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타이밍이 안 나오는데
그러나 선제골을 넣은 뒤에도 팽팽했던 경기 양상은 전반 30분 정도를 기점으로 조금씩 세비야 FC의 점유율 상승과 함께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위기가 찾아온 건 전반 37분.
세비야의 미드필더진에서 나온 날카로운 패스가 마르무쉬에게 전달되었고, 그가 지체하지 않고 골대 근처로 올린 빠른 크로스.
“내가 막아준다고 그랬잖아!”
헤타페 CF의 이번 실점 위기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주인공은 바로 다니 가르시아였다.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해서 위치를 잡아놓은 가르시아의 발끝에 먼저 걸려 골대 옆으로 공을 차 냈던 것.
“각자 자리 잡고, 한 명씩 마크 놓치지 마라!”
하지만, 아직 위기 상황이 완전하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클리어링 된 공이 골대의 측면으로 나가면서 코너킥 상황이 세비야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팀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가르시아의 외침은 세트피스 지원을 위해 내려온 유건의 귀에도 들려왔다.
‘내가 잡아야 될 선수가….’
세계적인 리그에서 경쟁하는 헤타페 CF답게 반복된 세트피스 훈련을 통해 이런 상황에서 각자 선수 한 명을 마크하기로는 이미 얘기가 되어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유건은 역습이 나갈 수 있는 패스를 위해 세컨볼을 노렸겠지만, 지금은 실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
이번 코너킥에서는 나바스보다 조금 더 큰 179cm라는 키 덕분에 헤딩 경합을 위해 배치되는 유건이었다.
물론 수비적인 상황에서 위치선정이나 헤딩능력이 장점은 아니었기에 성공적인 클리어를 위해서는 운이 조금 따라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뻐엉-!
“돌아간다! 눈앞에 있는 놈들 놓치지 마!”
“빈 공간으로 파고들자고!”
헤타페 CF의 오른쪽 코너 플랫에서 진행되는 세비야의 코너킥.
킥을 위해 서 있던 선수가 공을 회전을 살짝 주며 차내는 순간, 양 팀의 선수들은 각자 원하는 목표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에 맞춰 골대 앞을 혼잡한 상황으로 만드는 수많은 선수들의 움직임.
유건도 자신이 마크하고 있는 상대 미드필더 한 명의 유니폼을 살짝 잡은 채로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크윽, 세컨볼!”
보통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장신의 팀원을 향해 크로스를 올리는 게 대부분의 팀들이 선택하는 첫 번째 코스.
이번 코너킥도 그와 같았다.
헤딩을 위해 올라온 세비야의 중앙 수비수를 마크하던 가르시아의 신음과 함께 둘 사이에서 경합된 공은 측면으로 떨어진다.
혼잡한 상황 속에서 측면 혹은 뒤로 흐르는 세컨볼은 실점 혹은 득점과 직결되는 위기 혹은 기회였다.
“건!”
“루키!”
행운인지, 불행인지 아직 모르지만 볼이 향하는 방향은 유건이 있는 골대의 왼쪽 측면.
짧은 크로스를 잘라내기 위해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여준 미드필더를 따라왔는데 그쪽으로 세컨볼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공을 보며 헤타페 CF의 팀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실점을 막아달라는 마음을 담아 외치는 게 유일한 행동이었다.
‘…내가 먼저 닿아라!’
하지만 유건은 그런 애타는 팀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정신이 없었다.
오직 자신 쪽으로 흘러나오는 공에 집중하며 클리어를 위해 발을 뻗어내고 있었으니까.
옆에 있는 미드필더와 서로 유니폼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움직임을 방해하면서 말이다.
투욱-!
그러나 상대적으로 키가 작았던 세비야의 선수가 이미 한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먼저 공에 닿은 것은 그의 발.
다행인 점은 그런 와중에도 유건과 서로 유니폼을 잡고 있어 중심을 잃은 상황이었기에 정확하고 강한 슈팅이 불가능했다는 점.
“아,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마는 세비야입니다!”
“슬로우 장면을 봤을 때는 서로 유니폼을 끌어당기고 있었기에, 충분히 경합 상황으로 볼 수 있어 피케이는 안 불릴 것 같은데요!”
“유건 선수가 끝까지 몸싸움을 해준 덕분에 강하게 슈팅을 하지 못했네요! 오늘은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유건 선수입니다!”
덕분에 캐스터들이 언급하는 대로 그 슈팅이 실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슈팅 방해를 위해 어깨를 부딪치며 몸싸움을 해준 유건이 있었기에.
촤악-!
“잘했다, 루키!”
VAR은 볼 필요도 없다는 확정적인 표정으로 파울이 아님을 선언하는 주심의 제스쳐.
그와 함께 성공적인 캐칭을 해낸 헤타페의 골키퍼가 유건의 머리를 두드리며 칭찬했다.
그런 모습 뒤로 주심에게 항의를 하는 세비야의 선수들이 중계화면에 잡혔지만,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허용되는 수준의 몸싸움.
항의를 멈추지 않는 세비야 FC의 주장이 구두 경고를 받고 나서야 재개되는 경기였다.
***
- 후, 진짜 심장 쫄렸네. 전반전 막판에 세비야가 몰아붙일 때 진짜 한 골 먹는 줄 알았네!
- 축따형 결승 가려면 골도 한 개 더 넣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 맞음. 실점 안 해서 다행인데 일단 득점이 무조건 필요한 상황임!
- 후반에 축따형이 하나 더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 축따형! 축따형!
코너킥 상황 이후에도 심장이 떨어지는 중거리슛을 하나 만들어낸 세비야였지만, 골대를 살짝 스쳐 지나가며 득점이 되지 않았다.
약 15분간 파상공세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 헤타페였고 하프타임을 가지는 동안 별튜브 채팅창에서는 안도의 감정이 담긴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결승전 진출을 위해서는 한 골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삐이익-!
“우리 다시 집중해서 가보자고!”
“얘기했던 대로 조금 더 서로 움직여주고, 자리 잡자!”
점유율을 너무 많이 뺏긴 전반전 막바지 경기 내용을 복기하며 문제점에 대해 얘기를 나눈 헤타페의 하프타임.
휘슬이 울리고 세비야의 선축이 시작되는 순간 각자 한 마디씩 외치는 유건과 팀원들.
비슷한 내용들이었지만 목적은 같았다.
다시 전반전 초반처럼 팽팽한 경기를, 아니 이제는 자신들이 우세한 양상으로 경기를 이끌어나가보자는 목표가 담긴 외침들이었다.
‘…후, 이번에는 진짜 먹는 줄 알았네!’
‘조금만 더 감아서 찼으면 들어가는 건데!’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헤타페와 세비야 덕분에 진행되는 서로의 경기는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고받는 공격 장면에 안도하고 아쉬워하는 유건의 속마음만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나바스 비어있다, 바요스!”
투욱-!
그러나 후반전 21분이 흘러가고 있을 때, 추가골을 위한 헤타페 CF의 기회를 만든 주인공은 다시 한번 유건이었다.
가장 먼저 상대 팀 골키퍼의 부정확한 골킥을 부드럽게 발밑에 트래핑.
다음으로는 들어오는 압박을 피하기 위해 미리 주변에 인지해둔 동료들에게 패스를 하고 곧바로 다음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인다.
바요스에게 간단하게 다음 공격 방향을 알려주면서 말이다.
투욱-!
그 공을 건네받은 바요스도 지체하지 않고 흐름을 살려 빈 공간으로 움직임을 가져간 나바스에게 전달했다.
상대적으로 바요스와 유건에 비해 왼쪽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세비야 FC로서는 헤타페가 왼쪽 진형에서 치고 들어온다는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바스의 선택은 사이드로 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투욱-!
“건!”
적절하게 움직인 유건이 눈에 확연히 보였기 때문에, 다시 한번 패스를 선택하는 나바스였다.
사실 상대 팀에게 공격 방향에 대해 혼란을 주려는 의도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비야 FC 입장에서는 유건이 공을 잡는 순간 다시 한번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온다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스으으-!
“비야르!”
그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공을 뿌리는 유건의 선택은 넓게 벌려서 패스를 기다리는 헤타페 CF의 왼쪽 날개 헤수스 비야르.
오른쪽의 카를로스 실바가 안쪽으로 파고드는 유형이라면 그는 직선적인 윙어.
주로 수비를 한 명 벗겨내거나 주력으로 따돌리고 올리는 크로스가 장기인 선수였다.
‘…이건, 내주고 뛰어보자!’
그러나 이번 상황은 그렇게 치고 나가기 애매했다.
유건의 전환패스를 안전하게 잡아둔 뒤, 드리블을 의식해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세비야의 사이드백.
돌파를 시도해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근처에 있는 팀 동료를 믿어보기로 결심한 비야르였다.
오늘 몇 번 실패했던 드리블이었읜까.
“중앙도 움직여줘!”
가장 근처에 있는 나바스에게 공을 살짝 내준 비야르는, 세비야의 사이드백을 돌아 들어가는 움직임을 가져갔다.
그런 그를 마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덕분에 전체적으로 멈칫하게 되면서 나바스에게 가는 압박이 조금 늦었다.
투욱-!
그리고 나바스는 자유로운 상황에서 충분히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였다.
살짝 공의 아랫부분을 찍어차는 패스는 압박을 위해 달려 나오는 미드필더의 키를 넘었다.
도달한 곳은 비야르와 세비야의 사이드백이 몸싸움을 하며 달려 나가고 있는 그 공간.
‘정확한 크로스는 불가능한데….’
자신이 도착하기 전, 앞에서 바운드 된 나바스의 패스는 현재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당장 수비를 위해 따라오고 있는 선수가 가까이 있었다.
그 상황에서 정확하게 팀원들의 머리나 다리를 향해서 크로스를 올려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먼저 출발한 덕분에 앞서나가 공에 발이 닿을 것 같았지만, 선택지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해 고민하는 비야르.
퍼엉-!
사실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발밑에 잡아두고 크로스를 올린다면,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수비수의 발에 충분히 걸릴 상황.
그렇기에 비야르는 공중에 떠 있는 공을 그대로 골대 근처를 향해 높게 차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 너무 뒤쪽으로 흐르는 것 같은데!’
정확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는 패스라고 스스로도 생각했기에 끝까지 공의 방향을 지켜보는 비야르의 속마음.
왜 중앙으로 날아가야 하는 공이 살짝 뒤쪽으로 빠진단 말인가.
그것에 대해 아쉬워하면서도 떠올랐다가 내려오는 공을 계속해서 지켜본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 있는 한 선수를 보고 나서야 사라졌다.
‘…아씨, 이거 오른발로 차기에는 타이밍이 안 나오는데?’
그 선수의 정체는 바로 유건.
비야르가 나바스에게 공을 빼주고 돌아가는 움직임을 가져가는 순간, 중앙 지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골대 바로 앞에는 쿠아바가 있었기에 그것보다 조금 처져 있는 위치에서 세컨볼을 노리기 위해서.
하지만 그가 서 있는 공간으로 정확히 공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왼발을 못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 자신 있는 오른발로 슈팅을 할 수 없는 타이밍과 함께.
콰악-!
그러나, 해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마무리를 하지 않고 공을 빼앗긴다면 바로 위험한 역습상황이 나올 수 있었으니까.
슈팅을 위해 마음먹은 유건은 오른발을 굳건하게 디딤발로 이용하기 위해 잔디에 강하게 박아넣는다.
그리고 왼발을 바닥에서 떨어트리며 몸을 살짝 틀어버린다.
‘들어가라!’
공이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왼발을 휘두르며 속으로 기도하는 유건.
아직 맞히지도 못했으면서 들어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퍼엉-!
빠르게 떨어지는 공때문에 낙하지점인 유건의 근처에는 아직 선수들이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선수들, 관중들의 눈에 들어온 그 장면.
그 상황의 결과를 보여줄 유건의 왼발이 휘둘러지며 공을 때린다.
정확한 임팩트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공.
테니스 종목에서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되돌려 보내는 것을 말하는 단어.
축구에서는 이를 ‘발리 킥’이라고 불렀다.
지금 유건이 보여준 이 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