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프리롤이다
- 축따형, 쿠아바랑 핸드 쉐이크 형이 만든거 아니지?
└ 보고 터짐. 아니 좀 멋있게 만들어줘 축따형!
└ 경기력 미쳐 날뛰니까 좀 봐주자. 손지민은 물론이고 이호준도 좋은 활약 보여주고 있는데, 축따형이 젤 미쳤음
- 프리메라리가 접수하고 프리미어리그로 가자!
- 형, 구너로서 형이 임대에서 복귀하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고 있는데 그래도 되겠지?
에스파뇰 원정에서 돌아온 뒤, 유건이 집에서 가장 먼저한 것은 별튜브 생방송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니, 나여름과의 전화가 있었으니 가장 먼저는 아닌 게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유건이 축따튜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임에 틀림없었다.
방송을 켜자마자 팬들이 얘기하는 것은 중계화면에 잡혔던 쿠아바와의 핸드 쉐이크.
‘…크흠, 나름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손뼉을 마주한 뒤 예전에 유행했던 힙합스러운 댑춤을 보여주는 것.
레전드 선수 중 한 명인 포그바가 주로 했던 고개를 숙이며 손을 반쪽 날개 모양으로 만드는 춤.
힙스럽게 리듬을 탔다고 생각하며 내심 뿌듯해하던 유건이었기에 팬들의 반응이 미웠을 뿐이다.
“…크흠, 그거 쿠아바가 만든 겁니다! 제 의견은 안 들어갔슴다!”
그랬기에 떠넘겼다.
자신의 친구가 만들었다고 말이다.
물론, 유건이 만들었던 것은 비밀이지만 쿠아바가 한국말로 하는 별튜브 방송을 알아들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사실 파악이 되지 않을 사항, 던지고 보는 유건이었다.
- 축따형, 강제적인 사항은 아닌데 팀원들 번갈아 가면서 한 명씩 나와서 같이 방송하는 건 어때?
방송을 진행하던 중, 유건의 눈에 들어온 하나의 채팅.
별튜브를 메인으로 할 수 없었기에 간단한 콘텐츠 같은 것을 고민하던 중 솔깃한 제안이었다.
“헤타페 CF 선수들 초대석이요? 음, 재밌게 말할 만한 선수가….”
“우선 몇 명한테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유건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세 사람이었다.
쿠아바, 바요스, 마르티노.
그나마 헤타페 CF 팀원들 중 입담이 좋고 꽤나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앞으로도 함께 지낼 시간이 많은 쿠아바는 기회가 많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을 우선순위로 두고, 대답하는 유건이었다.
- 별튜브 관리해주시는 분은 바뀐 거야? 형수님 편집이 그립다
└ 깔끔했던 편집의 형수님, 돌아와 주세요!
그리고, 방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눈에 들어온 댓글도 있었다.
여름의 촬영이 바빠지게 되면서 전체적인 별튜브 관리를 최창훈에게 넘겼는데, 새롭게 고용한 편집자의 스타일이 나여름과는 달랐던 게 이유.
“전체적으로 에이전트 형이 앞으로 별튜브 관리를 담당해주실 것 같구요.”
“기존에 편집자로 있었던 제 여자친구가 바빠지게 되면서 변화된 점이구, 아직 편집 방향에 대해서는 얘기를 못 했네요.”
“조만간 다 같이 자리해서 불편함 안 느끼시도록 맞춰보도록 할게요.”
“따로 앞으로 요청게시판 같은 것을 만들어 놓을 생각이라,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작성해주시면 같이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유건이었기에, 나중을 기약하겠다는 말만 전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최창훈과 얘기된 바대로 팬들의 요청을 적극 수용하기 위해서 별튜브 요청 게시판을 신설할 예정이었기에 그 부분을 언급했다.
‘…과도기니까, 어쩔 수 없지!’
유건의 생각대로 별튜브 관리에 대해서는 최창훈이 맡게 되면서 일종의 과도기였다.
당장 수용이 가능한 부분은 반영하되, 그게 아니라면 검토를 한 번 해보겠다는 답변이 맞겠다는 생각이었던 유건.
하지만 믿고 있었다.
별튜버로서도 조금 더 팬들에게 다양한 방면으로 소통이 가능한 부분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말이다.
아직 실현된 부분은 아니지만.
***
“세비야와의 승부는 미드필더진에서 갈릴 것이다.”
다음날부터 진행된 훈련을 알리는 이니에스타의 브리핑.
그의 말대로 현재 세비야 FC의 강점은 좋은 미드필더진을 바탕으로 사이드를 이용해서 펼치는 공격.
유건, 나바스, 바요스 등으로 이루어진 헤타페 CF의 미드필더진이 중요한 경기였다.
어떤 팀이 중앙 지역에서 우세를 점하냐에 따라 경기 양상이 갈릴 예정이었으니까.
“원정을 떠났던 1차전에서 한 골 차이로 패배한 것은 아쉽지만, 홈구장에서 열릴 2차전을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열정적인 팬들의 응원을 들으며 경기를 펼치는 것은 큰 이점이지.”
4강 1차전 경기에서 2:1로 패배했던 헤타페 CF.
이니에스타의 말대로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
익숙한 홈구장의 잔디를 밟고 팬들의 응원을 들으며 펼치는 경기였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 헤타페 CF의 기세는 승승장구였다.
바르셀로나와의 무승부에서 보여주듯이 어떤 팀이 오더라도 그들이 쉽게 이기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기 힘든 팀이 되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봤을 때는 여러분이 더 잘한다.”
훈련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말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감을 심어주는 얘기였다.
상대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놓고 다투는 리그 최상위권의 팀인 것은 틀림없지만, 헤타페 CF 팀원들이 더 잘한다며 치켜세워주는 이니에스타.
설사 빈말이었을지라도 감독의 입에서 나온 얘기였기에 선수들로서는 기가 살아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멍청이, 맨온이다!”
“뒤에 압박 없으니까 안전하게 트래핑 하고 고개 들어, 바요스!”
“돌아서도 돼!”
“리턴 주고 뛰어!”
그런 팀의 분위기를 더 고조시키는 것은 헤타페 CF의 캡틴, 다니 가르시아였다.
이전의 훈련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으로 거칠게 소리치며 터프하게 같은 팀으로 배정된 선수들을 리딩했다.
필요할 때만 외치던 그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는 트레이닝 센터는 꽤나 낯선 풍경.
하지만 오히려 좋아 보였다.
그런 부분 하나하나가 팀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요소였기에.
“건, 주장 오늘 뭐 잘못 먹었냐!”
“이크! 내가 어떻게 알겠어? 집중하고 자리 잡으라고, 마르티노!”
“…알겠다, 이 자식아. 나바스! 나한테까지 볼 배급해줘.”
반면에 가르시아 팀의 반대편으로 배정된 선수들에게는 지금 당장을 놓고 본다면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조끼를 입고 있는 눈앞의 상대 팀이 주장의 외침에 힘입어 강하게 압박을 들어오고, 실전보다 더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 공을 잡으며 전진을 하기 위해 돌아서려는 유건에게 말을 거는 마르티노.
하지만 뒤늦게 사각지대에서 달려 들어왔던 수비수의 태클을 가까스로 피해내는 유건의 집중하라는 말에 금새 수긍한다.
괜히 죄 없는 나바스에게 자신이 있는 위치까지 길게 벌려달라는 패스를 요청하면서.
“건, 우리 팀 지금 뭔가 애매한 상황이지 않아?”
“너랑 나를 포함한 미드필더진에서 볼 배급이 원활하지 않는 게 근본적인 이유 같다. 급하게 올리지 말고 천천히 전진해볼까?”
“…조금 급하긴 했었지? 다시 한번 가보자고!”
쿠아바의 슈팅이 골대를 넘어 멀리 날아가는 사이, 유건의 옆에 다가와서 말을 거는 것은 나바스였다.
지금까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같은 팀으로 배정되어 플레이하는데 게임 내용 자체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으니까.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넌지시 말하며 제안해보는 유건이었는데, 덥석 물어버리면서 자신의 위치로 곧바로 돌아간다.
아마 그만큼 유건의 경기 보는 눈을 믿는다는 말이리라.
‘…짜식, 군말 없이 믿어준단 말이야.’
나이를 놓고 보더라도 나바스가 많았고, 헤타페 CF에 몸담고 있는 시간도 그가 더 길었다.
충분히 ‘어린놈이 최근 몇 경기 활약했다고 기가 살아서는’이라는 생각을 가질 만도 했다.
하지만 조금 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건의 전체적인 지시에 불만을 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유건이 상황에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있지만, 신뢰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생겨날 수 없는 단어였다.
“고맙다, 나바스! 이번에는 천천히 왼쪽으로 한번 가보자고!”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고 자리를 잡는 나바스에게 한 번 더 감사를 표하는 유건이었다.
무한한 신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단체에 속해있는 사람들 간에 서로 신뢰가 형성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현상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필요한 조건이었다.
자신들의 앞에 닥친 위기를 함께 이겨내기 위해서는.
***
“안녕하십니까, 국내 축구팬 여러분! 지금은 헤타페 CF와 세비야 FC의 코파델레이 4강 2차전 경기가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겨울 이적 시장 이후 좋은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헤타페 CF에게는 또 한 번의 시험 무대라고 할 수 있죠?”
“그렇습니다! 1차전에서는 단 1점 차로 패배했지만, 전반기 리그에서 만났을 때는 4골을 헌납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박빙의 승부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건 선수와 쿠아바 선수의 호흡이 아주 절정에 달했으니까요!”
세비야전을 대비할 수 있는 헤타페 CF의 시간도 끝이 났고, 어느덧 경기 날이 밝았다.
홈구장을 거의 가득 채우고 있는 홈팬들과 원정석의 팬들이 자리를 채워가는 와중 국내 중계채널에서는 캐스터들의 말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헤타페 CF가 승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변이었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리그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에스파뇰전에서 보여주었던 환상적인 킬러패스를 오늘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때보다는 더 강한 압박을 떨쳐내야 하는 유건 선수입니다. 그나저나 유건 선수가 그런 패스 능력도 가지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는데요!”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강병훈 선수가 떠오를만한 그런 패스줄기였어요.”
“오늘도 한번 좋은 모습으로 잠도 못 자고 경기를 시청하실 팬분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경기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이니에스타의 전술이었지만, 국내 팬들은 유건의 변화에 가장 주목했다.
이미 개인적으로 분석해서 칼럼까지 쓸 팬이 있을 정도였기에 이전 경기들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플레이스타일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동안은 동료와의 호흡으로 만들어낸 멋진 장면들이 주를 이뤘다면 개인적인 능력에서 많은 발전을 티가 날 정도로 했으니까.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며 공격 템포를 끌어올린다든지, 빈 공간으로 파고드는 팀원에게 킬러 패스를 넣는 플레이스타일.
아직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선수 개인이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무기였고 상대 팀을 괴롭힐만한 수단이었다.
“건, 프리롤이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이니에스타였기에, 유건의 오늘 역할은 프리롤.
오른쪽 메짤라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위치를 오가며 승리하기 위해 적절한 곳으로 움직이고, 하고 싶은 플레이스타일을 할 수 있게 내버려 둔다.
원하는 대로 플레이해서 팀에게 승리를 가져와 보라는 암묵적인 감독의 요구.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들려오는 메세지는 오히려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다주었으니까.
[지네딘 지단의 데이터 동기화율 65.27%]
[토마스 로시츠키의 데이터 동기화율 61.46%]
[메수트 외질의 데이터 동기화율 4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