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감독님, 들으셨어요
“저 친구,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데?”
“유일하게 미드필더진에서 볼을 키핑해서 팀의 공격권을 지켜내고 있어!”
“올림픽에서 보여준 게 운이 아니었나 본데!”
사실 유건의 자신감대로 5분 만에 팬들의 야유를 모두 멈추기에는 과장이 섞인 시간이었지만, 이니에스타의 주문은 제대로 수행했다.
투입되고 약 10분 만에 팬들의 야유를 자신에 대한 응원이 조금씩 시작되는 분위기로 바꿔버린 유건이었으니까.
4-3-3 포지션의 오른쪽 메짤라 자리에 출전하여, 미드필더 지역 근처에 도달할 때마다 잃어버리던 볼의 소유권을 지켜내는 것.
그게 바로 유건이 투입된 이후 첫 번째로 한 일이었고 덕분에 추가 실점 없이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홈구장에 있는 헤타페 CF의 팬들을 사로잡으면서.
“실바, 살짝 줘봐!”
더불어 함께 투입된 클라우디오 마르티노의 폭발적인 오버래핑은 팀원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일까, 달리면서 돌파하는 스타일보다는 자리를 잡고 서서 정확한 크로스를 구사하는 헤타페의 오른쪽 날개 카를로스 실바와 궁합이 좋았다.
실바의 뒤를 돌아 뛰면서 들어오는 패스를 정확하게 크로스하는 마르티노였으니까.
“마르티노!”
“실바!”
무엇보다 그 둘에게 패스를 건네주는 것은 바로 유건.
오른쪽 메짤라의 자리에서 주전이었던 선수가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이적이 확정되면서, 강등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이 나왔던 헤타페 CF였다.
하지만 기존의 선수보다 전체적인 능력은 부족할지라도 공의 소유권을 지켜내고 공격을 이끄는 부분에서는 한 수 위였던 유건이었다.
게다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오른쪽 사이드백의 공격력.
약점으로 꼽히던 오른쪽 라인이 그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을 시작하는 첫 경기였다.
“마르티노, 오버래핑 올라와!”
“내주고 파고들어, 실바!”
훈련에서는 호흡이 조금 어색했을지라도, 팬들의 응원이 들려오는 홈구장이었기 덕분인지 오히려 실전에서 서로의 움직임이 더 잘 조합되었다.
물론 아직 서로의 패스를 완전하게 이해하진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오른쪽 라인의 분위기 덕분에 공격권을 지켜내고 있었으니, 유건의 결정은 이제는 점차 조금씩 볼을 전진시켜나가는 방향.
“에제!!”
후반전 양상이 반코트 경기였던 문제로, 꽤 오래간만에 공을 잡는 선수.
바로 헤타페 CF의 에이스 자리를 몇년 동안 지키고 있는 엠마누엘 에제, 팀의 스트라이커였다.
원톱의 포지션에 위치한 공격수치고는 다소 키가 작아 헤딩 능력이 약점으로 꼽히긴 했지만, 시즌마다 10골 이상씩은 넣어주는 선수였다.
이른 시간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공을 잡기 시작했다는 점은 팀의 공격이 원활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투욱-!
“아으, 진짜!!”
물론 그 말이, 지금 바로 엄청난 모습을 보이면서 에제가 바로 골을 터트린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약 10분 만에 터치하는 공을 키핑하다가, 슈팅이나 패스를 선택하기 전에 레알 베티스 수비수의 발에 차단당했다.
“빨리 수비 복귀하라니까!”
“…저 자식, 또 저러네!”
그 실책으로 인해 공격권이 넘어갔기에, 헤타페의 모든 선수들은 수비를 하기 위해서 재빠르게 복귀하고 있었다.
공을 빼앗긴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잔디를 축구화로 차면서 내려오지 않는 에제에게 한마디씩 하면서.
그가 몇 년 동안 팀의 득점을 책임져주면서 에이스를 맡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그런 모습을 빈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이번 시즌 헤타페가 리그 순위표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한 이후로는 의욕이 떨어진 모습을 팀원들에게까지 티를 내면서 말이다.
‘좋지 않아.’
그리고 그 장면은 이니에스타 감독이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후보 공격수의 부상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스타팅 라인업에 계속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팀이 강등권, 지금 헤타페 CF처럼 심지어 리그 테이블의 최하단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팬들을 위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용납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더불어 최근 훈련 시간마다 시간을 지키지 않고 매일같이 지각 혹은 결석을 반복하던 에제의 모습.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또 한 번 반복되는 장면은 훈련 때의 그 모습과 겹쳐서 보였다.
‘…흐트러지는 선수가 있어서는, 팀이 무너진다.’
알고 있었다.
유럽대항전 진출은커녕 매년 강등을 겨우 탈출하는 팀에 대한 그의 헌신과 열정이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것은.
이번 시즌이 개막하기 전 좋은 오퍼가 들어왔을 때 보내주자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구단 임직원들을 설득시켰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를 내보내는 가격으로 대체가능한 자원을 찾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34세라는 나이 때문에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몸값이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꽤 좋은 오퍼였음에도, 유망한 다른 공격수를 살만한 금액에는 모자랐다.
삑! 삑! 삐이익-!
“스카우터팀에 내일 회복훈련 이후, 내 방에서 긴급회의가 있다고 전해주게.”
“그리고 다음 경기를 위해 원정을 떠나기 전날, 선수 영입과 방출에 관계된 임직원들을 모두 참여시켜서 회의를 한 번 하지.”
하지만, 더 늦지 않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입생들의 좋은 활약에도 동점 골을 넣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 생각에 신경이 쓰여 집중하지 못했었다.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후 ‘우선 저질러놓고 보자’라는 생각이 가장 앞선다.
경기를 끝내는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리자마자 코치진에게 부탁하여 회의를 요청한다.
당장 오늘 그 일정이 모두에게 통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갑자기요? 이사님들께도 참석해달라고 전달해야 합니까?”
“물론, 예외 없이!”
상대 감독에게 악수를 하러 가는 자신의 등 뒤에서 물어오는 코치의 질문은 이사진들에게도 회의에 참석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것.
당연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그들을 설득하고 승인을 받아야 했다.
팬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팀의 에이스를 팔아넘기고 다른 선수로 대체해보겠다는 도박성이 짙은 문제에 대해서는 말이다.
***
‘오늘도야, 젠장할! 이제는 여지가 없어.’
일주일, 원정을 위해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
어제 경기에 대한 피로를 풀기 위한 회복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헤타페 CF의 트레이닝 센터.
이니에스타 감독이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도 정해진 일정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 에제가.
‘마지막까지 내가 할 선택에 믿음을 주는군.’
그것을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곧 내릴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대체 갑자기 왜?’
‘2주 남았으니 새로운 선수를 한 명 더 영입하고 싶은 건가?’
그리고 회복 훈련이 끝나자마자, 이니에스타 감독의 사무실로 약 열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사진들이 포함된 미팅을 하기 전에 대안을 마련해놓기 위해 어제 미리 불러놓았으니까.
헤타페 CF의 영입을 맡고 있는 팀과, 방출을 담당하는 팀원들.
그러나 급작스런 호출인 건 틀림없었기에 자리에 모인 그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감독의 입만 주시하고 있었다.
각자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추측을 하며 기다린다.
“지금부터 우린 남은 이적 시장 기간 동안 스트라이커 영입 혹은 임대에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주력이 빠르면서 연계가 되는 선수, 그게 우리의 타겟입니다.”
마침내 입을 연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이 중간에 끊고 들어올 타이밍을 주지 않고 연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이니에스타였다.
마음속에서 결정을 이미 내렸기에 찰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남은 겨울 이적 시장에서 한 명의 선수 이상을 영입해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한다.
“…에제 선수가 혹시 부상당했나요?”
그렇게 질문이 되돌아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몇 년 동안 활약했던 스트라이커를 판매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으니까.
덜컥-!
“그건 아니….”
“허억, 허억! 감독님, 들으셨어요?”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지금 에제 선수가 에이전트와 함께 아틀레틱 빌바오 구단으로 들어가는 사진이 SNS에 올라왔습니다!”
팀원들에게 판매해야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당황스러운 상황.
오늘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다들 들으셨죠? 지금부터 우린 판매에 스카우터팀의 모든 인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규율을 밥 먹듯이 어기고 비밀스럽게 타 구단과 접촉을 하고 있는, 스트라이커 엠마누엘 에제 선수를 최대한 비싸게 팔기 위해서요.”
“그는 더 이상 우리 팀의 공격수가 아닙니다.”
잠시 침묵하던 이니에스타는, 자신의 입을 주목하고 있는 주변인들에게 확실히 말했다.
앞으로 헤타페 CF의 공격수는 에제가 아니라고.
최근 에제의 이적 관련 찌라시가 나오고 있었지만 구단에 알리지 않고 직접 개인적으로 타 구단과 접촉을 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행동이었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있습니다.”
“그가 외국인 쿼터였기에, 영입해야 할 선수의 폭이 넓습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니에스타가 던져주는 한 가지 희망.
3명까지 허용되는 프리메라리가의 외국인 쿼터.
엠마누엘 에제도 유건과 마찬가지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 적절한 선수가 있고 합의만 된다면 영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쉽진 않겠죠, 하지만 한 명 혹은 두 명을 영입해서라도 처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에제가 보여준 모습은 확실하게 팀의 구원자였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헤타페 CF의 상황에서는 그 공백을 메워줄 선수를 찾아야만 했다.
덤으로, 에제의 이적료도 최대한 받아내야 했고.
추가적으로 영입해야 할 선수들을 위해 말이다.
‘이걸 설득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떠난 사무실에 혼자 남아, 앞으로의 스쿼드를 구상해보는 이니에스타였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놓은 스쿼드는 만족스러웠지만 설득이 필요했다.
팬들과 구단을 이끌어가는 직원, 이사진들에게 말이다.
유건을 영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보면 도박 수에 가까웠으니까.
‘이루어진다면, 중위권 이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나, 곱씹으면서 생각할수록 머릿속에 구상해본 스쿼드는 밸런스가 잡혀있었다.
수비진과 공격진을 이어주는 미드필더 라인을 강하게 구축하는 것을 기반으로 말이다.
공격수를 임대하기 위해서는 강한 설득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해보려는 이니에스타였다.
자신이 보기에 지금 상황에서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 힘들 정도로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