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행복하다
“다들 고생했다!”
전반전에 득점을 만들어낸 유건은 후반전에도 좋은 기점 패스로 추가 골의 시작점이 되었다.
역습상황에서 이미 공간으로 달리고 있던 비요르에게 보내는 정확한 롱패스.
그것을 받고 깊게 치고 들어간 뒤 들어오는 나바스에게 컷백.
가까운 쪽 포스트를 향해 살짝 밀어 넣는 슈팅은 골키퍼의 손에 닿지 않았다.
후반 20분, 두 골 차로 앞서나가는 헤타페 CF.
그리고 그와 함께 유건과 나바스, 쿠아바를 불러들이는 이니에스타였다.
“모두 끝까지 집중하자고!”
그리고 그라운드 위에서 마지막까지 헤타페 CF 팀원들을 다독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다니 가르시아.
세 명의 교체 이후 조금 더 수비적인 진형으로 변화되었지만,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집중력이 필요했다.
남은 20여 분의 시간 동안 클린시트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삐익-!
그리고 후반 78분경, 바요스가 교체되었다.
80분에는 왼쪽 사이드백에 페르난데스를 투입시키는 헤타페 CF의 결정.
교체카드 5장을 모두 활용하는 이니에스타였다.
게다가 투입되는 이들 모두 전체적으로 수비적인 플레이 위주의 선수들이었다.
‘충분히 지켜낼 수 있을 테지.’
교체에 대해 최종 승인을 내리는 것은 감독의 권한.
이니에스타의 생각이었다.
가장 체력적인 저하가 많은 포지션의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수비까지 강화하는 것.
추가 골보다는 2점 차의 리드를 확실하게 지켜내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헤타페 CF의 일정을 고려해본다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10분 동안 두 골만 먹히지 않으면 돼.’
다섯 골을 넣으며 승리하든지, 두 골을 넣고 승리하든 3점의 승점이 추가되는 것은 똑같았으니까.
강등권으로 다시 떨어지지 않는 승점 확보와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
그리고 후보 선수들의 실전 감각 유지까지.
코파델레이 결승전을 앞둔 헤타페 CF에게는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삐이익-!
상대적으로 공격이 약한 팀을 상대로, 수비를 강화하면서 틀어막은 덕분일까.
주심의 경기를 끝내는 휘슬과 함께 단 몇 번의 슈팅만을 허용하면서 클린시트를 지켜내는 데 성공하는 헤타페였다.
게다가 승점 3점을 획득했기에 15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마저 잡았다.
물론 내일 펼쳐질 리그 경기에서 그 팀이 패배한다면 말이다.
“또 한 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헤타페입니다! 승점 3점을 획득합니다!”
“이제는 그들을 강등권이었던 팀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코파델레이 결승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팀입니다.”
그러나 캐스터들의 언급대로 심판대는 바로 다음 경기였다.
만약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이번 시즌은 그래도 성공적인 결과로 마무리될 예정.
하지만 패배를 한다면 헤타페 CF로서는 잔류를 제외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는 시즌이었다.
유럽대항전 진출은 지금부터 리그에서 모든 경기를 승리해도 불가능했으니까.
***
“의심없이 이번 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다.”
“무조건 승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보자.”
어제의 회복훈련에서 말했던 이니에스타의 포부.
코파델레이 결승전을 준비하는 그의 표정은 비장해 보였고, 코치진들 사이에도 긴장이 감도는 것이 보일 정도.
그런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본격적으로 훈련 시작을 기다리는 선수들도 가라앉은 눈빛을 보여주었다.
“전술적으로 보면 우리 팀과 빌바오는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빈 공간을 찾아내고, 기회를 만들어내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다.”
세부적인 전술 지시를 위한 상대 팀의 정보 파악.
아틀레틱 빌바오는 공격, 수비 중 어느 한쪽이 특출나게 강한 팀은 아니었지만 밸런스에 치중한 팀.
특출나게 강하지 않다는 것은 엄청 약하지도 않다는 말과 동일했다.
게다가 엠마누엘 에제가 합류되면서 공격력은 업그레이드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바요스와 가르시아가 라인을 잘 유지해주어야 될 거야.”
서로 얘기하면서 수비진과 미드필더진 사이 공간을 조절해주는 두 명의 선수.
너무 좁아져서도, 넓어져서도 안 되는 그곳은 경기를 진행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전체적인 팀의 빌드업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에.
“자, 시작하자고!”
본격적인 훈련 시작을 알리는 이니에스타의 당찬 목소리와 함께 코치진이 흩어진다.
네 개의 그룹으로 나눠놓고 번갈아 가면서 체력훈련부터 시작된다.
땅에 박아둔 폴대를 스쳐 지나가며 스텝을 밟은 뒤 스프린트.
끝 지점까지 달려와서는 앞서 끝낸 선수와의 이대일 패스를 통한 간단한 슈팅.
“이리로 줘!”
“여기 비었다!”
가장 먼저 훈련을 끝낸 그룹이 이동하는 것은 패스 게임 파트.
배정된 선수끼리 팀을 나눠 볼의 소유권을 지켜낸다.
좁고 밀집된 상황에서의 패스를 연습하는 훈련이었다.
“나이스 마무리!”
“예에에에!”
유건이 속한 것은 두 번째 그룹.
패스 게임을 끝내는 나바스의 마지막 터치.
상대 팀의 골대로 정해진 축구공을 마르티노의 다리 사이로 넣어서 맞히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울려 퍼지는 두 번째 그룹의 함성.
장난식으로 알까기를 당한 마르티노를 놀리려는 의도였다.
“…젠장, 이리와 나바스 자식아!”
패스 게임 이후에는 네 번째 그룹이 끝날 때까지 대기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이용해 나바스에게 달려가는 마르티노의 뒷모습.
그것을 보며 웃고 떠들며 휴식을 즐기는 두 번째 그룹의 모습만 보더라도, 헤타페 CF의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큭큭, 쿠아바 다리 사이가 항상 넓다니까!”
“예에에에에!”
“나이스, 비야르!”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그룹까지가 다음 훈련을 위해 대기하고 있을 때, 네 번째 그룹의 훈련이 끝났다.
마르티노와 마찬가지로 비야르가 쿠아바의 알을 넣으면서.
그것을 보며 그라운드에 엎드려 구경하던 팀원들까지 땅을 치며 함께 놀린다.
“이 개자식들! 나중에 두고 보자!”
순간적으로 모두에게 웃음거리가 된 쿠아바가 괴성을 지르며 나중을 기약한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포지션별로 흩어져!”
그렇게 달콤한 휴식은 거기까지였다.
약 십분 뒤 크게 외치는 이니에스타의 말과 함께 흩어지는 코치와 선수들.
포지션별로 나눠 세부적인 움직임을 하는 훈련이었다.
‘우리 팀의 위치가….’
터억-!
좁게 배치된 미드필더진의 훈련에서는 팀원의 위치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거기에 온전하게 신경을 쓸 수 없었기에 쉽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강하게 들어오는 패스를 컨트롤하는 데도 집중이 필요했으니까.
부드럽게 터치하며 돌아서고 미리 인지해둔 동료에게 공을 보내는 유건.
헤타페 CF 미드필더 중에서는 유건이 가장 이 훈련에 익숙해졌고 잘했다.
경기 중에 플레이하는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나이스, 건! 다음은 바요스!”
깔끔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차례를 끝낸 유건.
그가 대기 줄의 가장 끝으로 가는 것을 보고, 코치는 다음 차례인 바요스를 호명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반복해서 훈련을 진행하기 위해서.
“다들 알아서 바로 나오도록! 어차피 훈련 끝나려면 멀었다!”
이쯤에서 울리는 악마 같은 코치의 목소리.
그 말대로 오늘 해야 하는 훈련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포지션 훈련 이후에는 팀을 나눠 연습경기.
마지막에는 떨어진 체력 상태에서 집중력을 요구하는 순발력 훈련.
‘…세트피스도 있었지?’
원래라면 순발력 훈련이 마지막이었겠지만, 오늘부터는 하나가 추가되었다.
코파델레이 결승전을 위해 마련된 것.
세트피스 훈련이.
***
삐이익-!
마지막 세트피스 훈련까지 마치고 나서야 훈련을 종료하는 휘슬이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너도나도 제자리에 풀썩 쓰러진다.
퇴근하기 전 최소한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이 내뱉는 가쁜 숨은, 코파델레이 결승전을 아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쿠아바, 내일 보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하나둘씩 일어나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헤타페 CF 선수들.
쿠아바 옆에서 장난치면서 누워있던 유건도 무언가를 생각해낸 듯이 급하게 퇴근을 준비했다.
항상 함께 집에 돌아가 매일 하던 언어 교환.
내일 보자는 유건의 말은 그것을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말을 듣는 쿠아바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고.
‘…이제 곧 볼 수 있는 건가!’
그 이유는 바로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던 것이다.
[재벌의 사생활]이 종영을 하게 되면서, 한창 바쁘던 스케쥴을 끝내고 한동안 휴식에 돌입한 여름이 스페인으로 도착하는 날이었다.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다는 그녀의 메세지를 받는 순간 행동이 빨라지는 유건이었다.
여름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동안 미뤄두었던 청소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여름아!!”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도착했다는 그녀의 말에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기사님이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내려주고 있었는데 유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달려가서 눈부시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품에 안을 뿐.
“…건, 건? 우리 팀에서 활약하는 건이 맞나요?”
“아하하, 맞아요 기사님! 여자친구가 유명인이 아니라 오늘 일은 비밀로 부탁드릴게요!”
안전하게 여름을 태워준 기사님이 민망함을 느끼기 직전에, 포옹을 풀고 비용을 지불하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유건을 알아보는 택시 기사님.
꽤 작은 도시에 속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스페인답게 지역 연고 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알아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인과 사진 요청에 웃으면서 응하고, 넉살 좋은 말투로 비밀을 요구한다.
괜히 여름을 불편하게 하기 싫었으니까.
“와, 오빠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되게 깔끔하고 괜찮은데?”
두 손을 꼭 붙잡고 들어온 유건의 집은 여름의 생각보다 넓고 깔끔했다.
반시즌 머무르는 선수를 위해서는 적당히 거주만 가능할 집을 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이제까지 유건이 찍어서 보낸 사진만 보았으니 되게 좁고 낡았을 거라 예상한 것도 착각은 아니었다.
30평이 넘는 집을 10평처럼 찍은 독창적인 구도의 사진이었으니까.
“우선 밥부터 먹자! 나 빠에야 먹고 싶어!”
먼 거리를 날아온 여름은 간단히 짐을 정리한 뒤, 소파에 누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유건을 바라본다.
나가서 못 먹으니 얼른 배달을 시켜 달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웠던 유건은 재빠르게 휴대폰을 조작한 뒤 소파로 몸을 날리며 껴안는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란 말인가.
‘…아, 행복하다!’
헤타페 CF로 임대를 온 이후, 기분이 좋았던 날은 많았던 유건이었다.
경기에 승리하는 기쁨, 팀원들과의 파티 혹은 쿠아바 등의 선수들과 장난이 섞인 축구게임을 즐기는 기쁨.
그러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행복하다는 감정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고 생각했던 유건.
이제서야 그것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나여름.
그녀는 함께 있으면 행복이라는 감정을 전달해주는 사람이었다.
다른 어떤 것들보다 말이다.
물론, 그러한 감정의 이유가 지금 유건이 그녀와 입을 맞추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말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