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85화 (85/208)

85화. 왼쪽이 채워준다

“마틴이 은퇴를 선언했기에, 다음 시즌부터 우리의 주력 포지션은 두 개로 가져갈 예정입니다.”

“파티노를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메짤라를 위치시키는 4-3-3.”

“공격형 미드필더를 최대한 활용하는 4-2-3-1.”

“바로 이 두 가지 포지션을 베이스로, 출전 가능한 선수에 따라 세부적으로 변경해 나가려 합니다.”

헤타페 CF가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을 가기 위해 출발한 그 시각, 아스날에서는 미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당장 내년에 은퇴하는 은케티아, 그다음 해에 은퇴하는 캡틴 외데고르.

그리고 다음 이적 시장에 이적이 예정되어 있는 두 명의 선수까지.

아직 시즌이 진행 중이었지만 여러 명의 선수가 빠질 다음 시즌의 선수진 구상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올해 우리가 목표로 할 수 있는 것은 유럽대항전 진출입니다.”

“챔피언스리그라는 목표에 닿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르테타 부임 이후 리그 테이블에서 12위부터 시작하여 8위까지 올라왔지만 조금 더 높은 순위가 필요했다.

세계적인 프로축구선수들이 꿈꾸는 챔피언스리그라는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사실 올해는 진출할 수 없다는 게 기정화된 사실이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유로파리그에서도 몇 주 전 탈락이라는 아픈 결과가 나왔으니까.

“확실한 선수를 한 명 영입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예산의 대부분을 써도 좋습니다.”

몇 년간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지 못했기에 다가오는 이적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산도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아르테타는 그 전부를 쓰더라도 발전 가능성이 있고 실력 있는 선수를 원했다.

혹은 자신이 원하는 전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를 원하거나.

“박스투박스 혹은 메짤라 형태의 미드필더, 탄탄한 수비력에 발밑이 좋은 사이드백, 오프더볼이 좋은 윙어.”

“여름 이적 시장에서 최우선적으로 영입해야 할 세 명의 선수입니다.”

“다음 미팅까지 한 포지션씩 맡아 다섯 명의 후보까지 검토를 부탁합니다.”

아르테타의 주도하에 결정되는 영입이 필요한 자리.

이적이 결정된 오른쪽 사이드백 커피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새로운 선수.

유건, 파티노, 외데고르 등의 미드필더진과 호흡을 맞출 다른 유형의 미드필더.

왼쪽 날개 지역에서 안쪽으로 파고들 거나 타고난 골감각으로 득점을 도맡아 하던 은케티아 유형의 선수.

이렇게 우선은 세 명의 선수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시겠지만 나이는 최대 서른 살까지, 젊고 유망한 선수일수록 좋습니다.”

마지막에 덧붙이는 한마디.

그것은 영입생들의 나이에 관한 문제였다.

은케티아와 외데고르가 아웃되더라도 살리바, 파티노 등의 선수들은 이제 젊다고 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들을 대체할 리빌딩을 준비하고 있는 아스날로서는 당연히 고려할 사항.

이삼 년 뒤 다시 대체자를 찾아야 하는 리빌딩이 소용이 있겠는가.

‘…그라니트나 부카요, 키어런 같은 선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군.’

자리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온 아르테타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

예전 구단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을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몇 명의 선수들을.

지금은 모두 은퇴한 아스날의 레전드들.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 시절 이후 가장 강력했다고 평가받는 황금 세대의 그들을 말이다.

***

“나는 자네가 몇 달간 보여준 발전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네.”

소시에다드의 홈에서 펼쳐지는 프리메라리가 경기.

킥오프를 위해 하나둘씩 나가는 헤타페 CF의 라커룸.

가장 마지막에 나가는 한 명의 선수를 불러세우는 이니에스타였다.

스타팅 라인업에 새롭게 한 자리를 차지한 선수를 말이다.

“페르난데스,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선발보다는 교체로 더 많은 경기를 출전했던 헤타페 CF의 왼쪽 사이드백.

후안 페르난데스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그들에게 기회를 많이 제공해준 선발 선수 대신 출전 기회를 잡은 것.

주력과 크로스 능력보다는 탄탄한 수비력과 안정적인 빌드업이 장기인 선수였다.

‘생각대로 풀린다면 더 좋은 경기가 될 거야.’

상대적으로 오른쪽 지역에서 더 많은 비율로 공격을 들어오는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경기를 대비하면서 내린 결론.

그 동안의 라인업에서 조금은 색다른 변화를 주는 것이었다.

공격력이 수비력에 비해 우세한 오른쪽 사이드백 마르티노와 두 능력의 밸런스가 잡혀 있던 기존 왼쪽 사이드백.

거기에서 한 선수의 균형적인 능력보다는 중요 지역의 수비를 강화하면서 팀 전체적으로는 오른쪽 공격을 극대화하는 전술.

‘오른쪽에 빈 공간이 발생한다면, 왼쪽이 채워준다.’

기존 선발 선수에 비해 공격력은 부족하더라도 더 좋은 수비력과 발밑 기술을 가진 페르난데스.

그를 인버티드 윙백 형태로 배치함으로써 왼쪽 지역을 기반으로 안정감을 강화하여 미드필더를 강화하는 작전.

사이드백이 미드필더로 올라감으로써 나바스, 바요스가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전체적인 커버 플레이를 돕는다.

“오늘 우리는 이기고 돌아간다!”

아직 이번 스타팅 라인업의 변화가 효과를 발휘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라운드로 나가는 선수들의 등 뒤에서 강하게 소리치는 이니에스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레알 소시에다드를 꺾고 승점 3점을 획득한다면 다시 한번 리그 순위를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었다.

지난 경기 기준으로 공동 17위였던 팀은 무승부를 거두면서 헤타페 CF보다 승점 1점이 앞서있는 상황.

하지만 이번 라운드에 그들은 FC 바르셀로나를 마주했고, 티키타카 전술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역전의 찬스였다.

삐이익-!

그만큼 중요한 기로에 놓인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헤타페 CF뿐만 아니라 레알 소시에다드에게도 중요한 매치였다.

다음 시즌 유럽대항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

“내가 커버 갈 테니 백업 부탁해!”

“페르난데스, 너무 올라가지 말고 조금만 내려!”

상대 팀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 초반은 조금 밀리고 있었다.

오른쪽 라인을 올리면서 그 빈 공간으로 왼쪽 라인의 선수들이 조금씩 이동하며 메워주는 전술을 사용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 이유가 바로 소시에다드의 패스 줄기를 담당하는 핵심 선수의 컨디션이 꽤 좋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로부터 시작되는 전환 패스와 사이 공간으로 넣어주는 패스를 걷어내기 급급한 헤타페 CF였다.

“거기까지! 간격 너무 좁혀진다 바요스!”

수비진과 미드필더진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바요스마저 깊은 위치까지 내려와 있을 정도.

적절한 간격을 유지해주어야 상대 선수들이 수비 라인까지 압박을 가는데 불편함을 느낀다.

소시에다드의 공격수들이 자신에게까지 쉽게 압박을 들어오자 간격을 조금 넓히기 위해 외치는 가르시아였다.

조금 더 안전한 빌드업을 위해서 말이다.

“쟤 왼발이다, 페르난데스!”

가르시아와 바요스의 간격 유지 덕분에 전반전이 시작한 지 10분 정도가 지나서야,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헤타페 CF가 점유율을 서서히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 13분경 빠르게 압박을 가져가는 상대 팀의 미드필더 때문에 드리블이 조금 길었던 나바스.

그 공을 차단해낸 소시에다드의 선수가 오른쪽 사이드를 향해 크게 벌려준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로벤이라고 불렸던 대한민국의 이호준을 향해서.

오늘 꽤 날카로운 크로스를 이미 한 번 보여준 그의 왼발을 의식하며 주의하라고 알리는 바요스의 목소리.

‘…이번에는 확실하게 막아낸다!’

전반 5분경, 자신이 쉽게 뻗은 다리를 스쳐 지나가며 유효슈팅까지 연결된 정확한 크로스를 올렸던 선수.

이호준에게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시선을 공에 집중하고 있는 페르난데스였다.

한 번 뚫렸으니 이번에는 무조건 막아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투툭-!

대한민국 대표팀의 오른쪽 날개 이호준이 자주 사용하는 기술.

안쪽으로 치는 척 한 번 공을 살짝 건들고, 바로 바깥쪽으로 조금 길게 치면서 사이드 지역에서 안쪽으로 파고드는 드리블이었다.

“확실하게 보고 있다고!”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확실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페인트에 현혹되지 않고 상대의 움직임을 끝까지 따라갔다.

투욱-! 타악-!

‘이 자식, 끈질기네.’

그런 수비를 떨쳐내기 위해 이호준은 순간적으로 다시 인사이드로 공을 터치하며 직선적인 드리블로 바꾼다.

조금 길게 굴러가는 공을 바로 크로스하는 척 오른발을 크게 휘두르다가 직전에 살짝 접는다.

그러나 거기에도 현혹되지 않는 페르난데스를 보며 한 번 더 터치한다.

그리고 라인을 나가기 전 빠른 타이밍에 곧바로 오른발을 이용해 크로스를 올렸지만….

퍼엉-!

끝까지 속지 않고 뻗어낸 페르난데스의 발이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물론, 코너킥 상황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비야르, 실바! 언제든지 준비하고 있어!”

“8번 체크! 뒤에 10번!”

“멍청이들, 사람 놓치지 말고!”

유건도 세트피스 수비를 위해 헤타페 CF의 날개들에게 준비하라는 말을 전해두고는 복귀했다.

만약 성공적으로 막아낸다면 바로 위협적인 역습으로 나갈 수 있게 말이다.

골대 앞이 가까워질수록 전체적으로 마크맨을 지시하는 가르시아의 외침이 크게 들려왔다.

뻐어엉-!

심판의 휘슬이 불리지 않을 정도의 범위에서 최대한 몸싸움을 하는 헤타페 CF의 선수들.

그러던 와중, 잠깐 손을 들며 팀원들에게 세트피스 신호를 보낸 이호준의 킥이 날아왔다.

중앙 지역의 장신 선수들을 넘어 살짝 뒤쪽으로 흐르는 크로스.

거기에 달려드는 선수가 있었다.

“…크윽, 내가 높다고!”

치열하게 어깨싸움을 하며 달려오는 두 명의 선수.

공이 가까워지자 옅은 신음을 하며 비슷하게 점프를 하며 경합한다.

푸싱 파울이 되지 않도록 손을 최대한 쓰지 않고 높게 점프하는 쿠아바.

다행히도 괴물 같은 운동능력을 가진 그였기에, 거의 같은 타이밍에 함께 점프한 선수보다 높은 타점을 가질 수 있었다.

투우웅-!

그러나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정확한 방향을 정하고 걷어내기보다는, 머리에 맞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다만 그 세컨볼이 유건의 앞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간다!’

공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오른쪽으로 소시에다드의 선수 한 명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 유건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고민들.

길게 치고 빠르게 달리면 한 번에 뚫지 않을까?.

옆에 있는 이 선수는 빠른 주력을 가지고 있었나?.

살짝 접는 건 어떨까?.

‘달릴 수 있는 상황은 참 좋아한단 말이야, 이 자식.’

공까지 단 두 발자국, 한 호흡이 남은 상황에서 상대 팀 선수의 등 뒤로 보이는 희미한 형체.

하늘을 향해 높게 올린 금색 포마드 머리가 보이는 순간, 고민을 끝내는 유건이었다.

스윽-!

치고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발바닥을 이용해 슬쩍 왼쪽으로 공을 끌어온다.

자연스레 옆에서 따라오는 선수도 그 방향으로 몸을 튼다.

투욱-!

그 동작이 끝나기 전에 순간적으로 살짝 점프하며 왼발을 이용해 오른쪽 하향 대각선 방향으로 공을 터치한다.

적절한 터치 강도였다.

너무 약하거나 강하지 않고, 바로 다음 동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정도.

“이 자식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는 네이마르가 자주 쓰는 형태의 백숏.

이 상황에서 갑자기 그 동작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는 관성에 의해 역동작이 걸렸다.

당황하는 신음을 내뱉는 사이, 유건은 반시계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오른발로 강하게 패스한다.

빠른 땅볼 패스를 위해 공의 중앙보다 약간 위쪽을 때리면서.

“마르티노!!”

이미 폭발적인 질주를 하고 있는 헤타페 CF의 오른쪽 사이드백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