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끝내주는 기분이야
“캡틴으로서 아주 좋은 얘기를 해줬다.”
“팀원의 실수는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켜주고 함께 만회하는 것이다.”
전반전이 끝난 헤타페 CF의 라커룸.
다시 한번 팀원들에게 유건의 자신감을 함께 북돋아 주자고, 우리가 도와주자고 얘기했던 다비 가르시아.
그의 말을 이어받은 이니에스타도 동의를 표했다.
팀워크가 생기는 시점은, 바로 그런 팀원들 간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건, 나는 아직도 자네가 이 역할의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해낼 수 있습니다, 아니 성공하겠습니다.”
게다가 유건을 응시하며 한 번 더 강하게 말한다.
오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막중한 역할을 해낼 사람이 바로 너라고.
이에 유건도 크게 대답했다.
해내기 위해 노력해보겠다는 말을 꺼냈다가, 이내 다시 무조건 성공시키겠다는 말과 함께.
“자, 다시 한번 가보자!”
“새롭게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하프타임을 이용해 팀원들 간의 화합을 다진 헤타페 CF는 힘찬 화이팅과 함께 라커룸의 문을 열어젖힌다.
곧 시작될 후반전을 위해 그라운드로 나가기 위해서.
“전반전에는 우리 대한민국의 손지민 선수가 엄청난 패스플레이를 주도하면서 멋진 골을 만들어냈는데요!”
“하지만 헤타페도 분명히 번뜩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가 후반전을 더욱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19위라는 순위표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듯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분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건 선수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경기를 지켜보는 국내 팬분들께서도 재밌게 시청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하나둘씩 입장을 시작하자, 캐스터들도 경기에 관한 중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대로 오늘 경기는 꽤 치열하게 펼쳐졌는데, 득점을 올린 것은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순위 경쟁을 하는 그들로서는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고 헤타페 CF도 승리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직 남은 라운드가 많긴 했지만, 빠르게 강등을 탈출하면 좋지 않겠는가.
삐이익-!
양팀 선수들의 귀로 들려오는 휘슬 소리.
그건 일종의 신호였다.
승리라는 두 글자를 쟁취하기 위해 발발된 치열한 전투로 나서라는 신호.
***
뻐엉-!
“주장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우리는 한 팀이다!”
후반 10분 동안 유건은 팀원들의 지원 아래 계속해서 볼을 차단하기 위해 타이밍을 보면서 수비 자리를 지키지 않고 뛰쳐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그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
이번에 흘러나온 공을 멀리 클리어하는 것은 오른쪽 사이드백인 마르티노였다.
그들을 대표해 말은 주장인 다니 가르시아가 했지만, 한 팀으로서 모두가 유건의 도전을 지지해준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 축따형, 오늘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뛰쳐나가지 말고 자리 좀 지키자
- 계속 패스 끊으러 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수비가 우선이잖아 형!
- 저정도면 이니에스타가 저렇게 하라고 시킨 거 아닐까?
└ 에이, 설마! 그런 걸 시킬 리가 있겠나
지켜보는 팬들도 오늘 유건의 모습이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다.
수비 진형마저 무너트리면서 그렇게 달려가는 그의 플레이는 처음 보는 것이기에.
다만, 이유를 추측할 뿐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쿠아바!”
그러나 약 5분 뒤, 경기를 지켜보는 모두가 유건이 이상행동을 했던 이유를 알게 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마르티노가 쿠아바를 향해 멀리 롱패스를 보내는 순간, 헤타페 CF가 전체적으로 진형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스트라이커가 그 공을 받아 높은 위치에서 지켜줄 거라고 믿고.
“아직 이르다, 루키!”
하지만 등 뒤에서 경합을 하고 있던 바르셀로나의 중앙 수비수가 순간적으로 몸을 빼내면서, 어느새 쿠아바의 앞으로 나와서 위치를 잡는다.
촉망받는 루키지만 자신의 경험에 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듯이.
롱패스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위치를 바꿔놓은 덕분에 공에 머리를 맞힌 것은 수비수.
그리고 그 세컨볼은 손지민의 파트너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통해 왼쪽, 헤타페가 바라보는 방향에서는 오른쪽 사이드백으로 전달된다.
‘…지금!’
그 순간, 헤타페의 오른쪽 날개인 카를로스 실바는 공을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수비수에게 압박하기 위해 이미 뛰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바르셀로나의 왼쪽 윙어는 마르티노가, 방금 헤딩경합을 했던 중앙 수비수는 쿠아바가 마크하고 있었다.
가능한 코스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자신에게 주었던 수비형 미드필더에게로 리턴 패스를 하는 것.
발밑으로 들어오는 패스를 빠르게 돌려주기 위해 발을 뒤로 젖히는 바르셀로나의 사이드백.
‘패스, 제발 패스!’
그의 젖혀졌던 다리가 앞으로 향하는 각도가 만들어진 순간, 뛰쳐나가고 있는 유건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바르셀로나의 사이드백이 공을 갑자기 키핑하고 처리한다면 또 한 번 유건의 실수로 이어지는 장면.
그러나 이번에는 들어맞았다.
유건이 예상한 루트로 정확하게 패스를 주기 위해 공을 차낸 상대 팀 선수였으니까.
투욱-!
‘이번에는 넣는다!’
“쿠아바, B로 간다!”
압박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돌리는 패스를 차단했기에, 곧바로 달려가는 유건의 앞에 보이는 선수들은 네 명이었다.
두 명의 수비수와 골키퍼, 그리고 선수 한 명을 등 쪽에 두고 굳건히 서 있는 쿠아바.
오른쪽 하프스페이스 공간에서 그를 향해 패스를 건네주면서 동시에 앞으로 몸을 더 치고 나간다.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의도를 말하면서.
투욱-!
“…가자!”
거리가 있기에 이전의 말들은 애매하게 들렸지만, B라는 단어 하나는 확실히 쿠아바의 귀에 들어왔다.
등을 지면서도 달려 들어오는 유건의 발에 정확하게 패스를 돌려주고는 몸을 순간적으로 회전시켜 슈팅 각도를 만들기 위해 빈 공간을 향해 뛰어간다.
이미 이대일 패스를 통해 한 명의 수비수는 벙쪄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거기서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최종 수비수의 선택은 쿠아바였다.
“너에게 패스가 들어올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고!”
지난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던 장면, 전반전에 처음으로 유효슈팅을 만들었던 장면.
지금 상황에서 헤타페 CF의 다음 플레이는 다시 유건이 쿠아바에게로 공을 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예상하고 수비수가 쿠아바를 마크하러 움직인 것.
“…나참,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놈이라니까!”
플랜 B.
유건과 쿠아바가 A, B, C로 굳이 나눠놓긴 했지만 모두 똑같은 종류였다.
가장 먼저 이대일 패스.
A가 상황의 마무리를 짓는 것이 쿠아바라면, B는 누구겠는가.
바르셀로나의 수비수가 쿠아바를 마크하러 움직일 것을 예상하고 A가 아닌 B로 제안했던 유건이었다.
그 덕분에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되자, 그저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던 쿠아바였다.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면서 건방지게 말하는 상대 팀 수비수가 멍청해 보였기에.
“내가 각도를 줄 것 같냐!”
하지만 공은 유건이 그대로 한 번 더 치고 나갔다.
그제서야 골키퍼도 의식하면서 급하게 뛰쳐나온다.
조금이라도 슈팅 각도를 줄여보기 위해서.
휘익-!
움찔.
오른발을 크게 휘두르며 치고 나가려는 유건의 헛다리에 한 번 몸을 움찔하는 골키퍼.
휘익-!
움찔.
이번에는 정말로 치고 나가기 위해 휘두르는 것 같은 왼발.
하지만 이번에도 헛다리 페인팅이었다.
투욱-!
두 번의 페인팅은 충분했다.
각을 좁히면서 나왔던 골키퍼의 다리 사이 공간이 벌어지게 만드는 데는.
처음에는 그 공간으로 들어올 슛을 의식해서 좁히고 있었지만, 개인기를 치면서 자신을 제치려는 유건의 몸을 너무 의식해버렸다.
그리고 유건이 노린 것은 바로 거기였다.
출렁-!
“으아아아!”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는 골을 넣었다는 사실.
세계적인 골키퍼를 뚫어냈다는 만족감.
해내고 싶었던 전술 지시를 완벽히 수행했다는 쾌감.
그것들이 어우러진 유건의 감정은, 세레머니에서 표출된다.
두 팔을 크게 휘저으며 포효를 멈추지 않은 채로, 원정석에 앉아있는 헤타페 CF의 팬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건-! 건-! 건-! 건-!
‘…끝내주는 기분이야.’
코너킥을 차기 위한 장소에 있는 깃발을 발로 차낸 유건은 팬들을 등진 채로 자신의 이니셜을 가리키고 있었다.
임대를 통해 잠깐 머물다 가게 될 선수였지만, 이렇게 매경기 멋진 활약을 보여주는데 어찌 팀의 팬으로서 가만히 있겠는가.
너무나도 유명한 캄프누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의 이름.
그 상황은 유건의 온몸에 소름이 돋게 했다.
“이 미친놈아! 나이스였다.”
물론, 가장 가까이 있던 쿠아바가 달려와서 유건을 껴안기 전까지.
그를 뒤이어 모든 팀원들이 동점 골을 넣은 것을 같이 기뻐했다.
“주장, 나 괜찮았어?”
세레머니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은근슬쩍 물어보는 유건이었다.
그리고 표현하고 싶었다.
당신이 믿어준 덕분에 내가 해낼 수 있었다고.
“…뭐, 멍청이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 질문에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는 다니 가르시아.
멋쩍게 말했지만, 어린 선수가 해낸 일이 대견하다는 감정을 담아서.
“아직 경기 안 끝났으니, 한 골 더 만들어라.”
그 말을 끝으로, 경기 시작을 위해 자신의 원래 위치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몸을 돌리면서 말한다.
‘고마워, 주장’이라고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던 유건의 귀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가보자고!”
그에 화답하는 유건의 외침.
얘기를 나누는 둘은 알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끝나면 단지 결과는 무승부.
그 세 글자의 단어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승리라는 두 글자의 단어만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같은 시각, 헤타페와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집이 있었다.
“어때 마틴! 저 친구는 분명히 우리 팀에 플러스 되는 영입이라니까.”
“알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살리바. 오늘은 파티노의 날이잖아!”
“하하 괜찮아! 임대 가자마자 저렇게 활약하다니, 워크 퍼밋이 빨리 발급되면 좋겠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아스날 FC 선수들.
오늘 있었던 경기를 이기고 파티노에게 좋은 경사가 생겨, 그의 집에서 파티를 하면서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던 것.
유건에 대한 얘기를 하며 기대하고 있었다.
훈련장에서 보았을 당시 아직 긴장된 상태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데, 임대를 가서 몇 경기 뛰자마자 조금씩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쿠아바, 많이 컸는데?’
그들 무리 중에서 혼자 얘기에 끼지 않고 유건 말고 다른 임대생을 생각하는 선수도 있었다.
부족했던 부분이 많았던 어린 친구가 이제 꽤 좋은 스트라이커가 되었다고.
“에디, 이것 좀 먹어보라니까!”
아스날 FC의 레전드 스트라이커.
은퇴한 가브리엘 제수스와 함께 번갈아 출전하거나, 투톱으로 출전하여 전설을 써 내려갔던 선수.
티에리 앙리의 뒤를 이어 14번의 유니폼이 제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
에디 은케티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