 종합적으로 경쟁하는 시기가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 이적 시장이라는 격변의 시기가.
***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경기,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경기가 될 것이다.”
“모두 어떤 결과를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라!”
“그 말만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다.”
마드리드와의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이번 시즌.
어제의 경기 이후 회복훈련을 진행한 이니에스타의 브리핑은 이전까지와 달랐다.
열정적으로 상대 팀을 분석하던 그가 선수들에게 그저 최선을 다하기를 요청한다.
그랬던 이유는 아마 두 가지.
마드리드가 이미 우승을 확정지은 상황인 것이 첫 번째.
유건과 쿠아바라는 두 선수를 떠나보내게 되는 경기인 것이 두 번째일 확률이 높았다.
“저 멍청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경기는 이겨야 된다고!”
어제 보여주었던 그런 이니에스타 감독의 걱정 어린 말에 활기 섞인 목소리를 불어넣는 것은 바로 캡틴 다니 가르시아.
다음 시즌에 대해 걱정하는 감독과 코치진들의 마음을 눈치채고 선수들을 이끈다.
성대한 고별식을 치러주자고 외치면서.
“조금 더 중앙으로 와줘도 돼!”
“지금 패스 넣어!”
유건과 쿠아바에게 자신들을 배려하는 다른 선수들의 마음은 당연히 느껴졌다.
그러나 유건은 그런 부분에 티를 내고 울적해 하는 것은 프로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애정을 보여주는 팀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마지막 경기까지 지켜봐 줄 팬들에게 무례한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훈련에서 더욱 열심히 실전처럼 임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노력했다.
“페르난데스, 미들 지원해줘!”
“마르티노도 진형 보고 자리 지키고!”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팀원들에게 소리치며 최선을 다하는 유건이었다.
시즌 파이널 라운드에서 맞붙을 레알 마드리드를 격파하기 위해서.
“건을 이용해!”
경기 5일전, 막바지까지 스퍼트를 올리기 시작하는 헤타페 CF의 트레이닝 센터였다.
상대 팀을 위한 전술을 맞춰서 준비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익숙하고 잘하는 경기를 펼치기 위해서.
패스 루트를 담당하는 유건에게 공을 전달하는 연습을 하면서 말이다.
“지금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줬어야 돼!”
4일을 남겨두고는 코파델레이를 위해 준비했던 세트피스 전술을 다시 한번 연습했다.
이번 시즌 준비했던 모든 것을 팬들 앞에 또 선보이기 위해서.
그리고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혹시나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
‘…여기로!’
경기 사흘전 훈련에서는, 그동안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킬패스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유건이었다.
조끼 팀으로 배정되어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패스를 더 날카롭게 다듬었다.
“그대로 때려!”
이틀을 남겨둔 날에는 의식적으로 중거리 슈팅을 계속해서 날렸다.
조금씩 스스로가 원하는 슈팅 타이밍을 잡아보기 위해서.
실전에서 찾아올 그 순간을 미리 경험하기 위해서 말이다.
“팬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경기 당일이 되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도착한 헤타페 CF의 라커룸.
훈련을 준비할 때의 브리핑과 비슷하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이니에스타였다.
상대 팀이 얼마나 강팀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어차피 계속해서 이겨야 될 상대일 뿐이다!”
“긴장하지 마라!”
그런 그의 옆에서 오늘 헤타페 CF 선수단을 격려하는 것은 코치들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강팀인 것은 틀림없지만, 어차피 내년에도 붙게 될 팀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너무 긴장할 필요없다고 말이다.
“그래,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바보들아.”
“다들 덩치도 크면서 쫄기는!”
거기에 덧붙이는 건 쿠아바와 유건이었다.
가장 먼저 유니폼을 입고 라커룸의 문을 나가기 전에, 고개를 돌려 선수단에게 들리도록 말한다.
그리고 그를 따라가면서 한 번 더 선수단을 자극한다.
‘곧 떠나는 자신들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팬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느냐’라는 의미가 담기기라도 했을까.
“…이리 와, 멍청이들아!”
나이가 가장 어리면서도 자신들을 일깨우는 말을 하는 유건과 쿠아바.
그런 그들이 기특하면서도 곧 헤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공존했다.
그랬기에 더더욱 친밀한 척 장난을 치는 가르시아였다.
애써 경기장으로 걸어 나가는 그들의 어깨를 양손으로 끌어와 움켜쥐면서 말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오늘, 이번 시즌 프리메라리가의 마지막 라운드가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헤타페 CF의 경기죠! 결과에 의해 두 팀의 미래가 달라지지는 않지만, 재밌는 경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 스포츠 채널에서는, 당연히 이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동일하게 진행되는 마지막 라운드 경기 특성상 두개의 채널로는 중계가 한정적이었다.
손지민이 뛰는 바르셀로나, 이호준의 소시에다드, 유건의 헤타페.
그중에 가장 강팀인 바르셀로나는 보통 고정이었으니 당연히 남은 채널의 주인은 유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건 선수가 아마 이번 경기를 끝으로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루이스 선수로서는 아쉽겠지만, 그만큼 이번 경기에서 회포를 풀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 팀이 우승팀 마드리드라는 이유와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경기라는 게 그 이유.
더불어 이미 세계 최고의 유망주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발전하고 있는 후안 루이스.
그와 어렸을 때부터 절친이었고, 재기에 성공한 유건이 나타나 다시 맞붙게 되는 경기.
그런 특별한 서사가 있으니 한국팬들이 시청하길 원하는 것은 당연했다.
삐이익-!
‘…이길 테다.’
휘슬이 울려 퍼지는 순간, 집중하고 있던 유건의 눈빛이 더 날카롭게 변한다.
우승을 확정 지어 놓은 상황에서 조금은 방심이 섞인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 마드리드의 선수들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