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따-76화 (76/208)

76화. 건에게 저런 모습도 있었나

“건에게 저런 모습도 있었나?”

다음 날부터 진행된 헤타페 CF의 훈련에서 이니에스타 감독이 코치들에게 몇 번이나 물어봤을 정도로, 유건의 플레이스타일이 변화되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팀의 공격을 조율하며 압박을 떨쳐내고 팀원들에게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플레이가 주를 이뤘었다면, 오늘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금! 빠르게 치고 나간다!’

보통 같았으면 공을 받고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다가 선택을 내렸겠지만, 오늘은 다이렉트로 패스를 내주며 전진한다.

그리고 조금 더 전진한 위치에서 돌아오는 리턴 패스를 받자마자 또 한 번 주변 동료들과의 2대1 패스를 원하는 움직임을 가져간다.

[토마스 로시츠키의 데이터 동기화율 61.13%]

[순간적으로 공격의 템포를 올리세요 (2/3)]

2단계 동기화 [템포]의 주인공은 바로 토마스 로시츠키.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주었던 선수.

잦은 부상만 없었다면 명실상부 월드클래스라고 불릴 만한 선수였다.

‘매번 이런 식으로 경기를 했었지.’

그는 부상에서 복귀할 때마다 경기력 저하는 있을지언정, 클래스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던 선수였다.

07-08시즌 파브레가스, 흘렙, 플라미니와 환상적인 4중주라고 불렸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유건이 템포를 끌어올리는 부분에서 부족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롤모델로 삼았던 선수이기도 하다.

그의 아름다운 창조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팀의 공격 템포를 올려주었으니까.

“저 자식, 플레이가 예측이 안 되잖아!”

“건을 틀어막으라니까!”

그리고 상대 팀에게는 지옥이었다.

공을 잡고 키핑하는 유건을 마크할 생각으로 제자리에 서 있었던 헤타페 CF의 팀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로시츠키처럼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플레이를 보여주었으니까.

같은 팀에 배정되어있는 선수들로서도 자신들을 이끌어가는 그의 변화에 어색했지만 움직임을 맞춰주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팀의 공격 템포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한 상황.

스으으-!

“실바!”

그것만이었다면, 유건을 막기에 그렇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치고 나가는 와중에 빈 공간으로 파고드는 실바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파악해서 강하게 패스를 찌르는 유건.

잔디를 가르며 뻗어나가는 패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득점을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킬패스였다.

[메수트 외질의 데이터 동기화율 42.65%]

[빈 공간에 있는 동료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보내세요 (2/4)]

3단계 동기화 [패스]의 주인공 메수트 외질.

어시스트 능력만 놓고 봤을 때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레전드 선수.

다른 선수들이 보지 못하는 창조적인 패스 길을 보는 선수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킬패스 능력에 관해서는 탁월한 선수였다.

유건이 보완의 필요성을 느꼈던 킬패스 부분에서 최적의 동기화 대상이었기도 하고 말이다.

‘…어색하지만, 보이는 걸 어떡하냐고.’

그의 데이터 동기화를 시작한 이후 첫 번째 훈련에서, 생소한 시야가 추가되었다고 느껴지는 유건이었다.

방금 공간을 파고드는 실바에게 정확하게 찔러주었던 패스는 바로 그 감각에서 나온 것.

팀원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찌르는 패스길을 발견해내기는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외질의 시야를 공유받기라도 한 듯, 그 길이 훨씬 더 잘 보이게 되었다.

“…아씨, 미안하다!”

물론 모든 킬패스가 성공적으로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동기화 대상인 두 선수 모두 창조성을 가진 천재 미드필더로서 각광받았지만, 남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경기장을 열심히 뛰어다니는 게 어색하게 보일 정도로 하드워커 스타일이었다는 점.

그런 두 선수의 능력을 조금씩 동기화해가는 유건의 활동량도 아직은 미진했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 강점이라고 불릴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약점으로 꼽힐 수준은 벗어날 정도로.

***

“건, 모든 걸 보여주지는 마라.”

유건의 한 단계 발전된 실력은 헤타페 CF를 감독하는 이니에스타로서도 환호를 부를 수밖에 없는 변화였다.

실전에서도 그러한 스스로의 변화에 적응하게 해주기 위해 에스파뇰전에 선발로 내보냈지만, 너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비야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부분을 남겨두고 싶었으니까.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래도 승리가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런 감독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지금 닥쳐온 경기도 중요성이 없지 않았다.

17위에 위치한 팀과는 승점이 3점 벌어져 있는 헤타페 CF였기에.

시즌 막바지에 갔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리그였으니 한 경기 한 경기 소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감독님, 이 멍청이는 그런 거 조절 잘 못 할 겁니다.”

“오히려 이 자식이 주목받으면 달라진 다른 선수들이 세비야전에서 좋은 활약으로 역전에 기여할 겁니다.”

그리고 특유의 말투로 이니에스타와 유건을 다독여주는 다니 가르시아였다.

박범호나 김수영과는 약간 다른 리더쉽을 보여주는 그는 유건을 주목받을 거라며 치켜세워주고, 다른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축구는 한 명이 아니라 열 한 명이 함께 하는 스포츠였으니까.

삐이익-!

“패스 돌려, 더 빠르게!”

“계속 주고받자고!”

라커룸에서의 대화 이후 시작된 경기는 꽤나 압도적인 양상으로 펼쳐졌다.

자신들보다 순위가 높은 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이 거세게 밀어붙이는 헤타페 CF였다.

그 중심에는 유건이 있었고.

“조금씩 진형 올려!”

전반전이 10분이 채 되지 않은 7분경, 바요스에게서 건네받은 패스를 순간적으로 나바스에게 전달하며 외치는 유건.

자신을 압박하러 달려왔던 에스파뇰의 미드필더 한 명을 손쉽게 건너뛰며 리턴 패스를 받고 흐름을 살려 오른쪽 사이드의 실바에게 전달.

스타팅 라인업에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면 후반전에 교체를 하기로 했던 이니에스타 감독의 말을 지키기 위해 팀의 공격템포를 조금 올리기 시작한다.

“다시 내주고 들어가!”

“마르티노 올라가고, 나바스! 왼쪽도 올려!”

벌려 있던 오른쪽 날개 실바가 유건에게 다시 공을 내주는 즉시 다시 한번 크게 팀원들에게 외친다.

전체적으로 진형을 더 올려보자고.

역습을 의식하면서도 그 말을 할 수 있는 두 가지 이유.

첫 번째는 터프하면서도 활동량 위주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마르코 바요스가 라인의 상한선을 두고 아래쪽에서 역습을 방지해주고 있었고,

두 번째는 71:29로 리드하고 있는 점유율이 그 이유였다.

“건, 맨온이야!”

“다시 받아, 건!”

파상공세를 펼치는 헤타페 CF의 중심에 있는 것은 경기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확연히 볼 수 있듯이 바로 유건.

비대칭으로 서 있는 4-3-3 전술에서 유건이 가장 자주 서 있는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순간적으로 4-2-3-1 포지션으로 변경되는 이 전술을 훈련에서 연습했기에, 헤타페 CF의 선수들은 어색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유건이 가장 날뛸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쿠아바!”

전반 7분에서 8분으로 넘어갈 시점, 나바스에게서 건네받은 공을 가장 전방에 위치한 쿠아바와 한 번 주고받으며 자신의 마크맨을 따돌리는 유건은 다시 공을 받아냈다.

자신이 빠르게 올린 템포를 늦출 생각이 없다는 듯이 공을 앞쪽에 트래핑해두자마자 발을 크게 휘두르는 유건.

에스파뇰의 수비수로서는 중거리 슈팅을 의식해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투욱-!

그러나, 유건이 보고 있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에게 뛰쳐나오는 중앙 수비수의 공간으로 파고드는 팀원의 움직임이 보였으니까.

공에 닿기 전 순간적으로 힘을 뺀 유건은 그에게 향하는 패스를 선택했다.

‘…어떻게 된 놈이 한 경기씩 할 때마다 이렇게 발전하는 거야?’

그 패스를 건네받은 헤타페 CF의 오른쪽 날개 카를로스 실바의 마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 경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번 경기를 준비하는 훈련에서 보여준 변화는 놀라울 정도였다.

패스만 들어오면 골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이면 정확하게 자신의 발밑에 공을 보내주었으니까.

“이건 놓칠 수가 없는 공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내뱉는 실바의 말대로, 나머지 한 명의 중앙 수비가 쿠아바를 마크하고 있었기에 앞은 골키퍼밖에 없었다.

오른쪽에서 파고들어 오고 있었기에 각도가 좁혀진 상태였으나 충분했다.

공격수로서 일대일의 찬스는 넣을 자신이 있었기에.

퍼엉-!

실바의 선택은 강하게 골키퍼의 머리 위로 슈팅을 때리는 것보다는, 땅볼로 깔아서 차는 슈팅.

바로 골키퍼의 다리 사이 공간을 노리는 코스였다.

슈팅을 막기 위해 뛰쳐나오는 골키퍼가 방심하며 무의식적으로 내주는 공간.

출렁-!

“이리 오라고, 루키!”

“실바!! 나이스 골이야!”

그 좁은 사이 공간으로 빨려들어 가는 땅볼 슈팅은 에스파뇰의 골대를 흔들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원정석으로 뛰어가는 와중에도 몸을 돌리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유건을 지속적으로 가리키는 실바였다.

“네 덕분에 넣은 골이다!”라고 말하는 듯이.

“멋진 플레이였다, 이 자식들아!”

“나이스으!!”

껴안고 원정팬들 앞에서 포효하고 있는 팀원들의 등 뒤에서 강하게 점프하며 외치는 건 쿠아바.

자신의 덩치를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경기장에 넘어지는 유건과 실바였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 위로 헤타페 CF 팀원들이 하나둘씩 포개지고 있었으니까.

***

삐이익-!

“이제 강등권 탈출이 코앞이라고!”

“나이스!”

“고생했다, 모두들!”

후반전 10분, 유건의 두 번째 어시스트를 만들어준 쿠아바의 멋진 골과 함께 대거 선수들을 교체한 헤타페 CF.

훈련에서 선발, 벤치 상관없이 경기에 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리드하고 있는 점수 차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유건과 쿠아바, 바요스가 빠지고 난 이후로 점유율이 50:50 정도로 비등하게 내려오긴 했지만 말이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과 함께 벤치에서 대기하던 유건은 경기장에 나가 팀원들을 껴안으며 승리를 만끽한다.

툭툭-!

“이봐, 유니폼 교환하자고.”

그러던 그의 등뒤를 두어 번 치며 다가오는 에스파뇰 선수.

팀이 패배한 덕분에 분한 표정을 지우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멋진 모습을 보여준 유건에 대한 감탄의 의미를 담아 건넨 제안이었다.

“물론이지! 다음번에 더 좋은 경기 부탁해!”

그리고, 그것은 유건으로서도 환영하는 바였다.

이제까지는 좋아하는 선수들을 실제로 보면서 먼저 다가가서 요청했던 그로서는 내심 실감도 하고 있었다.

‘내가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구나’라는.

헤타페 CF, 에스파뇰을 상대로 2-0 승리.

리그 17위의 팀과 승점 동일.

골득실을 따라잡거나, 다가오는 리그 경기에서 승리를 한다면 강등권 탈출이 실현되는 기점이었다.

“다음 번에도 이겨보자고, 쿠아바!”

“오늘같이만 패스 넣어봐라, 다음 경기에서는 두 골 넣는다!”

라커룸으로 복귀하던 와중 자신의 옆에 다가온 쿠아바와 웃으며 얘기하는 유건이었다.

그들이 언어 교환을 하며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운 핸드 쉐이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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