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이봐, 대머리
둠바의 데뷔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만났을 때마다 득점을 하지 못했던 헤타페 CF.
그 징크스를 깨버리는 순간이었다.
중앙 수비수의 측면으로 빠져나가는 유건의 킬패스는 안쪽으로 파고드는 실바의 발에 정확히 도착했다.
그리고는,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슈팅으로 가져갔다.
이미 수비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둠바의 발이 닿기 전에 말이다.
출렁-!
골키퍼의 손에서 한참 떨어진 골대 구석으로 정확히 꽂아 넣는 실바의 슈팅은 그물을 흔들었다.
놓치기가 더 힘든 찬스를 만들어준 팀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확실하게 해결했다.
등 뒤에 흔들리는 그물을 쳐다보지도 않고 힘차게 달려가는 실바.
와아아아-!
“나이스으!!”
“이놈들, 내가 해낼 줄 알았다니까!”
좋은 플레이에 화답하는 홈팬들의 환호.
그를 뒤이어 흥분한 채로 실바의 뒤에서 덮쳐드는 헤타페 CF 팀원들.
그들로서는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좋지 않은 기록을 깨버리는 순간이었다.
유니폼을 벗어 던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흥분하는 게 당연했다.
“유건 선수의 패스가 또 한 번 빛이 나는 순간입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중거리 슈팅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겠죠!”
“맞습니다. 유건 선수가 후반전에만 기록한 중거리 슈팅이 많고 바로 직전에는 유효슈팅을 만들었거든요.”
“아, 멋진 패스를 보여주면서 동점 골을 어시스트 하네요!”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계하지만, 같은 국적의 선수인 유건의 활약을 바라고 있는 캐스터들이었다.
후반전 슈팅을 날릴 때마다 될 듯 말 듯 한 공격포인트 기록을 계속 기다려왔다.
그만큼 기대했기에 이번에 보여준 유건의 어시스트에 대한 칭찬을 아낌없이 내뱉는다.
후반전 23분, 유건의 어시스트로 동점을 만들어내는 헤타페 CF였다.
***
그러나, 겨울 이적 시장 이후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헤타페 CF의 무패행진은 딱 거기까지였다.
열심히 준비한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수비는 실점 이후 성공적으로 해냈다.
하지만 이때까지 넣지 못했던 골을 터트리며 징크스를 깨버리는 순간, 팀원들의 긴장이 조금 풀려버렸다.
“리턴 줘 봐!”
후반 38분경, 아틀레티코의 오른쪽 날개에서 시작된 공격.
왼쪽 사이드백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공을 내주고 돌아서 안쪽으로 파고든다.
거기에 맞춰 넣어주는 미드필더의 리턴 패스.
정확하게 달려가는 발에 안착되려 하는 그 공은 슈팅각을 열어주었다.
‘…슈팅을 때리기 전에!’
너무 프리한 상황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에 가르시아가 육탄 방어를 위해 뛰쳐나왔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강한 슈팅을 막아내고 싶더라도 그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몸을 측면으로 틀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틀레티코의 윙어가 훼이크를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더라도, 쫓아가기 쉽지 않았다.
투욱-!
몸을 돌리며 뻗어내는 가르시아의 발에 걸리지 않게, 치고 들어온 방향으로 한 번 더 공을 굴려놓는 공격수.
살짝 지나치며 다시 한번 크게 휘두르는 발.
하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나머지 한 명의 중앙 수비수가 몸을 날리고 있었다.
투욱-!
“이걸로 끝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훼이크였다.
한 번 더 공을 치면서 수비수의 태클을 돌아서 드리블을 친다.
순식간에 골대 오른쪽에서 두 번의 터치와 함께 센터백들을 제쳐내고 골대의 왼쪽에 위치한 상황.
골키퍼가 각을 좁히고 나오지만….
출렁-!
수비수를 제쳐내고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유로운 찬스에서 꽂아 넣는 슈팅의 코스는 정확했다.
각을 좁히러 나오기 이전에 비어있는 공간으로 공을 보냈으니까.
“으아아아! 이게 우승 DNA라고!”
골을 넣는 순간, 원정팬들 앞으로 달려가며 왼쪽 가슴에 달려 있는 엠블럼을 강하게 두들기는 아틀레티코의 윙어.
한 명의 선수가 팀원의 지원을 받아 윙백을 포함한 센터백들까지 총 세 명을 농락하면서 먹은 골.
동점 골 이후 기세가 미친 듯이 오르고 있던 헤타페 CF에게 찬물을 끼얹는 득점이었다.
중계로 봤다면 자신들도 감탄을 했을 상황.
그러나, 그런 멋진 장면을 직접 겪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
“…젠장, 나머지 시간 동안 동점을 노려보자고!”
“자자, 다시 한 골 넣자!”
꽤 오래 진행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세레머니를 보면서, 이를 악무는 가르시아.
그리고 장갑을 두어 번 마주치며 팀원들의 집중력을 살려보려는 골키퍼의 외침.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은 다시 한번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비야르, 킥오프 후에 바로 앞으로 달려봐.”
“알겠어!”
아틀레티코가 추가골을 넣고 들뜰 거라 예상한 유건은, 이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쿠아바가 휘슬이 울린 뒤 빼준 공을 곧바로 비야르에게 롱패스로 건네줄 세부 작전에 대해서.
삐이익-!
미리 얘기가 된 것인지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춤을 추는 세레머니까지 마치고 나서야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간 상대 팀 선수들.
그들이 자리로 복귀하고 나서야 휘슬이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쿠아바는 공을 뒤로 살짝 내주자마자 앞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스타트를 끊은 왼쪽 날개 비야르와 오른쪽 날개 실바와 함께 말이다.
뻐어엉-!
그런 움직임을 보자마자, 공을 잡고 있는 유건을 압박하기 위해 뛰쳐나오는 아틀레티코의 공격수.
그러나 이미 늦었다.
원래라면 킥오프를 하자마자 압박을 가했어야 했지만, 앞서나가는 골을 넣었다는 생각에 잠깐 방심했던 그들.
그 짧은 순간의 차이는 유건이 뿌리는 패스의 정확성을 올려준다.
“자리지키…, 오른쪽! 오른쪽 마크해!”
“조금 길다! 등지고 지켜!”
비야르, 쿠아바, 실바가 동시에 전방으로 뛰고 있는 상황.
유건의 발이 공을 차내기 전까지 수비하는 입장에서 누구에게로 패스가 올지 방향을 알기 쉽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주변에 있는 헤타페 CF의 공격수를 마크하다가, 유건의 패스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방향을 확정한다.
하늘 위에서 날아오는 공의 낙하지점을 조금 더 자신들의 지역으로 길게 떨어질 거라고 추측하면서 말이다.
‘비야르라면 가능성 있어!’
그러나 그 패스의 길이는 유건이 의도한 바였다.
공의 아랫부분을 차내 역스핀을 걸어두긴 했지만 라인을 벗어날 것처럼 보이는 아슬아슬한 패스를 보내는 것 말이다.
그리고 헤타페 CF에서 주력이 가장 뛰어난 비야르라면, 잡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콰앙-!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모든 선수들이 방심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드필더들의 키를 넘어 땅에 한 번 바운드된 이후로 역스핀에 의해 속도가 줄며 미친 듯이 질주를 한 비야르가 패스를 받아내는 듯했다.
그러나 먼저 도달한 한 명의 선수가 있는 힘을 다해 클리어링을 해버렸다.
“…다들 집중하라고, 이 자식들아!”
그 주인공은 알렉스 둠바.
유건, 쿠아바와 같은 나이에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월드 베스트에 선정된 선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에이스였다.
“다들 조금만 버티자!”
“크로스 올려! 기회 나면 바로 때려!”
결정적인 찬스가 될 수 있었던 비야르의 쇄도에 맞춰 보냈던 유건의 패스.
그게 둠바에게 막히고 난 이후, 약 5분 동안 무섭게 몰아붙이는 헤타페 CF였다.
순위에 상관없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기세에 밀려 반코트 경기를 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중간에 역습으로 인해 추가 실점을 할 뻔한 상황이 있었지만 가르시아의 지능적인 수비가 팀을 구해주었다.
“한 골만 더 넣자고!”
그러나 90분 동안 한 번 성공시킨 득점을, 겨우 5분 남아있는 상황에 한 번 더 성공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유건과 나바스의 중거리 슈팅.
쿠아바의 머리를 노린 사이드백의 크로스.
안쪽으로 파고들며 때리는 실바의 슈팅과 비야르의 빠른 주력 모두 소용없었다.
삐이익-!
‘아, 결국….’
결국 2-1의 스코어를 유지한 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다.
그제서야 유건의 머릿속에 패배라는 사실이 자각된다.
좋은 활약을 이어오던 헤타페 CF의 무패행진이 끝났다는 사실도 함께.
스윽-!
“이봐, 대머리!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다음번에는 내가 꼭 이긴다, 덩치!”
그러던 중, 한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 싸쥐며 반대쪽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을 걸어오는 거대한 덩치의 선수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 유건이었다.
올림픽에서 한 번 유니폼 교환을 했었던 알렉스 둠바가 다시 한번 찾아온 것.
패배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담아 유건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넨다.
사실 첫 번째 만남 당시 무승부를 이뤘던 것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은 자신의 승리라는 것을 자랑하러 온 점은 꼴보기 싫었지만 말이다.
- 와, 몇 개월만이야? 올림픽 이후로 다시 한번 둠바랑 유니폼 교환하네!
- 솔직히 둠바도 놀라지 않을까? 그때 본 선수가 리그에서 주목받는 활약으로 치고 올라오고 있는 걸 보고 있는 거니까!
└ 그런 걸로 놀라기엔 둠바 스스로가 너무 미친놈임. 쟤랑 축따형이랑 같은 나이인 거 잊으면 안 됨!
└ 와, 새삼스레 나이를 말하니까 점마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느껴지네!
그래도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축따튜브의 팬들은 잠깐 추억 속에 잠겼다.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처음 국가대표에서 평가전을 치르며 만났던 둠바와의 유니폼 교환.
그리고 그때 당시에 비해 엄청 거대해진 유건의 존재도 새삼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와아아아-!
“멍청이, 이리 와! 팬들한테 인사하자고!”
유니폼 교환을 끝낸 유건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니 가르시아였다.
헤타페 CF의 홈구장에는 마치 승리라도 한 것처럼 응원가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최근들어 보여주는 팀의 모습은 겨우 한 경기만으로 실망할 정도가 아니었기에.
그런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경기장을 천천히 걸으며 박수를 치는 헤타페 선수단이었다.
승리하지 못했음에도 팬들이 박수를 쳐준다는 것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까.
‘…다음번에는 꼭 승리로 보답을!’
그런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유건도 빠르게 달려갔다.
그들에게 다음 경기는 꼭 승리를 선물해주겠다며 속으로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각, 아스날 FC 트레이닝 센터에 있는 아르테타의 사무실에는 여러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산티 카솔라, 알버트 스투이벤버그 등의 아스날을 이끌고 있는 아르테타 사단.
그들의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선수는 바로 마틴 외데고르.
오랫동안 아스날의 주장으로 뛰고 있는 레전드 선수였다.
“다음 시즌까지 뛸 생각입니다.”
“마틴, 아직 삼 년은 더 뛰어도 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에이, 내년이 좋은 모습으로 은퇴할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인 걸 느끼고 있다구요. 그리고 떠나는 거 아니에요. 이번 시즌 시작하면서 얘기했던 거 아직도 유효하죠, 보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바로 은퇴 시기에 대한 얘기.
코치진들 사이에서는 만류하는 얘기가 나왔지만, 이미 확정한 채로 말하는 외데고르였다.
그리고 아르테타를 보며 바라보는 마지막 질문.
“…나야 환영이라고, 마틴.”
“라이센스는 내년에 따놓을게요.”
이미 시즌 초반에 둘 사이에서 오고 갔던 얘기.
은퇴 이후 코치로서 자신의 사단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했던 아르테타였다.
그 제안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지금 이 순간 말하는 외데고르.
아스날로서는 어떻게 보면 큰 변화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은케티아, 외데고르 등 베테랑 선수들의 예정된 부재.
그건 마치 오바메양, 외질, 라카제트 등의 선수들이 다 떠나고 난 후 리그에서 가장 어린 스쿼드로 써 내려간 전설의 시작이 된 시즌.
아르테타가 성공적으로 리빌딩을 해낸 바로 그 시즌이 재현될 거라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