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절대 막을 수가 없는데
“한 번 더!”
카디스전을 이틀 앞둔 날까지, 헤타페 CF의 훈련은 한창이었다.
좋은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고 싶은 선수들은 열정적이었다.
감독과 코치진이 심혈을 기울여 생각해낸 세트피스 연습은 남아서 할 정도로 말이다.
“조금 더 빠르게 가보자!”
유건이 전술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당연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전술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헤타페 CF 패스 루트의 핵심을 담당하는 만큼 상대 팀으로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테니까.
“확실히, 바로 익숙해지기에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예상한 일이잖나? 손쉽게 가능했다면 우리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겠지.”
그 장면들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이니에스타와 코치진.
당연히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기적인 전술 움직임을 빠르게 보고 싶었던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어색함 없이 완성도 높게 수행하냐에 따라 실전에서 성공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자, 자!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정리합시다!”
계속 반복되는 훈련의 끝을 알리는 것은 역시 감독이었다.
정규 훈련 이외에 세트피스 연습을 약 삼십 분 정도 추가적으로 하고 난 이후였다.
사실 선수들로서는 그렇게 할 의무가 없었지만 자발적인 움직임들이었다.
“이놈들아, 결승전이 오기 쉬운 줄 아냐?”
“세트피스 훈련은 다들 남아서 해보자고, 주장으로서 부탁이다!”
아니, 어쩌면 헤타페 CF에 거의 가장 오래 몸담고 있는 캡틴 다니 가르시아의 부탁에 의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각자 커리어에 우승이라는 두 글자를 추가하기 위해서였을지도.
그러나 모두 최종적으로 원하는 목적만은 동일했다.
‘이번엔 정말 가능성이 있어! 헤타페의 우승이라니, 생각만 해도….’
‘코파델레이 우승컵이라!’
‘그따위로 나간 에제 놈이 후회하게 만들어줘야지.’
경기에 대한 승리.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개인들의 생각은 달랐지만, 모두 우승컵을 열망하는 것은 동일했다.
‘…스페인에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우승컵을 들고 간다!’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헤타페 CF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갈 유건.
그로서도 이번 경기는 단 한 번의 기회였다.
유럽대항전과는 거리가 먼 리그 경기와 상관없이, 우승컵을 들 수 있는 찬스 말이다.
그래서일까 패배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만약 지고 아스날 FC로 복귀한다면 평생에 아쉬울 만한 일이 될 테니까.
***
“오늘 헤타페 CF는 우선 베스트 라인업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니에스타 감독으로서는 빠르게 골을 넣고 휴식을 주고 싶겠죠?”
“아무래도 다음 경기가 결승전이니만큼 원하고 있을 거라 생각되네요!”
“다행인 점은 바로 이전 경기에 로테이션을 해서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
카디스의 홈구장에 도착한 헤타페 CF 선수들은 경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고 있을 때쯤, 국내 중계방송에서는 화면에 캐스터들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대로 지난 알메리아전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하긴 했지만 휴식이 가능하다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로테이션 전까지 약 5경기 이상을 선발로 출전한 베스트 라인업이었으니까.
“현재 미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유건 선수가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팬 여러분들이 대표팀에서 보여줄 유건 선수의 모습에 대해서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거든요!”
역시 국내 방송에서 집중 조명하는 것은 한국인인 유건.
활약을 하지 못하더라도 언급되는 게 당연할 텐데 지금 거의 매 경기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경기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말이다.
삐이익-!
캐스터들이 물을 마시며 경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을 그 시각, 그라운드에 울려 퍼지는 휘슬.
헤타페 CF VS 카디스 전을 알리는 주심의 호각 소리였다.
‘…시작이다, 가보자.’
그것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던 유건의 귀에도 똑똑히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오늘 경기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복기하고 감았던 눈을 다시 뜬다.
팀원들과 함께 앞에 마주하고 있는 팀을 무너트리기 위한 각오를 다지면서.
투욱-!
헤타페 CF의 선축으로 시작되는 경기.
쿠아바가 킥오프와 함께 뒤로 내주는 공을 잡는 것은 유건.
곧바로 고개를 들고 킥을 준비한다.
“비요르!”
크게 휘둘러지는 발은 공의 아래쪽을 차며 공에 백스핀을 살짝 걸어 멀리 차 낸다.
가장 주력이 빠른 팀원인 비요르에게 향하는 패스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연결만 되었다면 꽤 성공적이었을 장면을 다시 한번 재현하기 위해서.
‘이크, 조금 짧았다!’
혹시나 경기 시작과 동시이니 방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나온 첫 번째 킥.
그러나, 카디스는 집중하고 있었다.
유건이 공을 차내는 순간 전체적으로 뒤쪽을 향해 물러나는 그들.
게다가 생각보다 조금 짧게 가는 패스는 질주를 시작한 비요르에게 닿기 전, 수비수의 헤딩에 걸린다.
“천천히 가자!”
세컨볼까지 손쉽게 따낸 그들은, 막아낸 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겨우 이런 걸로 자신들을 뚫어낼 생각을 했냐는 듯이 말이다.
진영에서 공을 돌리며 경기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바요스, 우리도 급하게 가지 말자!”
“맨온이야! 일단 한 번 뒤로 빼!”
“뒤에 없으니까 안전하게 키핑해, 건!”
그에 대응하는 헤타페 CF도 시작부터 활발한 움직임을 가져갔다.
팀원들끼리 서로 쉬지 않고 유기적인 소통도 했다.
서로의 등 뒤에 있는 것을 말해주고, 바로 다음에 펼쳐질 상황을 미리 알려주면서 말이다.
‘압박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수비에 많은 숫자를 두고 역습을 노리는 카디스에 비해, 미드필더진을 위주로 하는 경기를 펼치는 헤타페였다.
덕분에 팀에서 가장 밸런스 좋은 라인인 미드필더진의 볼배급이 원활한 오늘 경기였다.
유건에게 향하는 압박 자체도 생각보다 느슨했다.
다음 동작을 펼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나바스, 앞쪽으로 넣어줘!”
그러나 많은 숫자의 수비 라인 안쪽으로 완전하게 파고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건이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계속 그들의 골문을 열어젖히기 위해 시도하고 있었으니까.
전반 29분, 이번에 보내는 패스의 목적지는 나바스였다.
투욱-!
단순하게 측면으로 향하는 횡패스를 보내주고 곧바로 뛰어 들어가는 유건이었다.
나바스에게 앞쪽으로 보내달라고 했던 말을 까먹었는지 착각할 정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그러나 나바스의 패스도 유건을 향하지 않았다.
조금 더 앞선 지역에서 빠르게 내려오고 있는 한 선수가 있었으니까.
“여기로 빼줘, 쿠아바!”
유건과 나바스보다 위쪽에 위치하는 헤타페 CF 선수는 단 한 명, 쿠아바였다.
나바스가 그에게 공을 전달해줄 거라 믿고 카디스의 수비를 돌아 앞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팔을 뒤로 둘러 수비의 압박을 막아내고 있었고, 유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곧바로 내준다.
콰아앙-!
더 좋은 찬스가 있었을 수도, 더 확실하게 골로 연결시킬 패스 루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쿠아바가 돌려주는 패스의 종착지에 있는 유건의 선택은 그게 아니었다.
충분히 슈팅을 해볼 만한 찬스이자 위치였다.
이제는 그런 기회에서 망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아주 강하게 오른발을 크게 휘둘러 슈팅을 날린다.
‘…어어, 잘 맞았는데?’
그리고 그 공에 생각보다 임팩트가 좋게 들어갔다.
주변에서 커팅을 위해 발을 뻗어내는 수비수, 슈팅을 막기 위해 달려오는 수비수.
역습 전술을 택한 카디스였기에 압박은 강하지 않았지만 골대를 막고 있는 수비의 숫자는 많았다.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에서 나온 반 박자 빠른 슈팅.
조금 급하게 처리했다는 스스로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정확하게 원하는 코스를 향해 날아가는 공.
출렁-!
“으아아아, 이게 뭐야!!”
꽤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임팩트의 슈팅은 골대의 구석으로 날아갔다.
그저 측면의 상단 쪽으로 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때린 건데 거기서도 완전 모서리 쪽으로 말이다.
결국 카디스 골키퍼의 손끝에 닿지 않고 골대를 흔들어버리는 유건의 슈팅.
스스로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당황스럽게 터진 골이었지만, 자연스럽게 포효하며 원정석 쪽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이어서 높게 점프하는 것과 함께 공중에서 등을 돌리며 GUN이라는 이름을 가리키는 유건.
누가 보면 확실하게 노려서 찬 슈팅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세레머니였다.
“이 미친놈아! 절대 못 막는 슈팅이었다!”
“건!! 나이스 슛이야!”
그런 당당한 유건의 세레머니를 보며 달려오는 헤타페 CF 팀원들.
그들의 입장에서 의도는 상관이 없었다.
전광판에 적혀있는 카디스 0 : 1 헤타페 CF.
볼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그 화면이 결과로 나타났으니까.
- 이거 진짜 개미쳤다! 축따형! 축따형! 축따형!
- 다른 각도에서 보니까 와, 골키퍼가 절대 막을 수가 없는데?
헤타페 CF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더 광란의 도가니에 빠진 것은 바로 축따튜브.
선수들은 실제로 경기장에 있었으니 팬들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방금 나온 유건의 슈팅이 얼마나 멋있게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록 노리고 있던 코스로 정확하게 날아갔다기보다는, 운이 80% 이상 작용한 골이긴 했지만 말이다.
- 진심 프리메라리가 베스트 뽑으면 축따형 들어갈 정도인 것 같음
자국 축구선수를 팬심을 담아 치켜세우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팬심을 빼놓고 보더라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유건보다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같은 포지션의 선수는.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패스 루트를 담당하는 선수보다 공격 포인트 자체는 많았다.
만약 유건의 폼이 시즌 막바지까지 유지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였다.
- 70분까지 한 골 더 넣고 휴식 받으면 좋겠다!
다른 한편으로 이제 교체돼서 쉬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헤타페 CF로 이적하고 나서 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 경기 풀타임 출장인 유건이었으니까.
팬들은 그런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관리가 필요한 시기라고 느꼈다.
당장 다음 경기는 무조건 풀타임 출장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기에.
“그렇지! 그럴 때는 슈팅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시각, 유건의 경기를 보고 있는 한 사람.
그는 방금 전까지 자신의 외모 유전자를 받은 귀여운 늦둥이 딸을 무릎에 앉히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유건의 미친 중거리 슈팅을 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손을 강하게 뻗어내며 환호한다.
“…미켈? 우리 공주님 한 번만 더 내팽개치면 알아서 해요?”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옆으로 떨어진 늦둥이 딸을 보며 지적하는 아름다운 부인의 핀잔을 받는 한 사람.
바로 아스날의 감독, 미켈 아르테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