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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따-91화 (91/208)

91화. 깃발도 안 올라갔어요

-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만큼 떨리는 건 나뿐임? 오늘따라 축따형 경기 보는 게 긴장되네

└ 이거 진짜 동의. 그때보다 더 수준 높은 리그에서 우승컵을 두고 다투는 결승전이라니!

- 에제 더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궁금하네

- 축따형, 나는 형 항상 믿어! 오늘 해트트릭만 하자!

- 스타일이 비슷해서 진짜 엄청 치고받을 것 같아서 경기 엄청 재밌을 것 같음

4강전과 다르게 단판으로 펼쳐지는 코파델레이 결승전.

한국시간으로 새벽 5시에 진행되는 경기였음에도, 축따튜브의 채팅창은 엄청난 활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번 경기는 중요도로 따진다면 올림픽 메달결정전에 비할 수 없을지 모르겠으나 수준이 달랐다.

나이라는 제한이 사라지고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인 프리메라리가에서의 대회 결승전이었으니까.

‘한때는 이곳에서 뛰는….’

경기 시작을 위해 그라운드에 들어가는 유건의 생각.

결승전 장소에 직접 찾아오니 감회가 남달랐다.

유스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이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고 싶었던 꿈을 가졌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존경했던 선수의 등을 쫓아 구경하고 멀리서 바라봤던 곳.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다.

“너도 긴장이란 걸 하는 놈이구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멍한 표정을 짓는 거냐.”

킥오프를 준비하는 쿠아바의 장난스런 한 마디에, 잠깐의 상념에서 빠져나온다.

이제부터는 집중력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

한 번의 터치 미스가 우승컵의 주인을 결정지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까지 와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선수들의 가족에게 배정된 좌석에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있는 유일한 동양인, 나여름이.

삐이익-!

“바로 길게 때린다!”

코인 토스에서 선축으로 결정된 것은 아틀레틱 빌바오.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스트라이커가 길게 빼준 공을 잡은 수비수.

그가 롱패스를 위해 크게 발을 휘두르는 순간, 헤타페 CF는 전체적으로 진형을 급하게 내린다.

이미 빌바오의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미친 듯이 질주해오고 있었으니까.

“쿠아바!”

그러나 공은 짧게 떨어졌고, 낙하지점에 있는 바요스는 쿠아바를 부르면서 강하게 헤딩한다.

방향이 조금 맞지 않았던 탓에 경합하고 있는 수비수의 발이 조금 빨랐다.

살짝 건드려 사이드백에게 돌린 패스는 다시 한번 빌바오의 골키퍼에게 도달한다.

뻐어엉-!

다시 한번 오른쪽으로 나오는 롱킥.

꽤 멀리 뻗어지는 공은 엠마누엘 에제 쪽으로 향했으나, 왼쪽 사이드 지역에는 페르난데스가 있었다.

수비와 빌드업 상황에서 그가 공을 잡는다면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였다.

지금도 머리와 어깨 사이 높이의 공을 점프하면서 안전하게 가슴 트래핑으로 잡아냈으니까.

투욱-!

다음으로 이어지는 연속 동작도 고민하지 않았기에 빨랐다.

주변에 있던 에제가 발을 뻗었으나 바로 앞에 있는 나바스에게 가는 공을 차단하지는 못했다.

투욱-!

이제는 공의 소유권을 가진 나바스는, 받기 전 자신에게 달려 들어오는 빌바오의 선수를 살짝 본 상태.

간단한 개인기와 함께 제쳐볼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등을 진 상태였다.

게다가 패스를 주었던 페르난데스가 이미 사이드 지역에서 전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안전하게 돌려주는 리턴 패스.

스으으-!

“비야르!”

공을 받고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척하다가 곧바로 역습을 위한 패스를 보낸다.

헤타페 CF의 왼쪽 날개, 헤수스 비야르에게.

롱킥을 받아내기 위해 공격수와 미드필더 대부분이 전진해있는 빌바오에게 위협적인 역습을 가하기에는 그가 최적이었으니까.

‘…안쪽으로!’

하지만 그에게도 올라가지 않고 기다린 사이드백은 붙어있었다.

그래서일까 비야르의 머릿속에 ‘내가 제쳐내야 한다!’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대로 라인을 타고 달리는 척 한 번 짧게 터치를 하고, 다음번 동작을 그라운드의 안쪽으로 가져간다.

순간적인 전환에 잠깐 속은 사이드백을 지원하기 위해 뒤쪽의 미드필더가 압박을 가하기 위해 달려오는 상황.

투욱-!

그러나 이미 공은 비야르의 발을 떠났다.

빈 공간에서 공을 받기 위해 빠르게 달려온 유건이 중앙 지역에 있었으니까.

상대 중앙 수비수들은 뒤로 물러나면서 조금 거리가 있는 상태.

그 상황에서 유건의 눈에는 패스길이 보였다.

‘지금….’

빌바오의 입장에서는 오른쪽에서 역습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왼쪽 사이드백은 당연히 중앙 쪽으로 지원을 와 있었다.

갑자기 길게 날아오는 크로스를 수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헤타페 CF의 오른쪽 날개를 의식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유건이 공을 잡자마자 빠르게 앞쪽으로 달리기 시작한 실바가 사이드백을 지나치는 그 순간.

기다리던 타이밍이 왔다.

“실, 실바 선수가 달려 들어갑니다!”

“깃발도 안 올라갔습니다! 유건 선수의 패스가 정확하게…!”

오프사이드를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는 타이밍에 뻗어나가는 유건의 패스.

잔디를 가르는 공은 빠르게 뻗어내는 빌바오 선수들의 발에 닿지 않고 뻗어나간다.

스으으-!

조금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게.

정확하게 골키퍼와 수비수들 사이의 공간으로 말이다.

월드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자랑하는 전가의 보도.

잠시 수비수들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는 킬패스였다.

뻐엉-!

그러나 이미 튀어나오고 있는 골키퍼가 있었기에 각도 자체는 좁았다.

실바에게도 그 모습이 보였지만 쫄지 않았다.

먼 포스트 쪽을 보며 달려 들어오는 속도 그대로 공의 측면에서부터 왼발로 감아서 슈팅을 때린다.

손을 뻗어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강하게.

“…골, 골! 골입니다!! 헤타페가 단 1분 만에, 선제골을 만들어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역습의 과정마저 완벽한 골이 이렇게 빠르게 터지다뇨!”

“골키퍼의 다리를 맞고 들어갔어요! 유건 선수의 패스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덕분에 결과는 골이었다.

다리를 뻗으면서 각도를 좁힌 골키퍼의 오른쪽 다리에 슈팅이 걸리는 듯했으나, 공은 무시하고 뻗어나갔다.

그만큼 강한 힘이 실려있었기에.

와아아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힘차게 울려 퍼지는 헤타페 CF의 응원가.

홈구장이 만석이 되는 날도 많지 않았는데, 오늘 이곳에는 수많은 헤타페 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거의 홈경기를 진행할 때의 3배 정도 인원이 말이다.

언제 올라와 본 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토너먼트 결승전이었으니까.

“으아아아!!”

“실바, 멋진 골이라고!”

그리고 그런 팬들 앞에서 포효하면서 엠블럼을 두드리는 카를로스 실바.

그의 뒤에서 덮쳐드는 유건과 다른 헤타페 팀원들까지.

오늘 경기의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 최고의 출발이었다.

전반 1분 20초, 헤타페 CF의 선취점이 터지는 시간이었다.

유건이 또 한 번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순간이었고.

***

“바요스, 전체적으로 집중하라고 전달해!”

“지금 왜 이렇게 급한 거냐고!”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선제골을 기록한 헤타페 CF 선수진이 방심을 한 것일까.

서로 약간씩 어긋나는 호흡은 계속해서 패스미스를 유발했다.

그 결과 전반 20분이 넘어가는 이 시각 볼의 소유권은 계속해서 빌바오가 가지고 있었다.

이니에스타가 선수 한 명씩 따로 불러서 강하게 소리치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

“다이렉트로 처리하지 말고, 보이는 곳에 쉽게 패스해!”

유건도 목소리를 보태면서 거의 수비형 미드필더 지역까지 내려와서 빌드업을 지원했다.

다소 정확함이 떨어지는 롱패스나 급한 다이렉트 패스로 처리하지 말고 진정하자고.

“아으, 진짜!”

“정확하게 패스하자니까!”

하지만 점유율을 기반으로 쉬지 않고 들어오는 빌바오의 날카로운 공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컨볼을 걷어내기에 급급하여 부정확한 패스의 반복.

그것은 헤타페 CF 선수들에게 조급함이라는 감정을 가져왔다.

서로 팀원들에게 외치는 목소리에 흥분이 섞여 있을 정도로 말이다.

- 아, 진짜 골 넣고 나서 숨을 못 쉬겠다. 왜 이렇게 밀리는 거야!

- 빌바오는 압박이 개미쳤고 헤타페 지금 너무 당황한 것 같은데

- 그렇게 안전하게 패스 돌리던 페르난데스나 바요스도 맥을 못 추네

- 축따형이나 쿠아바를 비롯한 공격수들이 공을 못 잡아서 경기에서 안 보일 정도임

중계로 지켜보는 축따튜브의 팬들마저도 걱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헤타페는 패스 플레이가 전혀 안 되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 이전에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패스 미스가 반복적으로 나와서 다시 빌바오에게 공격권을 헌납했으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유건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골키퍼를 제외하고 자신을 포함한 열 명의 팀원들이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베테랑인 마르코 바요스조차 허둥지둥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삐익-!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길어질 때쯤, 휘슬이 울렸다.

전반 39분, 아틀레틱 빌바오의 코너킥을 선언하는 휘슬 소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헤타페 CF 선수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몇 초라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으니까.

“…눈앞에 있는 선수 놓치지 마!”

덕분에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린 선수는 캡틴 다니 가르시아.

손짓하면서 비어있는 선수들의 마크를 지정해주고 크게 소리친다.

뻐어엉-!

헤타페 선수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려가고 있었지만, 이미 키커가 공을 차올렸다.

빠르게 골대 앞으로 날아오는 공에 머리를 맞추히기 위해 점프해야 했다.

정신을 차린 선수들이 헤딩 경합을 위해 힘차게 뛰어보았으나 타이밍이 조금 느렸다.

빌바오 선수들이 조금씩 더 빠르게 점프했다.

퍼엉-!

“크윽, 막아내라!”

짧게 떨어지는 크로스를 잘라 들어가는 움직임을 보여준 빌바오 수비수의 헤딩.

다행스럽게도 골키퍼 정면이었지만, 눈앞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날아오는 공은 반응하는 게 고작이었다.

안전하게 캐칭을 하지 못하고 펀칭을 하며 수비의 집중을 요구한다.

‘…아, 이런!’

그리 멀지 않게 날아간 세컨볼의 주인공은 바로 엠마누엘 에제.

헤타페 CF의 전 에이스이자 스트라이커였다.

공을 받은 위치는 골키퍼가 바라보는 방향에서는 약간 오른쪽.

받자마자 강하게 슈팅을 때리려는 그의 큰 동작에, 당황하면서 발을 뻗어보는 유건.

그러나 페인트였다.

스윽-!

“내가 그리워지도록 만들 거라고!”

건방진 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하는 유건이었지만, 이미 제쳐졌다.

슈팅하는 척 살짝 공을 끌며 곧바로 왼발을 크게 휘두르며 다시 한번 슈팅 타이밍을 잡는다.

이번에 달려드는 것은 쿠아바.

공격수로서, 골로 연결되는 타이밍을 알아보고 발을 뻗고 있었다.

스윽-! 투웅-!

하지만, 한 번 더 페인트였다.

이번에는 왼발바닥으로 공을 다시 반대쪽으로 끌어와서 곧바로 오른발을 짧게 휘두른다.

한 템포 빠른 박자로 슈팅을 가져간 것.

출렁-!

그의 슈팅이 향하는 방향에는 그저 골대밖에 없었다.

급하게 펀칭하고 쓰러졌던 몸을 일으킨 골키퍼가 집중하고 있었지만, 앞에 있는 선수에게 슈팅이 가려졌다.

게다가 타이밍마저 빨랐으니 그물에 도착하고 나서야 쳐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전반 39분, 아틀레틱 빌바오의 동점 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던 헤타페 CF 선수들의 정신이 번쩍 드는 시간이기도 했고.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팀원들을 바라보는 유건.

스스로도 몰랐지만 자신도 흥분하여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다.

“으아아아, 한 골 넣자!”

동점 골을 먹힌 뒤에야, 다시금 눈에 보이는 게 많아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억지로라도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외쳐본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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