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그중 첫 번째는
“나이스으!!”
다음 라운드에서 헤타페 CF는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상대적으로 더 상위권인 그다음 경기와, 이어서 치러질 코파델레이 결승전을 위해서 말이다.
15위에 위치한 알메리아가 오늘의 상대.
기세를 타고 있는 헤타페였기에 로테이션 멤버들이 주로 출전했음에도 리드를 지켜내고 있었다.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팀원들의 활약을 벤치에서 편하게 감탄하고 있는 유건이었다.
“페르난데스가 확실히 자신감이 붙었는데?”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는 특히 왼쪽 사이드백으로 출전한 페르난데스의 활약이 빛나고 있었다.
수비적인 부분이나 빌드업에 비해 공격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벤치 멤버로 평가받았지만, 소시에다드전 이후로 자신감이 급상승했다.
게다가 오늘은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면서, 그라운드의 왼쪽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확실히 미드필더진은 조금 부족한 게 드러나긴 하네요.”
유건, 나바스, 바요스로 구성된 헤타페 CF의 선발 미드필더진.
세 명을 모두 로테이션하고 출전한 선수들의 조합을 고려하여 오늘 전술은 투 볼란치를 택했던 이니에스타.
리드를 하고 있었지만 코치진의 얘기처럼, 그들은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호흡을 오래 맞추며 서로 단점들을 보완해주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발 멤버들에 비해서이긴 하지만.
더군다나 내려와서 볼을 받아주며 숫자를 늘려주는 쿠아바도 없었고, 양쪽 날개도 오늘은 주전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끝까지 집중해!”
하지만 그게 하위권 팀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가져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리그 테이블에서는 두 계단 낮은 17위에 위치한 헤타페였지만,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갖춰지게 되었다.
연속된 상위권 팀들과의 경기에서 가져온 좋은 결과들이 불러온 긍정적인 신호.
승리를 향한 집념을 보여주는 위닝 멘탈리티라는 단어로 불리는 선수들의 태도를.
삐이익-!
“나이스, 가자아!!”
후반전 추가 시간이 끝나갈 때쯤 마지막 코너킥을 헤타페 CF의 골키퍼가 안전하게 캐칭하며 품에 안으며 떨어졌다.
몇 초의 시간을 보내다가 킥으로 연결하는 순간, 울리는 휘슬.
승점 3점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는 헤타페였다.
68분에 동점 골을 먹힌 이후 투입된 쿠아바와 비요르가 추가적으로 한 골을 더 만들어냈으니까 말이다.
휘슬 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있던 유건을 비롯한 팀원들은 경기장 안으로 기분 좋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간다.
“다들 오늘 너무 멋있었다!”
바쁘게 뛰어다니며 고생한 팀원들의 등을 두드려주며 칭찬하는 유건이었다.
벤치에 앉아있다가 경기를 뛰는 소중함과 그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긴장했음을 알고 있기에.
더불어 홈구장에서 팬들을 위해 좋은 모습을 보인 그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라운드 결과로 16위에 올라가게 되는 헤타페 CF였다.
2점 앞서있던 기존 16위 팀을 1점 차로 앞서게 된 것이다.
자신들보다 한 단계 앞서있던 그들이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패배했기에.
그렇게 헤타페 CF는 프리메라리그의 강등권에서부터 서서히 안전하게 벗어나고 있었다.
***
‘…이 정도면 억지로 의식해서 해야 될 것 같은데!’
회복훈련이 끝난 뒤 집으로 복귀해서 유건이 한 것은 쿠아바와 함께하는 동영상 시청이었다.
헤타페 CF에서 플레이하는 경기 영상과 세밀하게 분석되어 있는 장면들.
그리고 그가 앉은 소파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최창훈에게 건네받은 문서화 된 레포트.
그것의 정체는 유건의 임대 중간 보고서와 쿠아바의 보고서였다.
쿠아바와는 동일 구단 소속이었기에 같이 보면서 서로 피드백을 주기로 했던 것이다.
“지금!”
“여기도! 충분히 슈팅을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인데, 패스로 갔지.”
아르테타와 코치진이 느끼는 임대 경기 중 장단점을 적어놓고, 영상을 보며 남긴 코멘트들까지.
가장 먼저 단점으로 평가받은 것은 바로 슈팅 타이밍이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는 그들의 철벽에 빈틈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보면 마구잡이로 때렸던 중거리 슈팅.
소시에다드를 상대할 때는 다시 또 슈팅을 자제하는 유건의 모습이 영상에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까 더 느껴지긴 한다. 확실한 찬스에서만 슈팅하잖아, 너는.”
옆에서 쿠아바가 말을 걸어오는 것도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함께 경기를 뛰며 느끼고 있던 부분이기도 했고, 영상으로 모아놓으니까 더 심해 보였기에.
그래서일까 아틀레티코전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어색하게 보일 정도였다.
“여기 3분 17초 상황처럼, 공격수들이 모두 막혀있을 때는 굳이 네가 공간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안 줘도 될 것 같은데?”
“나였으면 최소 여기 나오는 장면 세 개 중 하나씩은 무조건 때렸을 거야! 특히 7분 12초에 나오는 그 부분.”
다행인 점은 쿠아바에게서 실시간으로 받는 추가 피드백이 있었기에 보여지는 장면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배우려 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에서는 때려야 된다고 말하는 쿠아바의 슈팅 타이밍을 말이다.
“이 정도는 건이 버텨내야 돼! 프리미어리그는 몸싸움이 거의 전쟁이라고!”
두 번째로 언급되는 유건의 단점은 바로 몸싸움을 기피한다는 것이었다.
프리메라리가의 몸싸움에 적응하기 위해 임대 초기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부족했다.
아예 몸을 접촉하지 않고 압박이 도착하기 전에 패스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그러나 아르테타가 말하는 것처럼 프리미어리그는 유명했다.
가장 거친 몸싸움이 펼쳐지고, 파울도 잘 불리지 않는 그곳은.
“손을 쓰긴 하는데 부족해. 유니폼 잡거나 상대 선수의 가슴팍을 밀어내는 용도로만 쓰는 게 아니야.”
“일어나봐.”
등을 지면서도 팀원들에게 정확하게 리턴 패스를 돌려주는데 익숙한 쿠아바의 조언.
그는 유건을 일으켜 세우며 직접 시범을 보여준다.
“아예 잡지 않는 이상, 이렇게 휘감는 형식으로 뻗어도 돼.”
등진 채로 한쪽 팔을 길게 돌려 유건의 허리를 감았지만, 붙잡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형태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작.
앞쪽으로 몸을 옮기며 발을 뻗기 위해서는 그렇게 뻗어져 있는 팔에 닿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 정도로 잡아채는 것은 받아들여진다고!”
이번에는 뒤에서 수비를 하거나 압박을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유건이 공을 지키는 형태를 취하면서 앞쪽으로 나가는데 뒤에서 팔과 어깨를 살짝 붙잡았다가 놓는다.
잡는 시간이 길어지면 파울이 불릴 수 있기에,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부분.
한 번은 길게 한 번은 짧게 예를 들어 보여주면서 자신이 느끼는 주심들이 휘슬을 부는 한계점을 알려주는 쿠아바였다.
‘…이 정도면 거의 반칙 아니야?’
유니폼을 잡아당기며 어깨 경합을 하는 게 최고의 몸싸움이라고 생각했던 유건이었다.
그러나 지금 쿠아바가 예를 들며 보여주는 모습은, 그것을 깨트려주었다.
유건의 기준에서 그렇게 손을 쓴다면 당연히 주심을 향해 반칙 아니냐고 어필했을 수준이었으니까.
“더 적극적으로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져가야 해.”
“충분히 지금도 만족할 만한 활약이지만, 너무 플레이가 단순해졌어.”
유건의 레포트를 보고 얘기를 나눈 이후에는, 바로 쿠아바 차례였다.
다른 사소한 플레이 조언들이 있었지만 가장 핵심은 이것이었다.
상대 수비를 등지고 버텨내면서 팀원의 패스를 기다리고만 있지 말라는 것.
공이 오기 전에 오히려 먼저 빈 공간으로 움직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라는 이야기였다.
“감독님은 아마 너에게 그 선수가 가졌던 움직임을 원하는 게 아닐까?”
그것은 유건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언제나처럼 최전방에서 이대일 패스가 필요할 때 항상 찾았던 쿠아바였지만, 머릿속으로 곱씹어보니 많이 생각나지 않았다.
빈 공간으로 돌아 뛰는 그에게 한 번에 어시스트를 넣어준 기억 말이다.
“…엘링 홀란드.”
거대한 피지컬과 꽤 결정력이 좋은 왼발을 가진 쿠아바의 비교 대상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선수만큼 발전을 기대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도르트문트를 거쳐 맨체스터 시티에 정착한 이후, 케빈 데 브라이너 선수와 엄청난 콤비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따라잡는 걸로 만족 못하지. 뛰어넘고 말테다!’
엄청난 선수인 것을 알기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레전드라고 불리고 있는 선수였고,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는 아직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함께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와 맞붙는 훗날을 기대하며 단순히 따라잡으려는 생각보다는, 더 먼 곳을 목표로 하는 쿠아바였다.
제2의 홀란드가 아니라, 제1의 쿠아바가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
“솔직히 말하면 빌바오가 올라온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는 최상위권의 팀들을 피했으니까.”
다음날부터 A매치 기간까지의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위해 브리핑을 시작하는 헤타페 CF의 감독 이니에스타.
당장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카디스 원정 경기였지만, 모두 시선은 그다음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유럽대항전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리그에서는 강등권으로 다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성적을 유지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코파델레이 결승전은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우승컵이 걸려있는 만큼 어떤 팀이 올라왔든 이기고 싶기에.
“당연히 그들을 격파하고 올라온 빌바오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에제 자식이 가면서 더 강해진 게 사실이지.”
그러나 강팀들과의 대전에서도 지지 않고 살아남아, 바르셀로나마저 무너트리고 올라온 상대 아틀레틱 빌바오.
시작부터 부담되는 최상위권 팀들과의 매치업은 아니었지만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심지어 밸런스 있는 선수진에서 마무리를 담당해줄 헤타페 CF의 전 에이스 엠마누엘 에제까지.
코파델레이 4강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무너트린 에제의 결승골.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지금까지는 확실히 좋은 영입이었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앞으로의 리그 활약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로 인해, 코치진들과 지금까지 많은 얘기를 나눴다.”
헤타페 CF의 선수진들에게는 이제 공개하는 이야기였지만, 이미 코치진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이니에스타였다.
우승컵을 들기 위해서.
“짧은 시간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준비했길래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서도 표정에 자신이 있는 걸까.
결승전까지는 15일도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세 가지의 세트피스 전술을 그때까지 준비한다.”
팀원들이 강제로 짜맞춰진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는 상황.
이니에스타와 코치진의 선택은 세트피스 전술이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준비하기에는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들만의 세트피스를 할 예정이었으니까.
“그중 첫 번째는….”
그렇게 빌바오전을 위한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헤타페 CF였다.
물론 카디스 원정도 함께 준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