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색다른 기분이네요
환상적인 역습을 시작하는 역할을 맡은 마르티노는 공을 받고는 질주하기 시작했다.
레알 소시에다드가 단 두 명의 수비만을 뒤에 내버려 두고, 모두 세트피스를 위해 올라간 상황이었으니까.
남아있는 그들도 이미 공격 준비를 하던 비야르와 실바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중앙으로 치고 달리는 마르티노의 거센 돌파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패스? 아니라면 더 치고 들어가?’
중앙선을 넘고 나서부터 마르티노는 공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고민을 멈추지 못했다.
앞에 있는 소시에다드 선수들이 거리를 둔 채 곁눈질로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기에.
“빨리 내려와!”
역습을 막아내야 하는 수비의 입장.
더군다나 수적으로도 모자라는 지금 상황에서 그들은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자리를 지키는 게 다였다.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만약 패스를 차단하지 못한다면,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뒤에 있는 골키퍼가 일대일 상황을 막아내야만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비야르, 돌아서 라인 타고 뛰어!”
뒤에서 마르티노를 따라가며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유건이었지만, 스타트가 빨랐던 그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처럼 찾아온 역습 찬스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비야르와 실바 모두 안쪽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었기에 수비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견제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왼쪽 날개 비야르에게 큰 목소리로 안쪽이 아닌 바깥쪽으로 움직이라고 외친다.
타앗-!
그 목소리를 듣고 크게 회전하면서 몸을 틀어 땅을 박차고는 사이드 라인 쪽으로 달려가는 비야르였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그쪽에 있던 소시에다드의 수비 선수가 몸을 움찔하면서도 조금 이동했다.
전문적인 수비수였다면 현재 위치가 애매하다고 판단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미드필더였다.
오히려 그로서는 지금 이 자리가 더 익숙했다.
윙어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의 크로스를 막기 위해 커버를 돌아올 때와 비슷했으니까.
‘나이스!’
그러나 그것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마르티노의 마음처럼, 헤타페 CF에게는 행운이었다.
상대 선수의 움직임만 놓고 본다면 그 동작이 미약했더라도 중앙 지역에서 사이드로 스스로 빠져준 셈이다.
돌아서 뛰려는 비야르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덕분에 그 순간을 노려, 한 번 더 크게 치고 들어간다.
후욱-! 후욱-!
상대 선수가 호흡을 터트리며 쫓아오는 소리.
자신이 강하게 호흡을 내뱉으며 달려가는 소리.
두 가지가 섞여서 귀에 들려오고, 뒤에서 쫓아오는 레알 소시에다드 선수들이 상상된다.
꽤 먼 지점에서부터 스타트를 끊은 역습이었기에 이제 스스로의 가빠진 숨도 느껴지는 마르티노였다.
“실바!”
하지만 이 정도 거리를 질주해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비야르의 움직임에 한 명의 상대 팀 선수가 시선을 뺏긴 사이, 기다리고 있는 실바와 이대일 패스.
그것을 통해 마지막 남아있던 선수를 제쳐내는 데는 말이다.
- 미쳤다, 마르티노 그대로 가자!
- 이호준 뒤에서 엄청 열심히 복귀하고 있음. 따라잡을 것 같은데?
- 헤타페를 응원해야 될지 이호준을 응원해야 될지 오늘 너무 애매하다.
- 어어, 저거 진짜 잡힐 것 같은….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축따튜브의 채팅방에는 대화가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르티노와 실바가 이대일 패스를 통해 한 명의 선수를 제쳐내는 사이, 이호준이 급속도로 수비 지역으로 복귀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이미 다 쫓아온 상황이었다.
투욱-!
‘처음부터 내가 슈팅할 생각은 없었다고!’
그러나, 마르티노가 휘두르는 오른발은 슈팅을 선택하지 않고 살짝 옆으로 패스를 굴렸다.
덕분에 이제 막 따라잡아 뒤쪽에서 크게 집어넣는 이호준의 발을 피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빼줄 생각이었다.
슈팅이 엄청 자신 있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출렁-!
왼쪽으로 슬쩍 빼준 공에 달려와서 강하게 밀어 넣는 왼발 슈팅을 하는 선수는, 바로 실바였다.
그는 리턴 패스를 전해준 뒤 곧바로 마르티노의 왼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었다.
수비가 없는 골대 앞 상황, 유일하게 골키퍼만을 앞에 두고 마음 놓고 때린 강한 슈팅은 그물을 갈랐다.
엄청난 속도로 얼굴 옆을 지나가는 슈팅에 손을 뻗지도 못한 골키퍼를 넘어서 말이다.
“으아아아, 실바!!”
“나이스!!”
골을 넣고 자신만의 박자로 원정석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실바.
상대 수비를 끌어내었던 비요르가 가장 먼저 달려왔고, 그 이후는 마르티노가 양팔을 벌려 그들을 덮쳤다.
이어서 차례대로 달려오는 헤타페 CF 팀원들.
서로 끌어안으며 선제골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전반 16분경, 지금 이 순간 실시간 리그 순위표에서 17위로 올라가게 되는 헤타페 CF였다.
그것을 확정 짓기까지는 74분여의 정규 시간이 남긴 했지만 말이다.
***
“우선 지키자, 쿠아바 조금 더 내려와!”
선제골 이후 헤타페 CF가 점유율을 기반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 약 전반 25분까지 지속되었지만, 추가 골은 넣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찬스가 있었는데도 2점 차로 앞서나가지 못한 게 아쉬워졌다.
전광판의 시계가 31분이라는 숫자를 나타내는 시기가 되자, 전반전 초반처럼 파상공세를 펼치는 레알 소시에다드였기에.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았는데 그들의 공세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도 진형을 조금 낮추며 최전방의 쿠아바에게까지 수비 지원을 요구하는 유건이었다.
“건, 한 칸 더 낮춰!”
“나바스가 앞에서 끊고, 바요스는 쳐져! 미들 집중!”
“페르난데스도, 라인 보라고! 나보다 뒤로 쳐지지 마!”
하지만 사실 수비 진형에서 전체적인 지시를 담당하는 것은 바로 다니 가르시아.
헤타페의 캡틴이었다.
간단한 말들로 미드필더진과 사이드백들의 자리를 잡아둔 뒤, 자신이 마크해야 할 선수도 확실하게 붙잡는다.
전반전을 무실점으로 마치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워둔 채로.
“리!”
그러나 소시에다드의 공격력은 7위라는 순위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우세를 점하는 타이밍은 주고받았지만, 역습으로 넣었던 골 장면을 제외하면 더 유기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은 그들이었다.
이번에 또 한 번 공을 잡는 것은 헤타페 CF의 입장에서 페르난데스가 위치한 왼쪽 사이드의 이호준.
‘한 템포 빠르게!’
이번에는 왼발로 공을 터치해두자마자 바깥쪽으로 살짝 밀어두고는 바로 크로스를 올렸다.
계속된 자신의 드리블을 의식하는 헤타페의 사이드백이 예상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의도는 정확하게 들어맞았고, 발을 뻗지 못한 페르난데스는 그저 크로스가 날아가는 것을 곁눈질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둬, 내가 펀칭한다!”
뛰쳐나오며 말하는 것은 헤타페 CF의 골키퍼였다.
골키퍼와 수비 사이 애매한 공간으로 들어오는 크로스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확실하게 자신의 의사를 말한 덕분에 점프가 겹치는 일은 없었다.
퍼엉-!
골키퍼의 펀칭에 튕겨난 공은 아쉽게도 소시에다드의 소유권이었다.
더군다나 첫 터치를 좋게 가져간 덕분에 곧바로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각도를 만들어둔다.
라인 밖이었지만, 거의 노마크 상황이었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바요스가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공을 잡고 있는 선수의 발이 크게 휘둘러지고 있었으니까.
‘…젠장!’
큰 동작으로 육탄방어를 위해 던지는 바요스의 몸이 무색하게, 슬쩍 스쳐 지나갔다.
그저 슈팅을 차려고 했던 페인트 동작과 함께 말이다.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는 선수의 공을 빼앗아보려 급하게 몸을 비틀어 다리를 뻗는다.
삐익-!
그러나, 공만 건드리려는 의도와는 다르게 재빠르게 움직인 상대 선수의 발에 접촉하고 말았다.
바로 주심의 눈앞이었기에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라인 밖에서 일어난 파울이었다는 것.
“준비되면 차도 돼!”
프리킥을 위해 잠깐 중지된 경기는, 소시에다드의 키커들이 준비하면서 재개될 준비를 마쳤다.
그것을 알려주는 주심의 간단한 신호와 함께
골대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좋은 찬스였다.
“이건 참, 색다른 기분이네요.”
“표정이 좋아 보이네요, 저 자식.”
공 주변에 서 있는 레알 소시에다드의 선수는 두 명.
그중에 한 명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곳은 바로 헤타페 CF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몇 달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선수가 거기 있었으니까.
“저 녀석이 우리 골대를 향해서 프리킥을 차는 날이 오다니….”
그가 이번 프리킥을 처리할 거라는 것.
이니에스타와 코치진은 예상하고 있었다.
공이 놓인 자리는 그와 함께 서 있는 왼발잡이 선수보다는, 오른발잡이에게 더 좋은 자리.
거기에 헤타페 CF에서 몇 년간 주전 프리키커로 활동했었던 이력.
큰 이변이 없다면 키커는 정해져 있다고 봐도 되는 상황이었다.
투욱-!
강한 슈팅보다는 정확한 코스를 의식하고 살짝 찍으며 밀어 차는 슛.
벽을 아슬아슬하게 넘겨 골키퍼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려는 목적의 킥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시도하지만, 벽에 걸리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프리킥.
‘…이 자식, 익숙한 나를 상대하니까 반대 방향을 노릴 줄 알았는데!’
몇 년 동안 그 코스를 주로 차는 것을 알고 있던 자신을 상대하기에 다른 방향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벽을 넘기는 데 성공한 이상 골키퍼로서는 막을 수가 없는 코스였다.
소시에다드로 이적한 미드필더가 살짝 감아서 찬 프리킥은 벽을 넘어 골대의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보고는 홈팬들 앞에 가서 기뻐하면서도, 전 소속팀에 대한 예우로 세레머니는 생략한다.
그에게 헤타페 CF는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전반 42분,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레알 소시에다드였다.
레알 소시에다드 1 : 1 헤타페 CF.
***
“후반전은 정말 양 팀 모두 쉬지 않고 서로의 골대를 호시탐탐 노리네요!”
“유건 선수와 이호준 선수가 공격포인트가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경기는 오랜만입니다!”
“정규 시간이 약 20분 남았는데 이대로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요? 두 팀은 승리만이 필요한 경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승점 1점보다는 3점이 필요한 상황이죠.”
하프타임 이후 곧바로 시작된 후반전은,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 형태가 반복되었다.
서로 날카롭게 골문을 열어보려 했으나 아직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캐스터들이 언급하는 대로 오늘 경기에서 양 팀이 필요한 건 승리.
원하는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승점 3점이었다.
“과연 누가 최종적인 승…, 아 비야르 선수가 날카롭게 파고들어서 크로스!”
“수비수가 발을 잘 뻗었네요. 코너킥으로 연결됩니다!”
그들의 중계를 잠깐 멈추게 만든 것은 헤타페 CF에게 세트피스가 주어졌을 때였다.
유건이 찔러줬던 패스의 흐름을 살려 곧바로 크로스를 하려 했던 비야르.
꽤나 직선적인 움직임이라 티가 났던 탓에 수비를 성공해낸 소시에다드의 오른쪽 사이드백.
하지만, 코너킥으로 연결되었다.
높은 확률로 골을 노릴 수 있는 데드볼 상황인 세트피스로.
헤타페 CF에는 좋은 피지컬로 높은 곳에서 때려박는 헤딩이 가능한 장신의 선수들도 있었다.
쿠아바와 가르시아라는 두 명의 장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