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항상 궁금했습니다
“구단 레포트는 보내놨어, 그나저나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없는데 괜찮냐?”
“임대 왔는데 형이 뭘 어쩌겠어, 안 바쁠 때 형수님 잘 챙겨드리고!”
“…고맙다, 건아. 아무튼 필요한 일 있을 때마다 얘기하고.”
마요르카와의 경기를 하루 앞둔 날, 최창훈과 통화를 하고 있는 유건.
아스날 구단에서 피드백해주는 경기 레포트 관련 얘기와 함께, 에이전트로서 하는 일이 너무 없어서 미안하다는 최창훈의 말.
헤타페 CF에서 임대 조건에 주급 100% 부담하겠다는 항목을 포함시켰기에 사실 그가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쉬지 못할 정도로 바빠질 거라는 것을 이때는 몰랐다.
‘…확실히 이런 선택지도 있었네.’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도착한 상태였지만, 유건의 머릿속에는 축구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최창훈과의 전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전송된 피드백 레포트를 보고 있는 것.
자료의 형식은 진행되는 경기의 장면, 장면을 잘라내서 당시 플레이를 보면서 아르테타와 코치진의 의견이 오가는 내용이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을 반복해서 보면서 상황에 따른 선택지의 폭을 넓혀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경기의 장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볼 수 있었지만, 당사자에게는 확실한 피드백이었다.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패스 루트를, 다음번에는 고민을 해볼 수 있을 거니까.
“와 대박! 시청률이 그렇게 올랐어?”
“으응, 인기 있는 연속극 조연이라구 이제!”
“내가 진짜 재밌다고 그랬지?”
잠들기 전에는, 바쁜 날이더라도 매일 빠트리지 않는 하나의 일을 할 차례였다.
바로 여자친구인 나여름과의 전화.
떨어져 있는 만큼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은 대화의 시간을 정해두자는 서로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것이 계속되는 한 그들의 관계도 꾸준하게 이어지지 않을까.
***
“오늘 상대의 포지션은 3-5-2로, 쓰리백과 투톱 전술을 들고 나왔다.”
“워밍업을 하면서 다들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모습으로 떠나간 팬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게 우리의 숙제다!”
저조한 성적에 홈구장 곳곳에 비어있는 공간이 많았지만, 헤타페 CF의 모든 이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야 그들도 와서 응원하는 맛이 있지 않겠나.
“훈련과 동일하게 바요스를 중심으로 미드필더 지역에서부터 경기를 이끌어나가 보자고.”
‘…일반적인 쓰리백 형태구나.’
오늘 마르티노 감독이 들고나온 전술은 3-5-2의 쓰리백을 이용한 전술이었다.
예전 둠바를 필두로 했던 나이지리아의 쓰리백은 그를 믿고 미드필더 지역을 강화하는 변형 전술이었고, 보통의 3-5-2는 미드필더 지역에서 숫자의 부족을 발생시킬 수 있다.
보통 두 명으로 구성되는 센터백 라인.
거기에 한 명을 추가한 세 명의 중앙 수비수를 둠으로써 팀원 중 한 명이 더 수비에 더 치중하게 돼버리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들과는 다르게 미드필더진을 가장 핵심으로 여기는 이니에스타의 전술이었기에, 비교하기에는 애매했다.
어떤 쪽의 전략이 뛰어난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니, 말 많이 하고! 필드 위에서 팀을 이끄는 건 자네야.”
“알겠습니다, 감독님!”
이 모든 전술을 경기장 안에서 지시하고 팀원들을 독려하는 것은 바로 주장이 맡는 역할이다.
다니 가르시아.
장신을 이용해서 헤딩을 주무기로 삼지만, 발이 느려 뒷공간에 대한 약점이 있는 수비수였다.
그리고, 헤타페 CF의 주장이었다.
진중한 성격으로 평소 말수가 없었지만, 이 상황에서만큼은 우렁차게 대답한다.
삐이익-!
“쿠아바, 알지? 이건 우리에게 지나가는 단계에 불과하다.”
“…쉽게 올라가면 재미없잖아? 우선 오늘 이겨서 19위로 한 계단 오르고 차근차근 가보자고!”
헤타페의 선축으로 시작되는 경기.
휘슬이 울리고 공격수인 쿠아바가 공을 빼주기 전, 그와 조그마한 목소리로 각오를 다진다.
언어교환을 하면서 더욱 친해져 가는 그와는 임대 이후에도 같은 소속팀이었으니 미래에 대한 얘기까지 대화를 나눴다.
돌아가서 주전뿐만 아니라 좋은 활약을 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충분한 발전을 이뤄내고 돌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당장 눈앞에 닥친 오늘의 경기부터 이겨보자고 다짐하는 둘이었다.
“나바스, 전진해! 내가 중앙으로 커버 갈게.”
“바요스랑 마르티노도 자리 잡아줘!”
그렇게 시작된 경기는 강등권을 다투는 두 팀이 만났기에 막상막하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꽤나 크게 벗어났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영입된 선수들을 중심으로 개편된 스쿼드는 더 이상 헤타페 CF를 하위권으로 보아선 안 될 것 같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만큼 오늘 미드필더진에서 볼을 소유하고 그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 아니, 축따형이 가는 팀마다 미드필더진 진짜 좋은 것 같지 않냐?
- 마지막에 바요스 데려온 게 이니에스타가 쓴 신의 한 수 같음.
- 나바스 저 선수도 잘하네! 프리메라리가는 엘클 빼고 처음 보는데 매력 있는데?
- 원래 이런 팀 아님. 축따형 영입을 시작으로 쿠아바, 바요스로 끝내면서 보강 엄청 이뤄짐!
이제 세계적인 리그에서 활약하는 유건, 자신들의 축따형을 응원하는 팬들도 그저 감탄하고 있었다.
K리그 2나 올림픽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올림픽 때보다 압박이 거세지고, 몸싸움이 거칠어진 것은 중계로 봐도 느껴질 정도였는데 유건은 공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스트라이커, 윙어와 주고받거나 측면 혹은 백패스를 통해 주변의 미드필더, 수비수들과 볼 소유권을 유지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공간이 날 때는 이제는 직접 간단한 드리블로 치고 나갈 정도였다.
“쿠아바, A!”
헤타페 CF가 밀어붙이는 양상은 계속해서 균형의 추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 32분을 지나는 시점, 그 균형을 깨트리는 것은 두 명에 의해서였다.
유건이 임대를 떠나기 전 아스날에서 훈련할 당시 장난식으로 쿠아바와 계획했던 플랜 A, B, C.
자세히 말을 하면 주변의 수비수가 듣기 때문에 자신들만 아는 명칭을 붙여 짜놓았던 것이다.
헤타페에서 재회 후, 진심으로 실전에서 이용해보기 위해서 정규일정이 끝나고 남아서 둘이서 추가훈련을 진행했던 것.
“오케이!”
그런 둘만의 비밀스러운 약속이 지금 경기에서 나타난 것이다.
플랜 A.
유건의 패스가 들어올 때, 받고 돌아서려는 페인팅을 주고 달려 들어오는 유건에게 다시 리턴 패스를 내준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압박하는 수비수의 측면이나 뒤쪽 편으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피해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건이 그곳으로 정확하게 패스한다.
최대한 다이렉트 슈팅이 가능하게 쿠아바의 발밑으로.
투욱-!
‘…나이스!’
“젠장, 제발…!”
자신의 발에 정확하게 들어오는 리턴 패스를 돌아서 뛰는 쿠아바의 발밑으로 재차 패스를 보낸다.
이미 그의 바디페인팅에 속아서 움찔하는 찰나 움직임을 놓쳤던 중앙 수비수는 비속어를 내뱉으면서도 태클을 위해 다리를 뻗는다.
혹시나 유건의 패스가 자신의 발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함께.
출렁-!
“이거야, 이거라고! 으아아!!!”
그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것은 공이 굴러가는 단 몇 초의 시간 뒤였다.
유건이 보낸 패스는 자신이 발을 딛는 움직임까지 고려해 자신 있는 왼발로 슈팅을 찰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못넣을 수가 없는 공이었다.
이제서야 뛰쳐나오고 있는 골키퍼는 뒤에 보이는 거대한 골대를 지키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으니까.
임대 후 출전하는 첫 경기에서 선제골로 팬들을 향해 괴물같이 포효하며 양손을 위로 반복하여 올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쿠아바였다.
와아아아-!
“으아아아!!”
“나이스다, 이놈들아!”
셀타비고전과 동일하게 선제골을 넣는 헤타페 CF를 바라보며 팬들도 흥분한 건 마찬가지였다.
지난 경기는 우연으로 그랬다 치더라도, 오늘은 경기력에서부터 완전히 압살하고 있었으니까.
쿠아바의 포효에 호응해주는 팬들의 우렁찬 함성을 들으며 아직까지 코너라인에서 기뻐하는 쿠아바의 등 위에 올라타는 것은 유건.
그리고 그를 이어 나바스, 바로스, 가르시아 등 팀원들이 달려와 골의 기쁨을 함께 즐겼다.
전반 32분, 앞서나가는 골을 넣은 팀은 헤타페 CF.
***
삐이익-!
와아아아-!
헤타페 CF 2 : 0 마요르카.
홈구장 콜리세움의 전광판에 비친 오늘 경기의 결과였다.
결과에 따라 20위에서 19위로 겨우 한 계단 상승하게 되었지만, 팬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 정도의 경기력이라면 강등권 탈출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되었기에.
“우선 쿠아바 선수와 사이좋게 한 골과 한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른 선수들 모두가 열심히 뛰어줘서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체출전을 포함하여 세 번째 경기에서 바로 MOM을 수상한 유건이었다.
덕분에 인터뷰를 해야 했고, 가장 먼저 승리에 대한 소감부터 말하고 있었다.
“임대를 오신 이후 올림픽에서처럼 좋은 활약을 이어 나가고 계신데 자신감이 조금 올라오셨나요?”
“감독님, 그리고 팀원들의 도움이 있어서 자신감은 충만한 상태입니다.”
다음으로는 이제는 자신감이 올라왔냐는 기자의 질문.
활약에 대한 걱정을 하긴 했지만, 자신감은 처음부터 충만했던 유건이었다.
다만 너무 자만심에 빠진 것처럼 보일까 봐 팀원들과 감독에게 공을 돌리긴 했지만 말이다.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셨는데요. 다음 경기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지요?”
1골 1어시스트.
기회 창출 4회.
드리블 돌파 1회.
키패스 2회.
볼 커팅 1회.
유건의 오늘 경기 스텟이었다.
엄청난 활약이라고 칭찬하면서 다음 경기에 대한 포부를 기자가 물어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로.
‘다음 경기라….’
“…크흠,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처음 맞붙어보는 팀이니까요!”
“그들이 유명한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겨보고 싶네요.”
물어오는 마지막 질문에 잠깐 생각하는 유건.
몇 초의 시간이 지난 후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호기심은 느껴질지언정, 두려움은 없었다.
상대 팀이 프리메라리가의 최상위권 팀으로 꼽히는 두 팀 중 하나라 할지라도 말이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데려갔던 경기장에서 직접 본 건 잘 기억이 안 났기에, 중계를 볼 때마다 궁금해하곤 했다.
정말 이 팀에게서 공을 뺏어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프로선수들도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면서도 쉬지 않고 패스를 잘 돌리는 팀인지가.
“티키타카 전술이란 거.”
그들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인 손지민이 핵심으로 있는 팀이기도 했으며, 전 세계적 유명세를 누리는 팀이었다.
탁구공이 서로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의 스페인어.
[티키타카]라 불리는 전술을 펩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가장 잘 구사한다고 평가받는 팀.
바로 FC 바르셀로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