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96화 (96/208)

96화. 경기 때 만나면 보자

삐이익-!

세 번째 평가전마저 승리로 가져가는 대한민국이었다.

지난 경기와 달리, 이번 경기는 유건이 베스트 라인업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선발 출전했다.

덕분에 강병훈이 있을 때보다 훨씬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주며 승리했다.

75분 동안 두 골에 관여하면서 말이다.

“저희뿐만 아니라 중계방송으로 보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이 기대하셨던 모습이었을 텐데요!”

“맞습니다. 정말 기대 그대로 엄청난 활약을 평가전에서 보여주는 유건 선수입니다.”

“어느 누구랑 같이 뛰더라도, 유건 선수의 패스는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느낌입니다!”

휘슬이 울리고 난 뒤, 오늘 경기에서도 캐스터들에게 가장 칭찬받는 것은 바로 유건이었다.

교체아웃되기 전까지 주변에서 패스를 주고받는 선수의 교체가 먼저 발생했다.

그러나 누가 투입되더라도 그들과의 좋은 호흡을 보여준 경기력은 실로 대단했다.

이미 대표팀에 적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으니까.

“다들 고생했고,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최선을 다해 활약해주기를 바란다.”

“다음 평가전 때는 더 발전된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싶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모든 평가전이 끝나고, 대표팀 단체 인터뷰까지 마쳤다.

이제는 트레이닝 센터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해산이었다.

일정 종료를 알리는 김진용 감독의 선언과 함께 우렁차게 대답하는 대한민국 대표팀.

세 차례 모두 승리를 거둔 탓에 그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다음 시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스날에서 뛸 거냐?”

“지민아, 그놈 그대로 헤타페 CF에 남아있게 설득 좀 해봐라!”

해산을 앞두고는 모여서 잠깐 회포를 푸는 해외파 선수들이었다.

장난스레 미래에 관해 물어오는 손지민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박준철이었다.

얘기만 듣고 함께 뛰어본 건 처음이었지만, 유건의 실력을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대 팀으로 만난다면 까다로울 것이 분명했기에 장난스레 스페인에 남으라고 말한다.

“크크, 아스날 무서워지겠는데요? 진짜 경기력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던데.”

“아르테타가 부임한 이후로 우리 감독님이 걱정하시더니, 진짜 달라지고 있더라고.”

“차라리 우리 팀으로 와라, 막내야!”

옆에서 함께 장난에 참가하는 다른 선배들도 있었다.

얼마전 맞붙었던 아스날에게 패배하면서 쓴맛을 다신 번리의 김수영.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위르겐 클롭 감독을 언급하는 박준철도 있었고.

그리고, 레알 소시에다드로 오라고 외치는 이호준까지.

“크흠, 저는 다 좋은데 아무래도 새로운 도전을….”

얼버무리며 대답하긴 했지만 이미 유건의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적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목표는 하나였다.

가장 먼저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미래의 에이스라고 치켜세워준 아르테타 감독.

전설적인 황금기를 만들어낸 그의 밑에서 뛰고 싶은 마음.

그와 함께 아스날에서 모든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었다.

‘…내년에는 유럽대항전도 나갈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번 시즌에 4위 안에 들기는 힘들어진 아스날의 승점 상황.

그러나 유로파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순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유건으로서는 처음으로 겪어볼 유럽대항전.

거기서 뛰는 자신을 상상하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차 안에서 꽤 오래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연인, 여름의 곁으로 가기 위해서.

“이 선수는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파티노와 함께라면 오히려 엄청난 능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건이 대표팀에서 해산을 한 바로 그 시각, 아르테타의 사무실에서는 열띤 토론이 한창이었다.

A매치 기간이 끝나고 선수들이 복귀할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그는 휴가를 빨리 복귀했다.

국가대표에 차출되지 않은 선수들의 훈련을 보는 것.

그와 더불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입할 선수들을 검토하기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제가 생각하던 선수 중 한 명이긴 한데 추가적으로 출전하는 경기와 플레이 영상들을 개인적으로 한 번 더 보겠습니다.”

지금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미드필더였다.

옆에 빌드업을 담당해주는 좋은 선수와 함께 뛴다면, 아주 좋은 조합이 될 거라고 평론가들이 예측하는 선수.

그러나 혼자서는 많은 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선수.

그리고, 이번 시즌과 작년 시즌 좋지 못한 소속팀의 미드필더 조합으로 저조한 성적 아래 가려져 있는 선수.

이미 그 선수도 희망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아르테타는 추가적으로 몇 번 더 보겠다며 다음 선수로 넘어간다.

“…윙어는 우선 리스트만 받도록 하죠. 헤일엔드에서 올라온 마음에 드는 선수가 있으니까요.”

“사이드백으로 넘어갑시다.”

자신 때문에 휴가 기간을 앞당긴 코치진들의 노고를 알기에, 자리를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아르테타였다.

오늘 훈련에서 발견한 유스 선수가 한 명 있었기에 윙어는 빠르게 넘어간다.

다음으로 사이드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의견을 나누는 아르테타와 코치진의 모습.

터억-!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아르테타는 사무실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코치진들이 고맙게도 먼저 검토해준 선수들을 추려서 받아보는 리스트지만 영입 결정은 자신이 내려야 했으니까.

모든 선수를 다 한 번씩은 확인하고 보고 있던 화면을 덮은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르테타.

그는 다가올 다음 시즌에 팀의 변화를 최적으로 가져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보다 더 빠르게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있겠어.’

‘살리바와 파티노가 아직 남아있기도 하고….’

그리고, 희망하고 있었다.

예전보다는 리빌딩이 빠르게 되기를.

엄청난 질주를 이어갔던 시즌에 임대에서 복귀 후 철벽같은 활약을 보여준 월드 클래스 수비수 윌리엄 살리바.

그리고 그 시즌 성공적인 임대 생활을 마치고 다음 시즌부터 주전을 차지한 핵심 미드필더 찰리 파티노.

그들의 존재가 원하는 선수진으로 라인업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녀석도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선수.

프리메라리가에서 리그 베스트급 활약을 이어 나가고 있는 미래의 에이스.

바로 유건이었다.

***

“으아아아, 한 골 더 넣자!!”

세 번의 평가전 이후, 헤타페 CF로 복귀하기까지 이틀의 시간이 남았던 유건.

그 시간은 온전히 여름과 보내고 있었다.

차기작이 결정되긴 했지만, 아직 촬영에 돌입하지 않은 그녀였기에.

덕분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늘 이렇게 용인 FC 경기를 응원하러 올 수 있었던 게 바로 그 이유였다.

“오빠! 진정 좀 하고 보라고오!”

비록 유효슈팅을 날릴 때마다 자리를 박치고 일어나는 유건을 진정시키느라 여름이 애먹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쁘지 않게 작별을 고한 용인 FC는 유건에게 소중한 팀이었으니까.

그들이 K리그 1에서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건 그에게도 행복한 일이었다.

“형들, 고생하셨습니다!”

강바람의 결승 골과 함께 1:0의 스코어로 승리한 용인 FC.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라커룸에 방문하는 유건이었다.

공식적으로 인사를 한다는 핑계로 나여름과 함께 말이다.

“막내! 빈손으로 온 거 아니지?”

“제수씨, 건이가 모자라지만 마음만은 착한 아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과 다른 점이 없었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유건을 환영해주는 박범호와 다른 선배들.

그리고 불편할 수도 있는 나여름의 긴장을 풀어주는 강바람의 배려까지.

물론 유건의 이적 이후 새롭게 영입된 선수들은 잘 몰랐기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에 그쳤다.

“우승하라고 제가 매일 밤 기도하는 거 아시죠?”

“너 종교 없잖아, 이 자식아!”

“…크흠, 휴가 때 또 오겠습니다!”

멋지게 그들과의 해후를 마무리하려는 유건의 장난스런 말.

그것을 바로 차단하는 선배들의 우스꽝스러운 농담에 헛기침을 하며 도망치듯 나온다.

보란 듯이 나여름의 손을 잡고서 말이다.

“오빠, 용인 FC 선수님들을 바라보는 눈에서 아주 꿀이 떨어지는데?”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봐.”

구장을 벗어나 차량에 탑승하러 가는 길에도 대화를 이어 나갔다.

기분 좋은 만남 이후 아쉬워하는 유건의 표정을 보고,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해주는 여름.

하늘을 쳐다보며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옛 팀원들을 생각하며 웃는다.

그런 그가 사랑스러워 보였지만 약간의 질투심과 함께 놀리고 싶어지는 여름이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 아닌가 봐? 나를 볼 때는 그런 눈빛이 아닌….”

“…그, 그럴 리가! 네가 제일 소중하다니까!”

간단한 장난에도 순수하게 반응하는 유건.

그와 함께 있는 시간에 가질 수 있는 이런 소소한 재미도 너무나 좋은 여름이었다.

‘이 상황이 끝나지 않았으면’이라는 마음을 가질 정도로.

와락-!

“나한테 제일 소중한 사람은 너야.”

단지 당황하는 유건이 귀여워서 속으로 피식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는 갑자기 여름을 와락 안아버렸다.

이런 것을 바라고 한 장난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았던 그녀였다.

품이 넓은 그에게 안긴다는 것은 말이다.

“헤헤, 알아 이 바보야.”

그렇게 안아주는 유건의 품에서 나가지 않고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며 속삭인다.

직접적인 말은 안 했지만, 온기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각자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그 감정은.

***

“다녀올게.”

“…떨어지기 싫다, 그치?”

만남의 시간이 있다면 헤어짐의 시간도 찾아오는 게 당연했다.

어느덧 유건이 소속팀으로 복귀해야 하는 날, 공항까지 따라온 여름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기 위해서.

“시즌 몇 경기 안 남았으니까 금방 돌아올 거야!”

“그때는 한 달 넘게 있으니 조금만 참자, 우리!”

애교 섞인 그녀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던 건 유건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리그가 몇 경기 남아있는 상태였으니까.

곧 떠나게 될 헤타페 CF의 팬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을 장식해야 했다.

“내가 마드리드를 좋아하지만, 오빠랑 하는 날은 헤타페 응원할게!”

수속을 밟으러 가는 유건의 뒤로 크게 들려오는 여름의 목소리.

이제는 아스날과 마드리드의 축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그녀였다.

하지만, 마드리드에 대한 팬심은 유건을 이길 수는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나여름은 유건에 대한 팬심이 가장 큰 팬이었으니까.

‘…루이스 이 자식, 니가 여름이의 응원을 받아?’

‘넌 경기 때 만나면 보자.’

그저 유건을 응원하겠다는 여름의 의도는 잘못 전달되었다.

마드리드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첫 말.

그것만 들렸다.

그래서 다짐하는 유건이었다.

절친 후안 루이스를 경기장에서 이겨버리겠다고.

‘아무튼, 베르나베우에 또 가겠네.’

남아있는 마드리드와의 경기는 원정.

또 한 번 그곳으로 가게 되는 유건이었다.

골을 넣고 자신을 위한 세레머니를 보여주던 아버지의 모습.

아직도 생각나는 그 장면의 배경이 바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다.

어린 시절, 먼 미래에는 프로축구선수로서 관중석이 아닌 경기를 뛰는 잔디를 직접 밟아보겠다고 생각했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