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이번엔 내가 이긴다
“…역습에 조심하면서 철벽을 뚫어야 한다.”
“쉽지 않은 상황이고, 딱히 약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도 많지 않다.”
이니에스타의 브리핑과 함께 준비가 시작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 대비 트레이닝.
그의 말 그대로 큰 약점은 없는 팀이었다.
유일하게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철벽이라 불리는 수비에 비해 공격이 단조롭고 약하다고 평가받는다는 점.
‘그러나 지난 시즌부터 달라졌지.’
공이 라인을 나가지 않은 오픈 플레이 상황에서는 딱히 변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건이 인지하는 대로 그들은 코너킥, 프리킥을 포함하는 모든 세트피스 상황에서 실점하는 비율을 줄이고 득점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덕분에 지난 시즌 리그 우승 경쟁 상대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세트피스 득점으로 잡아내고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세트피스 상황에서, 비야르를 제외한 모두는 수비를 위해 내려온다.”
“우리 팀에서 가장 주력이 빠른 비야르는 역습을 위해서 하프라인 근처에 머무르게 될 예정이다.”
“세트피스를 제외하고는 경기 중에 지금까지 써왔던 4-3-3 포지션을 유지한다.”
이니에스타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꺼내든 전술적 지시는 세트피스에 중심이 맞춰져 있었다.
조금 더 수비적인 진형을 위해 나바스와 유건이 조금 더 낮은 위치에서 시작하는 것을 빼면 말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변경되는 전술이 없었기에 어떻게 보면 정면승부였다.
지난 시즌 우승팀과의 경기에서 말이다.
“충분히 이번에는 득점하고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 멍청이들과 저기 있는 멍청이가 해결해줄 거라고.”
이어서 유건과 쿠아바의 어깨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중간에서 고개를 내밀며 말하는 가르시아.
그가 턱 끝으로 가리키는 위치에는 오른쪽 사이드백 마르티노가 있었다.
멍청이라고 부르는 세 명의 어린 선수는 바요스와 함께 헤타페 CF의 변화를 불러온 주역들.
주장으로서 그들에게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도 가능성이 있다에 한 표.”
다음으로 말을 꺼내는 것은 변화의 주역 중 한 명이자 영입해오자마자 가장 노장이 된 마르코 바요스였다.
그가 보기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이렇게까지 걱정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다.
레알 소시에다드 시절, 그들에게서 승리를 따내 본 경험도 있었으니까.
“이제 어떤 팀이 와도 해볼 만한 거 아니야? 겁먹지 말자고.”
“그래! 우린 지금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마지막은 입을 열지 않던 다음 선수들까지 함께 화이팅을 하며 마무리되는 브리핑 시간.
그들의 말대로 헤타페 CF는 리그에서 최상위권인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도 이미 무승부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더군다나 그 경기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승리를 이어가고 있었기에 팀 내부의 분위기는 엄청났다.
물론, 분위기가 완전 경기력을 대변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자,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해보자고!”
“조끼를 입는 선수들은 나바스, 바요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건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홈구장에서 맞이하는 경기를 위한 각오를 다진 선수들.
그들을 뒤에서 불러 모으는 것은 훈련 준비를 마친 코치진이었다.
첫 번째로 연습경기를 위해 조끼를 입는 선수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삐이익-!
“오늘 한 쿼터 질 때마다 그 팀은 벌칙으로 플랭크다!”
그리고는 곧바로 훈련을 시작하는 휘슬을 입에 물고 힘차게 불어버린다.
미리 얘기되지 않은 연습경기의 결과에 따른 벌칙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면서.
그렇게 헤타페 CF는 또 한 번의 강팀을 만날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
“바로 리턴 나온다!”
“비야르, 미리 움직여!”
“건, 맨온!”
아틀레티코를 불러들이기 전날 오전, 트레이닝 센터에서는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후에는 체력 안배를 위해 간단한 전술, 움직임 훈련만 예정되어 있었기에 모두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실전같은 훈련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루에 세 가지를 다 끝내야 하니까 쉽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유건은 머릿속에 울리는 메세지가 시키는 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쉴 수가 없었다.
동기화를 진행하는 선수가 한 번에 두 명이 늘어나게 되면서 하루에 세 종류의 훈련을 마무리해야 했으니까.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67.36%]
[상대 팀의 압박을 벗어나서 안전하게 팀원에게 패스를 연결하세요 (3/5)]
가장 익숙한 지단의 동기화율을 위한 메세지는 어렵지 않게 횟수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쉬운 숙제가 할당되었기에.
[토마스 로시츠키의 데이터 동기화율 61.92%]
[주변 동료와의 2대1 패스를 통해 한 명의 선수를 제치세요 (2/5)]
오늘 정해진 로시츠키의 동기화율을 위한 메세지도 어렵지는 않았다.
훈련 중에 평소 즐겨하는 플레이를 하면 되었으니까.
[메수트 외질의 데이터 동기화율 43.02%]
[상대 팀의 태클을 피해 비어있는 공간에 있는 팀원에게 정확하게 공을 전달시키세요 (1/3)]
문제는 외질이었다.
태클을 피하라는 전제조건이 있었기에 패스 타이밍을 조금 늦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상황에서 정확하게 패스를 하기는 쉽지 않았고, 팀원들과의 호흡이 어긋나는 순간이 있었다.
다행이었던 점은 밖에서 보지 않고서는 크게 티가 나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경기를 뛰는 팀원들로서는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유건의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담긴 추측을.
“건의 몸이 무거워 보이는데요. 이대로라면 내일….”
“아직, 조금 더 보자고.”
하지만 밖에서 훈련을 진행시키면서 지켜보던 이니에스타와 코치들의 눈에는 너무나 잘 보였다.
유건의 패스 타이밍이 조금씩 늦고 있다는 점이.
그를 보며 넌지시 말하려는 헤타페 CF의 코치였지만, 이니에스타가 그의 말을 막았다.
‘이번엔 어떤 걸 보여줄 테냐?’
사실 도전적인 패스를 가져가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이 평소와 똑같았다.
오히려 더 좋으면 좋았는데 깊숙하게 킬패스를 찌르는 상황에서만 조금씩 멈칫하는 유건이 보였던 이니에스타.
매 경기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원석의 변화를 기대하며 조금 더 지켜보자고 말했던 것이다.
필요가 있는 훈련이라고 생각해서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씨! 이번에는 카운트될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유건은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자꾸 자신이 조끼 팀의 패스 플레이를 끊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들어오는 가르시아의 태클을 피하며 공격수에게 전달하는 유건.
당연히 숫자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카운트되지 않았다.
여전히 필요한 두 번의 패스를 위해 다시 공간을 찾아 뛰어가는 유건이었다.
‘몸싸움이 이제 꽤…, 능숙해졌단 말이지.’
유건의 최종 목적 자체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다른 선수들이 태클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패스를 해야 하는 숙제.
그 말은 그 상황 이전에는 공을 지켜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팔을 뒤로 뻗어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대면서 등지는 유건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가르시아였다.
헤타페 CF로 임대를 온 이후, 첫 훈련에서 보여주었던 미숙한 몸싸움이 아직 눈에 선했으니까.
그렇게 유건은 머릿속에 울리는 메세지들을 수행하면서,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할당된 숙제들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세세한 부분에서까지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면서 말이다.
***
- 축따형이 세계적인 리그 오니까 올림픽에서 마주쳤던 애들도 많이 만나네
- 아직도 믿기지가 않음. 저 둠바를 축따형이 한 번 뚫어냈었다니!
- 작년 아틀레티코는 진짜 언터처블이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 듯!
- 그냥 축따형 믿어보자! 우리 실망시킨 적 없잖아
지난 시즌 우승팀.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뒤를 이어 3위에 위치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들과의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고, 축따튜브에는 오늘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올림픽에서 맞붙었던 둠바와의 재대결이 성사된 날이었으니까.
“쿠아바!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고!”
“나는 누가 와도 뚫을 수 있다니까!”
“이놈들아, 조용히 하고 집중하자.”
유건은 쿠아바, 마르티노와 함께 삼각형을 이뤄서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유건의 도발에 자신감을 가지고 장난이 섞인 목소리로 받아치는 쿠아바.
하지만 옆에 있는 마르티노는 평소와 다르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왼쪽 날개는 지난 시즌 리그 베스트를 차지한 선수였으니까.
심지어 세계 최고의 루키라고 주목받는 후안 루이스를 밀어내고 말이다.
“선수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고 있는데요?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오늘 경기에 관해서는 유건 선수와 둠바 선수의 재만남이 성사되었다는 부분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철벽의 중심 둠바 선수가 올림픽 때처럼 또 한 번 뚫리게 될지, 아니면 지켜낼지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대결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유건 선수가 팀원들 간의 호흡으로 뚫어내었으면 좋겠습니다!”
캐스터들이 희망하는 오늘 경기의 결과.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희망하는 것과 동일하게 헤타페 CF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예전부터 응원하는 팬이 아니라면, 대부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유건을 응원하리라.
그런 마음으로 워밍업 이후 라커룸에 복귀했다가, 경기를 시작하기 전 입장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봐, 다시 만나서 반갑다. 이번엔 내가 이긴다.”
그리고 그 시각, 킥오프를 위해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유건에게 말을 걸어오는 한 사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그게 가능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알렉스 둠바.
유건이 안면이 있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보자마자 내가 이길 거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겠는가.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인마. 끝나고 유니폼 교환하자고!”
“재밌는 경기 부탁한다!”
경기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한 번 알려주면서, 둠바가 내미는 손을 부여잡는 유건이었다.
둠바의 마지막 말처럼 유건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재밌는 경기를 하고 좋은 승부를 펼치자고.
‘…미안하지만, 이기는 건 내가 될 거다.’
미소를 띤 얼굴로 둠바와 악수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끓어오르는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패배하는 것은 싫었다.
오직 승리만을 원했다.
삐이익-!
이윽고 경기 전에 필요한 절차가 끝나고,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려 퍼졌다.
모든 선수들이 둠바를 뚫고 골을 넣고 싶어 하는 헤타페 CF.
둠바를 필두로 안정된 포백라인을 구축하여 최상위권에서 경쟁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들의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