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몇 번이 됐건 간에
“…크윽!”
경기를 한창 펼치고 있는 유건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무의식적으로 신음이 나왔다.
그런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정도로 바르셀로나의 압박은 거세게 헤타페를 몰아붙였기에.
그들은 티키타카 전술로 인해 경기를 많이 뛰지 않고 쉽게 풀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골키퍼를 제외한 팀원 모두가 항상 패스를 받기 위해 빈 공간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체력 자체는 충분히 뒷받침되는 선수들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바요스, 천천히 돌리자!”
“나바스 잠깐! 너무 급해 우리!”
하지만 유건이 외치는 말에 따라 나름대로 그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헤타페 팀원들이었다.
개편된 미드필더진을 중심으로 전방에서 고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볼을 지켜주는 능력이 탁월한 쿠아바까지.
점유율이나 경기력 면에서 밀리기에 진형 자체를 낮추고 플레이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덕분에 아직 실점을 할 만한 찬스를 주지 않고 있었다.
“쿠아바, A로 가자!”
오히려 유효슈팅을 날리는 기회마저 만들어냈다.
바르셀로나의 코너킥을 막고 튕겨 나온 세컨볼을 나바스가 잡고, 그것을 보자마자 빈 공간으로 달리기 시작했던 유건.
나바스에게 그 장면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했다.
그의 패스로부터 시작된 쿠아바와의 이대일 패스를 통한 플랜 A.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의 선수라 할지라도 순간적인 두 명의 호흡이라면 뚫어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직전이 코너킥 상황이었기에 유건과 쿠아바를 막아서는 선수는 중앙 수비수도 아니었다.
“마, 마요르카전에서 나왔던 상황과 동일한 플레이입니다!”
“순간적으로 뒤로 내주고 하프라인에 걸치면서 패스가 들어오자 출발 가는 쿠아바 선수의 플레이가 일품이네요! 오프사이드를 완전히 피했어요!”
“맞습니다! 그리고 바로 길게 공을 쳐놓고 짐승같이 달려갑니다.”
“좌우에 있던 수비수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기에, 빠르게 처리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한국인인 유건의 어시스트가 기록될 상황일 수도 있었기에 캐스터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당장 지난 경기에서 성공시켰던 유건과 쿠아바의 호흡이 빛나는 패스 플레이.
조금 달랐던 상황은 출발 지점이 중앙선 근처였기에 골대까지는 거리가 한참 남았다는 것.
쿠아바의 주력이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엄청 빠르다고 볼 수는 없었다.
코너킥의 세컨볼을 잡기 위해 좌우로 퍼져 있던 바르셀로나의 사이드백들이 조금씩 그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 상황.
콰앙-!
결국,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지점까지 수비들이 달려오자 쿠아바는 결정을 내렸다.
골대까지 거리가 25m가 남아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가속된 몸의 체중을 이용해 슈팅을 날려버리기로.
발등에 제대로 맞은 공은 포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골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으, 아쉬워라!”
아니, 정확하게는 골대 내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골대의 옆쪽으로 살짝 벗어나는 방향이었다.
바르셀로나의 골키퍼는 막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자신이 지키는 골문의 넓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쿠아바의 슈팅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 으아, 너무 아쉽다! 쿠아바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정확하게 골대 안으로 꽂혔을 텐데!
└ 홀란드 같은 피지컬 생각하면 진짜 저 정도도 엄청 빠른 거라 느리다고도 못 할 것 같음
- 이번 기회에 넣었으면 헤타페 CF가 경기 좀 쉽게 갈 수 있었을 텐데.
- 그나저나 축따형이랑 쿠아바 호흡 진짜 좋은데? 구너로서 우리 팀 미래 기대해본다!
비록 선제골을 성공시키진 못했지만 중계를 하고 있는 캐스터들에 이어 축따튜브의 구독자들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리그 순위표만 보더라도 당장 19위와 2위의 경기였다.
어려운 상대를 맞이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그 숫자에 상관없이 헤타페 CF가 치열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전반 17분, 오늘 경기에서 가장 골대에 가깝게 다가갔던 슈팅을 먼저 날리는 데 성공한 것은 헤타페였다.
***
“급해지지 마!”
“휘둘리지 말고, 우리 플레이해보자!”
마요르카전을 끝내고 나서부터일까,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를 대비하기 위한 훈련에서부터 팀을 향해 전체적으로 외치는 유건의 말에 팀원들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경기의 흐름을 읽으며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느리게 가보자고 쉴 새 없이 외치는 그의 말.
그것을 듣고 따를수록 자신들의 플레이 자체가 꽤나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이번 경기에서부터 이니에스타에게 헤타페 CF의 플레이 자체를 이끌어가는 역할까지 부여받은 유건이었다.
“왼쪽 막아!”
“바요스, 자리 지켜줘!”
“쟤 왼발이다, 마르티노!”
하지만 그런 유건의 외침 속에서도 바르셀로나가 보다 더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예상치 못한 쿠아바의 슈팅이 안타깝게도 역효과를 불러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위협적인 장면이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집중력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우승 경쟁을 위해서는 한 경기 한 경기 소중히 여겨야 된다는 생각과 발목을 잡힐 수도 있겠다는 조그마한 가능성 때문에.
그러나 경기 전부터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그들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소통하며 수비적인 진형을 유지하는 헤타페 CF 팀원들이었다.
‘지금인가? 아니 조금만 더….’
그리고 그 와중에도 유건은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전반 36분이 흘러가는 이 순간, 상대 팀 선수들 개개인이 주로 패스를 돌리는 방향이 어디라는 것은 머릿속에 담아둔 상황이었기에.
그렇다고 해서 단 한 번의 패스 차단을 위해 달려 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는 유건의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나가야 할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다시 타이밍을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가보자!’
치열했던 경기 이후 패스를 통해 침착하게 플레이하기 시작한 바르셀로나의 점유율이 약 70%를 넘어서는 그 순간, 유건이 생각을 정리하고 결정을 내렸다.
노리고 있던 것은 손지민.
팬들에게 세르히오 부스케츠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명실상부한 월드 클래스, 그리고 대한민국의 선배였다.
그가 바르셀로나 패스 줄기의 핵심이었기에 왼쪽 사이드백이 그에게 향하는 패스를 건네는 순간,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유건의 몸이 쏘아져 나간다.
스으으-!
‘…조금 짧은데, 아이씨!’
“아, 제발!”
그러나, 공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 되어서야 조금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가 뛰쳐나왔던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는 것을 짐작하자마자 잔디를 쓸면서 발을 앞으로 뻗어내며 슬라이딩 태클을 들어간다.
무의식적으로 애원하는 듯한 외침을 입 밖으로 뱉으면서 말이다.
축구화의 스터드를 스치는 듯 걸리지 않은 패스.
발을 지나가는 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명백한 자신의 미스였다.
“얘기는 전해 들었다, 루키. 경기가 끝나고 보자고!”
그리고 그런 유건의 귀로 손지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이상인 감독이 은퇴한 이후, 박준철과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리빙 레전드.
경기 전에 가서 인사를 드릴까도 했었지만, 온 신경을 펼쳐질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그라운드에 나와서도 애써 모른 척했다.
항상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던 만큼, 달려들어서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감정을 추스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들려오는 목소리만 듣게 되는 상황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윙, 미들 다 움직여!”
힘찬 목소리로 팀원들을 독려하며 유건이 머물렀던, 이제는 뛰쳐나왔기에 비어있는 그 공간으로 파고드는 손지민.
간단한 발기술을 통해 압박을 빠져나오고 경기 중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많은 볼터치를 가져가는 팀의 기둥 역할.
그게 주된 역할이었지만 공간을 이해하는 능력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중 하나였다.
바쁘게 고개를 돌리며 팀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요구한다.
투욱-!
마침내 뻗어지는 패스는 넓게 벌려있는 바르셀로나의 왼쪽 윙어로 향했다.
투욱-!
그리고, 그쪽으로 압박을 가하려는 헤타페 CF의 사이드백이 움직이자마자 다시 리턴 패스가 순간적으로 전진했던 손지민에게 다시.
투욱-!
그 공을 발밑에 잡아두지도 않고 바로 다음 패스를 다니 가르시아를 등지고 있는 스트라이커에게.
투욱-!
그런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공격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주고 다니 가르시아의 측면을 돌아서 지나가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손지민에게 또 한 번 공을 살짝 내준다.
투욱-!
오프사이드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손지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각도가 좁긴 하지만 골키퍼만 지키고 있는 골대를 향해 슈팅을 날릴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패스를 주자마자 몸을 돌려 전진한 스트라이커에게 줄지.
투욱-!
“…때려 넣어라!”
당연한 선택지였다.
자신보다 더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공을 주는 것은.
그게 바로 손지민이 소속된 바르셀로나의 전술이었으니까.
선수들의 능력이 받쳐주는 한, 최고의 플레이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전술.
티키타카.
투욱-!
마지막 스트라이커의 슈팅마저 패스였다.
그 패스가 향하는 대상이 팀원이 아니라 골대의 그물이었던 게 달랐던 것뿐.
으아아아아-!
“나이스 골이다!”
“손, 이렇게 패스 주면 눈 감고도 넣는다고!”
환상적인 패스 플레이.
헤타페 CF의 선수들이 두 눈으로 보고 있었으면서도 몸으로 따라가지 못한 플레이.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팬들이 사랑하는 플레이.
선수들이 보여준 환상적인 움직임에 팬들은 크게 화답한다.
으아아아아-!
원래 캄프누의 응원 열기는 유명했지만, 오늘은 어쩐지 더 크고 우렁찬 함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등번호를 두 손으로 가리키며 홈팬들에게 환호를 유도하는 자신들의 스트라이커가 당당하게 서 있었던 게 그 이유였다.
“미안해, 모두들. 명백히 내 실수야.”
바르셀로나의 세레머니를 보며 팀원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유건.
그러나, 그들에게서 반응은 없었다.
퍼억-!
‘…크윽!’
“고개 들어라, 멍청아!”
자신에게 걸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누구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아챌 수 있었다.
다니 가르시아.
헤타페 CF의 주장이 유건의 가슴을 힘차게 때리며 정신을 일깨운다.
“정말 미안하다면, 꼴사납게 그러고 있지 말고 성공시켜라.”
“그래서 감독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풀죽어있지 말고 다시 한번 바르셀로나의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라고.
이니에스타가 맡긴 역할을 확실히 해내라고 말하면서.
퍼억-! 툭툭-!
“그게 몇 번이 됐건 간에, 우리가 막아준다.”
“그러니까 그걸 성공시켜서 동점 골을 만들어내라, 멍청이!”
이번에는 처음보다 살짝 툭 치며, 유건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팀의 주장.
멋진 말이었다.
뒤에서 버텨줄 테니,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해보라고.
“저 멍청이랑 함께해보라고.”
평소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진중한 표정, 가라앉은 눈빛으로 상대의 골대를 응시하고 있는 쿠아바의 뒷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쩐지 쿠아바는 괜히 멍청이 소리를 듣게 된 것 같지만 들리지 않으니까 모른척하자.
“건, 설마 한 번에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냐?”
“훈련 때도 못 했으면서 그런 자신감 가지지 말라고.”
주변에서 한 마디씩 건네는 헤타페 CF 팀원들.
모두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른 말이었지만, 목적은 동일했다.
실점의 빌미가 된 실수를 해버린 유건을 위로해주기 위해.
“으아아아아아아!!”
자신을 믿어주는 동료들.
그들이 있기에, 좌절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유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위해 괴성을 한참 동안 지르더니,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린다.
‘다음번엔….’
바르셀로나의 골대를 응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